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항일유격대원들의 삶과 투쟁 『회상기』
자주성은 나라와 민족의 생명이다.
나라와 민족의 자주성은 자주적인 정치에 의하여 담보된다. 정치적 자주성은 자주독립국가의 첫째가는 징표이다. 정권은 있어도 자주성이 없는 나라는 사실상 자주독립국가라고 말할 수 없다.
어떤 나라와 민족이든지 자주성을 확고히 견지하여야 자주권과 존엄을 지키고 진정한 번영을 이룩할 수 있다.
정치에서 자주적 깃대를 세우지 못하고 남의 압력과 간섭을 묵인, 허용하거나 남의 지휘봉에 따라 움직이면 자주성을 상실 당하게 된다. 나라와 민족이 자주성을 잃게 되면 자기가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없게 되며 나아가서는 남의 장단에 춤을 추게 되고 나라를 망쳐먹게 된다.
민족문제는 본질에 있어서 자주성에 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민족이 생존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주성을 지켜야 하며 민족자주를 떠나 민족문제해결에 대해 논할 수 없다.
외세의 탄압에 맞서 싸워 민족의 자주성을 수호하기 위해 투쟁했던 일제 식민지하에 민족해방투쟁은 우리 민족의 과제였으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항일무장투쟁으로 빨치산 활동이다.
연재하는 이 글은 발톱까지 무장한 강도 일제에 대항하여 조국해방을 위해 무장투쟁을 전개한 조선공산주의자들의 빨치산시절을 회상한 기록이다.
북에서 간행된 도서는 전 20권으로 북의 인민 누구나 애독하고 있는 노동당의 귀중한 재보이며 국보적도서이다.
도서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는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있은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혁명의 길에 나선 사람들에게 어떤 정신으로 살며 싸워나가야 하는가 하는 투쟁의 진리, 혁명의 원리를 깊이 깨닫게 해주고 있다.
1959년 5월에 제1권을 발행한 이후 도서는 년대와 세기를 이어오며 항일혁명선열들이 지녔던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을 대중 속에 깊이 심어주기 위한 사상교양사업에 커다란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다.
오늘 우리는 이 글을 통해 항일혁명선열들이 창조한 고귀한 혁명정신과 투쟁기풍을 사상•정신적 양식으로 삼고 교양사업을 실감있게 진행하여 그 실효성을 높여나가도록 하였으면 하는 것이 연재하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차 례(제1권)
1. 잊을수 없는 첫 상봉 …………………………최현
2. 잊지 못할 5.1절 ………………………………림춘추
3. 한홉의 미시가루 ………………………………백학림
4. 로흑산에서의 승리 ……………………………김려중
5. 로동자들속에서 ………………………………박성철
6. 동녕현성전투 …………………………………오백룡
7. 투쟁의 첫걸음 …………………………………리봉수
8. 장백현사람들 …………………………………김정필 9. 산전막의 로인 …………………………………윤태홍
10. 피어린 투쟁속에서 ……………………………박영순
11. 무치허에서 ……………………………………김유길
12. 연집강에서의 개가 ……………………………조도언
13. 동지들! 이 총을 받아주! ……………………김좌혁
14. 대오를 찾아서 …………………………………리두찬
15. 《치도》에 대한 이야기 ………………………김철호
16. 왕청현 쟈피거우전투 …………………………오백룡
17. 고난의 40일 ……………………………………김철호
18. 연길현 소동구 지주집습격 ……………………최현
19. 난관을 뚫고 ……………………………………지경수
20. 끝까지 싸워야 한다 ……………………………손종준
21. 고귀한 은정 ……………………………………박성철
22. 연길현 왕우구어귀전투 ………………………최현
23. 무장을 위하여 …………………………………리봉수
24. 길은 하나이다 …………………………………주도일
25. 소년유격대원들 ………………………………림춘추
26. 연길현 남류수하자전투 ………………………조도언
27. 생명을 걸고 ……………………………………림춘추
첫 회분으로 제1권 1장과 2장을 연재합니다.
잊을수 없는 첫 상봉
최 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내가 처음 만나뵙게 된것은 1933년 9월이였다.
그때 연길지방에서 항일유격대 중대장으로 활동하고있던 나는 전투준비를 갖추고 급히 오라는 김일성동지의 지시를 받고 왕청유격근거지를 향해 떠났다.
유격대에 입대한지 한해가 넘도록 항상 마음속깊이 흠모하여 마지 않으면서도 정작 만나뵈올 기회를 가지지 못하던 내가 이제는 그이를 직접 만나뵙게 됐다고 생각하니 기쁨은 비할데 없었다. 이것은 나뿐만아니라 나와 함께 떠나게 된 우리 중대의 전체 대원들의 공통된 심정이였다.
우리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른 걸음으로 소왕청유격구 마촌에 당도하여 그이께서 계시는 사령부로 안내되였다.
그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났으나 그때의 일이 지금도 생생하다.
맑은 개울물이 흐르는 아늑한 골짜기 한쪽 약간 높직한 터전에 자리잡은 자그마한 초가집 한채가 있었다.
나를 안내하는 동무가 먼저 문앞에 다가서서 보고하였다.
그러자 인차 풍채좋은 젊은분이 밖으로 나오셨다.
《아! 최현동무가 오셨습니까!》
그이께서는 만면에 웃음을 띠우시며 마당에 내려오시여 나의 손을 덥석 잡아주셨다.
