【연재】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2
3. 보천보전투
오 백 룡
우리 항일유격대가 조국땅에 진출하기 위하여 장백현으로 나온것은 1936년 가을이였다.
그해 초에 녕안현에서 력사적인 남호두회의가 열리였다.
이 회의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을 더욱 발전시키며, 당창건을 준비하며, 국내혁명운동에 대한 지도를 강화할데 대하여서와 조선인민혁명군을 압록강과 두만강국경일대에 진출시킬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이 회의후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위대한 수령님의 친솔밑에 장백일대에 진출하여 무장투쟁을 확대하여갔다.
이에 당황한 일제침략자들은 각곳의 병력을 모아가지고 우리 부대의 활동을 막아보려고 갖은 발악을 다했다. 그러나 적들은 우리가 장백현에 진출한 가을 한두달동안에만 하여도 대덕수, 소덕수, 반절구, 이도강, 20도구 등 이르는곳마다에서 섬멸적인 타격을 받았고 그해 겨울에도 곰의골, 문암동, 홍두산, 도천리, 리명수전투 등 여러차례의 전투에서 참패를 당하였다. 그리하여 놈들의 《동기토벌》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와 같이 우리 부대는 무장투쟁을 강화하는 한편 장백현일대에 당조직들과 조국광복회 조직망을 확대하면서 광범한 반일력량을 묶어세워 튼튼한 혁명적군중지반을 닦아놓았으며 국내혁명운동에 대한 지도를 강화하였다.
이 시기 일제침략자들은 중국 본토와 쏘련을 침공하며 나아가서는 전아시아를 강점할 흉계를 꾸미면서 조선에 대한 략탈과 탄압을 더욱 강화하였다. 놈들은 《내선일체》니 《동조동근》이니 하고 떠벌이면서 국내의 애국자들을 모조리 검거투옥하려고 날뛰였으며 조선의 모든 자원을 깡그리 긁어가고 조선인민을 중세기적암흑속에서 허덕이게 하였다.
일제의 검은 마수는 이 국경지대의 깊은 산간에도 악착하게 뻗치였다. 원래 삼수, 갑산지방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멀리 타지방에서 일제와 지주의 착취에 시달리다 못해 부대기나 일구어먹으려고 모여온 사람들이였다. 그러나 일제는 천년묵은 백두의 원시림을 모조리 찍어내면서도 산림을 《보호》한다는 구실밑에 이곳에서 부대기마저 마음대로 일구지 못하게 하였다.
지금은 옛말로 되였지만 입을것이 없어서 화전민들이 추운 겨울에도 마대쪼박으로 간신히 허리를 감고지냈다는것도 이때의 일이다.
바로 이러한 때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을 거느리시고 국경대안에 진출하여 령활한 전술로 원쑤들에게 련속적인 타격을 주셨다.
이 감격에 찬 기쁜 소식은 전체 조선인민의 가슴을 새로운 희망과 흥분으로 설레게 하였으며 항일유격대가 하루빨리 국내에로 진격하여나오기를 갈망하게 했다.
우리들은 장백지대에 나온후 조국산천의 숨결을 몸가까이에 느끼며 그 품에 안길 날을 손꼽아기다렸다.
국내진공을 앞두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미 입수한 각종 정찰자료에 근거하여 부대행군로의 거리, 시간, 습격대상과 습격방법, 전투대오의 편성, 군중들에 대한 정치사업 등 제반문제에 대하여 주밀한 전투계획을 세우시였다.
나는 그때 전령병으로 있은 동무에게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천막에는 며칠밤을 계속하여 동녘이 밝아올 때까지 등불이 꺼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드디여 력사적인 조국진군의 날, 1937년 6월 2일이 왔다.
7련대와 8련대, 경위중대에서 선발된 150여명의 대원들로 구성된 원정대는 위대한 수령님의 령솔밑에 조국에로 진군을 개시하였다.
우리는 이날 예정된 시간에 23도구어귀 부락에 도착했다. 마을사람들은 우리를 지성껏 환영했다.
여기서 우리는 군중정치사업을 진행하면서 하루밤 휴식하였다.
이튿날 아침 구시골둔덕에 오른 우리는 천년만년을 두고 흘러내리는 압록강의 푸른 물결이며 허리에 흰구름을 감고 높이 솟은 조국의 산봉우리들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보고싶던 산과 강인가! 눈앞에 바라보이는 조국땅에서는 이 시각에도 강도 일제놈들이 인민들의 고혈을 빨아내며 온갖 만행을 감행하고있으리라는것을 생각하니 두주먹이 떨리며 치솟는 격분을 참을수 없었다.
해가 저물자 부대는 어둠을 리용하여 다시 진군을 개시하였다.
대오는 흥분과 긴장속에서 묵묵히 나아갔다. 구우수강과 압록강이 합치는 물동부근 도하지점에서 우리는 이미 준비하여놓은 떼목다리로 강을 건넜다.
압록강을 건는 다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떼목다리를 지키며 부대의 철수를 보장하기 위하여 도하지점부근에 한개구분대를 매복시키셨다.
전대오가 곤장덕에 올랐을 때는 벌써 날이 밝아올 무렵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원들에게 휴식명령을 내리셨다. 모두들 드러누웠으나 누구하나 피로를 느끼지 않았고 종시 잠들지 못하였다. 어느덧 동쪽하늘이 훤히 밝았다. 6월 4일, 조국땅에서 맞는 첫 아침이다. 우리는 황홀한 눈으로 주위를 바라보았다. 무연한 밀림속에 거연히 솟은 백두산은 아침해살을 떠이고 더욱 눈부시게 빛났다.
