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필승의 신념
전 문 섭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령도밑에 조직전개된 간고하였던 항일무장투쟁의 지난날들을 회고할 때마다 나는 우리 항일유격대원들에게 항상 혁명사상을 부단히 학습하라고 간곡히 교시하시던 수령님의 말씀을 가슴깊이 새기게 된다.
일제를 반대하여 싸우는 가렬한 전투, 끝없는 밀림과 설령을 넘어다니는 수백수천리의 강행군 그리고 때로는 군복이 해여져 추위를 가릴수 없고 식량도 다 떨어져서 수십일씩 낟알구경을 못하는 그러한 고난의 길을 걸어오면서도 항상 꺼질줄 모르는 승리의 신심으로, 혁명적락관주의로 우리들의 가슴을 불타게 한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간곡한 교시였다.
그이께서는 광활한 지대에서의 유격투쟁과 혁명조직들의 사업을 지도하시는 어렵고 복잡한 가운데서도 늘 시간을 내시여 우리 대원들이 어떻게 배우며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가를 세세히 가르쳐주셨다.
그중에서도 내가 속한 사령부직속 경위중대동무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시는 교시와 강의를 직접 듣게 되는 기회가 더 많았다.
그이께서는 《조국광복회10대강령》,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임무》, 《쏘련공산당략사》, 《공청원의 수양》, 《사회주의대의》등을 알기쉽게 가르쳐주셨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기 인민에 대하여 무한히 충실할것을 항상 강조하시면서 쏘련을 지지옹호하며 중국인민들과의 친선을 굳게 하고 반일공동투쟁에서 조중인민의 통일전선을 부단히 확대강화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그리고 이러한 사업은 단 시일내에 쉽게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간고한 투쟁을 통하여 이루어지는것이라고 가르치시였다.
이렇듯 우리는 그 시기부터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배웠고 이 사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몸바쳐싸웠다.
1941년, 우리에게는 보다 어려운 투쟁의 시기가 닥쳐왔다. 일제는 중국에서 침략전쟁을 계속 확대하면서 쏘만국경을 위협하는 한편 우리 항일유격대에 대한 가일층의 악랄한 《토벌》을 감행하였다.
동시에 일제는 우리 대오를 와해시키기 위하여 온갖 음흉하고 교활한 책동과 허위날조를 다했다.
《…쏘련은 일본과 중립조약을 체결했고 일본군은 중국에서 계속 승리하고있다.…빨찌산은 고립되여있으며 바다의 좁쌀알만 하다. 너희들이 어떻게 대일본제국을 반대하여 싸우겠는가? …어서 투항하라!》 이러한 삐라를 뿌리며 위협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동요분자와 각종 암해분자들을 리용하여 우리 항일유격대를 내부로부터 와해시켜보려고 날뛰였다. 그러나 놈들은 어떠한 발악과 술책으로도 우리 혁명투쟁의 앞길을 막지 못했다.
적들의 발악이 심하면 심할수록 우리는 더욱더 승리의 신심을 굳게 하면서 한결같이 위대한 수령님의 두리에 더욱 굳게 단결했고 그이에 의하여 교양육성된 우리 모든 지휘관들과 대원들은 그 무엇으로도 끊을수 없는 혁명적의리와 동지애로 뭉쳐졌다.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를 따라 이러한 단결과 확고한 승리의 신심으로 우리는 만난을 무릅쓰고 싸웠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나는 련락임무를 받았다. 지방에 나가 정치공작을 하고 돌아오는 동무들을 련락장소에 나가서 데려오라는 지시였다.
그때 우리 유격대에는 지방정치공작으로 소부대를 떠나보낸 뒤에는 곧 지휘처를 옮기고 그 자리를 련락처로 만드는 원칙이 있었다. 그리고 련락은 매일 가는것이 아니라 지정된 날자에만 가게 되여있었다.