(아, 이분이 김일성장군이시구나!)하고 직감적으로 느끼는 감격으로 나의 가슴은 뜨거워졌다. 비록 이때가 초면이였지만 이미부터 품고있던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흠모의 정이 앞서서 도무지 처음 만나뵙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명령대로 대오를 인솔하고 방금 도착했다고 나는 그이께 보고하였다.
《수고했습니다. 나는 동무가 오기를 무척 기다리고있었습니다. 자 어서 안으로 들어갑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나의 손을 잡으신채 방안으로 들어서시였다. 소박하게 꾸려진 방안복판에는 낮은 책상 한개가 놓여있었고 그우에는 몇권의 서적과 지도가 펼쳐져있었다.
《벌써부터 나는 동무를 만나보고싶었는데 참 잘 오셨습니다.…》
자리에 마주 앉은후에도 그이께서는 어떻게나 반가와하시는지 나는 오히려 마음이 죄였다.
《우리는 연길유격부대동무들도 동녕현성전투에 참가시키려고 하였는데 그만 련락이 늦어져서 매우 유감스럽게 되였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동녕현성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오신지 이미 사흘째나 된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들은 나는 그만 온몸의 맥이 탁 풀리는듯 허전한 감을 금할수 없었다.
그이께서 직접 지휘하시는 전투에 참가하게 된 높은 영예를 지니고 나는 마음껏 싸워보리라 다짐하면서 급히 달려온 길이였는데 이미 전투가 끝났다고 하시니 참으로 서운하기 짝이 없었다.
《또 다른 곳을 칠 계획은 없으십니까?》
나는 은근히 희망을 품으면서 이렇게 말씀을 드려보았다.
김일성동지께서도 나의 이러한 심정을 짐작하고계셨다.
《그러나 너무 서운해할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수많은 전투를 해야 하는것만큼 함께 싸울 기회가 얼마든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김일성동지앞에서 나는 더 다른 말씀을 드릴수 없었다. 그처럼 서운하던 생각도 차차 사라져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나에게 연길지구의 유격대활동정형과 지방사정에 대하여 일일이 물으시였다. 그 물으심가운데는 내가 생각하지 못한 문제들이 적지 않았다. 또한 그이께서는 이미 모든 문제들에 대하여 깊이 아시고계셨고 매개 문제에 대한 명확한 방침들을 세우고계셨던것이다.
이러한 말씀들을 듣고 또 내가 평시에 깊이 간직한 심정을 낱낱이 털어놓고 그이께 말씀드리는 사이에 나는 점점 더 그이의 높은 인품에 끌리여들었다.
저녁식사후에 김일성동지께서는 동녕현성전투의 조직진행정형과 그 의의에 대하여 장시간 말씀하여주셨다.
동녕현성은 쏘련과 중국국경지대에 있는 성시로서 정치군사상 중요한 지점의 하나였다. 당시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쏘련에 대한 침공을 목적하고 이 지대에 각종 군사시설과 병력을 증강하였다. 때문에 이 현성을 진공한다는것은 정치군사적으로 매우 큰 의의가 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동녕현성전투를 진행함에 있어서 동만일대에 산재해있던 중국반일부대들과의 대규모적인 련합작전을 실현하는데 주요한 전략적목적을 두셨던것이다.
그때 중국동북일대에는 일제가 만주를 침략한 이후 장학량군벌이 붕괴되면서 반일구호를 들고 갈라져나온 반일부대(일명 구국군)들이 대단히 많았다. 이 반일부대들은 본질에 있어서 지주, 자산계급의 리익을 대표하는 민족주의적군대였고 그들의 정치적의식도 매우 락후한 형편이였다. 때문에 그들은 일본제국주의와 싸운다고는 하였으나 적극적인 투쟁을 전개하지 못하고 주로 산림지대에 뿔뿔이 흩어져 할거하고있었다. 또한 그들은 일제가 날조하여 류포시킨 악선전에 기만되여 조선사람을 《친일파》라고해서 죽이고 또 공산당원이라고해서 죽이는 등 위험한 민족배타주의적인 경향으로 나오기까지 하였다. 게다가 김성도 등 악질적인 종파분자들은 극단한 좌경적구호를 들고나옴으로써 조중인민간의 민족적리간을 조성시켰으며 반일부대들이 조선혁명가들을 적대시하게 하는 구실을 지어주었다. 당시 별동대장으로 사업하던 충실한 혁명가인 리광동지도 동산호의 반일부대에 의하여 무참하게 살해당하였다.