《웅장하구나! 얼마나 아름다운가!》
모두 감격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조국땅의 큰 품속에 안긴 벅찬 심정을 이기지 못하여 어떤 동무들은 나무를 그러안고 돌아갔고 어떤 동무들은 풀우에 막 딩굴었다. 그리고 흙을 움켜쥐고 코앞에 갔다대기도 하고 뺨에 비비기도 했다.
이날낮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원들에게는 휴식을 명령하시였으나 자신께서는 조금도 쉬지 않으시고 이제 시작할 전투를 더욱 빈틈없이 준비하시기에 여념이 없으시였다.
6월 4일은 보천보 장날이여서 한낮이 되면서부터 거리는 사방에서 모여든 장군들로 들썩거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복잡한 틈을 리용하여 마동희, 김확실동무들을 거리에 파견하시였다.
그들은 닭알장사군 혹은 행인으로 가장하고 보천보거리를 다니면서 적들의 동태를 탐지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친히 망원경으로 보천보시내에 도사리고앉은 적기관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살피시였다.
오후에 곤장덕수림속에서는 지휘성원들의 모임이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모임에서 각 구분대에 다음과 같은 전투임무를 내리시였다.
명령에 의하면 1개구분대는 산림보호구, 면사무소, 농사시험장, 우편국을 습격하게 되였고 다른 1개구분대는 기관총 1문을 가지고 혜산으로 통하는 도로와 전화선을 차단하고 그 방향으로부터 오는 적의 증원부대를 소멸하게 되였다.
그리고 기관총 2문을 가진 1개구분대는 경찰관주재소를 습격하는 동시에 무산방향으로 통하는 도로를 차단할 임무를 맡았으며 나머지 1개구분대는 시내 각곳에 삐라와 격문을 살포하며 주민들에게 선전해설공작을 하는 동시에 로획한 적의 군수물자를 운반할 임무를 담당하였다.
지휘처는 가림천강변 황철나무밑으로 정하였으며 공격개시시간은 밤 10시였다.
전투임무가 전체 대원들에게 알려지자 모두 사기충천하여 원쑤격멸의 결의를 더욱 굳게 다지면서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드디여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졌다.
이윽고 위대한 수령님의 출발명령이 내렸다. 우리는 척후대를 앞세우고 1렬종대로 곤장덕을 내려갔다.
대렬은 단숨에 가림천강변에 당도했다. 보천보를 감돌아흐르는 가림천기슭에는 물방아간이 있었다. 우리는 그 강을 건너 은밀하고 신속하게 각각 지정된 목표에로 접근했다.
나는 기관총을 으스러지게 틀어잡고 주재소로 한발자국한발자국 다가갔다.
주재소에 접근하여 안의 동정을 살펴보니 때마침 경관 두놈이 죄없는 농민 두사람을 심문하는중이였다. 한놈은 몽둥이를 쥐고 옆에 섰고 다른 놈은 이쪽에 등을 대고 거만하게 앉아있었다. 나는 참을수 없는 분통이 치밀어올랐다.
바로 이때에 위대한 수령님의 신호총소리가 암흑의 밤을 깨뜨리며 보천보의 거리를 뒤흔들었다. 나는 원쑤의 가슴팍을 겨누고있던 기관총의 방아쇠를 당기였다. 한놈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고 남포등이 깨여졌다.
그러자 다음놈이 뛰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기관총을 무릎우에 놓고 사격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안으로 돌입하였다. 팔을 얻어맞은 경관놈은 대항할 생각도 못하고 돼지우리속에 들어박혀 벌벌 떨고있었다. 우리는 주재소에 있는 적들을 통쾌하게 소멸하고 경기, 보총, 권총 등 여러정의 무기와 많은 탄약을 로획하였다.
때를 같이하여 면사무소, 산림보호구, 농사시험장, 우편국부근에서도 콩볶듯 하는 총성이 일어났다.
인민들의 피땀을 빨아먹던 일제기관들에서 타오르는 불길은 하늘을 찔렀다.
이날밤 산림보호구주임(일본놈)의 《영전》을 축하하느라고 시내의 《유력자》들은 거의다 료리점에 모여 주연을 벌려놓고놀다가 무리죽음을 당하였다.
보천보의 거리를 뒤흔들며 울려퍼진 항일유격대의 총소리는 인민들을 새로운 투쟁에로 불러일으켰다.
거리는 침묵을 깨뜨리고 일어났으며 혁명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보천보는 낮처럼 밝았다.
《조선독립 만세!》, 《조선혁명 만세!》, 《김일성장군 만세!》
골목골목에서 떨쳐나온 남녀로소들은 소리높이 만세를 부르며 유격대원들을 그러안고 눈물을 흘리였다.
선전공작대원들의 눈부신 활동으로 삽시에 온 거리가 흥성거리고 《조국광복회 10대강령》, 《포고》와 선전문이 도처에 나붙었다.
《포고》내용은 이러하였다.
《간악무쌍한 강도 일본제국주의는 조선을 강점하고 20여년동안 총독정치라는 식민지통치로써 조선동포들을 유린학살하고있다. 그러므로 우리 조선동포들은 놈들에게 피와 땀으로 된 재산을 모조리 략탈당하고 비참한 식민지노예의 생활을 하게 되였다. 뿐만아니라 놈들은 우리 민족을 제2차대전의 〈선봉대〉로 하여 중국을 침략하는 전쟁의 도구로 내몰고있다.
우리 조선민족은 생사존망의 위기에 봉착하였다.
