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인민과 군대의 생명재산을 목숨으로 지킵시다
김 자 린
1932년 10월부터 1934년 가을까지 나는 유격근거지인 연길현 왕우구에 있으면서 주로 보초임무를 수행했다.
내가 서던 보초소는 합수촌근방의 볼록한 고지였다.
《토벌대》놈들이 연길현 유격근거지의 중심지의 하나였던 북동과 남동으로 밀려들자면 반드시 이 고지를 지나야만 했다.
보초는 둘이서 교대하여 온밤, 온낮을 섰다. 그렇지만 우리는 기여들어오는 《토벌대》놈들을 한번도 놓쳐본적이 없었다. 물론 우리는 피곤했고 걷잡을수 없이 졸음도 왔었다. 우리는 2~3일을 계속하여 보초를 선 일도 많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사정으로하여 자기의 임무를 소홀히 한 때는 없었다. 우리의 임무는 참으로 무거운것이였다. 수많은 인민들과 전우들이 우리 보초를 믿고 지내며 짧은 시간이나마 마음놓고 잠도 자는것이다.
우리는 유격구를 적들의 《토벌》공세로부터 튼튼히 보위할데 대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말씀을 늘 명심하고 이 무겁고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였다. 우리는 수많은 인민들과 유격대원들의 슬기롭고 민첩한 눈이며, 귀이며, 신경을 대신하는 커다란 영예를 지니고있었던것이다.
바로 이 시기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최숙이라는 녀대원을 잊을수 없다.
그는 나와 함께 같은 지점에서 오래동안 보초임무를 수행하였다.
초기에 유격근거지내에서 후방군무원으로 공작하다가 그는 보초임무를 지원하여나섰다. 남편의 죽음이 그에게 원쑤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과 비장한 투지를 불러일으킨 큰 동기로 되였던것이다.
최숙동무의 남편 전석권동무는 지방공작임무를 맡고 연길쪽에 나갔었다. 그런데 임무를 수행하던중에 그는 원쑤놈들에게 체포되여 연길감옥에 투옥되였다. 놈들은 석권동무에게서 유격대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피눈이 되여 날뛰였다. 그러나 놈들은 인민과 유격대의 리익을 자기의 생명보다 더 귀중히 여기는 그의 입을 열게 할수는 없었다. 그는 감옥에서 유격대와 인민의 비밀을 고수하여 마지막순간까지 싸웠다. 그는 감옥에서 이렇게 노래하였다.
…연길감옥 갇힌 뒤에 몸은 여웨도
혁명으로 붉은 피야 어찌 식으랴…
그는 혁명의 붉은 심장을 안고 오직 인민과 유격대의 생명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혀를 끊고 장렬하게 자결하였다.
남편의 희생에 대한 소식을 들은 최숙동무는 울었다. 울다가 주먹을 부르쥔 그는 자기의 정치학습장에 《당신의 붉은 피가 내 가슴에서 끓는다. 끓는 피, 그 념원을 이어 나는 끝까지 싸우리라.》라고 썼었다.
최숙동무는 있는 정력을 다하여 군무생활과 보초임무수행에 헌신하였다. 그러나 보초근무에 경험이 없는 최숙동무여서 초기에는 많은 애로를 느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1933년 여름이였다. 어느날 밤 나와 최숙동무는 그 볼록한 산고지의 보초소에서 보초임무를 수행하고있었다. 캄캄한 밤이였다. 그런데 어디선가 갑자기 《쿵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앞은 잘 보이지 않았다.
적개심에 불타는 최숙동무는 적들이 다가오는것으로 알고 지체없이 총을 추켜들었다. 그리고 소리나는쪽을 겨누어 격발기를 제끼려는것이였다.
나는 손짓으로 그를 급히 제지하면서 소리나는쪽을 향해 은밀히 기여갔다.
기여갈수록 그 소리는 점점 더 멀어졌다. 수풀속에 엎디여 잠시 더 동정을 살피던 나는 그냥 보초소로 돌아왔다. 이때 눈에 불을 켜고서있던 최숙동무는 빈손으로 돌아온 나를 보자 의아해 물었다.
《적을 놓치셨나요?》
비록 나직한 목소리였으나 참을수 없는 울분이 스며있는 말이였다.
《아니요.》
나는 《쿵쿵》하던 그 소리가 큰 짐승의 발자국소리였다고 대답했다.
이튿날 아침이였다. 보초소에서 좀 멀리 떨어진 산비탈에는 큰 짐승의 발자국들이 찍혀있었다.
이것을 발견한 최숙동무는 그제야 비로소 누그러졌고 마침내 무안해하면서 입을 열었다.
《큰 실수를 할번 했군요. 깊은 밤중에 총소리를 냈더라면 수많은 인민들과 유격대원들이 공연히 뛰여나와 산으로 오를번 했어요.》
이 솔직한 심정에 공감하면서 나는 그를 타일렀다.
《옳은 말이요. 동무의 높은 적개심은 나무랄데가 없으나 침착하고 예민한 보초가 되기 위해서는 더 배우고 노력해야 하겠소.》
그러자 무기를 손질하던 그는 고개를 숙인채 말이 없었다.
사실 보초가 한번 실수한다는것은 엄중한 비상사고로 되는것이다.
유격근거지인민들은 적들의 《토벌》을 피하여 산에 오를 때마다 모진 고통을 겪는것이였다.
더우기 늙은이들은 더하였고 그중에서도 아이어머니들이 겪는 고생이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큰 짐승의 발자국소리에 놀란후부터 최숙동무는 보초소부근으로 싸다니는 온갖 짐승들의 발자국소리를 정확히 판단하기 위해 각별한 주의를 돌렸다.
어느 겨울밤이였는데 이날도 최숙동무와 둘이서 보초를 서고있었다. 그런데 별안간 《버적버적》하는 소리를 들었다.
최숙동무는 소리나는쪽을 향해 《누구야!》하고 고함쳤다. 그러자 그 이상한 소리는 딱 멎고 물을 뿌린듯이 조용해졌다.
최숙동무는 그쪽에 대고 암호를 물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무런 응대도 없이 묵묵한 어둠속에서 약간 움직이는 기척이 났다. 최숙동무가 재차 소리치자 급해맞은 그놈은 숲속을 가로질러 돌멩이를 굴리면서 냅다 뛰여가는것이였다. 최숙동무는 나를 흘끔 돌아보며 어이없이 웃을뿐 신호는 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에 이놈이 《토벌대》놈이라면 아무리 급해맞아도 장애물을 피해 달아날것인데 분별없이 잠목들을 막 쓸어눕히며 우둔하게 내뛰는것을 보아서 그것이 《토벌대》놈이 아니라 곰이라는것을 손쉽게 판단했던것이다. 최숙동무의 이러한 판단은 정확했다.
이렇게 하여 최숙동무는 보초대생활에 안목이 자라고 기민하게 되여갔으며 마침내는 우리처럼 여러 짐승들의 걸음소리도 정확히 판단해낼수 있게 되였다.
례를 들어 토끼는 외다리걸음이 아니라 《깡충깡충》 뛰기때문에 사람의 걸음과 분간된다. 토끼가 뛰여갈 때는 《삽삽》하는 소리가 나는것이 보통이다.
여우는 간사한 짐승이여서 몸이 어디에 다칠세라 살랑살랑 기여가기때문에 《솔락솔락》하는 소리가 난다. 노루걸음도 또한 구별되는 점이 많다. 이놈은 장애물을 살살 피해다니며 일정한 목표를 향해 가는듯 한 그런 조심스러운 소리를 낸다. 노루가 보통 지나갈 때에는 발쪽이 굳고 작기때문에 《딱딱》하고 마른 나무아지가 부러지는듯 한 소리가 난다.
곰은 발바닥이 넓고 크기때문에 사람의 걸음소리와 흡사하다. 이놈은 장애물을 피해다니지 않는다. 무릎이 낮고 그리고 머리도 낮으므로 수풀 같은것을 헤치는 소리가 《쏴ㅡ수악》하고 두가지로 들린다.
보초근무를 서려면 산새들의 온갖 울음소리에 대해서도 잘 분간할줄 알아야 했다.
《토벌대》놈들은 방울새의 울음소리, 뻐꾹새의 울음소리를 비롯하여 온갖 새의 울음소리를 내여 제놈들의 행동암호로 사용했다. 그런만큼 우리 보초병들은 반드시 산새들의 실지울음소리를 옳게 판단함으로써만이 놈들을 제때에 발견할수 있었던것이다.
때문에 보초병들에게 있어서 온갖 복잡한 정황속에서도 각종 징후들을 정확히 판단해낼줄 아는 능력을 키우는것이 대단히 중요했다.
우리가 보초를 서던 볼록고지 좌우켠에서는 북동과 남동쪽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매우 요란스러웠다. 합수촌사람들은 그 물소리에 귀가 멜 지경이라고까지 말들 했었다. 이런데다 며칠이고 비까지 쏟아져내릴 때면 더욱 각성을 높이고 긴장하게 근무를 서야 했다.
모든것이 물소리에 휘감겨들어가 아무리 눈을 바로 뜨고 귀를 도사려도 소용이 없었다. 그렇기때문에 이러한 환경에서는 보초병자신이 소란스러운 주위환경에 익숙되여야 하며 그런 기초우에서 각종 징후들을 구분하여 판단할줄 아는 능력을 소유함이 중요했다.
총을 틀어잡고 보초선에 나선 유격대원의 가슴속에 인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감정이 고동치는 한 그러한 능력은 충분히 소유할수 있었다.
최숙동무가 이렇듯 어렵고 복잡한 보초임무를 독자적으로 믿음직하게 수행할수 있게 된것은 그후 얼마만큼 지난 뒤였다. 그의 발전은 매우 빠른 편이였고 또 정확했다. 그에 대한 동지들의 사랑과 존경도 날로 더욱더 두터워갔다.
사실 그 당시 보초의 임무란 기여드는 적들을 제때에 발견하고 그것을 민첩하게 지휘부에 알리는데만 있는것은 아니다. 이와 동시에 불의에 나타난 적으로부터 유격대원들과 인민들을 보호하고 구출하기 위하여 적들을 기만유인하여 싸우는 그러한 대담하고 기민한 희생적인 투지와 행동이 요구되는것이다.