이러한 형편에서 반일부대를 설복하며 그들을 우리 유격대와의 협동작전에 인입한다는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였다. 그것은 참으로 목숨을 내걸어야 하는 위험한 일이였으며 능숙한 정치적수완과 포옹력을 가진 혁명가만이 해결할수 있는 어렵고 중대한 과업이였다. 때문에 우리가운데 있는 일부 사람들까지도 반일부대들과의 련합작전을 꺼려하였다. 그러나 김일성동지께서는 이 문제를 그렇게 보시지 않았다. 비록 그들이 계급적제한성과 자체의 정치적락후성때문에 우리와의 협동작전을 기피하고있으나 그들이 일제를 반대하여 투쟁한다는 점에서는 우리와 목적이 같았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우리들의 항일유격투쟁의 정당성과 우리들의 공동투쟁의 유리성을 일깨워주기만 한다면 그들은 기필코 우리를 따라올것이라고 예견하시였다. 그리하여 김일성동지께서는 항일유격대창건이래 처음으로 되는 대규모적인 조중련합작전을 대담하게 조직령도하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반일부대들과의 공동작전을 실현하는것은 물론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해결하여야 할 혁명과업이며 또 해결할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모든 문제를 심중히 토의한 끝에 내가 직접 가게 되였습니다. 나는 50여명의 대원을 인솔하고 오의성부대를 찾아가서 우리의 투쟁목적과 통일전선의 거대한 의의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해설하였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머리를 기웃거리기도 하였으나 나중에는 우리 제안의 정당성을 납득하게 되였습니다. 이리하여 우리가 목적한대로 그들을 끝내 설복시키고 련합작전을 실현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사실상 당시 반일부대들을 설복하여 우리의 투쟁에 인입시킬만큼 정치적신망과 인품이 높고 탁월한 능력을 가진분으로서는 김일성동지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그이께서만이 몸소 위험을 무릅쓰시고 이 어려운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실수 있었던것이다.
결과에 오의성, 사려장, 채사령부대 등 1,000여명에 달하는 반일부대들이 김일성동지의 통일적인 지휘하에 우리 항일유격부대들과의 련합작전에 참가하게 되였다. 그리하여 반일공동전선의 위력을 시위하였으며 일제놈들에게 군사, 정치, 도덕적으로 심대한 타격을 줄수 있었다.
물론 전투시에도 그들이 처음부터 잘 싸운것은 아니였다. 일부 반일부대들은 곡식낟가리만 보고도 도망치군하였다. 이럴 때에 우리 유격대원들이 앞장에 서서 용감히 싸워 모범을 보임으로써 그들의 용기를 고무하였다. 더우기 전투과정에서 사려장이 적탄에 부상을 당했을 때도 그의 부하인 반일병사들은 그를 돌보지 않고 달아났다. 그러나 김일성동지께서는 부상당한 그를 절박한 사경에서 구출하시였다.
이렇듯 실지전투를 통하여 김일성동지의 령활한 지휘와 우리 유격대원들의 용감성과 고상한 전투도덕적품성을 직접 보고 체험한 반일부대들은 우리 항일유격대에 대하여 정확한 인식을 가지게 되였으며 유격대원들을 제일 좋은 사람이라고까지 인정하게 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동녕현성전투승리의 거대한 의의를 분석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들이 공동의 적인 일제침략자들을 타도하는 투쟁에 있어서 반일부대들과의 통일전선의 실현은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비단 반일부대뿐만아니라 중국의 광범한 인민대중들과의 공동전선을 확대강화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혁명승리의 중요한 관건의 하나로 된다는것을 잊어서는 안될것입니다.
조중인민의 반일공동전선을 강화할데 대한 김일성동지의 이 명철한 로선을 지침으로 삼아 나는 그후 장기간의 유격투쟁행정에서 중국인민들과의 전투적련계를 강화하는데 관심을 돌리였다.
그리하여 반일부대들과의 사업에서는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위만군내의 량심적인 계층들에 대한 사업에서도 적지 않은 성과들을 달성할수 있었다.
그때에 김일성동지께서 말씀하신 통일전선로선은 비단 중국인민들과의 반일공동전선에 관한것만이 아니였다. 그이께서는 조선혁명은 소수의 공산주의자들의 힘만으로는 결코 수행할수 없다는것, 국내외에는 반일투쟁에 궐기한 로동자, 농민을 위시한 각계각층 인민의 거대한 혁명력량이 있는데 이들을 모두 혁명조직에 묶어세워서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는 투쟁에 더욱 힘있게 불러일으켜야 한다는것, 그러기 위하여 당면하게는 일부 혁명대오내에 잠입하여 통일전선을 파탄시키려하고있는 좌경배타주의자들과 우리 대오를 와해시키려는 우경투항주의자들을 반대하여 완강하게 투쟁하여야 한다는것 등을 가르치시였다.
우리는 각종 대중단체들을 조직확대하며 앞으로 조선국내에서까지 반일민족통일전선조직들을 광범히 조직할데 대한 준비사업들을 진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만일 정치적으로 넓은 안광을 가지지 못하고 이러한 줄기찬 투쟁과 준비가 없이 손쉽게 조선혁명이 승리하리라고 타산한다면 그것은 공상에 지나지 못하리라는것은 아주 명백한 사실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정기어린 눈매로 나를 바라보시면서 매우 심중한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매개 문제들에 대하여 일일이 실례를 들어가시면서 어떻게나 정열적으로 흥미있게 말씀하시는지 나는 밤이 지새는줄도 모르고 그이의 말씀에 온 정신을 집중하였다.
새벽녘이 가까와왔을 때에야 우리는 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나는 그이께서 말씀하신 한구절한구절이 머리속에 되살아올라서 좀처럼 잠을 이룰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이였다. 보초대에서 적들이 습격해온다는 급한 신호가 왔다. 김일성동지를 따라서 나는 뒤산으로 올라갔다. 그이께서는 부대를 고지에 배치하시고 적들을 대기하도록 하시였다.
나는 소원하던대로 오늘은 그이의 지휘하에 전투를 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승리의 자신심으로 가슴이 흐뭇했다.
