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총가목에 대한 이야기
최 광
우리의 강철같은 혁명적규률이 자각성에 기초한것이였으며 깨뜨릴수 없는 단결의 표현이였음을 우리는 많은 실례로써 이야기할수 있다.
또한 이것이 혈육과 같은 사랑과 설복, 교양에 의하여 더욱더 공고히 되였다는것을 나는 항상 생각하게 된다.
지금 말하려는 《총가목에 대한 이야기》도 바로 그러한 실례의 하나이다.
1933년 당시 왕청유격대는 소왕청 마촌에 본부를 두고 요영구, 당수하자, 다홍왜, 십리평, 가야허 등지에 관하 중대들을 주둔시키고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자주 이 지역들을 돌아보시면서 당 및 혁명조직들을 지도하시고 근거지인민들의 생활과 유격대원들의 군정학습을 보살피셨으며 전투를 직접 조직지휘하셨다.
그러한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소왕청을 떠나 라자구쪽으로 가시던 길에 통신병을 데리시고 십리평에 들리셨다.
이날밤 적들의 군수물자수송부대가 왕청을 통과하여 훈춘으로 향한다는 정보를 받으신 그이께서는 이미 전투를 계획하시고 이곳 중대에 오셨던것이다.
그이의 친솔밑에 중대는 훈춘방향으로 출동하였다.
전투는 왕청-훈춘사이의 대도로를 차단하는 매복기습전이였다. 그리고 이날 전투에는 녀성대원 리동무도 참가하였다.
리동무는 당시 중대의 단 한명뿐인 녀성대원으로서 지휘관과 대원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이날 전투에서도 그는 다른 동무들과 더불어 용감히 싸웠다.
적들을 소탕하고 식량, 피복, 탄약 등 많은 물자를 로획한 후에 중대는 그길로 험한 산길을 돌아 밤중에 십리평으로 오게 되였다. 어느덧 밤은 깊어 울창한 수림속은 먹물을 뿌린듯 캄캄하였다.
강행군으로 달려가서 전투를 치른 뒤인데다가 아직 식사를 하지 못한채 100여리 길을 되돌아걷자니 어깨를 지지누르는 무거운 짐이 숨을 가쁘게 하였다.
그러나 로획환 전리품을 받아안고 반가와 할 근거지인민들을 생각하니 우리의 걸음은 그지없이 가벼웠다. 그리고 이 기쁨이 비단 우리 유격대원들과 근거지인민들에게만 한한것이 아니라 장차 광복될 조국의 모든 인민들과도 이렇게 나누어질 그날을 생각하니 큰산이라도 떠옮길듯 한 힘이 생기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쓰려오르는 시장기와 덮쳐누르는듯한 잠에 못이겨 그 험준한 산길을 걸으면서도 깜빡깜빡 잠에 취하군 하였다.
《징검다리요!… 주의해 딛소!》
대렬선두에서 지휘관이 일깨워주는 이 말은 뒤따르는 대원들에게 전해졌다.
그런데 리동무에게는 이 전달이 그만 잠결에 스쳐지나갔던 모양이였다. 그는 개울에 첫발을 들여놓자마자 디딤돌을 헛딛고 그만 풍덩 물속에 주저앉았다. 그 순간 돌짬을 짚었던 총대가 무거운 짐을 진채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몸에 눌리여 총가목이 지끈 부러졌다.
이 사고는 곧 중대장에게 보고되였다. 중대장은 리동무의 말을 듣고나서 랭정히 비판했다.
…물론 우리는 어려운 조건에서 행군을 하고있다. 그러나 이 총이 어떤 총인가. 이런 사고를 저질러놓고도 실수라고 하는가. 동무는 해이되였다. 동무는 무기를 가질 자격이 없다.…
중대장의 이러한 비판은 십분 옳은것이였다. 당시 우리들이 가진 무기 하나하나가 동지들의 고귀한 피와 바꾼것임을 생각할 때 그와 같은 실수란 있을수 없는것이다.