이런 점에서도 취숙동무는 믿음직한 보초의 한사람으로 되였던것이다.
어느날이였다. 《토벌대》놈들이 짙은 안개를 타고 볼록고지밑까지 밀려들어왔다. 그것을 발견한 최숙동무는 나에게 급히 알리면서 《저놈들을 유인해야겠어요. 인민들이 미처 산에 오르지 못할거예요.》라고 말을 하자마자 그는 적들이 밀려들어오는 산아래로 달려내려가는것이였다.
사실 놈들을 그 자리에서 유인하여 시간을 지연시키지 않는다면 유격대와 인민들은 위험에 빠질수 있었다.
그러나 젊은 녀대원에게 그 어려운 임무를 맡길수는 없었다.
나는 지체없이 다우쳐내려가며 최숙동무를 제지하려 하였다. 그런데 이때 벌써 최숙동무는 적들을 맞받아내려가며 《이놈들아! 여기로는 한걸음도 못들어온다!》하고 고함을 쳤다.
이때에는 나도 미처 어떻게 해야 좋을지 잠시 갈피를 잡기 어려울 지경이였다.
그대로 최숙동무를 따라내려가자니 지휘부에 련락을 할 사람이 없고 지휘부에 련락을 하느라면 최숙동무는 이미 적들에게 발견될게 아닌가.
그러나 나는 오래 생각할수 없었다.
최숙동무가 무사해줄것만을 바라면서 나는 다시 보초소로 달려올라와서 지휘부에 긴급신호를 보냈다.
그 다음에야 나는 적들의 동태를 살피면서 손에 작탄을 틀어쥐였다.
그러면서도 나는 최숙동무에 대한 불안한 생각을 금할수 없었다.
그러나 이때 최숙동무는 놈들의 주력을 볼록고지의 초소 좌측산비탈쪽으로 유인한후 그 주변에 굴설되여있는 토굴에 들어가 작탄묶음을 불무지속에 파묻고 뛰여나왔다. 그가 막 토굴에서 뛰쳐나오는데 이리떼 같은 놈들이 그의 뒤를 덮칠 기세로 달려들었다. 최숙동무는 전력을 다해 바위틈을 빠져 산턱을 톺아올랐다. 이 위기일발의 순간 《꽈르릉!》하고 작탄터지는 폭음이 산골짜기를 뒤흔들었다.
최숙동무를 추격하던 적들이 토굴주변에서 폭발하는 작탄에 맞고 녹아난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이에 지휘부에서는 인민들을 급히 대피시키는 한편 대원들을 요소요소에 배치하였다가 계속 기여드는 놈들을 모조리 때려잡았던것이다.
전투가 끝나기전부터 우리는 최숙동무를 찾았다. 그런데 전투가 끝난 뒤에도 그를 찾아낼수 없었다.
어떻게 되였을가?
안개도 걷히고 화약연기도 사라진 때여서 볼록고지초소에 올라서기만 하면 그 주변이 손금처럼 보이건만 그리고 산으로 피했던 인민들도 다 돌아오고 유격대동무들도 모두 있건만 단 한사람 최숙동무만이 보이지 않아서 모두 가슴을 조이며 찾아다녔다.
가는곳마다 적들의 시체가 너저분할뿐 그는 보이지 않았다.
최숙동무를 제지시키지 못한 내자신을 자책하면서 나는 지휘관에게 보고하기 위하여 다시 초소로 올라왔다. 천근같이 무거운 걸음으로 비탈을 톺아오르면서 최숙동무의 용감한 모습을 생각하던 나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그가 바로 작탄을 묻어놓고 달려나오던 토굴쪽을 내려다보았다.
이때였다.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산산이 부서져나간 토굴 한복판에서 무엇을 찾는지 허리를 구부리고있는 녀대원 하나가 보였다. 더 자세히 보니 작탄에 쓰러진 적들의 시체를 차굴리면서 놈들이 쓰던 총알을 모으고있었는데 그가 바로 최숙동무였던것이다.
《아, 저기 있었군. 그런걸 또…》나는 기뻐서 환성을 지르며 달려내려갔다.
《최숙동무, 어째 여기에 혼자 있었소?》하고 나는 그에게로 다가가며 이렇게 소리를 쳤다.
그러자 그는 얼른 돌아서며 《이제는 혼자서도 자신이 있어요.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여기를 떠날수 없어요.》하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그를 와락 그러안아주고싶은 충동을 겨우 참았다.
참으로 그는 나날이 미더운 보초로 자라나고있었다.
그때의 그 심정을 나는 지금도 그대로 표현할수는 없다. 그러나 이렇게 말할수는 있다.
그가 가장 미워한것은 일제와 그의 주구들이였고, 그가 가장 사랑한것은 우리 혁명의 승리였으며 항일유격대의 영예였다.
때문에 그는 가장 솔직하고 용감했고 사랑스러운 동무였다.
인민과 군대의 생명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물불을 헤아리지 않고 싸운 최숙동무의 희생적인 투쟁정신은 우리 유격대원들의 가슴속에 오래오래 남아있었으며 보초대원의 모범으로 되였다.
《인민과 군대의 생명재산을 목숨으로 지킵시다.》
이 말은 우리 보초대들이 보초를 인계인수하면서 주고받던 가장 소중한 말이였다.
26. 세 아동에 대한 이야기
박 영 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인민들과 특히 젊은 후대들에게 일제를 반대하여 싸워이긴 항일유격대와 인민들의 투쟁업적을 잘 알려주며 그들로 하여금 우리 당의 혁명전통을 옳게 계승하여 더욱 발전시키도록 교양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하신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하며 지난날을 회상할 때마다 나에게는 그 시기에 함께 싸운 수많은 전우들의 위훈과 우리를 도와준 인민들의 영용한 모습이 항상 생각난다.
그 시기에 우리 유격대원들과 인민들속에는 수많은 어린 투사들도 있었다.
그들은 비록 나이는 어렸으나 그들이 아니고는 해낼수 없는 투쟁방법으로 유격대를 돕고 적을 반대하여 훌륭하게 싸웠다.
그 시기에 있은 이러한 아동들의 투쟁중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세 아동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려고합니다.
이 이야기는 1932년 화룡현 번동에서 유격대원인 리봉학의 아들 리광춘과 장기하의 아들 장부환 그리고 그들과 한마을에 살던 박은숙 등 세 아동이 화룡현 개구 호천개 소도시의 경찰 및 그의 주구들을 상대로 싸운 사실을 담은것이다.
나는 이 세 아동의 슬기롭고 영용한 투쟁모습을 생생히 보여주기 위해서 어린 동무들이 알기쉬운 표현방법으로 이야기내용을 서술하였다.
다만 나는 이 회상기를 통하여 그들의 용감한 투쟁모습의 어느한 면이라도 충분히 리해될것을 바라며 이 글을 적는다.
* *
화룡현 대구지방에 번동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에 사는 주민들은 거의다 일본놈들과 지주들의 온갖 착취에 못이겨 정든 고향을 등지고 떠나온 조선이주민들이였다.
그러했건만 이곳에 와서도 그들은 살길을 찾을수는 없었고 곤난한 생활처지는 떠나온 고향이나 매일반이였다.
그리하여 더는 살길을 찾을수 없게 된 이 마을인민들은 다른 마을들에서와 마찬가지로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일제와 그 주구들을 반대하는 혁명투쟁에 일떠서기 시작했다. 적위대를 비롯한 혁명단체들이 조직되여 적들의 삼엄한 경계속에서도 혁명활동을 계속하였다.
이 마을에는 적위대를 위시한 혁명조직들의 영향밑에서 아동단이 조직되여있었는데 이 아동단에 들어간 소년들은 은밀한 장소에 모여서 같이 학습도 하고 훈련도 했으며 적위대아저씨들을 도와서 보초도 서고 편지련락도 했다.
그들은 아침마다 한 장소에 모여서는 그날 할 일을 토의하였고 각기 혁명조직에서 맡은 임무들을 수행하였다.
이 아동단원들중에서도 리광춘, 장부환, 박은숙이란 애들이 핵심적역할을 놀았다.
그런데 그들은 맡은 일들을 언제나 순조롭게는 해나갈수 없었다.
그것은 일제경찰놈들이 싸다니며 인민들에 대하여 갖은 탄압을 다하는 때였기때문에 이 어린 동무들이 마음대로 나다닐수가 없었다.
그런데다가 광춘이는 그의 어머니로 해서 더욱 곤난을 받았다.
어머니는 광춘이가 집을 나가려는 기맥을 보기만 하면 곧 붙들어놓고 잔일들도 시키고 꾸짖기도 했다.
《그렇게 싸다니다간 한번 혼나느니라. 어제두 경찰놈들이 앞마을사람들을 잡아가는걸 보구두 정신을 못차려…》
《그 사람들은 유격대하구 련계가 있어서 붙들어가는거야요. 내가 뭐 유격대하구 련계가 있게요? 동무들하고 놀러다니는데 뭐, 나같은 아이들도 잡아가요?》어머니는 그만 한숨을 지었다.
《그놈들이 아이구 어른이구 알아보는줄 아냐? 그놈들 눈에 빗보이기만 하면 마구잡아가는 판이란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광춘이에게 소를 내맡기며 나다니지 말고 소나 잘 먹이라고 했다.
소를 먹이는 일은 광춘이에게 있어서 아동단사업을 하고 적위대를 도와주는데 아주 좋은 기회로 되였다. 그는 소를 끌고나가서는 들판에 매놓고 온 하루를 아동단에서 토의된 사업을 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소를 끌고 집으로 돌아가군 했다.
1932년 봄이였다.
어느날 광춘이는 아주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되였다.
그것은 이 대구마을에서 30리 떨어진곳에 있는 개구혁명지부(그때 그 지방 혁명조직의 명칭)로 통신을 가지고가는 일이였다.
통신은 대구혁명지부에서 개구혁명지부에 보내는 폭동조직에 대한것이였다.
개구로 가자면 도로를 타고 작은 거리들을 지나야했는데 그 길로는 경찰놈들이 개처럼 싸다니면서 젊은이들을 보기만 하면 마구잡아 고문을 하고 쩍하면 그 자리에서 총살을 하기도 했다.