우리들은 자기 민족의 출로를 개척하고 자기 살길을 타개하며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조국을 광복하기 위하여 싸우는 조선인민혁명군이다. 우리들이 6~7년간 만주광야에서 필사적투쟁으로 일본제국주의략탈자들에게 치명적타격을 준것은 세인이 다 인정하는바이다.
본군은 조선에 있는 애국지사와 열혈적인 본군용사들의 강력한 단결에 기초하여 조선민족의 피를 빨아 배를 불리는 흡혈귀 조선총독부와 직접 싸울 목적으로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 함남북일대에 원정하게 되였다.
가련한 조선동포형제들! 속히 출동하여 반일민족통일전선에 단결하여 각종 투쟁으로써 본군의 유격전쟁에 호응하라!
하루속히 일제통치를 분쇄하고 진정한 조선인민의 정부를 수립하는데 매진하자!》
이 절절한 호소는 인민들에게 끓어넘치는 애국심과 적개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날밤 선전대원들은 높은곳에는 목말을 타고 올라서서 전보대들과 벽, 나무, 울타리, 문짝 할것없이 사처에 삐라를 붙이였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오셨다! 우리 혁명군대가 왔다!》고 하면서 인민들은 앞을 다투어 주재소앞거리로 밀려나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환호하는 군중들에게 뜨거운 답례를 보내시면서 그들에게 일제침략자들의 흉악무도한 만행을 폭로규탄하고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하여 일체 반일애국력량이 굳게 단합하여 원쑤를 반대해싸울것을 호소하는 열화같은 연설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연설은 군중들의 가슴을 한없이 격동시켰으며 그들에게 조국의 자유와 광복에 대한 굳은 신념을 북돋아주었다.
그렇게도 깊이 흠모하고 존경해온 민족의 영웅이시며 절세의 애국자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영명한 모습을 우러르는 인민들은 다함없는 기쁨과 감격속에 잠기였다. 여기저기서 감격적인 상봉이 벌어졌다.
거리는 환희와 희망으로 들끓었다.
한참후에 부대의 철수를 알리는 나팔소리가 울렸다. 석별의 정을 금치 못해하는 인민들은 저마다 로획물자를 지고 우리를 따라나섰다.
《조국이여, 보천보여 잘 있으라! 이제 그대를 영원히 해방하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보천보를 떠나는 대원들은 저마다 이렇게 결의를 다지였다.
대원들은 정든 조국의 땅을 잊지 못해 흙을 한줌씩 배낭속에 깊이 간직했다.
대오는 다시 압록강변에 왔다. 떼목다리는 벌써 준비되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둠속에서 전체 대원들이 강을 건느는것을 한사람씩 보살피신 다음 제일 마지막에 강을 건느셨다. 그이께서는 항상 이처럼 인자한 어버이의 심정으로 대원들을 아끼고 사랑하시였다.
몇시간후에 보천보의 소문을 들은 일제군경들은 《긴급회의》를 열고 덤벼쳤다. 놈들은 경찰대를 보천보에 급히 파견하는 한편 압록강상류인 농산과 독산방면에도 경찰대들을 출동시켰다. 그리고 혜산에 있던 놈들의 수비대와 기타《토벌대》들을 총동원하여 가림리쪽으로 내몰았다. 보천보전투의 소식을 듣고 대경실색한 총독부에서는 군부와 경찰책임자들을 불러놓고 비상대책을 세우느라고 혈안이 되여 돌아쳤다.
6월 5일 아침 우리를 추격하여 제일먼저 강을 건너온 놈들은 오가와경찰대였다.
이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로획물자를 지고 우리를 따라온 약 200여명의 인민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시면서 이미 온 길로는 적들이 추격하여오고있으므로 그들에게 피해가 없도록 하기 위하여 다른 방향의 오솔길을 택하여 돌아가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돌아가기 서운해하는 이들과의 작별에 앞서 다시금 그들앞에서 연설을 하시였다.
이때 그이께서는 비록 오늘은 우리가 철수하지만 우리와 다시만날 날은 멀지 않았으니 집에 돌아가서도 앞날의 승리를 확신하고 일제를 반대하는 투쟁에서 끝까지 용감할것을 강조하시였다.
그리고 그들이 이처럼 항일유격대를 도와준데 대하여 거듭 사의를 표하시고 매 사람들에게 전리품을 나누어주셨다.
강을 건너온 적들은 우리를 추격하자니 겁이 나고 돌아가자니 상관의 《명령》을 거역하게 되므로 할수없이 《결사척후대》라는것을 만들어가지고 경기 2문을 앞세우고 경사진 구시산턱으로 헐레벌떡거리며 게바라올라왔다.
그러나 이미 산마루의 유리한 진지를 차지하고 만단의 전투준비를 갖추고있던 우리 부대는 놈들에게 섬멸적타격을 주었다. 놈들은 이날 전투에서 수십명이 살상되고 경기관총 1정과 적탄통을 비롯한 많은 무기와 군수기자재를 내버리고 달아났다. 일제군경들은 거듭 참패를 당하였다.
구시산전투에서 이런 성과를 달성한 우리 부대가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행군을 계속하여 간삼봉지역에 다달았을 때였다.
6월 30일 새벽 보초소로부터 대규모의 《토벌대》가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곧 간삼봉지역에서 적을 섬멸할 구체적인 전투계획을 세우시고 산아래 경사진 릉선에 각각 부대들을 배치하시였다.
놈들은 2,000여명의 정규군을 동원하여 3개 방향으로 이른바 포위진을 치면서 우리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작전계획과 침착하고 령활하신 전투지휘에 의하여 새벽부터 저녁까지 전개된 전투에서 적들은 1,500여명이나 살상당하였으며 놈들의 《3면포위공격》기도는 완전히 분쇄되였다.