그런데 리동무에게는 이 비판이 접수되지 않는 모양이였다.
눈을 내리뜨고 입술을 깨물며 그는 중대장앞을 물러서버렸다. 그리고 누가 무슨 말을 해도 그는 응대조차 하지 않고 대렬뒤에 떨어져 걷고있었다.
이 일을 아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그가 따라오기를 기다리셨다가 같이 걸으시면서 《그놈의 잠이 사람을 못견디게 굴거든.》하고 그에게 말씀을 건네시였다.
그러나 리동무는 묵묵히 걷고있을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이께서는 다시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러나 우리가 잠쯤이야 이겨내야지. 어느 혁명가가 잠에 못견디였다고 하면 동무는 그래 그런 혁명가의 수치스러운 일에 동정할수 있겠소? 어디 동무의 말을 들어봅시다.》
이렇게 부드러운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듣고있는 리동무는 어둠속에서도 미소를 띠우신 그이의 자애로운 모습을 감촉할수 있었다. 그러자 그는 흐느끼는 목소리로 호소하듯이 중대장의 비판이 못마땅하다는 심정을 털어놓았다.
《물론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중대장은 너무합니다. 혼자서 조선혁명을 도맡아 할셈인지 저더러 우리 대오에 함께 있을 자격이 없다는 말까지야 어떻게 합니까.》
곁의 동무들이 듣기에도 한심한 말이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푸념을 주의깊게 듣고계셨다.
그의 말이 끝난 뒤에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비로소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그러니까 내가 중대장동무를 잘못했다고 한바탕 단단히 비판을 해야만 동무의 마음이 확 풀릴것 같군.》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를 돌아보시며 말씀하시였다.
《그러나 나는 중대장동무를 나무람할수는 없소. 오히려 중대장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오. 그의 립장이 얼마나 원칙적이요.》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잠시 걸으시던 그이께서는 부드럽고 은정담긴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세상에는 열자식중에 어느 하나도 미워하는 부모가 없는 법입니다. 중대장의 립장도 바로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동무에게 아픈 말을 합니까. 그것은 동무를 아끼고 사랑하기때문입니다. 동무에게 무기가 없으면 당장에라도 무엇을 들고싸우겠습니까. 적들은 동무에게 총을 겨누는데 거저 죽고 말겠습니까. 이것을 노엽다고 하면 동무는 스스로가 진실한 동지적사랑을 배반하고 제눈을 찌르는 격으로 됩니다. 좋은 사람이 되라고 꾸짖는 부모의 말을 쓰게 생각하고 아프게만 들으면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망종》밖에 될 길이 없는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내생각에는 중대에 단 한명뿐인 녀성이라고 해서 지휘관이나 중대동무들이 너무 아끼고 어루만진탓으로 동무를 은연중에 응석꾸러기로 길러놓은것 같습니다.
그러시고는 화제를 잠시 다른데로 돌리시였다. 그것은 섬세하고 온순한 어느 한 녀성에 대한 옛이야기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어찌나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시는지 리동무는 물론이고 다른 동무들까지도 말끔히 잠도 행군의 피곤도 잊고 그이께서 하시는 이야기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우리 눈앞에는 귀엽고 온순하면서도 강의하고 부지런한 녀성의 모습이 떠올랏다. 그리고 그 녀성의 손에 쥐여있는 작고 반짝이는 바늘이며, 윤기 알른거리는 찬장의 그릇들이며, 소박하고도 단정한 옷맵시 등이 점점 더 친숙하게 안겨왔다.
그러한 생각은 어느덧 광복된 조국땅우에 펼쳐질 크나큰 살림과 건설에 이르렀다.…
이러한 때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용히 이야기를 끝마치시면서 리동무를 바라보셨다. 방금전까지 노여워서 뾰로통하던 표정은 가셔지고 이야기에 황홀해진 리동무의 눈은 유난히 반짝이고있었다.