이러한 련락임무를 받은 나는 그날 점심때쯤에 지정된 련락처에 당도했는데 거기에는 아직 아무도 와있지 않았다.
숲속에 숨어있는줄 생각하고 조심히 살펴보았으나 역시 소부대공작원들을 만날수 없었다.
어느덧 예정기일보다 1주일이 지났다. 소식하나 없는 그 동무들을 근심하고계실 위대한 수령님을 생각하니 나는 그냥 돌아설수 없었다. 언제나 사랑하는 혁명동지들을 아끼고 념려하시는 그이의 뜨거운 심정을 잘 아는 나는 시간이 갈수록 몸에서 진땀이 솟았다.
험한 산과 깊은 숲속을 다니면서 나는 큰 몽둥이로 나무들을 두드렸다. 이것은 동지를 찾는 우리의 신호였다. 그러나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만이 빽빽한 숲속을 메아리칠뿐 아무러한 응대도 들을수 없었다.
나는 내자신을 원망했다.
발끝에 불이 나도록 달려간것이였지만 결국은 나의 걸음이 늦어서 동무들이 다른데로 가버린것만 같았고 나의 머리에는 대오를 찾아서 어느 숲속을 헤매는 동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기에게 부과된 중대한 임무를 다하지 못했을 때에 느끼는 그 심정보다 더 아픈것은 없으며 그보다 더 부끄러운것은 없다.
나는 계속 숲속을 뒤지며 여러가지 방법으로 그들을 찾았으나 아무도 만날수 없었다. 이러는사이에 이미 돌아가야 할 날자도 되였다.
이렇게 되니 근심은 더욱더 커졌다.
(만일 나까지 제날자에 돌아가지 않는다면 사령관동지께서는 더 념려하실것이며 또 다른 동무들을 련락원으로 보내실것이 아닌가.)
나는 가슴미여지는 생각으로 맥없이 발길을 돌리게 되였다. 그러나 막상 돌아서고보니 발길은 내켜지지 않았다.
그 어느곳에서 동무들이 헤매면서 부르는것만 같아서 나는 다시 돌아섰다. 숲속을 이리저리 살펴도 보고 귀를 기울여도 보면서 한참이나 또 더듬거렸다.
이렇게 얼마동안 찾고있을 때였다.
껍질이 쭉 벗겨진 큰 나무에 숯덩이로 씌여진 글씨가 얼른 눈에 띄였다. 급히 다가가서 자세히 보니 거기엔 김익현동무와 또 한 동무가 끝가지 혁명을 위해 싸우다 굶어죽었다는것이 씌여있었다. 이 글을 읽는 나의 심장은 금시 얼어버리는것 같았다.
(굶어죽다니… 이게 무슨 말이냐, 이 일을 어쩌면 좋으랴.)
참으로 그들이 굶어죽기까지에는 얼마나 고통을 겪었을것이며 우리를 얼마나 기다렸을것인가.
이것이 다 일제놈들때문이라고 생각하니 놈들에 대한 격분으로하여 나의 주먹은 더욱 떨렸다.
나는 기어코 그들을 찾아야 하며 그들을 구원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전우들의 이름을 부르며 숲속을 헤매였다. 물론 그들이 가까이에 있을리 만무했다. 그것은 죽은 뒤에도 적들의 손이 닿을가봐 그 어느곳에 깊이 숨었을것이기때문이다.
그들을 찾는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였다.
풀속에 엎드린 토끼를 보고도 나는 혹시 그들이 아닌가 하여 한참씩 뛰여갔고 새가 날아오르는 소리를 듣고도 한참씩 달려갔었다. 이렇게 애를 쓰며 그 근방을 뛰여다니며 살폈으나 그들을 발견할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가. 어떻게 하면 그들을 찾는단 말인가?)
나는 또 대중없이 뛰여다니며 숲속을 뒤졌다.
이럴 때였다. 나의 머리속에는 불현듯 위대한 수령님께서 하신 다음과 같은 말씀이 떠올랐다.