이튿날 아침 광춘이는 소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전해야 할 글쪽지를 동그랗게 말아서 소의 코뚜레에 붙여서 가는 실로 동여맸다. 그리고나서 광춘이는 코뚜레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종이쪽지는 코뚜레에 가리워서 보이지 않았다.
광춘이는 자기보다 몇갑절 큰 황소를 도로 한복판으로 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경관놈들과 어길 때마다 고삐로 소잔등을 때리며 소리쳤다.
《와, 와, 이놈의 소가 왜 말을 안들어. 이쪽으로 썩 비켜라.》
광춘이는 제법 고삐를 낚아채며 소를 몰아가지만 실상은 소에 매달려서 끌려가는듯 했다. 이렇게 하여 광춘이는 적들의 수사망이 가장 심한 개구의 호천개 소도시경찰서앞도 무사히 뚫고 감쪽같이 빠져나갔다.
어김없이 글쪽지를 전한 광춘이는 개선장군마냥 우쭐해져서 황소를 타고 마을로 돌아왔다.
그런데 황소의 배는 훌쭉 꺼져들어있었다. 멀고 바쁜 길을 다니느라고 광춘이는 소에게 풀을 먹일 시간을 놓쳤었다. 광춘이는 그것을 근심했다.
아니나다를가 어머니는 광춘이가 마당으로 끌고들어오는 소를 바라보고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저런, 소의 배를 봐라. 훌쭉 꺼졌구나. 아니 광춘아, 넌 또 장난에 팔려서 소를 온종일 굶겼구나.》
그러나 어찌하랴. 광춘이는 자기가 수행하는 임무를 말할수 없었다. 아동단원은 비밀을 엄격히 지켜야 하는것이였다.
《어머니, 난 장난친게 아니야요. 오늘은 웬일인지 소가 풀을 먹지 않고 누워만 있었어요.》
어머니는 소에게로 다가가 소의 잔등을 어루만졌다.
《아니, 그럼 소가 병이 난게로구나.》
소를 그처럼 걱정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광춘이의 마음은 언짢았다. 어머니를 속여본 일은 처음이였다. 그러나 광춘이는 조직에서 맡은 첫과업을 수행한것을 은근히 기뻐했다. 그저 광춘이의 눈앞에는 경찰놈들을 속여넘기며 걷던 30리길이 얼른거릴뿐이였다.
이튿날이였다. 세 동무는 다른 아동단원들과 함께 마을뒤산 작은 소나무밑에 자리를 잡고앉아있었다. 아동단원들은 지혜있게 임무를 수행한 광춘이의 이야기를 듣고 모두 기뻐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광춘아, 너는 참말 장한 일을 했다. 나두 말이야 그렇게 장하진 못해두 어저께 한가지 일을 했단다.》하고 은숙이는 광춘이를 바라보며 생글생글 웃었다.
《그래 어떤 일을 했니?》
《나는 길가에 숨어있다가 말이야, 경찰놈의 자동차가 내앞을 지날 때 힘껏 돌을 던졌단다. 유리가 쨍가당 하고 깨지더구나.
그래 난 옜다 봐라 하구 도망쳤지.》
아동단원들은 이런 은숙이의 행동을 통쾌하게 생각했다. 무기만 있다면 경찰놈들을 모조리 쏘아눕히고싶은 심정이였다.
부환이가 불쑥 말을 꺼냈다.
《너희들, 두 농민의 이야기를 들었니? 정말 속시원한 이야기야.》
아동단원들은 호기심에 찬 눈들을 부환이에게로 모았다. 부환이는 농민으로 가장하고 마을앞 길가에 나타나서 경찰놈들의 무기를 탈취한 두《농민》의 이야기를 마치 자기가 한 일처럼 신이 나서 말하기 시작했다.
《도로루 경찰놈들이 거들거리며 지나가는걸 밭머리에서 김을 매던 농민 두사람이 바라보고말이지. 담배불을 빌리려고 다가서서 놈들이 어물어물하는 틈에 까제끼구 무기를 빼앗아갔단다. 얼마나 용감한 일이냐. 이 소식을 알고 경찰놈들이 떼로 몰려와서 마을과 산을 뒤졌지만 두 농민을 찾지못했단다.》
《그 농민이 누굴가?》 아동단원들은 궁금해했다.
《산밑으로 간 경찰놈들이 말야, 그 두사람은 농민이 아니구 김일성장군님부대에서 보낸 사람들일거라고 하면서 산속에 잘못 들어갔다가는 김일성장군님부대한테 죽탕이 된다고 부들부들 떨면서 돌아갔단 말이야.》
부환이의 말이 끝나기가 바쁘게 광춘이가 말을 꺼냈다. 《나두 김일성장군님의 이야기를 들었단다. 언젠가 자려고 이불을 쓰고 누워있는데 마실와있던 우리 아버지친구들이 하는 말이 김일성장군님은 조선사람이신데 수많은 유격대원들을 거느리시고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하면서 왜놈들을 꼼짝두 못하게 하신대.》광춘이는 단숨에 여기까지 이야기하고는 흥분을 가라앉히려는듯 잠시 쉬였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김일성장군님은 말이야. 키도 후리후리하시구 힘도 무척 세신게 꼭 옛말에 나오는 장수들 같대. 장군님이 앞에 걸으시는걸 보구 경찰놈들이 따라가면 장군님은 어느새 가던 길을 되돌아서서 감쪽같이 그놈들을 맞받아지나쳐가시군 하였대.》
《얘, 그건 모를 소리다. 맞받아지나가는데 경찰놈들이 왜 못보았겠니.》
《흥, 그러게 장군님이시지. 눈우에 발자국들이 나타나군 했는데두 모를 소리야? 그래서 아버지친구들은 옛말에 나오는 날개돋친 장군 같다고 그러더라뭐.》
《야, 참 정말일가?》, 《우리도 김일성장군님을 좀 만나뵈왔으면 좋겠다. 잉.》
아동단원들의 이런 말에 맞추어 광춘이는 부환이를 바라보았다.
《부환아, 그렇지? 모두 정말이야 잉?》부환이는 빙글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건 정말이야, 우리 아버지가 그러는데 우리두 말이지 조금도 겁나하지 말구 잘 싸우면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뵐수도 있구 장군님의 빨찌산부대에도 들어갈수 있다구 그랬어.》
이 말에 기세가 오른 아동단원들은 한결같이 웨쳤다.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뵙기 위해 정말 잘 싸우자!》
이날 모임에서 아동단원들은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뵙는다는 큰 희망을 안게 되였다. 그들에게는 전에 없던 힘이 생기는듯 했고 그래서 더 잘 싸우겠다는 결의들을 다졌다.
모임이 끝났을 때는 어느덧 사방이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농가의 창문에는 불빛이 반짝거렸다. 부환이와 아동단원들은 뿔뿔이 헤여져갔다.
광춘이는 은숙이와 함께 동네를 향해 걸었다. 개짖는 소리가 동네를 소란스럽게 했다. 경찰놈들과 특무들이 동네를 싸나다니는것이 틀림없었다. 놈들은 해가 지기만 하면 매일처럼 동네를 뒤졌다. 그러나 그놈들은 아무것도 얻는것이 없었다.
광춘이와 은숙이가 논뚝길을 지나 동네어귀로 들어섰을 때 별안간 경찰 두놈이 나타나서 길을 막으며 버티고섰다.
《요놈들, 밤에 어딜 싸다녀 응? 빨찌산에 련락갔다오지? 그렇지?》
놈들은 두 아동의 팔을 꽉 붙들었다. 경찰놈에게 붙들려 겁이 날 지경이였으나 꾀있는 은숙이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경찰놈에게 친근히 달라붙었다.
《아저씨, 우린 지금 할머니네 집에 심부름 갔다오는 길이예요.》
《거짓말 말아, 속을줄 알구. 바루 대라!》
경찰은 은숙이의 팔을 붙들고 휘둘러쳤다.
《정말이예요.》
은숙이의 태도는 여전히 태연하였다.
그만 경찰놈들은 입맛이 쓰다는듯 붙들었던 소녀의 팔을 놓았다.
《거짓말하면 알지?》
광춘이를 붙들었던 놈도 하는수없이 그의 뺨을 한대 갈기고는 놓아주었다. 두 경찰놈은 그만 웃어대며 가버렸다.
광춘이는 볼을 어루만졌다. 분이 치밀었다. 광춘이는 얼른 돌을 주어들었다.
은숙이는 깜짝 놀라서 광춘이를 붙들며 타일렀다.
《참아 응, 놈들이 돌아와서 다시 붙들면 어떻게 하겠니. 겨우 빠진것만 해도 다행인데.》
광춘이는 들었던 돌을 버렸으나 두주먹을 꽉 틀어쥔채 은숙이를 쏘아보았다.
《넌 그래 빠질것만 생각하구 아저씨라고 불렀니? 개만도 못한 놈들을…》
《광춘아, 너 아저씨란 말이 비위에 거슬려서 그러니? 누군 부르구싶어서 그런줄 아니, 나두 막 밸이 나는걸 꾹 참았다.
우리가 버티고있었으면 그놈들이 가만 두었을줄 아니?》
며칠이 지나서 광춘이는 대구혁명지부로부터 또 하나의 중요한 임무를 받았다.
그것은 대구혁명지부로부터 보내는 통신을 개구혁명지부에 전달하라는 지시였다.
종이쪽지를 가슴에 품고 집으로 돌아오며 광춘이는 어떻게 하면 놈들에게 들키지 않고 이 쪽지를 무사히 전달할수 있을가고 생각했다.
광춘이가 집에 들어섰을 때는 저녁때였다.
(오늘 저녁도 어머니한테 책망을 듣겠구나.)
이렇게 생각하며 광춘이는 마당에 들어서서 방안동정을 살폈다. 방에 켠 광솔불이 이따금 탁탁 소리를 내며 튈뿐이고 방에는 어머니만이 앉아있었다.
광춘이는 우정 휘파람을 불면서 방안으로 들어섰다.