이리하여 력사적인 1937년 6월의 국내진공작전은 성공적으로 수행되였다.
* *
그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지나갔다.
그러나 보천보전투에 대한 이야기는 세월이 흐를수록 조선인민을 무한한 감격속에 잠기게 한다.
그것은 이 전투가 우리 민족이 생사존망의 위기에 처한 가장 암담한 시기에 모든 조선인민들의 심장속에 혁명의 거센 불길을 지펴놓았으며 청사에 길이 빛날 위훈을 남겨놓았기때문이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지휘밑에 진행된 보천보전투의 력사적승리는 일제통치의 암흑속에서 신음하던 조선인민에게 승리의 신심과 희망을 안겨주었을뿐만아니라 오늘도 우리 인민들을 보다 빛나는 승리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고 있다.
4. 공청원 리순희동무
김 옥 순
1933년 10월.
조선인민과 항일유격대에 대한 적들의 만행은 더욱더 악랄해졌다.
《조선인 100명을 죽이면 그속에 당원이나 공청원이 한명은 있을것이다.》라고 하면서 일제침략자들은 도처에서 주민가옥에 불을 지르고 인민들을 《통비분자》라고하여 체포학살하였다.
당시 왕청지방에서만 하여도 수많은 인민들이 학살되거나 집을 잃고 헤매게 되였다. 그러다가 그들은 대부분 유격근거지를 찾아들어왔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 정형을 아시자 곧 인민들을 근거지안에 안착시킴과 동시에 우리 아동단원들과 고아들을 유격대의 병실부근에 데려다 보호하게 하시였다.
그리고 왕청현 아동국장인 리순희동무를 우리에게 파견해주셨다.
그는 나보다 3살우인 17살이였는데 얼른 보기에는 더 숙성해보였다.
그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지주집머슴으로 있으면서 눈물겨운 생활을 하다가 위대한 수령님의 지도로 공청원이 된 동무였다.
그는 처음만난 우리들을 모두 친동생처럼 보살펴주었다. 적들속에서 요행 살아나온 고아들의 어지러운 몸을 일일이 더운 물로 씻어주기도 하고 찢어진 옷을 꿰매주기도 하였으며 저녁에 우리가 자리에 누운 다음에도 몇사람의 옷을 빨아 말리워가지고 그 다음날에 새로 갈아입히기도 하였다. 그리고 적들의 만행에 의하여 몸을 상한 아이들을 밤을 새워가면서 간호해주었다.
이렇게 우리들이 왕청현 대북구골안에 자리잡고있을 때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에게로 오셨다.
그이께서는 홑바지저고리를 입었거나 맨 짚신에 몽당치마를 두른 아이들이며 얼굴에 화상을 당한 아이들을 일일이 살펴보시며 안아주시였다. 우리는 친아버지보다 더 극진히 돌보아주시는 그이앞에서 새삼스럽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의 차겁게 언 자그마한 손들을 주물러도 주시고 더 가까이 이끌어앉히면서 울지 말라고 타이르기도 하시였다.
우리 조국을 빼앗고 부모를 학살하여 너희들을 고아로 만든 일제침략자들과 그 앞잡이들을 없애버려야 우리가 잘살수 있는 세상을 일떠세울수 있다. 너희들도 이날을 앞당기기 위하여 모두 마음을 굳게 먹고 몸을 튼튼히 하며 유격대로 나간 아버지, 오빠, 아저씨, 누나, 형님들을 생각하면서 모두 공부를 잘해야 한다.
그이께서는 또한 《너희들은 우리 조국의 꽃봉오리이며 앞날의 기둥이다. 너희들이 명랑할 때 우리도 명랑하고 너희들이 잘 자라면 우리도 기운이 솟는다. …어서 무럭무럭 커서 나라의 훌륭한 기둥들이 되거라.》라고 말씀하시였다.
이 말씀을 들으며 우리는 부모들이 체포학살되던 일이며 불붙는 집에서 기여나오던 일들을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을 회상할 때 슬픔보다도 오히려 적에 대한 참을수 없는 적개심과 그놈들을 때려눕히고야 말겠다는 투지로 불타올랐다.
이때 순희동무는 위대한 수령님의 옆에서 그이의 말씀을 한마디라도 빠칠세라 받아썼다. 그것은 우리에게 하신 그이의 말씀이 곧 아동단사업의 지침이였기때문이였다.
그이께서 다녀가신후 순희동무는 더욱 세심하게 우리를 돌봐주고 사랑해주었으며 우리의 투지를 북돋아주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는 유격대아저씨들이 용감하게 적을 무찌르던 이야기며 다른 지방 아동단원들이 어떻게 적의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유격대와 지하공작원과의 련락을 보장하였는가 하는 이야기들을 자주 들려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바쁘신 틈을 내시여 늘 우리를 만나주셨고 생활과 학습을 일일이 알아보시고 보살피시였다. 우리들의 건강에 세심한 관심을 돌려주시는 그이께서는 우리가 밥을 꼭꼭 씹어먹을것과 잠자기전에 손과 발을 깨끗이 씻고 잘것까지도 엄격히 요구하시였다. 이처럼 우리 신변의 사소한 면에까지 따뜻한 사랑을 돌려주시는데 대하여 우리는 감격을 금할수 없었다. 그래서 자려고 누웠다가도 혹 발을 씻지 않았나하여 다시일어나서 살피게 되는 때도 있었다.