위급한 때일수록 덤비지 말고 침착해야 하며 복잡한 속에서도 요점을 찾고 결정적인 대목에 가서는 망설이지 말고 대담하게 공산주의자의 기백으로 완강히 돌진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깊이 생각하고 살피며 정확히 판단할줄 알아야 합니다. 조급한것과 민첩한것을 항상 엄격히 구분하여야 합니다.
(그렇다. 우선 그들이 어떻게 했을가를 깊이 생각해보아야겠다. 그들이 굶어죽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는 틀림없이 먹을것을 찾아다녔을것이다.)이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그들이 글을 써놓은 나무밑으로 왔다.
그들은 지난날 우리가 주둔했을 때에 량식을 묻어두었던 장소는 이미 다녀왔을것이다. 그렇다면 … 그 다음에는 물을 마시려고 샘을 찾아갔을것이 아닐가.
나는 급히 샘터로 달려갔다.
그러나 우리가 떠난 뒤에 손질하지 않은 샘은 흙속에 묻히고 가랑잎만이 가득히 뒤덮였을뿐 사람이 왔다간 흔적은 찾을수 없었다.
나는 우두커니 서서 또 생각하게 되였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가.)
이러한 때였다. 그 어느 가까운곳에서 겨우 감촉할 정도의 나직한 신음소리가 들리는것 같이 느껴졌다. 나는 숨을 딱 멈추고 온 정신을 귀에 모았다. 그리고 그 소리가 들린듯한 쪽으로 한걸음한걸음 다가갔다. 갈수록 그 신음소리는 분명해졌다.
그리고 내 발앞에는 겨우 알아볼 정도로 꺾어진 풀대가 몇대씩 누워있었다.
틀림없이 누가 걸어간 자취였다.
그 자취와 신음소리를 분간해가며 나는 덤불밑으로 기여갔다.
울창한 수림속의 덤불사이에는 커다란 나무통이 있고 그 나무곁에는 풀로 몸을 가리운 전우들이 얼굴을 마주대고 누워있었다.
나는 하마트면 소리를 지를번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놀래우지 않기 위하여 급한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한길이나 되는 갈숲을 조용히 갈라헤치며 가까이갔다.
피기없는 그들의 얼굴은 벌써 새파래가고있었다.
나는 급히 배낭을 풀었다. 미리 가지고간 미시가루로 미음을 묽게 쑤어서 가랑잎처럼 타드는 그들의 입술을 벌리고 조금씩 떠넣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손발을 주물러주며 《동무! 정신을 차려주오. 김일성장군님께서 동무들을 구원해오라고 하셨소. 어서 정신을 차리오. 동무! 동무!》하고 그들의 귀에 대고 소리를 치기도 하고 내 귀를 그들의 입가까이 대고 듣기도 했다.
이렇게 몇순간이 흘렀다. 얼마후에 한 동무가 눈을 떴다. 나는 더 큰 목소리로 《김일성장군님께서 동무들을 구원해오라고 하셨소.》하고 소리를 쳤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어디 계시오?》
마침내 두 동무가 다 눈을 뜨고 거의동시에 이렇게 입속말로 말하였다.
이때의 기쁨을 무엇으로써 다 표현할수 있으랴!
나는 그들의 뺨에 내 얼굴을 비볐다.
《누구를 꼭 보내주실줄 알았소. 그래서 저 나무에 글을 썼던것이요. 설사 숨이 끊어진 뒤에라도 꼭 그분가까이 가고싶어서…》
나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그들에게 미음그릇을 받쳐주었다. 나는 그들을 번갈아업어나르고 부축하면서 사령부를 향해 떠났다. 이때 그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지방공작을 나왔던 그들은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오던도중에 식량난에 빠지게 되였다는것이다. 그런데 또 적들의 추격까지 받게 되니 사실 헤여날 일이 용이치 않았던것이다. 겨우 빠져나오면 또 앞에 적이 나타나군 했다고 한다.
