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권
3. 한홉의 미시가루
백학림
1938년 겨울 고난의 행군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가지가지의 잊혀지지 않는 일들을 회상하여 추억에 잠기게 된다. 그중에서 지금도 나의 심금을 울리는것은 한홉의 미시가루에 대한 이야기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친솔하신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국경일대와 국내에서 활동할 목적으로 이해 12월초에 몽강땅을 떠나 장백지구로 향하였다.
우리 부대의 행동방향을 알아차린 적들은 수천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우리의 뒤를 따라왔다.
실로 곤난한 행군이였다.
눈은 계속 퍼부었다. 허리까지 빠지는 밀림속의 생눈판을 헤치면서 수천리길을 돌파해야 하였다. 이때 뒤로 달라붙은 적과는 매일과 같이 전투가 벌어졌다.
적들은 련속적인 참패를 당하면서도 집요하게 쫓아왔다.
놈들은 《토벌》의 중요목표를 조선인민혁명군사령부의 《소멸》에 두었던것만큼 저들의 희생을 돌보지 않고 발악하였다.
이러한 환경에서 한달 가까운 행군을 하다나니 휴대하였던 식량도 떨어져갔다. 그리하여 행군은 더욱 간고해졌다.
이렇듯 적의 추격이 심하고 길은 험한데 군량마저 떨어진 어려운 환경에서 전부대가 한개 방향으로 행군해간다는것은 곤난한 일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장백현 7도구치기에서 부대를 나누어 3개방향으로 행군하게 하시였다.
경위중대와 기관총분대는 사령관동지의 친솔하에 장백현 7도구 가재수로 나가게 되고 7련대는 장백현 상강구일대에서 활동하게 되였으며 8련대와 독립대대는 무송현 동강일대에서 활동하게 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행군의 곤난을 타산하시고 재봉대원들과 로약자들은 장백현 청봉밀영으로 보내시였다.
그이께서 취하신 이와 같은 전술적대책에 의하여 적의 세력은 분산되였으며 아군의 주력과 사령부의 행방을 놓쳐버리고 혼란에 빠진 적들은 그저 무턱대고 쫓아오고있었다. 그러나 적들은 추격을 단념하지 않았다. 부대의 식량사정은 점점 위급하게 되였다. 통강냉이 몇알과 시래기로 끼니를 이어 온지도 벌써 며칠이 되였다. 여러날을 굶으면서 행군해온것만큼 대원들은 허기증이 나서 어푸러지면서도 눈을 움켜먹고는 다시 일어나 걷군 하였다.
우리 항일유격대원들의 이와 같은 불굴의 정신은 사령관동지의 령도하에 일치단결된 정치사상적통일에서 우러나오는것이였다. 우리를 굴복시킬 어떠한 곤난도 있을수 없었다. 만난을 극복한 뒤에는 반드시 국경지대에서의 춘기공세의 승리가 온다는 행군목적에 대한 그이의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굴할줄 모르는 투지와 용기를 가지게 하였다.
우리는 적들의 지상《토벌대》와 항공대와의 련속적인 격전을 하면서 계속 국경가까이에로 행군하였다.
어려운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하여 사령관동지께서는 경위중대장 오백룡동지에게 식량을 마련하여 올것을 명령하시였다.
오백룡동지는 수명의 대원들을 인솔하여 로동자들의 고혈을 짜내던 일제의 7도구목재소를 습격하고 말 10여필을 로획하였다.
우리는 그 말고기를 구워먹을 사이도 없어서 눈속을 행군하면서 날채로 먹었다. 물론 소금도 다 떨어지고 없었다.
4~5일이 지나니 그 말고기마저 다 떨어졌다.
당시 사령부에는 전령병으로서 김봉석, 지봉손동무들이 나와 함께 있었다. 전달장 김봉석동무는 우리의 배낭을 죄다 뒤져 비상용미시가루를 한데 모았다. 미시가루는 한홉가량 되였다.
그 미시가루는 7도구치기에서 김정숙동지께서 사령관동지의 건강을 념려하여 념겨주신것이였다.