그런데 적《토벌대》놈들은 겁에 질려서 우리가 대기하고있는 계선까지는 접근해오지 못하고 골짜기어귀에서 장시간 총질을 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비렬하게도 밭에 무져놓은 곡식낟가리들에 함부로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때 적정을 살피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대원들에게 곡식낟가리에 불을 지르면서 덤비는 놈들을 모조리 쓸어눕히라는 명령을 하신 다음 나를 돌아보시며 《참, 최현동무가 사격명사수라는 소문을 들었는데 한번 솜씨를 좀 구경해봅시다.》하고 말씀하시였다.
나는 평소에는 사격이라면 누구에게도 양보하려 하지 않았지만 그이앞에서만은 자신이 없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며 내가 늘 가지고다니던 보병총으로 적병놈을 겨누었다. 적들은 우리가 있는 고지에서 약 500여m나 되는곳에 있었으므로 명중사격을 하기에는 어지간히 먼 거리였다. 그러나 나는 침착하게 겨누어 슬며시 방아쇠를 당겼다. 이때 불뭉치를 휘두르며 곡식낟가리에 달려들던 적병 한놈이 보기좋게 나가자빠졌다.
곁에서 이 정경을 보고계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거참 과연 명사수로군. 나도 몇방 쏘아볼가.》라고 하시면서 친히 보병총을 드시고 연거퍼 네댓방 사격하셨는데 매번 어김없이 명중되였다. 이 광경을 목격하자 유격대원들은 모두 환성을 올리며 더욱 맹렬하게 사격을 계속하였다. 이렇게 되자 먼발치에서 대항하던 적《토벌대》놈들은 그만 꽁무니를 빼고말았다.
그날 밤에도 김일성동지께서는 나에게 이야기를 계속하시였다. 담화의 서두에서 그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앞에는 지금 중대한 혁명과업들이 허다하게 제기되고있습니다. 그런데 최현동무는 오늘 우리의 투쟁에서 무슨 문제가 가장 중심적인것이라고 생각합니까? 기탄없이 의견을 나누어봅시다.
나는 사실 그이의 말씀을 듣기에만 열중하고있었으므로 별로 체계적인 견해를 세우지 못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나는 군사문제에 대하여서도 그렇지만 조선혁명의 구체적인 문제에 대하여는 더욱더 연구가 부족하였다.
나는 평시에 품고있던 심정을 말씀드렸다.
《제 생각 같아서는 우선 우리 유격대를 강화하는 문제가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속히 유격대오를 확대하여 대부대들을 편성해가지고 강도 일제놈들을 본때있게 때려부시며 조국땅으로 들어가야 하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옳습니다! 문제는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혁명력량을 집결하여 무장투쟁을 확대강화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정당한 목적과 사명을 달성할수 없는것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나의 의견을 이렇게 긍정하시면서 항일유격대건설에 대한 제반문제들에 대하여서와 항일유격대의 특성과 본질에 대하여 명철하게 분석하시여 말씀하시였다. 내가 그때 들은 말씀을 지금 죄다 기억하고있지는 못하나 대략 다음과 같다고 생각된다.
항일유격대는 우리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위하여 일제침략자들과 그 주구들을 반대하여 싸우는 진정한 인민의 무장력으로 되여야 합니다.
우리 조선인민의 절실한 념원은 강도 일본제국주의를 하루속히 타도하고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는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일유격대는 일제를 반대하는 혁명력량을 집결하여 무장투쟁을 더욱 대규모적으로 전개함으로써 조선인민의 절실한 념원을 실현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만 머무를수는 없습니다.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조선에서 모든 계급적압박을 청산하고 로동자, 농민을 착취의 멍에로부터 해방하며 우리 조국을 장차 착취없는 행복한 사회로 만들것을 자기의 변함없는 목적으로 삼고있습니다.
… 우리는 이러한 정당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싸우기때문에 지금은 비록 적은 력량이지만 인민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원호를 받아 미구에 백전백승의 혁명군으로 장성강화되게 될것입니다.
과거에 활동하던 의병대나 독립군 같은 군대들도 조선독립을 위하여 싸운다고는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본질에 있어서 지주나 자산계급의 리익을 대표하는 민족주의적군대에 지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그들의 투쟁은 인민의 지지를 받을수 없었으며 결국에는 일제의 간악한 공격앞에 견디여내지 못하고말았던것입니다.
우리 항일유격대는 자기의 사명에 있어서뿐만아니라 그 구성에 있어서도 그러한 부류의 민족주의적군대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항일유격대는 어떻게 구성되여있습니까?
항일유격대는 일제와 그 주구들을 반대하는 투쟁에서 자기의 목숨도 서슴없이 바칠 각오와 준비가 되여있는 그러한 로동자, 농민의 우수한 아들딸로써 조직되였습니다.
이들은 일제와 그 주구들의 압박과 략탈에 의하여 집과 땅을 잃어버리고 부모처자를 학살당한 사람들이며 정치적자유를 완전히 빼앗긴 그런 처지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어떠한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일제강도들을 우리 땅에서 몰아내고야 만다는 불타는 일념에 충만되여있습니다.
…
그러나 항일유격대의 투쟁목표가 정당하다는것과 또 그가 로동계급과 빈농민을 기본토대로 하여 구성되였다고 하여 이 무장력이 저절로 강화되겠습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항일유격대를 강화하기 위하여 우리는 앞으로 일제강점자들을 소탕하는 간고한 전투를 통하여 적의 무장을 빼앗아 자신을 더욱 튼튼히 무장하여야 합니다. 지금은 맨주먹으로 적의 무기를 로획하던 때와는 달라서 훨씬 용이하게 또 일시에 많은 무기를 획득할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에게는 동지들의 피로써 얻은 적지 않은 무기와 우리가 자체로 만든 폭탄들도 있습니다.