이런 때에 함께 다니던 자가 동요하기 시작했다는것이다.
그자는 두 동무가 세수하는틈에 그들의 무기를 걷어쥐고나서 투항하자고 했다 한다. 그자는 말하기를 유격대에서는 쏘련과 제국주의간에 모순이 있고 식민지와 제국주의간에 모순이 있기때문에 앞으로 큰 사변이 생긴다고 한다, 그리고 항일무장력량을 보존하고 간부들을 훈련시키고 지방공작을 광범히 전개함으로써 혁명의 대사변이 올것을 대기하고 준비하여야 한다고 선전하고있지만 이것은 믿을수 없는 먼장래의 일이다, 쏘련이 일본과 중립조약을 체결했는데 몇십년 걸리겠는지 누가 알겠느냐, 정신빠진 사람이나 남아있을는지 나에게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는것이였다.
사실 이 당시 우리의 투쟁은 헤아릴수 없이 간고했다. 게다가 일제가 우리 대오를 와해시키기 위해 갖은 음흉하고 교활한 책동과 허위날조를 했으므로 혁명에 대한 전망이 확고하지 못하고 적들에게 기만된 이런자는 일제앞에 위협을 느낄수도 있었을것이다.
그러나 동요한자의 말을 들은 두 동무는 자기들의 확고한 신념을 굽히지 않으면서 처음에는 그자를 꾸준히 타일렀다는것이다.
《네 말과 같이 일제놈들은 일시 우세한 력량으로 갖은 발악을 다한다. 반면에 우리의 력량은 현재는 적고 간고한 처지에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정당한 투쟁목적이 있고 혁명승리의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 특히 우리에게는 김일성장군님의 옳은 령도가 있고 우리를 지지하는 수천만 인민이 있으며 우리 혁명군이 날로 장성강화되고있지 않느냐. 그런데 우리가 어째서 혁명을 승리할수 없단말이냐.》라고.
그러나 그자는 적들의 《토벌》은 더욱 심하고 산속에서 먹을것이 없어 당장 굶어죽게 되였으니 죽음을 눈앞에 두고야 어떻게 먼장래를 바라보겠느냐고 하면서 함께 투항하자는것이였다.
두 동무는 그자를 저주와 증오에 찬 눈으로 쏘아보면서 엄하게 말하였다고 한다.
《혁명의 전망이 설사 막연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제량심을 짓밟고 너를 따라갈수 없다. 하물며 10여년간이나 추위와 배고픔속에서 적과 피흘려 싸우면서 오늘까지 우리 혁명승리의 기초를 쌓아올리신 김일성장군님과 여러 혁명동지들을 어떻게 배반하며 어떻게 조국과 인민을 식민지노예의 암담한 처지에 두고 우리가 제 목숨만 구하겠다고 너를 따라가겠느냐. 차라리 죽어도 우리는 김일성장군님과 전우들을 찾아가다 죽겠다. 가겠으면 너나 혼자가고 우리 총을 내놔라. 우리는 계속 싸우겠다.》
그러나 그자는 두 동무의 총까지 가지고 그 자리를 도망쳐버렸다는것이다.
두 동무는 밤에 산에서 내려와 다리밑에 걸어둔 무기를 찾아가지고 지휘처를 찾아갔으나 사령부는 이미 딴데로 떠나고 없었다고 한다.
깊은 밀림속에서 그들은 풀뿌리로 끼니를 에우며 계속 사령부를 찾아다니였다는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하루나 이틀이 아니였으므로 두 동무는 기진하여 자주 쓰러졌고 이렇게 하여 그들이 겨우 지정된 장소가까이 왔을 때는 한걸음도 더 옮길수 없게 되였던것이다.
그들을 업고 끼고 사령부에 돌아왔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단히 반가와하시면서 우리를 맞아주셨다.
그리고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체 동무들을 모여놓고 하신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있다.