《아니, 넌 어딜 그렇게 밤낮없이 나다니느냐? 큰일났다니까.》
그러면서 어머니는 저녁을 가져왔다. 말없이 저녁을 먹고난 광춘이는 자리를 펴고 누웠다.
광춘이는 방으로 흘러드는 달빛을 바라보며 어떻게 하면 련락임무를 잘 수행할것인가를 생각했다.
문득 광춘이의 머리에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옳지, 강아지를 끌고가자.)
이튿날 아침이였다.
광춘이는 헝겊허리띠의 혼솔을 조금 뜯고 그속에 련락쪽지를 밀어넣은 다음 다시 바늘로 꿰매여 허리에 띠였다. 그리고 헝겊오라기를 얻어서 그것으로 강아지의 목을 매여 끌고 밖으로 나갔다.
강아지는 광춘이의 뒤를 졸졸 따랐다.
얼마쯤 걷다가 광춘이는 허리띠를 풀어서 강아지를 매고 강아지에 매였던 헝겊오라기를 띠였다.
소를 몰고 다닌적이 있는 낯익은 길이여서 광춘이는 주저없이 길을 찾아서 걸었다. 가는 길에는 경찰놈들이 이전보다 더욱 빈번하게 싸다니였다.
놈들은 행인을 닥치는대로 붙들고 몸수색을 했고 돈이나 먹을것이 있으면 좋아라고 서로 빼앗아가졌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대항하는 기색이 보이기만 하면 붙들어갔다.
광춘이는 될수록 놈들의 눈에 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 놀음거리로 느릿느릿 강아지를 끌며 걸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호떡을 사서는 철없는 장난군애처럼 거기에만 정신이 팔린듯 쩝쩝 먹어대며 놈들이 사람들을 붙들어세운 호천개 소도시경찰서앞을 뚫고나갔다. 네발가진 광춘이의 《동무》역시 말썽없이 달랑달랑 광춘이를 따라왔다.
광춘이가 사람들의 틈을 빠져 몇걸음 나섰을가말가 하는데 경찰놈 하나가 소리치며 그의 뒤덜미를 붙들었다.
《요놈의 새끼 봐라, 어디로 빠져나가겠다구.》
이렇게 광춘이를 붙들어세운 경찰놈은 바지가랭이를 털어보고 웃옷 호주머니를 쥐구멍 쑤시듯 뒤져댔다. 광춘이의 호주머니에서는 호떡부스레기와 팽이가 나왔을뿐이였다.
그만 경찰놈은 약이 올랐다.
《조그만 자식이 사람을 홀리고있어. 그래 강아지는 어디서 훔쳐오는거야 앙.》
그러면서 경찰놈은 구두발로 강아지를 냅다찼다. 강아지는 그만 깽깽 소리를 지르고는 쓰러지고말았다. 광춘이는 달려가서 강아지를 들어 가슴에 안았다. 그러면서 놈들의 뒤를 쏘아보았다.
《난쟁이 같은놈들, 암만 그래두 네놈들의 눈깔은 뜸자리다. 못찾아낸다, 못찾아내.》
광춘이는 강아지를 안고 걷기 시작했다. 강아지는 바르르 떨면서 이따금씩 깽깽 소리를 지르고는 광춘이의 품에 주둥이를 묻었다.
강아지가 몹시 애처로왔다. 그러나 속아넘은 경찰놈들을 생각하니 광춘이는 고소하기 짝이 없었다.
반나절이 퍽 넘어서 광춘이는 개구혁명지부에 다달았다.
소를 끌고 련락을 왔을 때에 낯을 익힌 혁명지부장은 광춘이를 보자 반가와 어쩔줄을 몰라하며 그를 덥석안고 높이 추켜주었다.
《참, 용케 빠져왔구나. 그래 아무 일도 없었니?》
지부장은 광춘이의 품에 안긴 까만 강아지를 바라보고 놀라며 물었다.
《아니, 너 죽은 강아지는 뭘 하려구 안구 왔니?》
그제서야 광춘이는 자기의 네발 가진 《동무》가 죽은것을 알았다. 광춘이는 그만 시무룩해지며 강아지의 목에서 허리띠를 풀고 그속에서 쪽지를 꺼내여 지부장에게 주었다.
쪽지를 받아든 지부장은 한동안 믿음직하게 광춘이를 바라보았다. 그는 광춘이를 지혜롭고 총명한 소년이라고 생각했으며 앞으로 훌륭한 공청원이 될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광춘이의 어깨를 붙들어 껴안아주며 자리에 앉혔다.
《참말 기특하다. 그래 이리루 오는데 놈들이 무섭지 않더냐?》
《뭐가 무섭겠어요. 뜸자리 같은 놈들인데.》
《뜸자리 같은 놈들이라니?》
《눈깔이 아니고 뜸자린걸요. 보지 못하는 놈들이야요.》
《그래 뭘 보지 못하더냐?》
《쪽지를 말이지요. 그걸 강아지가 가지고있는데 순사놈은 내 몸만 발딱 뒤져놓지 않겠어요. 아무것도 없으니까 놈들은 악이 나서 강아지를 구두발로 찼어요.》
《뜸자리가 아닌 놈들이라두 광춘이의 그런 지혜를 알아낼 놈은 없을게다. 참 기특하다. 그래 올해 몇살이야?》
《11살이예요.》
《11살, 어머니한테 달라붙어 한창 어리광을 피울 나이구나. 그렇지?》
지부장은 광춘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난 어리광 피우지 않아요. 우리 마을에 어리광밖에 모르는 애 하나가 있어요. 얼마나 우습다구요. 지주집 새낀데 13살이나 났어요. 그런데두 우리가 주먹만 한번 휘둘러두 뛰여들어가서 저의 어머니한테 대주어요.》
《광춘인 앞으로 참 훌륭한 공청원이 될게다. 한손으로는 왜놈들을 쓸어눕히고 다른 손으로는 지주놈들을 때려눕히구, 그렇게 되면 광춘이도 훌륭한 유격대원이 될테지.》
유격대원이란 말에 광춘이는 눈을 끔벅이며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아저씨, 김일성장군님의 이야기를 아셔요? 어떻게나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용감하게 싸우시는지 왜놈들은 김일성장군이란 말만 들어두 벌벌 떤대요. 그리구 장군님부대에는 기관총두 수류탄두 그리구 아저씨가 차고있는 그런 권총두 있대요. 아저씨, 그건 다 정말이지요?》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듣고있던 지부장이 입을 열었다.
《모두 정말이다. 김일성장군님께서도 어려서부터 일본놈들과 지주를 무척 미워하셨단다. 놈들의 착취와 억압이 너무 심해서 부모님을 따라 장군님께서는 정든 고향을 떠나 동북으로 건너오셨단다. 그리고 지금은 많은 유격대를 거느리시고 사방에 나타나면서 왜놈들을 때려부시고계시지. 그래서 겁에 질린 놈들은 사방을 싸다니며 지랄들을 치고있는거다.》
《아저씨,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뵈울수 없어요?》
《왜, 있지. 얼마든지 있다. 너두 만나뵙고싶으냐?》
《아저씨, 우리 아동단원들은 장군님을 만나뵙기 위해서 잘 싸울것을 맹세했어요.》
《거참 잘했다. 용감히 싸워야 해. 놈들한테 굴하지 말고 싸워야 한다.》
《잘 싸우면 아저씨가 장군님을 만나뵙게 해주겠어요?》
《만나뵙게 해주구말구. 내가 데려다줄테다.》
광춘이는 그만 기뻐 어쩔줄을 모르며 아저씨를 바라보고있었다. 비록 어리지만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한 광춘이를 치하하고 고무하여주면서 지부장은 아동단사업에 대하여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았다. 그리고 혁명활동을 하는데서 반드시 지켜야 할 문제 ㅡ 공작할 때에는 놈들을 어떻게 속여넘기고 비밀을 왜 끝까지 고수하여야 하며 공청원아저씨들의 지도를 어떻게 받고 아동단의 조직생활은 어떻게 하여야 된다는것 등에 대하여 다시한번 차근차근 타일러주었다.
광춘이는 아저씨와 함께 점심을 나누고 그곳을 떠났다. 광춘이의 마음은 몹시 기뻤다. 그는 30리 길을 날듯한 기분으로 집으로 향했다. 광춘이는 길을 걸으며 지부장의 말을 곰곰히 생각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번엔 아버지를 꼭 적위대에 들어가시도록 해야겠다. 부환이네 아버지처럼 놈들하구 멋있게 싸우시래야겠어.) 그래서 광춘이는 자기가 미리부터 생각해오던 꾀를 부려볼 마음을 먹었다.
광춘이는 집을 향하여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집으로 들어선 광춘이는 우정 숨을 헐떡거리며 어머니부터 불렀다.
《어머니, 큰일났어요. 저… 저…》
방에 있던 어머니는 눈이 둥그래지며 아들을 바라보았다. 《큰일이라니? 얘 덤비지말고 좀 차근차근 이야기해보려무나.》
《아버지가 야단났어요. 글쎄…》
《아버지가?》 어머니는 웃목에 앉아있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일손을 놓고 주섬주섬 광춘이 앞으로 다가앉았다.
《그래 무슨 일이냐, 조용히 말해봐라.》
《강아지를 데리고 동네애들이랑 강가에서 모래장난을 하며 노는데 순사놈들이 달려오질 않겠어요. 그러더니 다짜고짜로 묻는거예요. 〈이 동네에 리봉학이란 사람이 살지? 유격대에 련락을 다니지?〉하고 말이예요.》
리봉학이란 바로 광춘이 아버지의 이름이였다.
아버지는 쓰거운 얼굴을 하며 물었다.
《그래 뭐라고 대답했니?》
《〈우린 모두 몰라요. 그런 사람은 우리 동네에는 없어요.〉하고 대답했지요. 그랬더니 놈들은 깜찍한것들이 거짓말한다고 하면서 내 강아지를 발길로 냅다차서 강물에 처넣었어요. 그래서 강아지도 못건져가지구 달려오는 길이야요.》
광춘이는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며 옷소매로 이마의 땀을 씻었다.
