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치도에 대한 이야기》
김철호
1937년 5월중순경에 있은 일이였다. 내가 속한 조선인민혁명군 제4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작성하신 국내진출계획에 의하여 두만강을 건너 무산군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어느날 우리 부대는 무산군 붉은바위라는곳에 진출하여 일제가 경영하는 목재판을 습격하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일제놈들과 악질주구놈들을 소탕하고 많은 식량과 물자들을 로획하였다.
동시에 우리 유격대원들은 인민들속에서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해설선전사업을 진행하였다. 우리는 로획한 식량과 물자를 운반하기 위하여 자진해나선 100여명의 인민들과 함께 유유히 두만강을 건넜다.
다음날 아침에 뒤에 남겨둔 방차대동무들이 강을 건너와 산에 올랐는데 그때에야 일본《토벌대》놈들이 마구 총을 쏘아대며 미친개모양으로 따라오다가 강기슭까지 왔다가는 비실비실 돌아가고말았다.
유격대원들은 로획한 물자를 정리하며 한편으로는 식사들을 했다. 여기서 우리는 40여명의 인민들만 남기고 나머지인민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점심때가 거의 되였을 때 지휘부에서는 《토벌대》놈들이 추격해오리라는것을 예견하고 행군명령을 내렸다.
우리는 밀림속을 헤치며 서남쪽으로 행군해갔다. 이 지대는 밀림바닥이 대부분 속새판이였으므로 한번쯤 디뎠다놓아서는 풀이 다시일어나 발자국이 나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는 대개 횡대를 지어 속새판을 지나갔다.
저녁녘에 우리 부대는 대마록구하 상류지대에 당도하였다. 밀림속을 벗어나니 후련하게 넓은 진펄 새밭이 깔린 골짜기가 나타났다. 그 건너편은 다시 수림이 덮인 산에 잇닿아있었다. 우리 부대는 새밭을 헤치며 건너가서 산밑에 제방처럼 둔덕진곳에 자리잡고 숙영하게 되였다.
우리는 소나무를 찍어다가 여기저기에 초막을 치고 숙영준비들을 하였다.
유격대원들은 오매에도 잊지 못하던 조국땅을 밟아본 감격과 국내진출의 첫전투에서 성공한 기쁨으로 하여 노래도 부르고 유쾌한 이야기꽃을 피우며 흥성거렸다.
저녁에 소를 잡아 각 중대에 분배하여 오래간만에 푸짐하게 식사들을 하였다. 날이 어둡자 초막들에서는 활활 우등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당시 련대장이였던 최현동지는 지휘부에 회의하러가고 피곤한 대원들은 우등불가에 발을 모으고 곤히 잠들기 시작했다.
그날 나는 식사당번이였으므로 식기들을 치우고는 다음날 아침식사준비를 위하여 소고기를 손질했다. 뼈를 갈라내고 탕을 쳐야 하겠는데 식칼이 없었으므로 나는 《치도》(일본군대 총창)를 사용하기로 했다. 당시 우리 유격대원들은 일제놈들에게서 로획한 《치도》를 무기로 사용하는 한편 흔히 생활도구로도 사용하였었다. 그런데 나의 《치도》하나만 가지고서 탕치기가 퍽 불편하였다. 나는 생각다못해 가까이에 누워자는 련대나팔수 김자린동무의 《치도》를 잠시 사용하고 돌려줄 생각이 났다.
도마우에 고기를 올려놓고 량손으로 탕을 치는데 왜그런지 그날밤 나의 마음은 명절이나 맞는것처럼 즐겁고 유쾌하였다.
나는 고기를 다 손질하자 《치도》를 물에 잘 씻어서 내것은 칼집에 꽂고 김자린동무의것은 나무단우에 올려놓았다. 일하던것을 다 치우고난후에 초막으로 가지고들어가려는 심산이였다. 그런데 일을 끝내고는 그만 《치도》생각을 깜빡 잊어버렸다.
나는 초막에 들어가서 총을 안고 배낭에 기대여누웠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회의에 갔다온 련대장이 일어나서 뭐라고 말하는바람에 나는 눈을 떴다. 련대장은 보초장을 불러 무슨 정황이 없는가고 물었다. 보초장은 《새밭에서 설렁거리는 소리가 났으나 아무리 살펴도 인기척은 없습니다. 아마 노루같은 짐승이 싸다니는 모양입니다.》하고 대답했다. 련대장은 머리를 기웃거렸다. 이때 새밭속에서 버스럭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련대장은 《언덕밑으로 넘어섯!》하고 구령을 쳤다. 그러자 유격대원들은 벌떡 일어나 모두 총들을 들고 언덕밑으로 넘어섰다. 이와 거의 동시에 우등불무지에 수류탄이 날아와 터지면서 불무지가 헤쳐지고 갑자기 사방이 캄캄해졌다.