맑스-레닌주의를 부단히 학습하지 않는다면 과오를 범할수 있습니다. 우리가 언제 승리할지 모른다는 식으로 암둔해질수 있습니다. 례를 들어봅시다. 우리가 큰 산을 넘어가는데 모든 곤난을 무릅쓰고 령마루에 올라서면 앞이 탁 틔여 어디나 잘 바라볼수 있으며 자기 갈길을 정확히 찾아낼수 있습니다. 그러나 힘들다하여 못올라간 사람은 앞이 콱 막히고 험한 덤불만 보이니 도로내려갈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혁명사업에서 물러서는것을 의미합니다.
맑스-레닌주의로 튼튼히 무장하면 마치 령마루에 올라선것처럼 모든것을 잘 볼수 있고 자기 갈길을 똑바로 찾아낼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은 항상 산기슭에서 헤매는것처럼 앞이 막혀서 옳은 길을 찾아낼수 없는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어떤 곤난속에서도 항상 맑스-레닌주의를 열심히 학습함으로써 우리 혁명승리의 전망을 정확히 내다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누가 청해서 빨찌산에 들어온것이 아니라 다 자원적으로 인민의 리익을 위하여 제국주의를 반대하여 찾아들어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굳게 단결하며 동지호상간의 우애적정신이 강해야 합니다. 이것은 그 무엇으로써도 깨뜨릴수 없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런 내용으로 말씀하시면서 그들 두 동무의 행동이 정당하였고 그것이 바로 우리 항일유격대원들이 어떠한 적과도 싸워이길수 있는 단결의 표현이라고 하셨다. 때문에 어떤 간난신고도 뚫고 더욱 혁명에 충실하자면 반드시 우리가 승리한다는 필승불패의 신념을 깊이 간직하라고 가르치셨다.
나는 그때에 하신 그이의 말씀을 잊지 않는다. 바로 그 교시를 지침삼아 나는 싸웠고 오늘의 영광스러운 현실을 보며 래일의 위대한 전변을 더욱 확신하게 된다. 이것은 그때나 오늘이나 우리 당과 인민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를 받는데로부터 이루어진것이다.
보다 위대한 래일, 사회주의의 휘황한 승리도 바로 여기에서 이루어질것이라고 확신한다.
2. 조국에로 진군하던 길에서
백 학 림
생각은 어제 같은데 벌써 많은 세월이 흘러갔다.
그러나 세월이 얼마를 더 거듭해도 나의 가슴을 그렇게 격동시킨 항일무장투쟁의 그 모든 나날과 특히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친솔밑에 조국땅 보천보에 진공하여 일제를 무찌르던 그때의 감격은 언제나 잊을수 없다.
1937년 봄이였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중국 동북일대와 조선국내의 광활한 지역에 조직된 조국광복회 조직들과의 련계밑에 유격투쟁을 일층 강화하고 조선인민에게 광복에 대한 굳은 신심을 북돋아주기 위한 국내진공을 준비하시였다. 그리하여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친솔밑에 조국을 향하여 행군을 개시하였다.
무송현과 림강현 접경지대를 지나 장백현 지양개에 도착한 우리 부대는 조국의 땅 보천보에로 진군할 전투준비를 갖추고있었다.
이때는 5월이였다. 그러나 백두밀림의 기후는 아직 차거워서 대원들은 밤이면 우등불을 피우고 지냈다. 우리 호위병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천막가까이에 둘러앉아 우등불을 피웠다.
처음에는 불길이 잘 일지 않고 습한 연기만 삼타래처럼 피여오르면서 바람결을 따라 이리저리 몰리군 했다.
《꼬마대원》지봉손동무는 자기쪽으로 연기가 몰릴 때면 얼굴을 뒤로 돌리고 손을 휘휘 내저었다.