우리 전령병들은 자신이 굶는것은 둘째치고 사령관동지께 식사를 보장해드리지 못하는것이 무엇보다도 가슴이 아팠다.
행군도중의 어느날 아침이였다. 잠시 휴식하는 때에 우리는 배낭을 털어 모은 미시가루를 사령관동지께 권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아무 말씀이 없이 우리를 둘러보시다가 전령병들중에서 그중 나이어린 지봉손동무를 가까이 오라고하시고 그 미시가루를 그에게 주시였다. 미시가루를 받아쥔 봉손동무는 어찌할바를 모르고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어리여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자신의 념려는 말고 어서 먹으라고 하시면서 꼬마전령병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시고는 자리를 뜨시였다.
봉손동무는 그 미시가루를 먹지 않고 나에게 주었다. 결국 한홉의 미시가루는 다시 나의 배낭속에 들어가게 되였다.
행군은 계속되였다. 수천명의 적을 뒤에 달고 행군하는데 앞에서 또 수백명의 적이 온다는 보고가 왔다. 사태는 참으로 위급하게 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망원경으로 주위의 지형을 살피시더니 소수인원으로 행군을 계속하게 하시고 주력부대는 발자국을 메우고 옆으로 빠지게 하시였다. 그 소수부대도 같은 방법으로 옆으로 빠져나와 후에 주력부대와 합치였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또 어려운 고비에서 벗어났다.
하루종일 행군하고나니 저녁때가 되여 숙영하게 되였다. 이날도 식량이 없었으므로 모두 눈을 끓여마셨다. 우리 전령병들은 어떻게 하여서라도 사령관동지께 미시가루를 대접하려고 토의한 끝에 다시 권해보기로 했다. 우리는 한홉의 미시가루를 적당히 갈라서 다음 끼니분을 보관하고 사령관동지앞에 내놓았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침묵하신채 우리들의 얼굴을 바라보셨다. 그이의 얼굴에도 시장기가 어리여보였으나 우리를 바라보시는 눈길은 언제나와 같이 부드러우면서도 영채가 돌았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가 마지막미시가루를 자신에게만 권한다는것을 짐작하고계시는것 같았다.
《동무들은 몇끼를 굶었소?》하고 사령관동지께서는 물으셨다.
《사령관동지! 우린 먼저 먹었습니다. 사령관동지의 분만이 남았습니다.》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씀드리였다.
《그러니 나 혼자만 먹으란 말이지… 더는 없소?》라고 그이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다시 물으셨다.
《더 없습니다.》하고 우리들은 말씀드리였다.
《자! 그럼 동무들의 배낭을 가져와보오.》하고 사령관동지께서는 손수 우리들의 배낭을 일일이 들여다보셨다. 처음에 김봉석동무와 지봉손동무의 배낭을 보셨으나 거기에는 미시가루가 없었다. 다음은 나의 차례였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할수없이 배낭속깊이 싸두었던 나머지 미시가루를 내놓고야말았다.
《빈소리군이군!》하고 사령관동지께서는 나를 보시며 소리내여 웃으셨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신문지를 펴고 거기에 미시가루를 쏟아놓고 우리들을 그옆에 둘러앉으라고 하셨다. 우리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머뭇거리고있었다.
이 미시가루를 우리 전령병들이 다 먹어버린다면 다음 끼니에는 그이께서 잡수실것이 아무것도 없게 되는것이였다. 우리들의 립장은 참으로 딱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주저하는 우리들의 손목을 끌어당겨 앉게 하시였다. 우리들은 할수없이 한홉도 되나마나한 미시가루를 가운데 놓고 그 주위에 둘러앉았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것을 한말쯤 되는것으로 생각하고 먹으면 배가 부를거요. 어서 받으라구.》라고 하시면서 종이숟가락을 만들어 그 미시가루를 나누기 시작하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자신의 몫은 생각지도 않으시고 우리들에게만 놓으셨다. 우리들은 자기의 몫으로 받은 미시가루를 도로 그이께 덜어놓았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우리들이 덜어놓은것을 다시금 나누어주셨다.