어느날 나는 꿈속에서 발씻는 일을 잊었다고 생각하게 되여 몹시 안타까와하다가 잠에서 깨여났다. 그때 침실을 돌아보고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내곁에 누워자는 김정희라는 9살난 어린 동무의 모포를 드시고는 자리밖으로 드러난 그의 발과 몸을 차근히 덮어주시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의 모포도 여며주셨고 다른 아이들의 잠자리도 그렇게 보살펴주시는것이였다.
그이께서 침실을 조용히 돌아보고나가신 뒤에 나는 쉬이 잠들수 없었으며 저도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베개를 적시였다.
《옥순동무, 아직 안자요?》
머리맡에서 들리는 리순희동무의 목소리였다. 나는 급히 눈물을 닦고 순희동무에게 얼굴을 돌렸다.
내가 아무런 대꾸도 없이 눈을 감아버리자 순희동무는 나의 뺨을 닦아주며 어서 자라고 하였다. 그리고 고콜에 핀 광솔불을 가지고 한쪽구석으로 가서 학습장을 펴놓고 주의깊게 읽으면서 무엇인지 또박또박 쓰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무슨 공부를 하는가 하고 가만히 몸을 일으켜보았더니 얼마전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하신 말씀을 적던 그 학습장을 펴놓고 공부하고있었다.
그의 커다란 그림자가 가득차있는 방안에서는 어린 아이들의 쌔근쌔근 잠자는 숨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과 우리들을 보살펴주시던 모습이 눈앞에 선히 떠오르면서 좀처럼 잠들수 없었다.
우리들이 마음놓고 겨울을 지내도록 안전하고 따뜻한 잠자리와 솜옷을 주시고도 마음을 놓지 못하시고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밤깊도록 우리들의 잠자리까지 몸소 돌봐주시는 그이의 어버이사랑과 인자한 손길에 나는 더없이 감격했다. 그러면서 나는 부모를 잃고 의지할곳없이 지내던 얼마전까지의 처지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왜놈들에게 집을 불태우고 부모와 헤여진 일이며 9살때부터 남의 집 아이를 업어주면서 하루종일 발방아를 찧던 설음이 북받쳐올라 나는 저도모르게 흑흑 흐느꼈다.
나는 모포자락으로 급히 입을 막았으나 순희동무는 얼른 기척을 느끼고 내게로 왔다.
《왜 그래? 응, 무슨 생각을 했지, 옥순이.》하고 나직이 말하며 그는 나의 얼굴을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울면 못써. 더구나 옥순동무는 분대장이 아니야. 누구보다도 곤난을 더 잘 참고 마음을 크게 먹으면서 어떻게 하면 잘 싸워나갈수 있는가 하는것을 생각해야지.》
《언니, 그런게 아니야요. 나는 지금 행복해요. 그래서 그만 … 그런데 저 … 언니, 장군님의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하나요?》
그러자 잠시 말없이 나의 어깨를 어루만져주던 그는 《장군님의 말씀대로 몸을 튼튼히 하고 공부를 잘하며 어서어서 무럭무럭 자라서 조국의 훌륭한 일군이 되여야 해.》하고는 빙긋이 웃으며 다시 자리로 갔다.
그 다음날 아침이였다. 잠을 깬 나는 물론 다른 아동단원들도 모두 명절날을 맞은것보다 더 기뻐서 뛰였다.
그것은 우리들을 돌아보고가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솜이불과 새옷을 더 보내주셨고 학습장도 2권씩이나 보내주셨기때문이다.
이때 순희동무가 떠들썩한 우리들을 돌아보며 《여러 동무들! 장군님의 은혜를 갚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했으면 좋겠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모두가 순희동무에게로 다가섰는데 9살난 김정희동무는 다음과 같이 대답을 했다.
《나는 장군님께 가서 새로 만든 솜옷을 입고 기뻐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드리고싶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준비한 유희도 마음껏 보여드립시다. 그리면 장군님께서와 유격대아저씨들, 우리들의 아버지, 어머니, 오빠들이 또 얼마나 기뻐하시겠어요.》
그러자 모두들 손벽을 치며 환성을 올렸다.
《참, 좋은 생각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순희동무는 우리를 데리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곳에 찾아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이 유희대공연을 하겠다는 말에 매우 만족해하시면서 꼭 보아주시겠다고 하셨다. 막상 그이의 이런 말씀을 받고나니 잘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근심도 생겼다. 그러나 우리들은 밤잠을 자지 않고 지도하는 순희동무를 따라 더욱 기운을 내여 열성껏 준비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와 유격대아저씨들이며 근거지안의 인민들이 많이 모인 병실에서 우리가 한 첫 공연은 《단심줄》이였다.
무대중심에는 당을 상징하는 붉은 기둥이 서있고 그 기둥의 꼭대기로부터 조선 13도를 상징하는 13개의 줄이 드리워있었다. 이 13개의 줄은 통일전선을 상징하는 여러가지 색갈로 되여있는것이다.
유격대, 로동자, 농민, 사무원, 청년, 학생, 지식인 등등으로 각계각층 대표를 상징한 옷차림을 하고 13명의 아동들이 나타나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줄을 잡고 당을 상징한 붉은 기둥주위를 빙빙돌아갔다. 이렇게 하여 13개의 줄은 하나의 단심줄로 처녀의 머리태처럼 땋아졌다. 그리고 그들은 또다시 노래를 부르면서 이미 준비해가지고 나왔던 각도의 지도도본들을 높이 펼쳐들고 돌아가며 류창하게 합창을 하다가 함경북도 대표로부터 차례차례로 조선 13도의 지도를 붙여나간다. 그리하여 무대정면에는 어느 사이엔가 그리운 조국, 삼천리금수강산 아름다운 조선의 지도가 이루어지면서 노래와 춤은 더욱 고조에 오른다. 우렁찬 박수소리가 일어났다.