이것을 밑천삼아 적의 무기를 더 많이 로획하여야 하며 로획한 무기로 우리의 전투력을 강화하여야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우리가 일제와 대등하게 잘 무장할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무장이 비록 불충분하다 할지라도 모든 유격대원들이 일제를 타도하고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위하여서는 자기의 모든것을 바쳐 싸우겠다는 강철의 투지로 충만되여있다면 우리는 일제와의 싸움에서 능히 승리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장투쟁과정에서 새 대원들을 계속 흡수하여 우리의 대오를 부단히 확대하여야 합니다. 유격근거지들에는 적과의 싸움에서 단련되고 검열된 청년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들을 유격대에 받아들여서 훌륭한 혁명전사로 육성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유격활동지역내에는 다수의 광산, 림업로동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유격대오를 장성시킬수 있는 중요한 원천입니다.
로동자들속에서 정치적으로 단련된 동무들을 혁명조직을 통하여 유격대에 많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때 내가 활동하고있는 지방의 8도구 금광과 로두구광산들에서 이미 적지 않은 로동자들이 유격대에 들어왔다고 하시면서 앞으로도 계속 이 광산로동자들속에서 유격대원들을 선발할것을 지시하시였다.
유격대원들을 공산주의사상으로 확고히 무장시킴이 없이는 장기적이고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에서 승리할수 없는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원들에 대한 군사훈련을 강화하는 한편 그들속에서 사상교양사업을 강화하여야 합니다.
더우기 항일빨찌산은 단지 적과 싸우는 전사일뿐만아니라 인민을 교양하고 선동하는 선전자가 되여야 하며 인민을 조직동원하는 조직자가 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군사간부들은 전투도 잘 지휘하여야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대원들의 정치교양사업에도 큰 관심을 돌려야 하며 자신을 맑스-레닌주의사상으로 무장하여야 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유격대건설의 원칙적문제들을 제시하시면서 청소한 항일유격대를 질적량적으로 급속히 장성강화하여 멀지 않은 앞날에 강력한 군사적력량을 가진 조선인민혁명군으로 확대발전시켜야 한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만주일대의 광활한 지역에서 항일무장투쟁을 확대강화하여야 하며 점차 력량을 축적하면서 앞으로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조선국경지대와 나아가서는 조선국내에로 진출할 준비를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조국의 광복과 독립을 달성할수 있는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그이의 두눈에서는 움직일수 없는 신념과 거센 혁명적정열이 불길처럼 타올랐다.
조국의 광복과 독립을 위한 우리의 위업을 달성하자면 우리는 반드시 맑스-레닌주의당을 가져야 합니다. 더우기 우리의 혁명투쟁은 조국의 광복과 독립을 쟁취하는것으로 끝나는것이 아니라 장차 우리 나라를 쏘련과 같은 사회주의국가로 만들자는것이 우리의 일관된 주장입니다. 이 원대한 과업을 어떻게 혁명의 참모부가 없이 해나갈수 있겠습니까. 당-이것은 우리의 모든 승리의 향도성입니다. 그러므로 맑스-레닌주의당을 창건하는것은 우리 조선공산주의자들앞에 제기된 가장 절실하고 기본적인 임무입니다. 물론 그렇다고하여 일부 종파분자들이 말하는것처럼 우리 형편에서 지금 당장 당을 창건하자고 할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런 준비와 혁명력량의 축적이 없이 즉시 당을 창건할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허공에 집을 짓겠다는것과 같은 공허한 망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가장 심중하게 그리고 가장 정력적으로 당을 창건하기 위한 조직사상적토대를 한걸음씩 축성해나가야 할것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당창건을 위한 방침적문제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당창건을 위한 준비사업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항일무장투쟁을 통하여 공산주의자들의 대오를 육성확대하는것입니다. 실제투쟁에서 세련되고 검열된 공산주의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 혁명수행에서 핵심적역할을 수행할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난관에 부닥치든지간에 이들을 골간으로하여 그 주위에 혁명군중을 튼튼히 집결시킨다면 우리는 맑스 - 레닌주의당을 창건할수도 있으며 제기된 복잡한 혁명과업을 정확하게 수행할수도 있을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일무장투쟁을 진행하는 기간에 우리의 무장대오를 부단히 확대강화하며 적과의 싸움에서 공산주의자들을 육성단련해야 합니다.
한편 동북일대의 조선인거주지역에는 조선인공산주의자들의 당조직들이 있는바 이 조직들을 더욱 장성강화해야 하며 당원들에 대한 정치적훈련과 교양사업을 강화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준비된 핵심들을 국내깊이 침투시켜 국내의 공산주의자들을 이에 결속시킴으로써 우리의 대오를 확대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형편에서 우리가 공산주의자들을 다만 항일무장대오와 공산주의조직들을 통해서만 양성해내는것으로 만족할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반일통일전선로선을 견지하며 국내외의 광범한 혁명력량을 각종 반일혁명조직들에 단합시켜야 합니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이들에 강한 반일사상을 주입시켜 그들의 혁명의식을 각성시키면서 점차적으로 이들속에서 선진분자들을 선발하여 유격대오나 혁명조직에 받아들여 그들을 공산주의자들로 육성해내야 합니다.