《내굴은 저쪽 집으로 가라! 내굴은 저쪽 집으로 가라!》
그가 손시늉을 하면서 유쾌하게 웃는바람에 옆에서 동무들의 이야기를 듣고있던 나도 따라 웃었다. 그러다가 나는 문뜩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천막을 바라보고는 웃음소리를 거두며 봉손동무의 팔을 당겼다. 천막쪽을 바라본 봉손동무는 물론이고 다른 동무들도 인차 조용해졌다. 그리고 초불을 켜고 앉아계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천막쪽으로 모두들 시선이 쏠렸다.
불빛에 비친 그이의 모습이 조용히 움직이고있었다. 국내진공을 계획하시면서 더욱 잠을 잊으신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 이날밤 지휘관들과 대원들을 일일이 보살피시고 또 밤이 깊도록 작전계획을 짜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은 오늘도 그대로 내기억에 생생하다.
이윽고 우등불이 활짝 피여올랐다.
밤은 깊어가고있었으나 동무들은 저마다 나직한 소리로 이야기를 계속하고있었다. 이때 나는 아직 밟아본적이 없는 조국땅을 그리면서 묵묵히 앉아있었다.
우리 할아버지가 살았다는 함경북도의 어느한 어촌마을을 머리속에 그려보았으나 그앞에 펼쳐진 바다가 얼마나 넓으며 어떠한 고기들이 잡히는지조차 짐작할수 없었다. 다만 일제침략자들과 지주들의 참을수 없는 악착한 만행의 정경만이 눈앞에 증오스럽게 떠올랐고 그곳을 떠나서 중국으로 오던 때 할아버지가 겪었다는 울분만이 그대로 내가슴에서 소용돌이쳤다.
이럴 때였다. 우등불가에서 불덩이를 뒤지고있던 전달장(호위병 책임자)김봉석동무가 나를 잠시 건너다보더니 어린 동생을 애무하듯 다정하게 《학림동무는 아직 조선에 가본 일이 없다지? 그러니까 우리들보다 더 조국이 그리울거야.》라고 말하면서 나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럼 내가 알고있는 우리 고향이야기라도 들려주지.》하고 전달장동무는 내곁에 가까이 다가와앉으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 그의 고향은 함경남도의 어느곳이였는데 집뒤에는 그의 할아버지가 심어놓은 큰 배나무가 있었다.
그 배나무에서는 해마다 주먹같이 큰 배가 많이 열리였다. 그런데 40리밖에 사는 최가라는 지주놈은 그 나무에 열린 배를 한알도 다치지 못하게 하면서 전부 자기에게 바치라고 하였다. 어린 봉석동무는 그 까닭을 몰랐다.
《어째서 우리 할아버지가 심은 배나무가 최가의것이란 말인가.》하는 생각으로 그는 배를 마음대로 따먹었다. 이것을 안 지주놈은 어린 봉석이를 몹시 때렸다. 그리고 그가 따먹은 배값의 몇갑절이나 되는 돈을 물라고 그의 부모를 몰아댔다.…
어린 시절에 있은 이런 일을 회상하면서 김봉석동무는 격분하여 말하였다.
《이제 고향땅에 가면 그 최가라는 지주놈의 모가지를 비틀어놓고 말테야!》
그의 말을 듣는 다른 동무들도 모두 격분을 참지 못했다.
《아무렴, 일제와 지주, 자본가놈들을 모두 때려없애야 해. 우리가 싸우는 목적이 바로 그것이니까.》
이렇게 말소리가 높아졌을 때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천막밖으로 나오셨다.
우리들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앉소!》
그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우리들과 함께 우등불가에 앉으셨다.
그리고 우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셨다.
《그래 동무들은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하고있었소?》
위대한 수령님의 이 물으심에 봉석동무가 선뜻 대답하였다.
《예.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있었습니다.》
《아아 그래, 고향집은 참 좋은곳이지.》하시면서 고향에 대한 회상을 더듬으시는듯 잠시 말씀을 끊으셨다가 다시 우리를 돌아보셨다.