우리는 그만 감격하여 어쩔줄 모르다가 《김일성장군 만세!》, 《조선독립 만세!》 를 불렀다.
이렇게 감격어린 속에서 우리는 여러가지 노래와 춤을 계속하였다.
유희대공연이 끝났을 때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중들앞에 나오셨다.
군중들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박수와 환호를 올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내여드린 자리에 오르시지 않고 군중들앞에 그냥 서신채 말씀을 하시였다.
《여러분! 우리는 이 귀여운 어린이들을 더욱더 씩씩하고 명랑하게 키워야 하겠습니다. 어린이들은 우리의 희망이며 우리 조국의 꽃봉오리들입니다.…》이 말씀을 들은 군중들의 환호소리는 더욱더 장내를 뒤흔들었다.
그이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여러 어린 동무들은 참으로 훌륭한 공연을 했습니다. 동무들이 《단심줄》에서 보여준것처럼 우리는 인민혁명정부의 주위에 한마음한뜻으로 뭉쳐서 조국땅에서 일제를 몰아내고 자유롭고 행복한 새 사회를 건설해야 합니다.
오늘은 동무들이 유희를 보여주었지만 앞으로는 동무들이 훌륭한 간부가 되여 각계각층 군중을 하나로 튼튼히 묶어세워야 하겠습니다.
이런 말씀을 듣고 돌아온날 저녁에 순희동무는 우리들을 더욱 극진히 돌봐주었고 글을 가르치는데도 보다 깊은 관심을 돌렸다.
그는 보통 밤이 깊도록 자리에 눕지 않고 책을 읽었으며 때로는 날이 샐 때까지 다음날 해야 할 일을 준비하군 하였다.
이러한 어느날 아침 우리들이 《언니, 오늘부터는 밤을 새지 마세요. 우리들이 더 도와드릴테야요. 그러다가 언니가 앓기나 하면 어떻게 해요.》하고 말하니 순희동무는 두눈에 기쁨을 담으며 우리를 그러안아주는것이였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하여주었다.
《동무들이 그렇게 걱정해주니까 나는 아무리 밤을 샌대두 일없을것 같애. 그전날에는 지주집 부엌에서 매를 맞고 울기도 했지만 …이제는 우리 조국의 귀중한 꽃봉오리들을 위해서 일을 하니까 동무들이 튼튼하기만 하면 나는 막 기운이 나. 자, 그럼 어서 아침준비를 마저합시다.》
그러면서 순희동무는 먼저 노래를 부르며 일손을 잡았고 나도 동무들도 모두 따라서 노래를 부르면서 그날의 일과를 즐겁게 시작하였다.
…
목에다 두른것은 붉은 넥타이
등에다 짐을 지고서 훈련을 나간다
장하다 그의 이름 아동단 아동단 아동단
세상이 모두다 칭찬한다 아동단 아동단
…
나이는 어려서 아이지마는
굳센 마음으로 용감히 싸운다
장하다 그의 이름 아동단 아동단 아동단
세상이 모두다 칭찬한다 아동단 아동단
이런 노래를 부르며 한자리에 모여든 아동단원들은 순희동무의 구령에 따라서 아침체조를 하고 그것이 끝나면 모임을 가졌다.
모임이 끝나면 국어, 정치, 지리, 력사, 노래 등 과목을 수준에 따라 순희동무에게서 직접 배우기도 하고 분대장, 소대장동무들의 지도를 받으면서 학습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저녁이면 《혁명이란 무엇인가》,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어떤자들인가》등을 가지고 토론회도 자주 가졌다.
이렇게 우리는 즐겁고 행복한 아동단생활을 계속하였고 하루하루 눈에 띄게 발전하여갔다.
이리하여 우리들중 적지 않은 아이들은 아동단생활을 끝마치고 소년선봉대원으로 뽑혀갔고 또 어떤 동무들은 공청원으로서 적구에 나가 공작을 하기도 했으며 연길, 훈춘 등지로 련락을 다니기도 했다.
* *
1935년 가을이였다.
리순희동무는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박길송동무 등 몇명의 공청원을 데리고 지방공작을 떠났다.
그후 나는 다시 그를 만나지 못하였고 그와 함께 공작을 나갔다가 적들에게 체포되여 모진 고문을 받고 《가석방》되여나온 박길송동무에게서 다음과 같은 사연을 들었다.
지방에 나와서 공작을 하던 리순희동무는 리봉문이라는 주구놈과 헌병놈들에게 발각되여 몸을 피하다가 놈들의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 요행 치명상은 아니였으나 그는 그길로 적들에게 끌려가서 고문을 받게 되였다.
부상을 당한데다가 모진 고문까지 겪게 되니 그의 고통은 헤아릴수 없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그의 가슴을 아프게 한것은 자기가 맡은 중요한 책임을 다하지 못한것이였다.
그는 모진 고통속에서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교시를 명심하고 끝까지 적들의 고문에 견디여 낼것을 굳게 다짐했다. 그는 원쑤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형틀을 조이고 매질을 할 때에도 입을 다물고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이놈들아, 내가 죽는다해도 네놈들에게 비밀은 안댈테다!) 이렇게 그는 꿋꿋이 견디여나갔다.
그러나 그는 혼자 누워있는 감방속에서 소리없이 흐느껴울었다.