또한 당창건을 위하여서는 공산주의대렬내에서 종파주의, 기회주의 등 불순한 사상과 무자비하게 투쟁하며 혁명대오의 조직사상적순결성을 고수하는 문제도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우리는 한때 조선인공산주의자들속에서 종파분자들이 파쟁에 광분함으로써 공산주의운동에 막대한 해독을 끼친 쓰라린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자들의 일부는 지금도 혁명대오내에 잠입하여 반《민생단》투쟁이란 구호하에 동지호상간에 리간을 조성시키고있으며 각종 좌우경적편향들을 발생시킴으로써 조선인공산주의자들의 대렬을 내부로부터 와해시키려하고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자들과 추호도 타협없는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당조직과 혁명대오내에 어떠한 종파행동이나 적대사상도 발붙일 틈을 주지 말도록 해야 합니다.
매개 공산주의자들은 맑스-레닌주의를 배우고 그 원리의 진수를 파악할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배운 맑스-레닌주의리론을 당면한 우리의 혁명정세에 적합하게 적용할줄 아는 방법과 태도를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없이는 복잡하고 간고한 우리의 혁명수행에서 확고한 신심을 가질수 없으며 옳은 로선을 선택할수도 없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벌써 그때부터 이렇게 조선혁명의 앞날을 예견성있게 내다보시면서 당창건의 방침과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조직지도하고계셨던것이다.
그이께서는 앞으로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할데 대한 리상도 말씀하시였다.
산 좋고 물 맑은 우리 조국땅우에 압박과 착취없는 사회를 건설하고 풍만한 자원을 우리의 힘으로 개발하여 모든 인민들이 자유롭고 풍족하게 살게 된다면 얼마나 보람있고 행복하겠습니까. 우리가 지금 피를 흘리면서 싸우는 종국적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는것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먼 미래를 내다보시며 깊은 사색에 잠기신듯 잠시 말씀을 끊으셨다가 다시 이으시였다.
이것은 공상이 아닙니다. 우리 공산주의자들의 리상은 과학적이기때문에 그것은 기필코 현실화되리라는것은 조금도 의심할바 없습니다.
나는 확신에 넘치는 그이의 말씀을 들으면서 광명한 앞날이 환하게 내다보이는것 같았으며 그이의 혁명전사로서의 긍지와 희열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그날밤도 어느덧 지새여 새벽녘까지 이야기가 계속되였다.
다음날 아침에 나는 김일성동지와 작별하게 되였다. 그이께서는 나에게 유격투쟁에 대한 제반문제를 재삼 강조하시고나서 유격근거지보초대에서 사용하라고 하시면서 《다태갈》(구경이 크고 소리가 요란한 총) 4정을 주시였다.
내가 인사를 드리고 막 떠나려고하는데 그이께서는 《잠간만 기다리시오.》라고 하시며 아래우 군복호주머니를 만지시더니 《변변치 못한것이지만 우리가 상봉한 기념으로 받아두시오.》하시면서 호박물부리를 나에게 선물로 주시였다. 그것을 받아쥔 나의 가슴속에는 무엇인가 뜨겁고 벅찬것이 소용돌이치는것을 느꼈다.
이리하여 나는 김일성동지를 처음으로 만나뵈온 잊을수 없는 감격을 안고 연길유격근거지로 돌아왔다. 나는 그후 간고한 투쟁행정에서도 항상 그 물부리를 품속깊이 가지고다녔으며 어려운 고비에 부닥칠 때마다 그것을 꺼내보며 김일성동지를 처음 만나뵙던 감격을 회상하군 하였다.
그것은 비록 자그마한 한개의 물부리였으나 나에게 힘과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친근한 마음의 벗으로 되였던것이다.(현재 그 귀중한 물부리는 조선혁명박물관에 보관되여있다.)
이처럼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일찌기 항일혁명투쟁의 초시기부터 조선혁명의 탁월한 령도자로서 혁명의 전망을 내다보시면서 모든 혁명로선을 명철하게 제시하시였던것이다.
그이의 탁월한 령도는 항상 우리의 투쟁의 기치로 되였으며 그이께서 가리키시는 길은 항상 승리와 영광의 길이였다.
김일성동지를 만나뵈온것은 비록 이틀동안의 짧은 시간이였으나 나에게는 몇해동안 혁명대학을 다닌것보다 더 의의깊고 귀중한 시간이였다.
나는 그때부터 그이의 모든 교시를 심장속에 새겨두었으며 영명하신 김일성동지를 수령으로 모시는 영예와 긍지를 가슴깊이 간직하고 간고한 혁명투쟁의 길을 꾸준하게 걸어왔다.
잊지 못할 5.1절
림춘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친솔하신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1940년의 5.1절을 안도현 처창즈부근밀림속에서 맞이하던 때였다.
우리들은 근 10년간을 두고 전세계로동계급의 명절인 5.1절을 긴장된 무장투쟁속에서 기념하면서도 간혹 유격대식《연회》를 베푼 일도 있었지만 어쨌든 이날에 굶어본적은 없었다.
다른 5.1절은 나의 기억에서 희미하나 1940년 5.1절, 이날만은 나의 기억속에서 항상 사라지지 않는다.
이해의 5.1절은 식량과 소금마저 떨어진 어려운 형편에서 맞이하였다.