어머니는 몹시 안절부절하였다. 《여보, 이거 정말 큰일났수다. 그놈들이 글쎄 정신나갔지. 당신이 무슨 유격대란 말이요. 세상이 다 아는 일을 가지구.》
《미친 놈들이지, 조선사람은 다 빨갱이구 다 유격대인줄 알거던. 하기는 놈들이 당황하게두 됐소. 우리 마을에서만 해두 놈들을 반대하는 기세가 부쩍 올랐거던.》 아버지는 긴 대통을 툭툭 털더니 또 한대 피워물었다.
《원, 령감두 담배만 피우구 앉았으면 어쩔 작정이요. 빨리 피하든지 무슨 변통을 해봐야 할게 아니요?》
《흥, 잡으러오면 누가 잡혀? 너죽고 나죽고 한번 해볼판이지.》 아버지는 아들의 말을 들으며 저절로 입가에 빙그레 떠오르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으며 담배대를 빨고있었다.
아버지는 광춘이가 헐떡거리며 하는 말이 꾸며낸 이야기라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러면서도 그에게는 자기아들이 여간만 대견해보이는것이 아니였다.
(기특한 녀석, 어떻게 해서든지 내가 빨리 적위대에 들어갔으면 해서 저러거던.)
이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그는 아들의 얼굴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광춘이의 아버지는 광춘이가 부모몰래 아동단에 들어 아동단사업을 하고있는것을 벌써 알고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미 부환이아버지를 통해 적위대와 련계를 맺고있었으며 곧 적위대에 들어가게 되여있는터였다.
하지만 어린 광춘이도 어머니도 그런것까지는 알리가 없었다.
《이 기회에 부환이아버지와 의논해서 대오에 들어가야 하겠군.》하며 그는 그 어떤 굳은 결심의 빛을 보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내 부환이네 집에 갔다오겠소.》 아버지가 밖으로 나가자 어머니는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못살고 고생할바에야 남들처럼 싸워야지. 그저 만만히 끌려갈가?》
광춘이는 어머니의 이 말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그날밤 부환이네 집으로 찾아간 광춘이아버지는 부환이아버지한테 모든것을 이야기하였다. 《아이들까지 저러니 전번에 이야기있던대로 이 기회에 산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어떻겠나, 응? 이 사람아!》
《그녀석 보통이 아니우다. 아버지를 적위대에 들여보내구싶어서 그렇게까지 극성이니 말입니다. 하긴 아이들도 일본놈들을 미워하는 마음이 이만저만이 아닙데다. 우리 부환이도 여간이 아니라우다. 하하…》
부환이아버지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합시다. 산에서도 지시가 있고하니 말씀대로 이 기회에 나하고 같이 산에 들어갑시다.》
광춘이아버지는 시름을 놓은듯 긴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 돌아가서 길량식이랑 옷가지를 갖추어두었다가 밝을녘에 자네를 찾아오겠네.》
《예, 꼭 그렇게 하십시오. 기다리겠수다.》
이렇게 하여 이튿날 새벽에 광춘이아버지는 부환이아버지를 따라 집을 떠나갔다.
아버지가 떠나간 뒤에도 어머니는 혹시 순사놈들이 달려들지나 않나해서 마음을 펴지 못했다. 광춘이는 이런 어머니를 보기가 퍽 괴로왔다. 그러나 어떻게 할수 없는 일이였다.
광춘이는 자기의 힘으로 아버지를 적위대에 입대하게 한것으로만 알고있었다.
광춘이가 아버지를 적위대에 참가하게 한 이야기는 아동단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어렵게 지내는 은숙이까지도 감복하여 이렇게 말했다.
《광춘아, 나두 너처럼 지혜를 피워서 우리 어머니를 부녀회원으로 되게 할테야. 그러면 부모를 안속이구두 아동단사업을 할수 있지 않겠니.》
은숙이의 말에 광춘이는 더욱 기세가 올랐다.
《은숙아, 네가 그런다면 나두 다음차례로 우리 어머니를 부녀회에 들도록 할테다.》
광춘이는 아버지가 집을 떠난후부터는 더욱 부지런히 어머니의 일손을 도왔다. 그러면서도 아동단에서 주는 일은 하나도 빠짐없이 수행해냈다.
날이 갈수록 경찰놈들의 발악은 더욱 심해졌다. 놈들은 마을로 자주 드나들며 적위대와 유격대의 가족들을 알아내려고 눈을 밝혔고 죄없는 인민들을 못살게 굴었다. 얼마후 적위대에 들어가있는 아버지의 지시에 의하여 광춘이네는 이곳 번동마을을 떠나 50리 떨어진 치두거우에 있는 광지동이라는 아주 작은 마을로 이사를 해갔다.
이 마을로 온지 불과 며칠이 안돼서부터 광춘이어머니는 바쁘게 나가다니기 시작했다. 저녁이 되면 어디론지 나갔다가는 밤이 깊어서 돌아오기도 했고 어떤 때는 밤을 새워가며 버선, 장갑, 덧저고리 등을 지어가지고는 몇몇 아주머니들과 함께 밝을녘에 집을 나가기도 했다.
광춘이는 어머니가 부녀회에 참가하여 아버지가 하는 일을 돕고있다는것을 알았다. 광춘이는 어머니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잠자코 있었다.
어느날 어머니는 광춘이를 불러앉히고 조용히 타일렀다.
《광춘아, 아버지, 어머니가 하는 일을 누구한테두 말해선 안된다. 알겠니? 사방엔 적들이 숨어서 우리들을 노리고있는 판이란다.》
이런 어머니의 말은 광춘이를 즐겁게 했다. 이제는 더 숨기고있을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머니, 알았어요. 어머닌 내가 아동단원이라는걸 모르지요.…》
어머니는 기쁘기도 했고 한편 놀라는 눈으로 잠시 광춘이를 바라보았다. 그저 장난꾸러기로만 알았던 아들이 그처럼 미덥게 자라고있었구나 하고 생각했을 때 아들에 대한 사랑이 한층 격해지는것이여서 어머니는 광춘이를 꼭 그러안았다. 광춘이는 어머니의 품속에 안겨 이날 처음으로 모든것을 어머니에게 털어놓고 이야기했다. 아동단에 입단하던 이야기에서부터 적위대아저씨가 준 련락임무를 수행하던 이야기며 아버지를 적위대에 들게끔 꾀를 피우던 이야기 등을 다 말했다. 그러면서 광춘이는 부모를 속인 일을 사죄했다.
어머니는 머리를 흔들었다.
《네가 그런 생각을 한것은 잘한 일이다. 아버지나 어머니보다 네가 먼저 유격대를 도왔구나. 참 그렇게 기특한 일을 왜 지금껏 속이구 있었니?》
《어머니가 날 꾸짖구 아동단공작을 못하게 할가봐 그랬지요 뭐.》그러면서 광춘이는 웃었다.
《하마트면 이 어머니가 아들한테 떨어질번 했구나.》
어머니는 아들을 못내 자랑스러운듯이 바라보았다.
이 마을로 이사온 뒤로 광춘이는 그처럼 친한 부환이와 은숙이를 통 만날수 없었다. 광춘이는 그들을 몹시 만나보고싶었다.
가을이 왔다. 어느날 광춘이는 뜻하지 않게 어머니에게서 한가지 임무를 받았다.
그것은 번동으로 가서 저녁때까지 기다렸다가 그곳으로 온 두명의 적위대아저씨에게 쪽지를 전달하라는것이였다. 어머니는 그중의 한사람은 아동단지도원아저씨라고 똑똑히 알려주었다.
부환이랑 살고있는 번동마을로 가자면 개싸다니듯 하는 경찰놈들의 경계망을 뚫고나가야 했다. 쉽지 않은 공작이였으나 광춘이는 번동의 동무들과 만날것을 생각하니 더욱 기뻤다.
광춘이는 어머니가 시키는대로 통이 큰 배추 몇개를 한데 묶어서 짊어지고 아침 일찌기 집을 떠났다.
광춘이는 별일없이 50리 길을 다 걸어서 번동마을이 바라다보이는 논뚝길에 이르렀다.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두놈의 경찰이 다가오고있었다.
광춘이는 그놈들이 자기를 붙잡으러오는것이 틀림없다고 느꼈으나 마음을 푹 가라앉히고 논뚝길을 나서서 놈들을 맞받아 뻐젓이 걸어갔다. 아니나다를가 경찰놈들은 지나가려는 광춘이를 붙들었다.
《아하, 요놈 잘 만났다. 유격대에 련락갔다오는 놈이로구나.》 그러면서 경찰놈은 광춘이를 다짜고짜 치려들었다.
광춘이는 우는 얼굴을 하며 말했다.
《아니예요, 올 가을엔 배추가 썩 잘됐다구 하면서 어머니가 외할머니네 집에 갖다드리라구 해서 배추를 갖구 떠난 길이예요.》
《거짓말 말아. 흥, 그래 외할머니는 어디 사느냐 말이다.》
광춘이는 경찰놈을 쳐다보았다. 무어라고 대답하면 놈들을 속여넘길것인가고 생각했다. 광춘이의 머리에는 대구에 있는 큰 부자집과 그 집주인의 이름이 생각났다. 그래서 광춘이는 부자집애로 행세할것을 생각하고 그 부자집과 주인의 이름을 댔다.
경찰놈들은 그만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나서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아무래도 미심하다는듯이 광춘이가 진 배추짐을 벗겨 무슨 련락쪽지라도 찾아내려는듯 갈피갈피를 뒤졌다.
헛수고를 한 경찰놈들은 광춘이를 노려보았다. 《너 정말 그 집 애냐? 앞서라. 우리하구 같이 가자.》
광춘이는 순간 선뜩했으나 곧 태연해지며 놈들에게 뒤를 따르라고하고 앞서서 걷기 시작했다.
광춘이의 행동이 주저하는 기색이 없고 너무 침착하니까 경찰놈들은 그를 믿지 않을수 없었다. 그래서 광춘이의 뒤를 얼마쯤 따르다가 놈들은 그만 서버렸다.
《우린 딴데 좀 볼일이 있다. 후에라도 조사해볼테니까 거짓말일 때는 없는줄 알아라.》
그러면서 놈들은 차고있는 칼을 절꺽거려 위협을 해보이고는 딴길로 가버렸다.
같은 시각에 번동마을에서는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지고있었다.