우리들은 그 이상 더는 거절할수 없어서 그냥 주시는대로 받았다. 결국 사령관동지께는 그중 적게 차례졌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들이 그 미시가루를 물에 타는것을 보시고서야 자신도 미시가루를 물에 타셨다.
나는 목이 메여 미시가루를 탄 물이 넘어가지 않았다. 그것은 나뿐이 아니였다. 우리 셋이 모두가 그랬다.
한홉을 한말로 생각하고 먹으라고 하셨지만 수천수만말의 식량인들 그이의 말씀속에 담겨있는 무한한 애정을 대신할수 없다는것을 우리는 잘 알고있었다.
물론 행복이나 감격을 그 어떤 재부의 량으로 셀수는 없는것이다. 착취자들의 산해진미를 긁어모은 호화로운 성찬이 그때의 한홉의 미시가루의 맛보다 나을수는 도저히 없다.
그것은 그 한홉의 미시가루가 고귀한 혁명의 량식이였으며 그것에는 사령관동지께서 조국을 위한 자기희생적인 복무의 정신과 대원들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우리를 키워주시는 고귀한 혁명적자양이 깃들어있기때문인것이다.
그날밤으로 우리는 사령관동지의 친솔밑에 백배의 힘을 내여 장백현 13도구부락에 둥지를 틀고있던 원쑤를 소탕하고 수많은 식량을 로획하였으며 그 식량을 산하 각 부대들에도 보내주었었다.
적들은 우리 부대의 뒤를 따라 온 겨울 밀림으로, 야산으로 눈속을 헤매고다니였으나 결국 사령부의 행방을 영영 놓쳐버리고말았다.
놈들은 기진맥진하였다.
이렇게 사령관동지의 탁월한 유격전술에 의하여 적의《동기토벌》은 좌절되였으며 사기저락된 적부대들은 각개로 분산되여 여러곳에 널려지게 되였다.
여러 방향에서 활동중이던 아군부대는 다시 집결하여 적들에게 섬멸적타격을 주며 춘기공세로 넘어갔다.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김일성동지를 사령관으로 모신 우리들은 《한홉의 미시가루》의 감격을 간직하고 이해 춘기공격에서 국내무산지구의 적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었으며 국경연안의 원쑤들에게 만회할수 없는 패배와 죽음을 주었던 것이다.
4. 로흑산에서의 승리
김려중
1935년봄 요영구군정간부회의가 끝난지 얼마안되는 어느날이였다. 왕청지방에서 활동하고있던 일부 부대를 거느리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우리 부대에 오셨다는 소문이 퍼지자 대원들은 환희에 들끓었다. 동무들은 중대장인 내 입에서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가 하여 나의 곁에 모여왔다.
그러나 나역시 아직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온 일도 없고 그이께서 이번 전투를 지휘하신다는것밖에 모르고있었다.
이윽고 중대장이상 간부들의 회의가 시작되였다. 우리는 로흑산전투수행의 전략적의의에 대하여 명확한 인식을 가지게 되였다.
일제침략자들은 우리 유격근거지들에 대한 발악적인 공격을 감행하고있었다. 놈들은 우리와의 전투마다에서 많은 유생력량을 소모당하면서도 계속 보충병력을 투입시키였다.
우리 훈춘부대들은 두황자와 왕청현 진창 화소포방면에 근거지를 옮기고 활동하고있었는데 농사가 잘 안되는 척박한 이 산지대에서 우리는 군량을 라자구와 로흑산방면에서 공작하여 해결하군 하였다.
이것을 알아차린 일제침략자들은 동녕현 로흑산에 자기들의 가장 충실한 졸개인 정안군 약 300여명을 주둔시켰다. 정안군이란 악질적인 지주, 자본가의 자식들로서 위만군내에서 선발하여 조직한 부대이다. 이들의 무장은 다른 위만군보다 좋았으며 일본인지도관의 지휘를 받고있었다.