그는 멀리 북만원정의 길을 떠나신 위대한 수령님과 유격대아저씨들이 참을수 없이 그리웠고 자기와 떨어져서 지낼 아동단원들에 대한 근심이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철없는 아이들이 나를 기다리다가 찾아나서지나 않을는지. 그러다가 놈들에게 들키면 어쩌나.)
이러한 근심과 고통속에서 며칠이 지나간 어느날이였다. 왜놈들은 리순희동무를 고문으로써는 어쩔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를 회유할 목적으로 다른 방법을 썼다.
처음에 리봉문이라는 주구놈이 의사를 데리고 그를 찾아왔다.
《순희, 나어린 녀자의 몸으로 조국을 찾겠다는 그 생각만은 참으로 훌륭해. 그러나 내 말을 들어봐. 이왕 이렇게 된바에야 어서 상처를 고치고 살 궁냥을 해야할게 아니야. 조선이 독립되면 뭘하고 그대로 일본사람들과 함께 살면 어때. 어쨌든 일생을 살기는 매일반인데.…》하고 짖어대면서 그의 상처를 들여다보고있었다. 순희동무는 그놈의 모가지를 당장 꺾어놓고싶었다. 그래서 몸을 벌컥 일으키던 그는 모진 상처때문에 그만 정신이 아뜩하여지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후에도 의사가 드나들며 리순희동무의 상처를 처치할 때마다 리봉문이라는자는 추근추근 따라 들어와서는 리순희동무에게 말을 걸었다.
《순희를 고문하지 않고 이렇게 치료하여주는것은 나의 주선으로 석방해주기 위한것이야. 유격대들이 간곳과 왕청지방에 있는 지하공청원들이 있는곳을 대라구. 설혹 고백을 해도 이 감방에서 누가 알 사람이 있겠는가. 어서 마음놓고 비밀을 말하면 팔자를 고치게 해준다.》고 하는것이 그놈의 수작이였다.
어느정도 몸이 회복되였으나 기력을 차릴수 없는 순희동무는 그놈이 짖어대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멀리 산속에 있는 아동단원들을 생각하며 분한 마음에 입술을 깨물었다.
순희동무가 다시 눈을 감고 잠잠하여진것을 본 리봉문이란자는 또다시 지껄이기 시작했다.
《순희, 꽃같은 청춘에 무엇때문에 산속에서 그처럼 고생을 하겠소. 물론 나두 쏘련이 있기때문에 혁명이 승리할수 있다는것을 아오. 그렇지만 그것은 먼 장래의 일이요 그리구 빨찌산들이란…》
이 말을 들은 순희동무는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받친 그는 작은 주먹이나마 힘껏 움켜쥐며 유격대를 모욕하는 그자의 상판을 후려쳤다.
뜻밖에도 호된 주먹에 얻어맞고 주춤거리는 리봉문이의 낯짝은 그대로 몽둥이에 맞은 미친개처럼 눈까지 시뻘개졌다. 그리고 놈은 이발을 부드득 갈며 순희동무를 마주보았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지 순희동무의 마음을 끌어잡을수 있는 적합한 말을 고르려는듯 입술에 침을 바르고섰던 그자는 다시 추근거리며 다가섰다.
《이렇게 몸을 상하게 된 일이 물론 분할것만은 사실이요. 그러나 더 넓게 생각해보오. 지금은 큰 소리를 치지만 그래두 목숨아까운줄은 알것이구 또 살고싶을테지.》
그자가 이렇게 말을 하고있을 때에 순희동무는 어느결엔가 벽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이 서슬에 그놈은 《악!》소리를 치며 뒤로 물러섰다.
그놈을 놓쳐버리고 다시 자리에 쓰러진 순희동무의 주먹은 부르르 떨렸다.
《개만도 못한 반역자야! 왜놈의 발바닥을 핥고 사는 네놈이 누구에게 어쩌자는게냐. 당장 짓밟아 죽이기전에 나가라, 이놈아!…》
리봉문이의 그따위 수작에 넘어갈 순희동무가 아니였다.
그자는 물러서고 다시 헌병대장에게 끌려간 순희동무는 또 혹독한 고문을 받기 시작했다.
《유격대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 대라!》
순희동무는 온몸에 파고드는 아픔을 참으며 소리쳤다.
《우리 유격대는 어느 산, 어느곳에나 있다. 나더러 그걸 어떻게 대란 말인가.》
헌병놈들의 고문은 더 가혹해졌다. 순희동무는 아픔을 견디다 못하여 까무라치군 했다.
순희동무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지친 몸을 움직이면 놈들은 그의 전신에 찬물을 끼얹고 다시 고문을 시작했다.
《라자구시내에 있는 지하공작원의 이름을 대라. 누구누구냐?》
순희동무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대답했다.
《라자구시내에는 공산당원이 많다. 시외에도 많다. 너희놈들은 나를 죽일수는 있을지언정 내입에서 그들의 이름을 들을수는 없다.》
적들은 순희동무를 3개월간이나 고문했으나 그의 입에서 그 어떤 말도 얻어내지 못했다.
이와 동시에 놈들은 박길송동무 등 어린 공청원들을 고문했으며 《가석방》을 시킨후에 뒤를 밟아보았으나 종시 유격대나 지하공작원들에 대한 단서를 잡지 못하였다. 뿐만아니라 박길송동무를 하모다이부근에서 놓쳐버리고말았다.
더욱더 악에 받친 놈들은 순희동무에게 마지막 불고문으로 온몸을 지졌으나 굳게 다물어진 그의 입을 열게 할수는 없었다.