《내생각 같아서는 리동무두 꼭 그런 녀성이 되리라고 믿고싶소. 리동무! 어떻소. 꼭 그렇게 될수 있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대렬에 선 동무들도 여기저기서 모두 따라웃는 소리가 났다.
이때 리동무는 얼굴이 화끈해지는지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며 《제 잘못을 더 깊이 생각해보겠습니다.》하고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한마디를 하고는 다시 말을 잇지 못하였다.
《좋소. …우선 자기가 잘못한것부터 깨닫고보면 그 다음에 문제는 다 풀리오.…그러면 중대장의 비판이 오히려 부족하다고 생각될게요. …그렇게만 되면 누구도 동무를 우리 대오에서 내쫓을 사람이란 없소. …잘 생각해보오. …매사에 감정과 흥분을 앞세우지 말고 침착하고 랭정하게 잘 생각해보는것이 중요하오.》
그러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기를 생명과 같이 아끼는 중대장의 심정을 고려하여 그에게 리동무가 무기를 애호하는 정신이 충분히 표현될만 한 일을 해보여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부러진 총가목을 밤중으로 고쳐놓으면 그의 노여움이 풀려서 리동무를 용서할 마음이 생길수도 있을것이라고 하셨다.
이러한 그이의 말씀에서 리동무는 저으기 기를 펴게 되였다.
리동무는 그이의 말씀대로 자기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의논까지도 서슴없이 내놓을수 있게 되였다.
분질러놓은 총가목을 고쳐낼 재간이 없는것이 근심이라고도 했고 고친다해도 총가목에 험한 상처가 남으면 어쩌느냐고도 했다.
이 말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매우 만족해하셨다.
《더 잘 생각해보오. …동무가 지금 말한것처럼 어떻게 하면 상처의 흠집도 잘 모르게 훌륭히 고쳐놓겠는가. …녀성다운 섬세한 심정과 지혜를 기울이고 힘써 노력하면 다 되오. …그래도 안될 때에는 곁에서 도와줄수도 있지. …동무들도 있고 중대장도 있고 나도 있으니까 총가목 하나야 못고치겠소.》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그 자리를 떠나 대렬앞으로 나가시였다.
얼마후 중대는 숙영지에 도착하였다.
리동무는 휴식명령이 내린 뒤에 부러진 총가목을 만지며 애를 쓰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중대장을 데리고 대원들이 모두 잠든 숙영구역을 돌아보시다가 자기 가까이로 오시여 바라보시는줄도 모르고 리동무는 총가목을 고쳐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만면에 웃음을 띠우고 리동무를 바라보시던 그이께서는 그곁에 있는 직일관에게 리동무가 총가목을 고치지 못하거나 또는 피곤해서 잠들수도 있으니 그때에는 자신께 알려달라고 말씀하시고나서 그 자리를 뜨시였다.
사실 리동무는 기어이 고쳐보려고 애는 썼으나 얼마못가서 그만 저도모르는 사이에 깜빡 잠이 들어버렸다.
얼마나 잤는지 떠들썩하는 소리에 눈을 뜨니 벌써 날이 훤히 밝았다. 그리고 작식대원들은 아침식사가 되였다고 알리는것이였다.
리동무는 그만 가슴이 덜렁 내려앉는것 같았다.
행군대렬에 들어서기 바쁘게 중대장에게 거듭 추궁을 받지나 않을가, 그보다도 사령관동지께서 그토록 타일러주시던 말씀대로 총가목을 고쳐놓지 못하고 깜빡 잠이 들어버린 일이 야속하고 분하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자기의 품에 안겨있는 총대를 보던 그는 자기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지금 그의 품에 안겨있는 총은 총가목이 부러진 총이 아니라 총가목이 제대로 고쳐진 총이였기때문이였다.
(내가 꿈을 꾸나?!)
그는 의아한 생각으로 눈을 비비며 자기 총을 다시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자기의 총이였다.
(누구의 솜씨일가?)
얼마나 정성스럽고 멋있게 고쳤는지 얼핏 보기에는 고친 자리조차 잘 알려지지 않을 정도였던것이다.