우리는 언제나 그이께서 하시는 이야기를 듣는것을 매우 기뻐했다.
동무들이 모두 그이를 우러러보고있을 때에 나는 자세를 바로잡으며 평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래 학림동무는 이국태생이고 어려서 혁명군에 들어왔으니까 평양은 구경도 못했겠구만.》하고 나를 바라보시면서 평양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그때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하신 말씀을 나는 지금도 잘 기억하고있다.
평양은 고구려의 도읍지로서 우리 나라의 고대문화를 자랑하는 고적과 유물이 많은곳입니다. 이런 고적들과 유물들은 인류문화의 보물고에 크게 기여하고있습니다. 또한 예로부터 평양인민들은 조국을 열렬히 사랑하였습니다. … 당나라의 대군이 평양을 침범했을 때 평양인민들은 영용하게 싸워서 적군을 물리쳤습니다. 임진조국전쟁때에도 평양인민들은 왜적을 영용하게 물리쳤으며 그때 김응서장군의 용맹과 계월향 같은 녀인들의 애국적인 절개는 그의 훌륭한 모범으로 되고있습니다. 평양인민들은 또한 대동강하류로 침입해온 미국해적선《셔먼》호를 격파한 일도 있고 3.1인민봉기때에는 일제를 반대하여 대중적으로 힘차게 일어나 싸웠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러한 말씀은 우리들의 가슴마다에 민족적긍지감을 더욱 높이 불러일으켜주었으며 국내진출을 앞둔 우리들의 전투사기를 더욱더 고무하여주었다.
이야기는 어느덧 저마다의 고향의 순박한 풍속이며 아름다운 산천에 대한 회상으로 넘어갔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고계시던 그이께서는 나의 곁에 앉은 전달장을 바라보시며 물으셨다.
《그래 동무의 고향에서는 어떤 음식을 제일 일러주오?…》
그런데 봉석동무가 미처 대답할 사이도 없이 《꼬마대원》봉손동무가 불쑥 나섰다.
《우리 고향에서는 귀밀떡을 제일 좋아합니다.》
그바람에 모두들 와그르르 웃음보를 터뜨렸다.
사실 궁벽한 화전촌에서는 귀밀떡이 찰떡을 대신했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크게 웃으시며 평양에서는 랭면을 제일 일러준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평양의 자연경치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평양의 모란봉은 마치 모란꽃처럼 기묘하게 생겼습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모란봉을 사랑하여 이곳을 꽃이 만발하고 록음이 우거진 아름다운 동산으로 가꾸었습니다. 깎아지른듯 한 청류벽밑으로는 물맑은 대동강이 굽이쳐흐릅니다. 청류벽우에 자리잡은 부벽루에 오르면 구름을 타고앉은듯한 감을 느끼는 경개좋은곳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모란봉이 지금은 일제놈들의 술놀이터로 되고있으며 고역에 시달리는 우리 인민들은 그곳에서 휴식조차 못하고있습니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어렸을 때에 독립운동을 하시던 아버님께서 일제경찰에 체포되여 감옥에 투옥당한 비보를 듣고 통분해하시던 때의 이야기도 하셨고 고향인 만경대에서 일제의 참을수 없는 탄압과 수모를 받고계시는 조부모님과 숙부님에 대한 말씀도 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두리에 모여앉아 이야기에 열중하고있던 우리들은 모두 흥분하고있었다.
이럴 때에 《꼬마대원》봉손동무가 또다시 그이께 만경대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졸랐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만경대는 내가 자란곳이요. …동무들도 다 제 고향을 사랑하듯 나도 만경대를 사랑하오!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에도 모두 고향사람들의 뜻과 지성이 깃들어있는것이요. 내가 심은 나무들도 지금은 퍽 컸을것이니까. 왜 이런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지 않겠소.
그이께서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시며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들려주셨다. 그것은 만경대에 대한것은 아니였으나 우리에게는 잊을수 없는 감명깊은 말씀이였다.