지봉손동무는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여 자기 배낭에 조금 남겨두었던 반근가량의 강냉이알을 들추어내여 일제놈들의 군용밥통에 넣고 푹 퍼지도록 끓였다. 물을 많이 두고 실컷 퍼지도록 끓였으나 퍼지는것도 일정한 한도가 있으니만큼 극상하여 모두 한사발밖에 되지 않았다. 지봉손동무는 우선 위대한 수령님께 잡수시기를 권하였다. 대원들은 그래도 강냉이알을 다문 몇알씩이나마 나눠먹었으나 그이께서만은 조금도 잡수시지 않으셨기때문이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병들어 앓는 동무들도 있는데 그 동무들에게 나누어주시오. 나야 성한 몸이 아니요.》라고 하시면서 끝내 사양하시였다.
당시 우리 부대내에는 김홍수동무를 비롯하여 나어린 5명의 환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극진한 사랑에 감복되여 굳이 사양하면서 그이께서 잡수시여야 한다고 거절하는것이였다.
그러나 그들도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거역할수는 없었다. 김홍수동무와 다른 5명의 환자들은 그 강냉이 한사발을 나눠먹고 병석에서 일어났다.
그것은 오래동안 굶주림에 시달리던 끝이라 강냉이알이 효력을 발생한 그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육친적인 사랑이 그들의 용기를 북돋아주었고 병마를 이겨내게 한것이였다.
일제놈들의 정찰기는 우리 유격대의 종적을 찾으려고 매일과 같이 미친듯이 떠돌았고 적지상부대의 2중3중의 포위속에서 곤난이란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특히 식량이 완전히 떨어진 조건에서 여러날을 굶어오면서 임무를 수행한다는것은 보통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인것이다. 이런 형편에서 나어린 동무들은 말하기를 《밥을 먹지 않고 사는 약이 있었으면 좋겠다.》고까지 하였다. 이때 우리들에게 있어서 긴급한 문제는 최소한도의 영양이라도 보장하는 문제였다.
이날 우리들은 그 근처의 도랑에서 개구리잡이를 하기로 하였다. 원시림으로 뒤덮인 산골이기때문에 어떤 곳에는 얼음도 녹지 않았으며 아직 개구리의 입도 열리지 않은 때였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날 애쓰던 끝에 약 50~60㎏의 개구리를 잡았다.
개구리의 료리도 잘만 만들면 어떤 나라에서는 고급료리로 사용된다고 흔히 말들 한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개구리를 제외하고는 다른 아무러한 조미료도 없었고 또 그러한 료리술을 가진 동무들도 없었다.
우리들은 모닥불을 피우고 일제놈들에게서 로획한 군용밥통을 죄다 모았다.
밥통들에 물을 두고 매 밥통에 5~6마리의 개구리를 집어넣고 삶기 시작하였다. 수일간 입에 풀칠조차 하지 못하던 우리는 개구리 삶은 구수한 냄새에 구미가 솟구쳐오름을 어찌할수 없었다. 이윽고 식사준비가 다 되여 우리는 고급료리 부럽지 않게 잘 먹었다.
명절날저녁 대원들은 우등불을 피우고 한장소에 모여앉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원들속에 섞이여 담화를 진행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혁명을 위하여 한몸 바칠것을 각오하고 손에 총을 쥔 우리들에게 있어서 락망과 비관, 주저와 동요란 절대로 있을수 없습니다.
혁명도상에 부닥치는 곤난앞에서 락망하거나 비관하며 주저하게 되면 동요가 생기게 되고 나아가서는 혁명을 배신하는 구렁텅이에 빠지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혁명투쟁과정이 잘 보여주고있는 심각한 교훈입니다. 먼 실례는 그만두고라도 최근에도 극히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당면한 곤난을 극복하지 못하여 신념을 저버리고 적앞에 투항변절한 비렬한자들이 나타났습니다.
아는바와 같이 혁명의 변절자들은 평상시에는 누구보다도 혁명적구호를 곧잘 부르짖군 하였으나 정세가 어렵게 되고 복잡해지자 혁명의 전도에 대하여 비관하던 나머지 일신의 안일과 향락을 위하여 혁명투쟁을 포기하였을뿐아니라 끝내 놈들에게 투항하는 천추에 용서못할 배신행위를 감행하였습니다.
혁명도상에 가로놓인 난관앞에서 굴복하여 조국과 인민, 혁명과 동지들을 배반한 변절자들은 참으로 가련한자들입니다.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사람이 기껏 산대야 60전후일것입니다. 길지 않은 이 생애를 깨끗이 살지 못하고 저 하나를 위해 량심을 팔고 조국과 인민을 반역하는 자들을 어찌 가련타 하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예로부터 우리 인민은 하루를 살아도 량심적으로 사는것을 자랑으로 여겨왔습니다. 우리 혁명가들의 량심은 조국의 광복과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의 무한한 애국적헌신성과 희생성, 무비의 용감성과 대담성 강의성과 인내성에서 표현된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조국의 광복과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한몸바쳐 싸울것을 각오하고 혁명의 길에 나선 자각적인 투사들인것만큼 어떤 역경속에서도 자기의 혁명적신념과 량심을 추호도 더럽혀서는 안되며 그것을 빛나게 수호해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혁명가의 지조를 지켜 끝까지 싸워나가는데 있어서 중요한것이 혁명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심과 조국과 인민을 열렬히 사랑하며 원쑤를 끝없이 증오하는 정신으로 무장하는것이라고 하시면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우리 조선은 문자그대로 삼천리금수강산입니다. 산도 좋고 물도 맑습니다. 어느곳에서나 끓인물이 필요되지 않습니다. 비옥한 토지에서는 기름진 오곡을 풍성하게 거둘수 있으며 동서남해에는 갖가지 물고기떼들이 욱실거립니다. 도처에 매장되여있는 모든 귀중한 자연부원들은 우리 인민들을 잘 살수 있게 하고도 오히려 남음이 있습니다.