굵은 철사를 똑같은 길이로 끊고 그 끝을 다듬어만든 못들이 부러졌던 총가목앞뒤에 촘촘히 박혀있는데 그 솜씨가 여간 아니였다.
리동무는 무작정 기뻤다. 자기 총을 새삼스럽게 그러안으며 그는 마치 상처가 나은 동무에게라도 속삭이듯 《아! 이젠 됐다. 이젠 됐다.》하고 기뻐서 얼쩔줄을 몰라했다.
이럴 때에 그앞을 지나던 직일관이 리동무를 바라보더니 《동무는 잠을 자면서도 부러진 총가목을 제꺽 고치는 비상한 재주가 있군.》하고 말을 하자 리동무는 그제야 자기 정신을 차린듯 정숙해지면서 《놀리지 마세요. 직일관동무, 다 알고있으면서두 그러지요. 이 총을 누가 이렇게 고쳤는지 어서 좀 이야기해주세요.》하고 조르며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직일관은 그 총이 새것처럼 고쳐진 경위를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그것은 어제밤 그가 잠을 잘 때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 총을 가져오라고 하시더니 모닥불곁에서 손수 고치시느라고 꼬박 밤을 새우셨다는것이였다.
리동무는 이 말을 듣자 더욱 그 총을 꽉 그러안고 총가목을 쓰다듬으며 흐르는 눈물을 금치 못했다.
사람이란 가르치기에 달린것입니다.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 생명까지 바치면서 적들과 싸우는 혁명동지들을 대함에 있어서도 다 한가지로 원칙성만을 강조하거나 군사적명령만으로는 안됩니다. …반드시 설복과 교양이 동반되여야 합니다. …진정으로 동지를 사랑하지 않고는 그의 결함을 고쳐줄수 없는것입니다.
이때의 일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늘 강조하시던 이 말씀을 더욱더 가슴깊이 간직한다.
4. 조국진군의 길에서 맞은 설
한천추
해가 바뀌여 설을 맞을 때마다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시기에 맞군 하던 설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중에도 잊을수 없는 설은 혁명이 한창 고조에 달하던 력사적인 해 1937년에 맞은 설이다. 그 설을 나는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를 모시고 맞았을뿐아니라 조국으로 진군하던 길에서 맞았던것이다.
1936년 2월 녕안현 남호두회의에서 명시된 사령관동지의 혁명로선과 전략적방침을 관철하기 위하여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는 국경지대와 국내에로 진출하여 군사정치활동을 적극적으로 조직전개하는 동시에 각계각층의 반일애국세력을 항일의 기치밑에 광범히 결속하는 사업을 비롯한 일련의 중대한 혁명적임무들을 수행하고있었다.
이 거창한 투쟁의 선두에는 사령관동지께서 서계셨고 그이의 지휘밑에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무송, 림강, 장백의 광활한 지대를 주름잡아 적을 쥐락펴락하였다.
새로 창설된 유격근거지는 조선혁명의 중심지로 되였으며 항일무장투쟁은 일층 확대발전되였다. 그때 우리는 사령관동지의 전사된 드높은 영예감으로하여 누구나 할것없이 가슴을 들먹이였으며 오직 조선혁명의 승리와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자기들의 모든것을 바쳐싸웠다.
빼앗긴 조국, 총검의 수풀과 기아의 구렁텅이에서 헤매는 내나라 부모형제들, 못견디게 그리운 고향마을의 산과 들…
이 모든것을 위하여, 우리들의 겨레를 구원하기 위하여, 암흑속에 묻힌 조국땅에 재생의 불빛을 주기 위하여 우리 유격대원들은 사령관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힘을 기르고 신들메를 든든히 조이였었다.
이 얼마나 벅찬 일인가! 우리 얼마나 손꼽아기다리던 조국으로 향한 이 길인가!
이 흥분과 이 불덩어리 같은 마음을 안고 우리들은 도처에서 원쑤들을 쓸어눕히였다.