새밭속으로 기여든 《토벌대》놈들은 마구 사격하기 시작했다. 조금후에 우리가 있는 뒤산에서도 적들이 사격하며 내려왔다. 우리는 만약의 경우를 예견하고 미리 행동방향을 지시받고있었으므로 언덕밑 웅뎅이를 끼고 날쌔게 옆으로 빠져나갔다. 놈들은 우리를 꼼짝못하게 포위하려고 계획한 모양이였다. 그런데 앞뒤에서 달려들던 적들은 우리가 감쪽같이 옆으로 빠져나간것을 모르고 어둠속인지라 저희들끼리 서로 맞불질을 하기 시작했다. 점점 더 세찬 총성이 일어나고 제놈들끼리의 개싸움은 일층 격렬해졌다.
이리하여 숙영지는 수라장이 되고 총소리가 콩볶듯이 밤하늘에 울렸다. 유격대원들은 총한방 쏘지 않고 놈들의 개싸움을 구경하면서 산으로 빠져올라갔다. 이때 나는 밀림속으로 달리다가 문득 《치도》생각을 하고 멈춰섰다. 《치도》는 귀중한 무기의 하나요, 또 그것은 더구나 김자린동무의것이다. 무기를 잃은데 대하여 엄한 처벌이 있을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것보다도 동지의 무기를 사용하다가 잃어버렸으니 2중3중의 죄과를 범하는것이며 또한 동지에 대하여 한없이 미안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거기에는 또한 소고기를 탕쳐놓은 그릇도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니 나는 그냥 갈수가 없었다. 나는 가던 길을 돌아서서 《치도》를 찾아오기로 결심했다. 우리가 숙영하던 부근까지 가보니 거기에서는 한창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고있었는데 바로 우리 초막이 있던 자리는 탄알이 날아오고 날아가는 중간지대로 되고있었다.
나는 생각다못해 총을 잔등에 지고 탄우속을 뚫고 기기 시작했다. 앞이 캄캄하여 어방을 잡을수가 없었다. 탄알이 금방 내 잔등을 스치는듯 싶었다. 나는 땅에 납작 몸을 붙인채 한치한치 기여나아갔다. 나는 두손으로 앞을 더듬으며 여기저기 헤맸다. 얼마후에 소고기를 탕치던 칼도마가 손에 잡혔다. 계속 그 근처를 살펴보는데 탕쳐놓은 소고기소랭이가 손에 닿았다.
나는 그것을 한손으로 끌면서 다시 《치도》를 찾아돌아갔다.
한참후에 나무단이 손에 잡히기에 그것을 끌어당기니까 털썩 하고 《치도》가 땅에 떨어졌다. 나는 그것을 손에 쥐니 얼마나 기쁜지 막 소리라도 치고싶었다. 이때 적탄이 나의 머리를 스치며 군모를 벗겨버렸다. 나는 다시 어둠속에서 군모를 얻어내고야 말았다. 나는 《치도》와 고기소랭이를 안고 다시 그곳을 빠져나오기 시작하였다. 적들의 개싸움은 그칠줄을 모르고 밤새 계속되였다. 나는 산으로 빠져올라가 새벽녘에야 우리 부대동무들을 만났다.
나는 련대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고 처분을 기다렸다. 련대장은 무경각하게 그런 사고를 저지른것은 유격대원으로서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엄하게 책망했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서고만있었다. 그는 다시 《이번 일을 앞으로의 교훈으로 삼으시오. 그〈치도〉를 자린동무에게 돌려주고 사과하시오.》하고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였다.
엄격한 처벌이 내릴줄로만 생각했던 나는 련대장의 관대한 처분에 감격하지 않을수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그런 과오를 범하지 않을것을 굳게 다짐하였다.
나는 김자린동무에게 《치도》를 돌려주고 나의 잘못을 심심히 사과하였다.
나는 날아드는 총탄을 헤치고 꺼내온 소고기로 아침식사를 준비하여 동무들에게 대접하였다. 어떤 동무들은 《남의 〈치도〉를 쓰다가 잃었던 사실은 좋지 못한 일이지만 하여튼 그 복새통에 들어가서 소고기소랭이까지 안고나온것을 보니 철호동무의 담통도 보통이 아닌걸.》하고 말하는것이였다.