정안군은 로흑산지방의 인민들에 대하여 략탈, 강간을 일삼았으며 우리를 지지원호하던 애국적인 군중들을 함부로 학살하고있었다.
당시 일제는 정안군을 《무적황군》과 어깨를 나란히 할수 있는 《철군》이라고 호언장담하면서 2~3명의 유격대원들만 보아도 포나 중기, 경기 등을 동원하여 저들의 《유력한》무장을 시위하며 쫓아다니는 판이였다.
회의에서는 이 정안군에 대하여 일대 섬멸전을 조직함으로써 교만해지는 놈들의 의기를 철저히 꺾어버릴 과업이 제기되였다. 또한 이 섬멸전은 다만 적들의 사기를 저락시키는데만 목적이 있은것이 아니라 우리 항일유격대의 위력을 시위하여 조중인민들에게 승리에 대한 신심을 안겨주며 적들의 무기를 로획하여 아군의 무장을 강화하려는데도 큰 의의가 있었다.
이때 위대한 수령님의 지시에 의하여 태평구, 석두하자(라자구에서 남쪽으로 멀지 않은곳)를 중심으로 집결한 부대는 제4련대와 제5련대의 일부 구분대인 여러개 중대였는데 근 300명의 인원이였다.
로흑산을 향하여 우리의 행군은 개시되였다. 그것은 1935년 음력 5월의 어느날로 기억된다.
행군종대의 긴 대렬은 근 5리에 뻗었었다. 눈에 익은 길을 피하여 령을 넘고 개울을 건너 다시 수림을 헤치면서 행군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신 사령부는 행군대렬의 중간에 위치하였으며 수령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걷고계셨다.
우리들의 장구는 무거웠었다. 탄알이 수십발 들어있는 탄띠를 맨 어깨에는 총 그리고 등에는 배낭이 있었다. 배낭안에는 3일분의 량식, 여러개의 작탄(일명 연길폭탄이라고 하는것인데 유격근거지의 공장에서 만든것), 책, 학습장, 세면도구, 내의, 양말, 식기 등이 들어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걸음은 빈몸인듯 가벼웠다.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친솔하에 적을 치러가는 감격이 가슴속에서 끓고있었기때문이였다.
행군하는 모든 동무들의 시선은 연신 위대한 수령님께로 쏠리고있었다. 그들도 나의 생각과 꼭 한가지로 이번에 사령관동지께서 오셨으니 반드시 큰 전과가 있을것이라고 기뻐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은 그 탁월한 지혜와 용감성으로하여 전체 유격구들에서 존경과 흠모의 정을 불러일으키고있었다. 이미 1933년 9월에 있은 동녕현성전투에서 조중련합부대를 지휘하시여 1,300~1,400명의 대적을 때려부시고 빛나는 승리를 거두신 이후 위대한 수령님의 명성은 전동만지역과 조선국내에서 전설처럼 전해지고있었으니 수령님의 친솔하에 처음으로 진군해보는 우리 부대동무들의 사기야말로 비할바없이 높았다.
행군대렬은 그날 해가 지면서 적진가까운 동남차에서 쉬게 되였다. 나는 지휘관회의에 참가하여 적들에 대한 유인소멸전이 전개되게 된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각 중대들은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구체적인 전투임무를 받았다.
날이 새기전에 유인대가 파견되였으며 우리들은 매복지점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동남차에서 북쪽으로 수림속을 헤치면서 소령을 넘어 약 25리 내려가면 동켠으로 그리 깊지 않은 계곡이 있었다. 계곡에서는 물이 흘러내리고있었다. 부대는 개울물을 사이에 두고 산비탈에 각각 매복진을 치게 되였다.
이 골짜기막장에서 령을 넘어 내려가면 부락들이 있는데 바로 그곳에서 정안군들이 토성안에 둥지를 틀고 인민들을 탄압하고있었던것이다.
매복을 끝내자 어둠이 개이고 동쪽령끝이 훤히 트기 시작하였다.
우리 중대는 남쪽산에 은페하였다. 나는 자세히 지형을 굽어보았다.