분노에 차서 무송현 만강, 시난차, 서강을 쳤고 적《토벌》력량이 집결한 무송현성을 공격하였다. 그리고 장백현 대덕수, 소덕수와 이도강, 곰의골 등지에서 적들에게 섬멸적인 타격을 주었다.
이렇게 우리는 날에 날마다 혁명의 씨앗을 도처에 뿌리며 원쑤들을 격멸하였고 기억도 새로운 홍두산밀영에서 1937년의 새날을 맞이하였다.
일제가 당시 제일 두려워한것은 국내에로 혁명력량이 뻗치는 그것이였고 각처에 혁명조직들이 조직되고 국내깊이까지 혁명의 영향이 미치는 그것이였다. 그러므로 1936년 10월에 일제총독 미나미와 소위 관동군사령관 우에다는 《도문회담》을 긴급히 열고 조선혁명의 수뇌부이며 참모부인 우리 사령부를 집중공격하려고 악착하게 덤벼들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새해를 맞는 홍두산밀영은 모진 설한풍에 휩싸여있었다. 눈보라가 아우성쳤다.
우리 경위중대는 사령관동지를 모시고 홍두산밀영에서 설을 쇠게 되였다.
그이께서는 새해를 맞아 놈들의 준동이 더욱 우심하리라는것을 예견하시고 오중흡동무가 지휘하는 한개부대를 시켜 사령부가 위치한 밀영으로부터 얼마간 떨어진 전방밀영에 나가 적을 경계하면서 설을 쇠게 하시였다. 그리고 전방밀영, 후방밀영들에는 유리한 지점에다 전호와 포대를 구축하고 언제 어느때든지 적들이 나타나기만 하면 물리칠수 있도록 만단의 전투준비를 갖추게 하시였다.
그리고 그이께서는 깊이 쌓인 눈무지를 딴딴하게 다져서 전호를 만들것과 눈을 다져 만든 포대에는 능히 그에 의지하여 총을 쏠수 있도록 구멍을 뚫으라는 일련의 구체적인 지시를 하셨다.
우리는 그이께서 지시하신대로 사령부가 위치한곳에서 좀 떨어진 요소들에 《눈전호》와 《눈포대》를 만들었고 이곳에 방차대원들이 배치되였다.
설맞이준비에서 제일 중요한 경계근무조직을 한다음에 우리는 옷을 기워입고 수염도 깎고 설날음식을 마련하며 즐거운 오락회도 준비하였다. 우리들은 마치 어린애들처럼 기뻐했다.
나는 동무들과 함께 밀영앞으로 가로누운 령에 올라 흰눈을 머리에 쓰고 솟은 태고연한 백두산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 산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백두산! 백두산!》하고 몇번이고 웨쳤다.
나서자란 마을이 눈앞에 떠오르고 그리운 고향을 하직하고 살길을 찾아 이역땅으로 떠나오던 길에 삼지연못가에서 아버지, 어머니, 동생들과 둘러앉아 주먹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일이며 그때 애타는 심정으로 떠마신 삼지연의 물맛도 그리워지며 어느새 나의 마음은 날고 날아 고향의 문전으로 갔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웨쳤다.
《고향사람들이여! 김일성장군님께서 오셨다! 일어나 같이 싸우자. 그리고 조국을 다시찾자!》
이와 같이 끝없이 조국으로만 달리는 마음을 안고 우리는 번들령을 내려 천고의 밀림속에 자리잡은 집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그이의 두리에 모여앉자 사령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가 오늘 이러한 산정에서 설을 맞게 되지만 그리운 부모형제들과 같이 설을 즐기는 그러한 마음으로 이날을 지내야 합니다. 이날을 맞아서 생각되는것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제일 많이 생각되는것은 《인민의 충복이 되자.》는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인민에게 의지하여 그들에게서 힘을 얻어 우리의 위대한 목적을 이룩하여야 합니다.