《에이, 독한 계집년, 내다 총살해!》
직접 나타나서 그에게 고문을 하던 헌병대장놈마저 땀투성이가 되여 물러서고말았다. 그리고 그놈들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에게 총살언도를 내렸고 헌병대 뒤산으로 끌어냈다.
손과 발에 쇠고랑을 차고 전신을 결박당한채 언덕우에 선 순희동무는 군중을 향하여 고개를 들었다. 산밑에는 군중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있었다. 그것은 순희동무의 총살장면을 보임으로써 인민들의 불타는 혁명의식과 조국광복에 대한 념원을 꺾어보려고 놈들이 강제로 끌어낸 군중들이였다.
순희동무는 그 군중들속에서 낯익은 얼굴들을 수없이 찾아볼수 있었다.
순희동무를 마주보는 그들의 눈에서도 불이 이는것 같았다.
순희동무는 그들을 향하여 《아버지! 어머니!》하고 목이 메도록 소리를 치고싶었다. 순희동무에게는 그들이 참으로 친부모형제와 같았다.
일본침략자를 물리치고 어서 조국을 광복해야겠다고 하면서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온갖 지성을 다하여 유격대와 정치공작원들을 원호해주었다. 일제관헌들과 주구들의 눈을 피해가며 식량을 모아주고 편지를 전해주었으며 적정을 보고해주었고 적들의 정탐으로부터 우리 공작원들을 보호해주었다. 그들은 순희동무가 내려갈 때에도 늘 친자식처럼 사랑하고 보호해주었다.
《저이들이 내가 죽는것을 보면 얼마나 슬퍼하랴. 아니다. 그들은 내가 끝까지 왜놈과 싸워 용감하기를 더 바랄것이다.》
순희동무가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군중들을 더듬어보고있을 때에 총을 멘 놈들이 그앞에 늘어섰다.
군중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더 똑똑히 순희동무의 귀에 아니 그의 뜨거운 가슴에 새힘을 북돋아주었다.
이러한 때에 리봉문이란자가 순희동무곁으로 다가왔다.
《이제라도 네가 살아날 길은 있다. 그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너는 우리를 욕할 때처럼 그 좋은 언변으로 저 군중들이 알아듣도록 빨찌산은 나쁘다, 빨찌산을 믿지 말라고 소리를 치기만 하면 너는 살수 있고 높은 벼슬도 할수 있다.》
이 말에 순희동무는 쇠고랑을 채운 두손에 버쩍 힘을 주었다. 그의 몸은 부르르 떨렸다. 그러나 그는 침착하고 준렬하게 소리를 쳤다.
《이놈아, 사람의 탈을 쓴 개야! 아가리를 닥쳐라! 너 같은 개들은 죽는게 무섭지만 나에게는 공청원의 영예가 더 귀중하다. 백번을 죽여봐라. 나는 김일성장군님의 사랑과 저 인민들의 믿음을 저버리고 너같은 개가 될수는 없다.》
그러면서 그는 끌려나온 군중들에게 몸을 돌리며 목청을 가다듬고 소리를 쳤다.
《동포여러분! 우리에게는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고 나날이 장성하는 항일유격대가 있습니다. 왜놈들과 주구놈들에 의하여 집이 불타고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들도 모두 행복하고 씩씩하게 자라고있습니다. 이 힘은 그 어느놈도 막지 못합니다. 왜놈들과 주구들을 몰살시키고 우리 조국이 광복될 날은 멀지 않습니다. 우리는 꼭 승리합니다. 여러분은 꼭 그날을 믿어야 합니다. 절대로 왜놈들에게 지지 말아야 합니다. 경찰서와 헌병대에 불을 지르고…》
순희동무가 여기까지 말을 하였을 때에 당황한 왜놈들의 떠드는 소리와 구령소리들이 어수선하게 일어났다.
그러나 후리후리한 키에 단발머리를 한 순희동무의 쟁쟁한 목소리는 그 모든 소음을 짓누르는듯 높이 울렸다.
《우리에게는 김일성장군님께서 령도하시는 유격대가 있습니다. 조선은 반드시 독립되고야 맙니다.》
순희동무의 목소리가 울리자 동시에 군중들속에서도 격분에 찬 함성소리가 울렸고 그속에 섞여있던 공청원들이 뿌리는 삐라가 꽃잎처럼 날리며 군중들의 머리우에 떨어졌다.
왜놈들은 더욱 당황하여 날뛰였고 군중들의 함성은 한결같이 《조선독립 만세!》, 《김일성장군 만세!》소리로 더욱더 높아갔다.
그 시기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와 깊은 사랑을 받으며 자라난 수많은 아동단원들과 공청원들과 유격대원들은 리순희동무와 같은 불굴의 투지와 혁명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싸웠다.
리순희동무의 영웅적활동은 이러한 투쟁중의 하나의 실례에 불과한것이다.
지금도 내 귀에는 순희동무가 나에게 자주 들려주던 말이 쟁쟁히 울리군 한다.
《장군님께서 가시는 길로 끝까지 따라가야 해요. 그러자면 우리는 어떤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아동단의 규률을 지켜내야 해요.》
그후 우리는 바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리키시는 길을 따라 그리고 이러한 리순희동무의 모범을 본받아서 꿋꿋이 싸워왔다.
나는 오늘도 위대한 수령님의 슬하에서 자랐고 용감히 싸운 리순희동무를 무한한 존경과 애정을 가지고 회상하군 한다.
이렇게 그의 숭고한 투쟁정신은 언제나 나의 가슴속에 길이 살아있으며 그는 우리와 함께 나아가고 있다.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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