적들은 날이 밝은후에야 개싸움을 그쳤는데 낮에 내려가보니 놈들의 추악한 시체가 너저분하게 널려있었다. 우리는 숙영하던 자리에서 배낭들을 얻어내여 지고왔다.
이 일이 있은후부터 나는 순간도 자기 무기를 소홀히 생각하지 않게 되였으며 그야말로 자기 생명과 같이 아끼고 보호하게 되었던것이다.
16. 왕청현 쟈피거우전투
오백룡
1933년 3월이였다. 나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솔하시는 항일유격대에 입대하여 처음으로 그이께서 직접 지휘하시는 전투에 참가하게 되였다.
우리 중대가 왕청현 쟈피거우를 향하여 소왕청 마촌을 떠난것은 날이 어두워서였다. 우리는 수림속을 뚫고 북으로 행군을 계속하였다.
쟈피거우는 왕청동북쪽 약 40리지점에 위치한 산간부락이였는데 이 부락치기에는 아름드리나무들이 울창하게 들어서있었다.
당시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중국 동북을 영구히 강점하여 그것을 전 중국과 쏘련을 침공하기 위한 발판으로 만들기 위하여 군용철도를 부설하며 전주를 세우는 등 도처에서 군사시설공사에 광분하고있었다. 적들은 수많은 인민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이곳 쟈피거우골짜기에서도 전주와 철길침목용목재들을 달구지로 실어내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여기 길옆에 매복하였다가 이 달구지행렬을 《호위》해다니는 적들을 불의에 습격하여 무장을 탈취할 계획을 세우셨다.
종전까지만 하여도 우리는 주로 소수인원으로 무장을 획득하였으며 집단적으로 한다고해도 10명내외의 인원들이 기습의 방법으로 무장을 탈취하였다. 그러나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현명한 무장투쟁로선을 받들고 급속히 장성강화된 우리 유격대는 이 시기에 와서는 벌써 1개중대이상의 병력들이 집단적으로 무장탈취투쟁에 동원되기 시작하였고 그것도 이동하는 적을 매복전으로 기습하여 일시에 많은 무기를 탈취하는 등 그 규모가 커지고 방법이 퍽 발전되였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지휘밑에 진행된 왕청현 쟈피거우전투는 그의 전형적인 실례로 된다.
중대는 김일성동지의 친솔하에 쟈피거우골짜기에 도착하자 길좌우편에 진을 쳤다. 길 북쪽산릉선에는 2개소대가 매복하고 그 맞은편 길 남쪽산릉선아래 묵밭에는 1개소대가 매복하였다. 나와 김창섭동무는 길에서 한 20m가량 떨어진 홈타기에 마른 덤불로 위장을 하고 엎드렸다.
그리고 한개분대가량 되는 병력은 우리가 있는데서 왕청쪽으로 1㎞쯤 떨어진 길 북쪽산릉선에 방차대로 나가있었다. 방차대는 왕청쪽에서 오는 적을 감시하는 동시에 전투가 벌어졌을 때 적의 후속부대가 접근해오는것을 방어할 임무를 맡고있었다.
사령부지휘처는 길 북쪽무명고지에 있었다.
우리는 날밝기전에 만단의 전투준비를 갖추었다.
나는 김일성동지께서 계시는 고지쪽을 바라보기만 하여도 마음이 든든해지고 승리의 신심이 저절로 솟구쳐올랐다. 이것은 비단 나혼자만의 심정이 아니였다. 김일성동지의 지휘를 받게 된 전체 대원들이 이런 신심에 불타고있었던것이다.
어느덧 날이 훤히 밝아오기 시작했다. 어둠속에 가리웠던 물체들이 하나둘 그의 륜곽을 드러내놓았다.
우리의 뒤에는 군데군데 눈이 남아있는 경사진 묵밭이 수림으로 잇닿아있었는데 수림까지는 200m가 되나마나하였다.
동쪽산마루에 해가 솟아올랐다. 나는 긴장하여 적정을 살피면서 한편 손에 쥔 무기를 자주 내려다보았다.
당시 내가 가지고있은 무기는 토퉁이였다. 토퉁도 역시 보병총의 일종이기는 하였으나 탄알을 한발씩 재우는것으로서 적들이 가지고있는 38식보병총에 비하면 아주 락후한것이였다. 게다가 나는 탄알 5발밖에 가지고있지 못하였다. 그래서 나는 이번 전투에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38식보병총과 많은 탄알을 적들에게서 빼앗아내야 하겠다고 결심하였다.