이해는 우리에게 있어서 참으로 보람이 큰 해입니다. 우리는 이해에 조국동포들을 잘 깨우치고 단합시켜서 일제를 반대하는 항일전선의 불길을 그 어느때보다도 높이자는것입니다. 이 위업앞에 우리는 무한히 충실해야 합니다. 인민의 충복답게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끓어번지는 가슴에 굳게 맹세를 다지였다.
(사령관동지께서 가리키시는대로, 사령관동지께서 의도하시는대로, 인민이 념원하는대로 충실하게 싸우리라.)
이윽고 오락회가 벌어졌다.
우리는 손벽을 치면서 《즐거운 무도곡》을 부르기 시작하였다. 노래에 맞추어 무장춤을 추었고 곱새춤도 추었다. 그이께서도 우리와 함께 노래를 부르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 부르시는 노래를 들으니 웬일인지 가슴이 뭉클해지고 뜨거운것이 치밀어오르는감을 느끼였다. 우리는 재청을 요구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만면에 웃음을 지으시면서 《동무들의 요구인데 그럼 또 불러야지.》하시면서 노래를 부르셨다.…
얼마후였다.
밀림속에 요란한 총소리가 들려왔다. 후에 안 일이지만 이날 놈들은 전방부대를 피하여 우리를 《토벌》하러 번들령으로 기여오르고있었다. 놈들은 가장 악질적인 《정안군》500여명이였는데 온몸을 백포로 가리우고 심지어는 총신까지도 흰 붕대를 감아 위장하고 은밀하게 령을 오르고있었다. 그러나 가슴팍까지 빠지는 눈길이였고 설한풍이 잠시도 쉬지 않고 불어대며 아우성을 쳤으므로 놈들은 무척 애를 쓰며 오르고있었다. 번들령에 방차대로 나가있던 우리 대원들은 놈들이 령밀 500m가까이까지 기여들었을무렵에야 적정을 알게 되였다. 눈안개가 온 누리를 뒤덮어 전방을 감시하기가 매우 불리했던것이다. 사령관동지의 지시에 따라 우리들은 즉시 전투준비를 갖추었다. 우리의 머리에는 《사령부를 보위해야 한다. 사령부가 있는곳으로 놈들을 접근시켜서는 안된다.》는 생각만이 꽉 차있었다.
일부 대원들이 방차대가 있는 번들령으로 급히 출전하였다. 그런데 악귀같은 놈들의 일부가 이미 령우에 올라가서 그쪽으로 내닫고있는 우리에게 맹사격을 퍼붓는것이였다. 사태는 위급했다. 아군은 유리한 지점을 차지하면서 놈들과 응전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놈들이 차지한 지점을 도로 빼앗아야 하였다. 허리까지 빠지는 눈속을 헤치며 올라가야했고 비발치듯 쏟아지는 탄우속을 뚫고 전진해야 했다. 우리들의 눈에서는 불꽃이 튀였다. 우리들은 눈길, 불속을 뚫으며 놈들의 턱밑으로 죄여들어갔다.
이러한 때였다.
우리의 한 동무가 부상을 입고 넘어졌다.
우리들은 분노에 떨리는 함성을 웨치며 적진을 향해 돌진하였다. 아군은 두 방향으로 나누어 놈들의 숨통을 찌르는 기세로 좌우측에서 돌격하였다. 이 기세에 질겁한 적들은 노호하는 번들령의 눈무지속에서 몸부림을 쳤다. 급해맞은 일본지도관놈은 긴 칼을 빼여들고 휘두르며 《돌격! 돌격!》하고 소리를 지르고있었다. 바로 이때 명사수로 이름이난 《사냥군노토리》동무가 단발명중으로 그놈을 거꾸러뜨렸다. 그러자 적들은 더욱 당황해하였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우리들은 《만세!》를 부르며 그놈들을 무찔렀다.
무엇이 우리들로 하여금 그처럼 어려운 정황을 무릅쓰고 원쑤들을 물리칠수 있게 하였는가?