저녁무렵에 비밀공작을 맡고온 적위대아저씨 두명이 부환이네 집에 들렸다. 아저씨들이 저녁을 먹는 동안에 은숙이는 부환이를 따라 밖으로 나와서 보초를 섰다. 두 애는 마을어귀에 서서 장난을 하는척하면서 마을로 들어오는 길을 연신 살폈다. 그러나 행길로는 아무런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았다.
이렇게 행길에만 정신을 팔고있던 두 아동은 마을쪽을 바라보고 그만 깜짝 놀랐다. 이날 따라 사이길로 세놈의 경찰과 촌장이 마을어귀로 들어섰던것이였다.
이미 때는 늦었다. 놈들의 눈을 피하여 집에 알리는 재간이 없었다. 어떻게 할것인가. 두 아동의 머리에는 피뜩 꾀가 떠올랐다.
갑자기 부환이는 은숙이의 따귀를 갈기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은숙이는 소리내여 울면서 부환이를 따라 잡으려고 달렸다. 두 애는 잡고 떠밀치고 서로 대판 싸움을 하며 마을 한가운데로 들어섰다. 싸움을 본 경찰놈은 누가 견디나 보자는듯이 발길을 멈추고 좋아라고 바라보았다.
부환이와 은숙이는 서로 잡고 뜯고 하면서 부환이네 집마당앞으로 갔다.
촌장을 앞세운 경찰놈들은 마을의 집집을 뒤지기 시작했다. 부환이는 자기를 그러잡은 은숙이를 힘껏 떠밀고 쫓기듯 방안으로 들어갔다. 은숙이는 일어나서 울면서 따라들어갔다. 부환이가 부엌문을 열고 쫓겨나오면 은숙이는 그를 붙잡으려고 따라나왔다. 그러면 부환이는 다시 방문을 열고 쫓겨들어갔다.
이렇게 하여 두 아동은 방문과 부엌문을 열어놓은채 쫓고쫓기고 하며 드나들었다.
집집을 뒤져오던 경찰놈들은 부환이네 집앞에 이르러 이런 광경을 보고 이 집에는 아이싸움도 말리는 사람이 없는것으로 보아 더는 다른 사람이 있을것 같지 않으니 집을 들출 필요가 없다는듯 그냥 지나가버렸다.
이렇게 하여 두명의 적위대아저씨는 놈들의 수색에서 벗어날수 있었다.
아저씨들은 두 아동의 대담한 행동을 칭찬해주었다.
바로 이런 시각에 광춘이는 배추짐을 지고 마을로 들어섰다.
부환이네 집에서 마침 적위대아저씨들을 만난 광춘이는 옷깃속에 깊이 간직해가지고 온 쪽지를 꺼내주었다.
한 적위대원은 아동단지도원이였는데 쪽지를 받아보고 광춘이의 수고를 칭찬했다. 그리고나서 그 적위대아저씨는 광춘이를 대단히 미덥게 보면서 곧 돌아가서 광지동마을아이들을 아동단에 받아들일것을 지시주고 어둠을 타서 마을을 떠나갔다.
이날밤 광춘이는 부환이와 은숙이를 비롯한 그립던 동무들을 만났다. 그동안 서로 지난 이야기들을 주고받았고 더욱 용감하게 싸울것을 서로 다짐했다.
광춘이는 그 밤을 부환이네 집에서 지내고 채 밝기전에 마을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하였다.
그리하여 광춘이는 동네로 돌아가서 왜놈들과 지주를 미워하는 아이들로 아동단을 조직했다.
광춘이가 책임진 아동단에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갔다. 그들은 적위대아저씨들이 써준 삐라와 그림들을 집담벽들에 붙이군 했다.
그러나 아동단에는 모두다 좋은 아이들만 있은것이 아니였다. 그중에는 아동단의 비밀을 알아가지고 놈들에게 넘겨주려는 불순한 아이도 혹 섞여있었다.
어느날 아동단을 지도하는 그 적위대아저씨가 광춘이를 찾아와서 이렇게 물었다.
《그래, 광춘이네 아동단원들은 다 좋은 아이들이냐?》
광춘이는 영문을 몰라서 아저씨를 쳐다보았다.
《예, 말도 잘 듣고 다 좋은 아이들 같애요.》
《너는 아직 모르고있다. 아동단원들중에 장인철이란 아이가 있지?》
이런 말을 들은 광춘이의 머리에는 장인철이의 행동이 피뜩 떠올랐다. 그 애는 옷도 잘 입고다녔고 어떤 때는 광춘이를 깔보면서 말을 듣지 않으려했고 아이들끼리 패를 지어서는 서로 싸움을 붙이기도 했다.
《그 아이의 삼촌은 왜놈들의 개질을 하고있어. 그놈은 유격대원인것처럼 가장을 하고있지만 사실은 빨찌산을 놈들에게 넘겨주려는 흉악한 간첩이라는걸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그 아이를 잘 감시해라.》
아저씨는 이밖에도 여러가지 주의할 점들을 일러주고 떠나갔다.
저녁에 광춘이는 인철이네 집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인철이는 집에 없었다. 그애의 동생한테 물었더니 인철이는 삼촌네 집에 갔다는것이였다.
순간 광춘이의 머리에는 아저씨의 말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벌어질것만 같았다.
그래서 광춘이는 그길로 동무들을 찾아가서 얼마동안은 서로 한자리에 모이지 말것과 서로 주의하면서 놈들이 물어도 서로의 주소를 대주지 말라고 한 다음 집으로 돌아왔다.
광춘이가 부엌문을 열려고 문고리에 손을 댄 때였다. 갑자기 어둠속에서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광춘이의 두손을 뒤로 틀어쥐였다. 어머니가 아직 안돌아온 때여서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놈들에게 뒤밟혔구나 생각한 광춘이는 어떻게 해서든지 놈들의 손에서 벗어나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온몸에 힘을 주며 요동을 썼다. 그러나 허사였다.
황소같은 놈들에게 붙들리운 광춘이는 빠져나갈수도 몸을 움직일수도 없었다. 인철이와 그의 삼촌이 보낸 경찰임을 알았으나 광춘이는 인제 더 어쩔수 없었다.
이렇게 광춘이는 놈들에게 체포되여 남향평 소도시경찰서에 갇히게 되였다.
놈들은 어린 광춘이를 호되게 고문하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가죽허리띠와 장작개비로 때리기도 하고 위협하기도 하고 혹은 좋은 음식과 과자를 주면서 얼리기도 했다.
《너 그렇게 고집쓰지 말고 다 말해라. 응? 넌 정말 아무 죄도 없는 아이다. 너를 얼려서 이렇게 만들어놓은 그 유격대원들이 나쁜 놈들이야. 그러니 너를 지도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 말하기만 하면 될게 아니야. 네가 참 불쌍해서 그런다. 학교도 못다니고 속히운 네가 말이다. 말하기만 하면 너를 놓아주기도 하고 학교에도 보내주마. 그리고 너의 부모들도 감옥에서 내보내겠다.》
광춘이는 놈들의 마지막말에 깜짝 놀랐다. 부모를 감옥에서 내보낸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그러면 아버지와 어머니도 붙잡혀왔다는 말인가. 정말인지 속을 떠보자는 놈들의 속심인지 모를 일이였다.
(만약 인철이가 고해바쳤다 해도 아버지를 어디서 붙든단 말인가? 아버지는 적위대와 함께 있는데 이것은 거짓말이다. 놈들의 수작이다.)
광춘이의 얼굴에 놀란 빛이 떠도는것을 본 놈들은 됐다는듯이 더욱 바싹 다가붙었다.
《그렇다. 너의 아버지, 어머니두 어제 모두 체포되였다. 네가 붙들린것을 알고 너의 부모는 너를 놓아주면 모든것을 말하겠다고 했다. 아마 지금쯤은 다 말했을게다. 그러니까 서로 말이 어긋날 때는 좋지 못할테니까 똑똑히 말해봐.》
광춘이는 놈들의 거짓말에 속을 아이가 아니였다. 광춘이는 자기의 아버지, 어머니가 그런 비겁한 변절자가 될수 없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그들을 믿어왔다.
광춘이는 놈들의 수작이 자기를 떠보자는 거짓말인것을 알았다. 만일 부모가 체포되였다 하더라도 광춘이는 죽어도 유격대의 비밀을 지키리라고 생각했다.
늙은 경찰 한놈이 더욱 치근하게 달라붙었다.
《그래, 넌 어머니도 보고싶지 않냐?》
《우리 부모는 붙들리지 않았어요. 이 동네에서 떠난지 퍽 오래됐어요.》
《체포된건 어떻거구. 너의 부모를 좀 보여달라니? 저쪽 감방에 있다.》
《그건 거짓말이예요. 우리 부모는 변절자가 아니예요.》
광춘이는 자기도모르게 큰소리를 쳤다.
《아하, 이놈이 큰소리를 친다. 너의 부모는 다 말했는데 너는 아직도 숨기겠단 말이지. 어디 숨겨봐라.》
《우리 부모는 변절자가 아니고 나두 변절자의 자식이 아니예요. 변절했다면 그건 우리 부모가 아니예요. 난 그런 부모는 만나지 않겠어요.》
광춘이의 목소리는 흥분에 떨렸다.
《조그마해도 매서운 놈이로군. 그래 좋다. 어디 얼마나 견디나보자.》
경찰놈은 다시 광춘이를 고문하기 시작했다.
여러날을 두고 고문을 받았으나 그럴 때마다 광춘이는 오직 한마디 《나는 아무것도 말안할테요.》할뿐이였다.
광춘이가 입을 다물고 놈들을 쏘아볼 때마다 놈들은 더욱 악이 받쳐서 혹독한 고문을 가했다. 광춘이는 여러번 정신을 잃고 까무러치군 했다.
감방안에서 정신이 든 광춘이의 머리에는 그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놈들이 계속 이렇게 때리고 고문한다면 나는 더 자주 정신을 잃게 될것이다. 정신을 잃게 되면 나도모르게 모든것을 말하게 될지 모른다.
그렇게만 되면 동무들은 물론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적위대아저씨들이 있는곳까지도 위험하게 될것이다.