나는 이제나저제나 하고 적들이 나타나기만 기다렸다. 그러나 적들은 얼른 나타나지 않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는 더 자주 지휘처쪽을 바라보았다. 우리의 심정을 꿰들고계시는 김일성동지께서 새로운 대책을 취해주실것만 같이 생각되였기때문이였다. 그러던차에 나는 그 언젠가 김일성동지께서 하시던 말씀을 문득 생각하고는 저도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아는것이 힘이요. 모르는 사람은 언제나 지는 법이요. 우리는 배워야 하오. 우리는 용감한 빨찌산대원일뿐만아니라 인민들을 교양하는 선전자이며 조직자가 아닌가. 그럴수록 우리에게는 지식이 필요하며 리론이 필요하오.
그러나 행군과 전투가 일과나 다름없는 우리 유격대원들에게 언제 학습할 시간이 따로 있겠소. 한가한 시간을 보아서 학습하자는것은 결국 학습을 하지 않겠다는거나 마찬가지요.
우리는 길을 걸으면서도, 싸움을 하면서도 짬만 있으면 배워야 하오.
나는 지나치게 긴장하여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낼번한 자신을 꾸짖었다.
나는 이미 배운 문제들을 머리속으로 열심히 복습하였다. 그럴 때였다. 아래쪽골짜기에 적들이 나타났다는 신호가 왔다. 그것은 오전 10시경이였다.
(그럼 그렇지. 이놈들 어디 갈데 있나.)
나는 하마트면 소리를 지를번 하였다. 흥분과 기쁨으로 뒤설레는 가슴을 지그시 눌러가면서 나는 그쪽을 주시했다. 약 20명가량의 자위단놈들이 총을 메고 걸어오고있었다. 그놈들의 뒤에는 흰옷을 입은 인민들이 달구지를 몰고 련달아섰다. 달구지는 얼핏 보아도 70대는 넘는듯 그 행렬의 끝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자위단놈들이 어깨에 멘 보병총들을 보자 저도모르게 가슴이 울렁거렸다. 나는 총가목을 으스러지게 틀어쥐였다. 맨앞에 서서 걸어오는놈은 권총을 찼는데 어깨로부터 가슴으로 붉은 천을 둘러치고있었다. 나는 첫눈에 그놈이 자위단장이라는것을 알았다.
적들은 점점 가까와왔다. 나는 자위단장놈의 가슴팍에 총구를 겨누고 사격명령만 기다렸다.
적들이 바로 내 눈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무엇을 생각하였는지 자위단장놈이 우리쪽 길옆으로 터벅터벅 걸어나왔다. 무슨 냄새를 맡은것이나 아닌가 하고 나는 숨을 죽이고 그놈의 동정을 뚫어지게 살폈다.
자위단장놈은 내가 있는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좀 언덕진곳에 올라서더니 몸을 뒤로 제끼고는 길게 늘어선 자위단원들과 달구지의 행렬을 거만하게 바라보면서 제혼자 뇌까리는것이였다.
《흠. 공산당이 나타나만 봐라. 모조리 잡아치우겠다.》
그놈은 자기들의 력량이 대단히 강한줄로 믿는 모양이였다. 자위단장놈은 손으로 권총집을 탁 치더니 길을 향해 다시 걸어나가는것이였다.
그놈의 얄미운 꼴을 보니 나의 가슴속에서는 당장 쏘아눕히고싶은 충동이 일어났으나 아직 사격신호가 없으므로 기다릴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사격개시를 알리시는 총소리가 골짜기에 울려퍼졌다. 다음순간 묵밭 여기저기서 일제사격이 터져나왔다. 나는 우선 눈앞에서 얼른거리던 자위단장놈을 첫방에 쏘아눕혔다. 삽시에 자위단장놈을 비롯한 7~8명의 적들이 쓰러졌다. 실로 통쾌한 장면이였다. 단장놈이 쓰러지는것을 본 나머지 적들은 혼비백산하여 숨을곳을 찾아돌아쳤다. 자위단놈들이 습격을 당하자 달구지군들은 길옆으로 피하였다. 살아남은 적들은 되는대로 몇방씩 총질을 하기 시작했다.