그것은 오로지 한가지 생각, 우리 조선혁명의 사령부를 목숨으로 사수하기 위한 불타는 결의와 자각이였고 적에 대한 치솟는 증오심이였다.
눈보라 사납게 몰아치는 번들령밑 깊은 골짜기에로 밀리여내려간 적들은 그래도 자기들의 수적《우세》를 믿고 계속 덤벼들었다.
사령부에서는 어두워질 때까지 적을 견제하라는 명령을 내리였다. 원쑤들은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날이 저물어서야 사경에 처한 적들이 100여명의 얼어 빠진 시체를 끌고 눈속을 헤매며 10리가량 되는 지점에로 물러갔다.
캄캄한 밤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살아남은 놈들을 한놈도 남김없이 소탕해버릴 계획으로 야간습격조를 파견하시였다. 10여명의 야간습격조원들속에는 나도 끼여있었다. 뼈를 에이는듯 한 무서운 추위였으나 우리는 도무지 추운감을 느끼지 못하였고 온몸이 화끈화끈 달아오르기만 했다.
적들은 군데군데에 불을 피워놓고 그옆에서 세상없이 곯아떨어져있었다. 그것을 본 우리들은 《먹었구나!》하는 생각이 앞섰다. 우리는 몇동무씩 분담하여 불무지를 습격했다. 통쾌한 기습전이 벌어졌다. 비명을 올리는 놈들의 아우성소리가 사처에서 일어났다. 어느 한 동무는 발악하는 털보놈을 안고 딩굴다가 어떻게도 증오가 서리였던지 그놈의 턱수염을 뭉텅 뽑아버리기까지 하였다. 우리가 이렇게 한참 기습전을 하고있을 때였다. 전방에 나가있던 오중흡동무가 지휘하는 부대가 이곳에서 일어나는 총소리를 듣고 달려왔다. 우리는 그들이 얼마나 급한 걸음으로 달려왔는가를 인차 짐작할수 있었다. 그들은 사령부가 안전하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자 우리를 얼싸안으며 기쁜 눈물을 흘리는것이였다.
실로 오중흡동무와 그의 전우들은 간고한 나날 위험과 어려움의 난관이 중첩될 때마다 목숨으로 사령부를 보위하였고 악랄하고 집요한 《토벌대》놈들을 뒤에 달고다니면서 불철주야로 사령관동지를 보위하기에 전력을 다해왔었다.
우리는 오중흡동무가 지휘한 부대와 힘을 합쳐 증오스러운 적들을 전멸시켰다. 겨우 목숨이 붙어있던 놈들도 백두준령의 설한풍에 얼어죽었다. 불무지근처에는 많은 군수품들과 놈들이 먹으려고 지고온 식료품들이 그냥그대로 남아있었다. 원쑤들은 이번에 목숨과 함께 설음식까지 우리에게 바치러온셈이였다.
우리는 백두산이 바라보이는 번들령에서 이렇게 1937년의 새해를 맞고 조국진군의 길에 올랐다.
이 길에서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 대원들에게 몇번이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이번의 걸음은 보통때의 걸음과는 다릅니다. 이번에 우리는 그처럼 열망하던 조국땅을 밟게 됩니다. 이번에 우리가 울릴 총소리는 암흑속에서 허덕이는 조선동포들의 심장에 새 희망과 승리의 신심을 북돋아줄것이며 일제는 멸망하고야 말리라는것을 똑똑히 알려주게 될것입니다.
동무들은 한걸음 걸으면서도 조국을 생각하며 조국의 운명을 걸머지고있다는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 인민들의 천리마대진군의 진두에는 그때와 다름없이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서계시며 나는 그때와 다름없이 그이의 혁명전사로 일하고있다.
나는 오늘 투쟁과 승리로 빛나는 영광스러운 지난날을 돌이켜보면서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충직한 전사로서의 긍지를 안고 수령님께서 가리키시는 길을 따라 조국통일과 공화국북반부에서의 사회주의건설의 촉진을 위하여 힘차게 전진할 굳은 결의에 충만되여있다.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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