광춘이는 적위대아저씨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들을 생각했다. 김일성장군님에 대하여 말해주던 개구혁명지부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동단을 지도해주던 아저씨의 말소리가 쟁쟁히 들려오는것 같았다. 빨찌산의 비밀이 폭로될가봐 혀를 끊은 어느 혁명가의 이야기, 광춘이는 자기도 그렇게 할수 없을가고 생각했다. (그래야 한다. 놈들에게 끝까지 말하지 않으려면 나의 혀를 없애야 해. 혀를 끊기전에 한놈의 원쑤라도 더 갚을테다.)
이렇게 생각한 광춘이는 마음을 다지고 또 다졌다.
저녁이 되자 놈들은 다시 광춘이를 끌어냈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가죽혁띠, 장작개비, 불피운 풍로와 쇠꼬치, 물주전자 등 고문에 필요한것들을 갖춘 서너명의 경찰놈들이 광춘이를 고문대에 끓어앉혔다.
그러나 이런것들을 여러날 보았고 겪어온 광춘이는 그 어떤 무서움도 느끼지 않았다.
늙은 경찰놈이 떠벌였다.
《자, 이젠 말해보지, 응? 그새 생각도 많이 했을텐데.》
《그렇구말구, 이번엔 꼭 말할걸세.》
《가만 있으라구, 인제 말하려하는데.》
놈들은 제각기 서로 눈을 끔벅이면서 광춘이를 얼렸다.
놈들을 바라보는 광춘이의 눈에는 불이 일었다. 놈들을 갈아마시고싶도록 아니꼬왔다. 그러나 광춘이는 꾹 참았다.
(이놈들, 너희편 사람이나 하나 죽여보아라.)
이렇게 생각한 광춘이는 아동단원을 고해바친 인철의 삼촌이란 놈을 머리에 그려보았다.
《야, 무얼 그리 오래 생각해? 마음먹은걸 다 말해라. 너두 어서 여기서 나가야 하지 않겠니.》
경찰놈의 입에서 이런 수작이 떨어지자 팔을 묶이운채 벌떡 일어선 광춘이는 놈들의 앞으로 다가갔다. 광춘이의 돌발적행동에 경찰놈들은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내가 말할테니 실컷 들어봐요. 우리를 조직하여 지도했고 경찰을 반대하여 싸우고 빨찌산을 도와주라고 한 사람은 장승구란 사람이요.》
너무도 흥분한 광춘이는 숨이 막힐 지경이였다.
《뭐, 장승구라구? 이놈아, 그 사람은 우리 편이야. 누가 그런 거짓말을 하라고 했어.》
《당신들은 호통만 칠줄 알지 누가 어떤 일을 하는지 전혀 모르고있군요. 그 사람은 당신들을 도와주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 우리 사람이예요. 그 사람이 우리의 모든것을 지도해주었어요.》
이 말을 들은 경찰놈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어리둥절했다.
《아니, 우리 일을 도와달라고 했더니 알고보니 그놈이 그렇게 됐다?! 괘씸한 놈.》
《그러구보니 그놈이 우리의 비밀을 도루 빨찌산에 고해바쳤구만.》
《정말 모를 일이요. 아주 충실히 일하는것 같았는데.》
《빨갱이란 다 그렇단 말이요. 겉으로는 충실한체 하고 속으로는 딴전을 보거던.》
경찰놈들은 저희들끼리 눈을 희번득거리면서 서로 네가 옳니 내가 옳니 하며 고아대는것이였다.
《너 그 말이 정말이지?》
《두구보세요. 그렇지만 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먼저 피해버릴거예요.》
광춘이는 이이상 더 말하지 않았다. 놈들은 저희들끼리 한동안 수군거리더니 이윽고 광춘이를 도로 감방에 집어넣었다.
광춘이는 놈들이 속아넘은것을 생각하고 마음을 놓았다. 놈들의 충실한 개인 장승구를 잡게함으로써 아동단에 대한 비밀을 더이상 적들의 손에 넘어가지 못하게 할수 있기때문이였다.
그러나 광춘이는 이런 생각으로써 만족할수 없었다.
(내가 사실을 말하건 않건 경찰놈들은 나를 죽이고말것이다. 죽이기전에 놈들은 무엇을 좀더 알아내려고 더욱 혹독하게 나를 고문할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될것인가. 나는 정신을 잃을것이고 나도 모르게 모든것을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 제일 안전하자면 나의 혀를 없애야 한다.)
광춘이의 눈앞에는 적위대를 찾아 길을 떠나던 아버지의 미더운 얼굴이며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뵈올 때까지 잘 싸우자고 맹세를 다지던 부환이와 은숙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과 함께 광춘이는 얼마나 뜻깊게 살며 싸웠던가. 광춘이는 인제 그들과 작별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싸웠고 아동단원답게 혁명대렬에 서서 끝까지 싸워낼 자신을 생각하며 그는 혀를 아래우이발사이에 끼우고 눈을 꼭 감았다.
벌써 여러날째 그 어린 몸에 모진 고문을 받아온 광춘이에겐 맥도 힘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주 희미해지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힘을 주어 혀를 씹었다.
온밤 광춘이는 이렇게 혀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그는 그만 정신을 잃었다.
새벽녘에야 광춘이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감방밖에서는 왜놈경찰들의 꽥꽥 소리치는 서투른 조선말소리가 들려왔다.
아침볕이 감방안으로 새여들무렵에 놈들은 또다시 광춘이를 끌어냈다. 놈들은 이 어린 소년이 간밤에 혀를 끊은 사실에 대하여 알리가 만무했다. 놈들은 이 어린 소년이 그처럼 용감성과 애국심을 가졌으리라고는 상상조차도 못했을것이다.
끌려나온 광춘이가 고문실의자에 앉자 경찰놈이 결박당한 장승구를 앞세우고 들어왔다.
《자, 저 아이를 지도하구두 모른단 말이냐?》하면서 경찰놈은 그를 광춘이의 앞으로 내밀쳤다.
《저는 정말 모르지요. 지도한 일도 없어요. 이 애가 거짓말을 한것입니다.》
《닥쳐라 이놈아, 누가 모르는줄 알아? 이제 보니까 아주 진짜 빨갱이였구나.》
경찰서 서장놈이 분이 치밀어 씩씩거렸다. 다른 경찰놈이 광춘이를 보고 어제 한말을 다시 해보라고 하였다. 그러나 광춘이는 말할수가 없었다. 그제서야 놈들은 광춘이가 혀를 끊은 사실을 발견하고 놀랐다.
《옳지, 서로 만나게 될가봐 이젠 혀까지 끊었구나. 흠, 너의 상관앞에서 실토할 일이 겁이 나더냐?》
《서장님, 그러니까 이 두놈은 다 빨갱이들입니다. 조그만 놈은 말하기가 무서우니까 혀를 끊은것이구. 그러니까 저놈은 한 일도 안했다구 뻗칠수 있게 되지 않았습니까.》
이 말을 들은 장승구는 사시나무 떨듯 와들와들 떨고만 있었다.
《야, 저놈들을 모두 총살해라.》
《예, 알았습니다.》
서장의 명령을 받은 경찰놈들은 광춘이와 장승구를 끌어냈다.
장승구는 발을 벋디디고서서 애원했다.
《저는 정말 유격대가 아닙니다. 저 애가 엉터리없는 거짓말을 한것입니다.》
그러나 경찰놈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장승구를 밖으로 끌어냈다. 광춘이는 놈들이 끌기전에 앞서서 용감하게 걸었다. 죽을 때까지 놈들앞에서 조금도 비겁하게 굴 광춘이가 아니였다.
광춘이는 경찰서뒤산으로 끌려갔다. 산우에 올라선 광춘이는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광춘이의 눈앞에는 가을날의 맑게 개인 하늘과 누렇게 익은 곡식밭이 안겨왔다. 광춘이는 생각했다. 끝없는 하늘과 벌, 그것은 아득히 먼 아름다운 조선의 땅과 잇닿아있으며 그 조국이 아물아물 가까이 다가오는것만 같았다.
광춘이의 눈앞에는 조국으로 통하는 넓은 길이 바라보였다. 바로 그 길로 광복을 맞은 조선의 어머니, 아버지들과 형님, 누나들 그리고 동무들인 부환이와 은숙이도 모두 춤추고 노래부르며 걸어오는것이였다. 그렇게도 만나뵙고싶던 김일성장군님과 유격대원들을 그들은 맞이하고 껴안고하면서 광복의 기쁨을 즐기는것이였다. 그속에서 광춘이는 적위대에서 싸우신 아버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사람들속을 헤치며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뵈러가는것이였다. 광춘이의 얼굴에는 더없는 기쁨의 빛이 어리여있었다.
광춘이의 이런 행복스러운 생각은 경찰놈들의 총알재우는 소리로 해서 사라져버렸다. 그처럼 즐기던 광경대신에 광춘이의 앞에서는 일제의 충실한 두마리의 개가 총부리를 겨누고 서있었다. 그러나 광춘이는 무섭지 않았다.
광춘이는 온힘을 다하여 《조선독립 만세!》를 불렀다. 혀를 끊은 그의 목소리는 마음속에서만 울릴뿐이였다. 그러나 이 마음의 목소리는 더욱 무겁게 산과 들을 울리는듯했다.
세방의 총소리와 함께 조선인민의 충직한 아들이며 어린 투사인 광춘소년은 땅에 쓰러졌다.
* *
광춘소년의 용감한 죽음에 대한 소문은 하루이틀사이에 온 마을에 퍼졌다.
부환이와 은숙이네 아동단원들도 적위대아저씨를 통하여 이 소식을 들었다. 가장 친한 동무를 잃은 부환이와 은숙이는 슬펐고 말할수 없는 울분에 잠겼다. 그러나 한편 그처럼 놈들의 갖은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용감하게 최후를 마친 광춘이를 아동단원들은 더없는 자랑으로 여겼다. 그리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광춘이의 원쑤를 갚겠다는 적개심에 불탔다.
《광춘이의 원쑤를 갚아야 해.》
이런 은숙이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기고있던 부환이가 말을 꺼냈다.
《경찰놈들은 다 같은 놈들이야. 아무 놈이라도 잡아치워서 원쑤갚음을 하자.》
다음날이였다.