동무들이 어린 시절의 깊은 추억이 깃들어있는 자기 고향에 대하여 말하였지만 내가 나서자란 평양일대만 하여도 사시절 아름다운 모란봉과 만경대, 가을이면 기름진 백미와 달콤한 고구마 그리고 대동강 숭어국과 유명한 평양국수를 비롯하여 자랑할만 한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
풍부한 자원과 유구한 력사, 찬란한 문화로 자랑떨치던 우리 조국은 일본제국주의침략자들에게 모든것을 빼앗기고 암흑천지로 변하였으며 우리 인민은 선조들의 유골이 묻혀있는 정든 고향땅을 등지고 산 설고 물 설은 이국땅에까지 쫓겨와 죽지 못해 살아가고있습니다.
…
조국과 인민을 열렬히 사랑한다는것은 일제에게 빼앗긴 조국을 광복하며 천대받고 구박받는 인민을 해방하기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바쳐 투쟁한다는것을 의미합니다.
도탄에 빠져 신음하는 조국과 일제의 발굽밑에 짓눌린 인민을 해방하기 위하여 자기의 청춘과 생명을 다 바쳐 희생적으로 싸워나가는 바로 여기에 혁명가로서의 빛나는 영예가 있고 가장 보람있고 값높은 참된 삶이 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 정열적이고도 간절한 말씀에 대원들은 황홀해졌다. 뒤이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린시절에 항상 즐겨부르셨다는 《모란봉노래》를 우리들에게 불러주셨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우리들은 온밤 조국에 대한 가지가지의 이야기들과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적단결의 모범에 관한 이야기들을 밤을 새가면서 활기있게 토론하였다.
맑스주의가 발생한후 100년도 되기전에 세계 6분의 1의 지역에서 로동자, 농민이 정권을 장악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하고있는데 대하여 그리고 그의 지지와 성원하에 전세계로동운동과 민족해방투쟁의 날로 앙양되고있는 반면에 자본주의는 전반적위기에 들어서서 자기 멸망의 길을 재촉하고있는데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우리의 보람찬 투쟁에 대하여 신심을 더욱 다지였다.
우리들가운데서 어느 한 동무는 을지문덕, 강감찬, 리순신 등 애국명장들에 대하여, 동방문화의 화려한 꽃을 피웠던 우리 나라 문화에 대하여서도 이야기하였다.
또한 어떤 동무는 세계문화사에 길이 빛날 우리의 고귀한 문화유물(동활자, 첨성대, 비차, 거북선 등과 우리글)에 대하여서와 세계적으로 그 명성이 알려진 금강산, 맑고 맑은 동해바다, 조국의 온화한 기후와 선명한 아침하늘, 온천과 약수 그리고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경에 대하여서도 감회깊은 이야기를 하였다.
유구한 문화전통을 가졌고 화려한 꽃동산에서 살아온 우리 민족이 일제강도놈들때문에 망국노의 쓰라린 역경을 당하고 그리운 조국땅과 부모, 처자, 형제와 생리별하고 간고한 투쟁을 전개하고있음을 생각할 때 우리는 두 주먹이 저도모르게 불끈 쥐여졌고 우리의 총창은 원쑤에 대한 증오로 하여 더욱 번뜩이였다.
선조들의 백골이 묻혀있는 향토 그리고 유년시절에 뛰놀던 때의 가지가지의 추억들, 일제강도놈들때문에 정든 고향을 등지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느게 되던 때의 말못할 안타까운 심정들, 일제강도놈들을 쳐부시기전에는 결코 조국에 돌아가지 않을것을 맹세했던 그때의 열정들을 토로하면서 우리는 원쑤격멸의 투지를 더욱 다지였다.
우리들의 마음은 어느때나 그러하였지만 근면하고 소박하며 그처럼 조국을 사랑하던 부모형제들이 이날 이 시각에도 여전히 일제강도놈들의 혹독한 천대와 착취하에서 간난신고를 겪고있다는것을 생각할 때 그리고 하루속히 구원의 손길이 뻗쳐질것을 그들이 기다리고있음을 생각할 때 원쑤 일제놈들을 멸살하고야 말리라는 각오와 투지로 충만되였으며 닥쳐올 대사변을 맞이할 각오를 새롭게 하지 않을수 없었다.
참으로 1940년 5.1절은 우리들에게 있어서 잊혀지지 않는 날이다.
《연회》에 갖춘 개구리료리를 진수성찬보다도 더 달게 먹었고 그보다도 더 중요한것은 조국에 대한 그리고 우리의 보람찬 투쟁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감명깊은 말씀으로하여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지낸 5.1절을 어찌 잊을수 있겠는가!
우리는 8.15광복후 평양에 개선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말씀하시던 평양국수, 고구마, 대동강의 숭어를 먹으며 옛일을 추억한 일도 있었다.
이처럼 항일무장투쟁의 극히 곤난한 시기에도 조선혁명의 위대한 수령이시며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김일성동지의 혁명적락관주의와 그이의 힘찬 고무격려에 의하여 우리들은 자기의 불굴의 혁명적의지를 더욱 굳게 다지였던 것이다.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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