참으로 묘하게 생기였다. 우리 유인대를 추격해올 적들이 령마루에 올랐다가 이 골짜기에 들어서기만 하면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 어려운 함정속에 들어가게 되여있었다.
사령부지휘처는 우리의 맞은편 북쪽산에 위치하였고 로흑산으로 통하는 동쪽령우에는 물론 3면산등성이에서도 우리 감시병들이 적들의 출현을 살피고있었다.
새날이 밝아올무렵에 동쪽령마루에 우리의 유인대가 나타났다. 그들은 적토성의 주위부락들을 소란하게 하고 공작한 식량을 소와 말에 싣고 돌아오는것이였다. 유인대는 유유히 매복진의 사이를 뚫고 골짜기를 지나서 서쪽고지에 올랐다.
그후 대기시간이 세시간이상 흘렀다. 그러나 동쪽고개는 여전히 조용하였다.
지휘처도 조용하였다. 나는 맞은편 사령부지휘처쪽을 바라보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인내성있게 은밀성을 보장하라.》고 하시던 지시를 다시 생각하였다.
우리들은 잡관목림속에서 가둑나무잎하나 다칠세라 조용히 대기하며 미시가루로 아침과 점심을 에웠다. 그런데 날이 저물어 어둠이 짙어가건만 동쪽고개는 여전히 잠잠하였다.
사령부지휘처에서는 중대장이상 간부들의 회의를 소집하였다.
회의에서는 원거리보초를 파견하고 계속 매복상태에 대기할것이 결정되였으며 다시 유인대를 파견하여 적들을 끌고올 과업이 제기되였다.
회의가 끝난후 우리들은 계속 그곳에서 밤을 보내게 되였다.
이럴 때면 흔히 일제놈들의 모진 학대를 받으며 고통스럽게 살아갈 부모처자들에 대한 생각을 하거나 유격대에 입대하여 어려운 고비들을 넘기던 이러저러한 일들을 생각하는것이 상례였으나 이 밤은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이야기로 대원들의 얼굴은 빛났으며 저마다 자기의 용감한 전투행동으로써 수령님과의 첫 상봉의 의의를 깊게 하겠다는 결의로 충만되여있었다.
다음날이였다. 우리들은 전날과 같이 지정된 매복지점에 계속 진을 쳤다.
날이 밝을무렵이였다. 유인대원들이 량식을 실은 소와 말들을 몰고 동쪽고개를 넘어 우리의 매복진앞을 통과하였다.
우리들은 긴장하여졌다. 계곡은 물을 뿌린듯 조용하였다. 어둠이 가시면서 동쪽고개마루가 훤하게 드러났다.
모든 시선들이 그 령마루만 응시하고있었다.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신 건너편 산을 살펴보았으나 거기에서도 나무잎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8시쯤 되였을가… 령마루에 오르는 2~3명의 적들이 우리의 시야안에 나타났다. 잠시후 그뒤를 이어 누런것들이 우글우글 쓸어올라왔다.
나는 선뜻 권총을 들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대원들은 서로들 적이 오니 소리를 내지 말라고 손시늉을 하고있었다.
고개를 넘어선 적들은 개울가의 오솔길을 따라서 차츰 우리앞으로 접근해왔다. 어간어간에 짐 실은 말들을 끌고오는데 말을 탄 일본지도관놈은 대렬중간에서 《위세》를 뽐내고있었다.
적들은 저마다 붉은 깃에 《정안군》이라는 글자를 박은 완장을 둘렀는데 무엇이라고 중얼거리고들 있었다.
인민들은 그놈들을 《홍수툴》이라고 불렀었다. 홍수툴이란 붉은 소매라는 뜻이다.
《이 홍수툴놈새끼들! 좀 죽어봐라!…》
총잡은 손은 증오로 떨렸으나 아직 사령부지휘처에서 신호는 없었다.
놈들은 매복진앞으로 기여들었다. 불과 수십m밖에 안되는 거리였다. 앞에 매복한 동무들의 바로 코앞으로 놈들이 지나갔다.