점심때가 가까와서 부환이와 은숙이는 옷을 허줄하게 입고 그속에 각기 작은 단도 하나씩을 찌르고 광춘이가 이전에 늘 소를 먹이던 그 콩밭머리로 나갔다.
그들은 콩가지를 꺾어서 한데 모아놓고 콩청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마른 나무에 지핀 불은 콩꼬투리를 익히며 탔다. 부환이와 은숙이는 손과 얼굴에 검댕칠을 해가면서 익은 콩을 골라먹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얼른 경찰놈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들이 한참 콩을 골라먹고있는데 아니나다를가 두명의 경찰놈이 먼곳에 나타나서 연기가 나는것을 보고 급히 이쪽을 향하여 걸어왔다. 그 한놈은 장총을 메였고 다른 한놈은 단도를 차고있었다.
가까이 온 놈들은 부환이네를 향해 소리쳤다.
《이놈의 자식들, 여기서 뭣들 하구있어 응?》
부환이는 경찰놈들을 힐끔 쳐다보았다.
《콩청대를 해먹지요뭐.》
그리고나서 부환이는 놈들을 안중에도 두지 않은듯 은숙이와 함께 재무지를 헤쳐 노랗게 익어서 버그러진 콩꼬투리들을 연신 한곳에 주어모았다. 그러면서 눈치채지 않게 놈들의 동정을 살폈다.
두놈은 서로 마주보며 눈을 끔벅이고나서 아이들옆에 쭈그리고앉았다.
《우린 빨찌산들이 그러는가 했더니 너희들이였구나. 그래 콩청대맛이 어떻니. 우리두 한추렴 들어볼가.》
공것이라면 양재물도 먹을 놈들이 부환이랑을 슬슬 밀치며 다가들었다. 놈들은 한손으로는 재무지를 헤집고 다른 손으로는 재속에서 나지는 콩꼬투리를 골라냈다. 놈들은 게걸이 든것처럼 콩을 집어먹기에 딴 생각이 없었다.
이때였다. 부환이와 은숙이는 눈짓을 하고 슬며시 놈들의 뒤로 물러섰다. 그들은 품에서 단도를 빼들었다. 그들의 손은 떨렸다. 그들은 용감하게 죽은 광춘이를 생각하고 용기를 가다듬으며 놈들의 뒤덜미를 푹 찔렀다.
부환이의 단도에 찔린 놈은 쿵하고 땅에 어푸러졌다. 그러나 은숙이가 찌른 놈은 빗맞고 허우적거리더니 총을 앞으로 당겼다.
부환이와 은숙이는 콩밭을 꿰건너 산굽인돌이를 향하여 달리기 시작했다.
두방의 총소리가 연거퍼 울렸다. 부환이는 그만 뛰던 걸음을 멈추었다. 같이 달리던 은숙이가 푹 꼬꾸라졌기때문이였다. 부환이는 얼른 꿇어엎드려서 은숙이를 흔들었다. 아무리 흔들어도 은숙이는 응답이 없었다. 은숙이는 그놈의 총탄에 맞아쓰러졌던것이였다. 경찰놈은 마구쏘던 총질을 멈추었다. 쓰러진 놈의 시체를 거두고있는 모양이였다.
부환이는 더 주저하고있을수 없어서 은숙이를 안아다가 굽인돌이 우묵한곳에 눕혔다. 은숙이는 부환이에게 빨리 달아나라고 손을 들어 허우적거리다가 그만 팔을 떨어뜨렸다. 부환이는 은숙이를 흔들었다. 그러나 은숙이는 잠든듯이 얼굴에 홍조가 가시지 않은채 절명했다.
부환이는 어쩔바를 몰라했다. 그는 나무잎을 뜯어 은숙이의 시체를 덮고 적위대아저씨들이 있는 곳을 찾아서 산속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적위대아저씨들을 만난 부환이는 방금 겪은 모든 일에 대하여 말하였다.
부환이의 말을 듣고있던 혁명지부장은 그를 칭찬도 했으나 말마디마디에 힘을 주어 타이르기 시작했다.
《자기 동무의 원쑤를 갚겠다는 그 마음과 행동은 좋은것이였다. 그러나 너무 서둘렀다. 적위대와 아무런 련락도 없이 무기를 썼다는것은 잘된 일이 아닌것 같다. 부환이, 생각해보라, 우선 서둘렀고, 마음대로 아무런 련락없이 무기를 썼기때문에 이런 불상사를 일으킨것이 아닌가.》
혁명지부장은 잠시 말을 끊고 담배를 피워물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부환이, 무기는 아무데서나 막 쓰는게 아니야. 꼭 쓰지 않으면 안될 그런 때에만 무기를 써야 하는거다. 오늘 같은 경우에는 무기를 쓰지 않았어야 했지. 만일 은숙이가 죽지 않고 너와 함께 자라서 원쑤놈들을 잡게 된다면 그때는 오늘보다 몇갑절의 적을 잡을수 있을것이 아니였겠니.》
참고있던 부환이의 설음은 북받쳐올랐다. 같이 자라나고 같이 싸워온 은숙이를 부환이는 잃어버린것이 아닌가.
부환이는 그만 혁명지부장의 가슴에 머리를 묻으며 흑흑 흐느끼기 시작했다.
《원 이런, 아동단원이 울어서야 쓰나.》하면서 혁명지부장은 부환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환이는 눈물을 씻으면서 맺힌 어조로 말했다.
《아저씨, 나를 적위대에 넣어주세요. 아저씨들과 함께 싸울테예요.》
《여하간 은숙이의 시체를 거두고보자.》
그래서 밤이 되자 혁명지부장은 친히 몇몇 적위대원과 부환이를 데리고가서 은숙이의 시체를 찾아다묻었다. 부환이는 은숙이의 무덤앞을 떠나지 못하고 울었으며 재삼 원쑤를 갚을 결의를 다졌다.
그후로 부환이는 적위대에 입대하였다. 부환이를 적위대에 넣기에는 너무 어렸다. 그러나 졸라대고 또 지금껏 싸워온 일 등 참작되는바가 있어서 그를 받아들였던것이다.
부환이는 당당한 꼬마적위대원이 되였다. 그는 아저씨들한테 뒤질세라 모든 일에 부지런했고 시키는 일을 잘했다. 그래서 그는 적위대에서 무척 귀여움을 받게 되였다.
부환이는 어느날 주요한 임무를 맡았다. 그것은 농민들이 많이 사는 부락과 왜놈들이 사는 거리로 들어가서 삐라를 살포하는 일이였다.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발벗고 나설것과 일제와 그 주구인 지주, 친일파, 반역자들을 반대하여 싸우는 적위대에 참가하며 또는 적위대를 도울것을 호소하는 삐라였다.
부환이는 삐라를 앞가슴에 차곡차곡 포개여넣고 길을 떠났다. 부환이가 목적한 마을에 이르렀을 때 마을에 어른들이란 통 볼수 없었고 아이들만이 남아있었다. 어른들은 추수하러 논과 밭에 나갔기때문이였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 부환이는 곧 마을아이들과 휩쓸려 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부환이는 집들의 담벽과 굴뚝 그리고 전선대들에 삐라를 붙여나갔다.
부환이가 삐라의 마지막 한장을 붙이고 마을을 벗어나려는데 경찰놈들이 마을로 들어오며 고아대기 시작했다. 도처에서 삐라를 발견한 놈들은 주모자를 찾느라고 눈이 빨개 돌아갔다. 그러나 이때 벌써 부환이는 적위대본부에 돌아와서 다음임무를 기다리고있었다.
며칠후 부환이는 같은 임무를 맡고 이 대구지방에 있는 서함부락으로 향했다.
부환이는 삐라를 품속깊이 간직하고 만일을 념려하여 수류탄도 몸깊이 준비하여넣었다.
부환이가 마을가까이 왔을 때 경찰놈들이 장총과 칼을 번쩍거리면서 싸다니는것이 바라보였다.
부환이는 될수록 놈들의 눈을 피하면서 동네로 접근하였다. 그러다가 부환이는 그만 깜짝 놀라며 주춤 섰다. 경찰놈들이 일곱놈씩이나 떼를 지어 맞받아오는것이였다.
부환이는 곧 태연한 태도를 취하며 모르는척 하고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놈들은 곧 부환이를 에워싸고섰다. 부환이는 그 어떤 좋은 계교를 생각해낼 틈이 없었다. 놈들은 다짜고짜로 부환이를 붙들어 결박했기때문이였다.
부환이는 어쩔수 없이 서함경찰서로 끌려갔다. 부환이는 끌려가면서 여러가지로 생각했다. 어떻게서든지 놈들을 한놈이라도 더 죽이고 자기도 죽는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경찰서로 끌려가는것이 부환이에게는 오히려 잘되는 일같았다.
부환이를 경찰서에 붙들어다놓은 놈들은 결박한것을 풀고 그에게 어느 빨찌산에서 오며 임무는 무엇이며 무슨 련락을 가지고가는가고 캐여묻기 시작했다.
부환이는 더 지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놈들이 몸수색을 하기전에 먼저 손을 써야했기때문이였다.
《너는 틀림없이 빨찌산에 련락을 가지고가지? 어서 그걸 내놓아라.》
《그렇소. 난 적위대의 련락을 가지고가던 길이요. 인제 그 련락쪽지를 꺼낼테야요.》
그러면서 부환이는 품속에서 삐라뭉치를 꺼냈다.
놈들은 좋아서 히죽벌쭉했다.
《그렇지, 그렇게 말을 잘 들어야지, 또 있지?》
《예, 더 큰 뭉치가 있소.》
부환이는 깊이 품었던 수류탄을 꺼냈다. 부환이는 그것을 번쩍 들었다. 부환이의 얼굴에는 할 일을 다한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 그는 적개심에 불타는 눈으로 놈들을 노려보면서 들었던 수류탄을 발밑으로 던졌다.
순간 요란한 폭음과 함께 놈들도 집도 한데 뒤엉키면서 산산쪼각으로 날아났다.
이렇게 하여 7놈의 경찰과 경찰서를 날려버린 어린 투사 부환이는 용감하고 자랑스러운 최후를 마쳤던것이다.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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