이때 적 한놈이 내앞으로 곧추 뛰여오더니 나있는데서 불과 5m도 못되는 피짚낟가리속에 머리를 틀어박았다. 밖으로 환히 드러난 그놈의 궁둥이가 류달리 흉하게 보였다. 나는 재빨리 그놈을 겨누었다. 그 순간 그놈은 피짚낟가리에서 황급히 뛰쳐나오더니 이번에는 내 뒤켠에 있는 피짚낟가리로 뛰여가 그속에 또다시 머리를 틀어박는것이였다. 나는 날쌔게 그놈을 겨누어쐈다. 요란한 총성과 함께 피짚부스레기들이 풀썩 날아오르자 그놈은 무기를 내동댕이치고 비칠거리면서 수림속으로 몇발자국 내뛰더니 앞으로 푹 꼬꾸라졌다.
적들이 이렇게쯤 되자 우리는 총쏘는것을 멈추고 함화를 웨쳤다.
《우리는 무기를 요구하지 생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일제침략자놈들때문에 개죽음을 하지 말라. 집에서는 너희들의 부모처자가 기다리고있다!》
이 웨침소리를 듣자 어떤 놈들은 땅바닥에 엎드린채 총만 꼿꼿이 쳐들고 어서 가져가라고 하였다. 그러나 몇몇 악질적인 놈들은 계속 발악하였다.
이때 돌격나팔소리가 랑랑하게 울렸다. 우리는 땅을 차고일어나 만세를 부르면서 적들에게로 뛰여나갔다. 나는 발악하는 적들을 쓸어눕히고 38식보병총을 4정이나 로획했다. 우리가 한창 싸우고있을 때 왕청방향길쪽에 배치되였던 방어대에서는 달구지행렬의 뒤를 따르던 일제수비대와 싸우고있었다. 이날 탄약과 밀가루포대들을 실은 달구지행렬의 맨뒤에는 10여명의 일제침략군놈들이 경기관총 1정을 가지고 따라왔는데 더러는 달구지에 올라타고 더러는 걸어오고있었다. 별로 전투준비도 갖추지 않고 따라오던 이놈들은 우리 방어대의 불의의 사격을 받자 곤경에 빠진 자위단놈들을 구출할 생각은 못하고 제놈들만 살겠다고 부리나케 왕청쪽으로 도망쳐버렸다.
전투는 오후 1시경에 끝났다. 총성이 요란하던 쟈피거우골짜기는 또다시 깊은 정적속에 잠겨버렸다.
우리는 이날 전투에서 수많은 38식보병총과 적지 않은 탄약을 로획하였다.
전투가 끝나자 우리는 승리의 기세드높이 귀로에 올랐다.
나는 토퉁대신에 38식보병총을 멨다. 너무도 마음이 흐뭇하여 걸으면서도 몇번이고 총을 만져보았다.
사실 우리가 단꺼번에 그렇게 많은 38식보병총을 로획한것은 이번이 처음이였다.
마촌이 가까와왔다. 붉은기를 휘날리며 나팔소리를 울리면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우리의 대오를 보자 유격근거지내 인민들은 남녀로소 할것없이 모두 떨쳐나와 환영하였다. 넥타이를 목에 메고 허리에 곤봉을 찬 아동단대렬이 일제히 손을 쳐들고 《항상준비!》하고 우리를 마중하였다.
마중나온 군중에게 둘러싸이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손을 높이 드시고 그들의 열광적인 환영에 답례하시였다.
기쁨에 넘친 인민들의 얼굴을 보니 우리의 가슴은 한없는 기쁨으로 뒤설레였다.
밀림속을 뚫고온 행군의 피곤도 아랑곳없이 우리는 성수가 나서 어쩔바를 몰랐다.
(인민들을 위해서 싸우는것이 이래서 좋구나!)하고 나는 몇번이고 마음속으로 되뇌였다.
그날 저녁이였다. 유격대의 승리를 축하하여 유격근거지내 인민들이 푸짐하게 음식을 만들어 우리를 대접하였다. 변변치 못한 살림살이에 그들이 얼마나 우리를 믿고 사랑하였으면 이같이 환대해주었겠는가! 그뿐이 아니였다. 소년선봉대원들과 아동단원들은 다채로운 연예공연으로 우리를 축하해주었다. 공연을 관람하는 나의 마음은 한량없는 감격과 흥분으로 가득찼었다.
(우리의 진두에 김일성장군님께서 서계신다. 그리고 우리를 이처럼 열렬히 받들어주는 미더운 인민들이 있다. 이제는 무기도 새것으로 바꾸어멨다. 내 무엇이 부족하여 적과 싸워서 이기지 못하랴!)
나의 가슴속에서는 승리에 대한 확고부동한 신심이 더욱 세차게 타올랐다.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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