《이런곳에서 포위에 들면 재미없겠는데.》하고 적들속에서 어느놈이 중얼거리는 소리까지 들렸다.
나는 우리 포치선의 중간쯤 위치를 잡았었는데 적대렬의 앞머리는 드디여 나의 앞까지 왔었다. 모든 총구들은 놈들을 겨누고 일초일초 긴장하게 기다리고있었다.
순간, 《땅!》하고 사령부지휘처에서 사격신호가 났다.
아군의 일제사격이 시작되였다.
협곡을 송두리채 들어낼듯 한 총성과 더불어 골짜기에서는 놈들이 우왕좌왕 엎치고덮치며 쓰러지고 너부러졌다. 어떤 놈은 급한 나머지 우리의 총구앞으로 벌벌 기여오르다가 총알에 맞았다.
적들은 사실 살아나갈 길이 없었다. 앞으로도 뒤로도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피할 길이 없었다. 그런데 그 죽음의 수라장속에서도 대항하려고 총을 들고 어정거리는 놈들이 적지 않았다.
이런 경우 놈들이 은페물에 의지하게 되면 전투가 길어질수도 있다.
이때였다. 사령부지휘처쪽에서 무기를 내놓으면 목숨은 살려준다는 고함소리가 나자 사방에서 《일제를 타도하라!》, 《총을 바치면 목숨은 구한다.》하고 구호를 웨치면서 일제히 골짜기에로 돌격하여 내려갔다.
함성과 총성이 폭풍과도 같이 일시에 밀려드는바람에 혼비백산한 적들은 그만 어쩔사이없이 부들부들 떨면서 두손을 쳐들었다. 때마침 저쪽에서 《동무들! 이 기관총을 보시오.》하는 높은 목소리가 울려왔다. 그쪽을 바라보니 위대한 수령님께서 로획한 기관총을 높이 쳐드시고 전투원들의 사기를 고무하시는것이였다.
우리들의 만세소리는 천지를 진동하였다. 당시 우리 유격대에서는 보총 한자루라도 생명과 같이 귀중하였는데 기관총을 얻는다는것은 큰 전과였다. 그것은 이 무기 하나로 수많은 원쑤를 칠수 있었기때문이다.
우리는 항복한 적들의 무장을 해제하였다.
골짜기에는 일본지도관놈을 비롯하여 적들의 시체가 너저분하게 널려있었다.
이렇듯 일제가 자랑하던 소위 《철군》은 불과 몇분간의 전투에서 산산이 부서지고말았다.
우리의 전과는 컸다. 이 전투에서 우리는 박격포 1문, 중기, 경기 각각 1문, 권총과 보총 100여정, 포탄 수십발, 탄알 수천발, 군마 10필을 로획하였으며 약 100명의 적을 살상포로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포로들에 대하여 직접 설복사업을 진행하시였다. 포로들은 목숨이 살아난 기쁨과 그이께서 하시는 말씀에 감격하여 다시는 망국노의 생활을 하지 않고 일제침략자를 반대하겠노라고 하였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지시에 의하여 그들에게 려비와 량식을 나누어주고 그들을 돌려보내였다.
사기충천한 아군부대는 조중인민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면서 태평구, 석두하자방면으로 개선하였다.
이때 심대한 타격을 받고 공포에 싸인 적들은 그후 이 지방에서 주둔부대를 철수하지 않을수 없었으며 주민들은 놈들의 학대에서 해방되였다.
그리고 우리 유격대의 포로정책은 정안군속에서까지 큰 반응을 일으켜 위만군내에서 우리에게로 넘어오는자들의 수는 더욱 많아졌다.
나는 그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친솔하에 태평구전투와 녕안방면에로의 진출에 참가하였는데 로흑산전투에서 로획한 포나 중기, 경기들로써 무장을 강화한 우리는 전투마다에서 적들에게 섬멸적타격을 주었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은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탁월한 지휘밑에서는 백전백승한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용기백배하여 원쑤들을 무찔렀던 것이다.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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