우리 조선은 아름답기로 세계에 이름난곳이여서 《조선의 금강산을 한번 보았으면 죽어도 원이 없겠다.》고 한 어느 외국의 귀족도 있었습니다. 또한 조선은 예로부터 문명하고 례의도덕이 밝은 나라로 알려져왔습니다. 지방에 따라서 차이는 있으나 조선의 어느곳, 어느 마을을 찾아봐도 모두다 맑고 푸른 산천과 아름다운 풍습을 가지고있어서 처음보는 사람으로하여금 잊을수 없는 인상을 받게 합니다. 이 훌륭하고 소중한것들은 만경대에도 있고 봉석동무나 봉손동무의 고향에도 있고 학림동무의 할아버지가 살던 함경북도의 바다가에도 있을것입니다. 이 아름답고 소중한것들은 우리의 부모형제들이 피땀으로 이루어놓은것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모든것은 일제와 그 주구들에게 무참하게 짓밟히며 략탈당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민족문화와 슬기로운 력사대신에 일제의 《동조동근》이니 《내선일체》니 하는 등의 참을수 없는 치욕이 강요되고있으며 이를 반대하여나선 애국자들은 학살되고있습니다. 또한 조선의 청년들은 일제의 강요에 의해서 전쟁의 대포밥으로 될 위험에 직면하고있습니다. 이 모든것은 조선사람들이 죽지못해 억지로 살아가고있다는것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이런 국내형편을 보고만 있을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만난을 극복하고 일제와 싸워서 조국을 반드시 광복함으로써 우리 민족을 망국노의 처지에서 벗어나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광범한 지역들에 조국광복회를 조직하였고 국내에 많은 지하공작원들을 들여보내여 수많은 인민들을 반일투쟁에 일으켜세웠습니다. 이제 우리는 압록강을 건너서 조국땅에 들어가 일제의 아성에 불을 지르려 합니다. 물론 우리가 한번의 전투를 통해서 일제를 소멸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국내에 진출함으로써 자기들을 구원해줄것을 손꼽아기다리고있는 인민들에게 커다란 승리의 신심을 불어넣을수 있게 됩니다.
그리하여 일제를 무찌르고 압박받는 우리 동포들에게 나라를 찾을수 있다는 희망과 신심을 북돋아주어야 합니다.
말씀을 끝마치시고 우등불앞에서 열기오른 우리들을 돌아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문득 《봉손동무!》하고 부르시며 그의 바지를 가리키셨다. 그의 바지에서는 연기가 문문 나고있었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에 열중한 나머지 불꽃이 튀여 바지에 당긴것도 모르고있었던것이다.
지봉손동무는 그제서야 《아야아야》하면서 불티를 털기 시작했다.
《경각성이 없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봉손동무를 바라보시며 웃으시였다.
이 말씀은 우등불앞에서는 언제나 옷을 주의해야 한다는 유격대규률에 대한 요구이기도 하였다.
우리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들려주시는 이야기를 듣기에 밤이 깊어가는줄을 몰랐다.
얼마후에 그이께서는 우등불가에서 일어나셨다. 우리들도 따라일어섰다.
하늘에는 별들만이 총총이 반짝였다.
우리는 모두 조국에로의 진격의 벅찬 감격을 안고 남쪽-조선의 하늘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보았다.
그후 며칠만에 우리는 그립던 조국땅, 보천보로 진군하였다. 그리하여 승리의 개가를 온 세상에 떨쳤다. 이날 보천보거리에서 일어난 승리의 만세소리며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두리에 모여든 수많은 인민들의 감격어린 모습이며 조국땅의 흙을 두손으로 움켜쥐고 뺨에 비비던 일이며 그 흙을 배낭에 넣고떠나던 그 모든 일들이 오늘에 와서도 나의 회상을 불러일으키며 가슴을 두드린다.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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