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심장이 고동치는 한
윤 태 홍
1937년 겨울, 전례없이 혹독한 추위와 깊은 눈이 동북산야를 뒤덮었다. 당시 우리 부대가 활동하고있던 장백령기슭에도 눈이 길길이 쌓여서 키높은 이깔나무마저 겨우 끝머리만 내다보이는데가 많았다. 모닥불을 피우고 쉬느라면 어느결엔가 한두길씩되는 눈속으로 사람과 불무지가 한데 잦아들군 하였다.
행군을 하기 위하여 다시 눈구뎅이속에서 기여나와 머리를 들면 거센 바람과 맵짠 눈가루가 금시 숨이 막히도록 얼굴을 후려갈겼다. 땀과 눈에 젖은 옷은 소가죽처럼 뻣뻣하게 얼어버려서 팔다리를 놀리기가 더욱 어려웠다.
바로 이러한 때에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와 그이의 전사들인 항일유격대원들은 산과 들에서 지내면서 적과 싸웠으며 때로는 며칠씩 굶으면서도 원쑤와의 격렬한 싸움에 불덩어리가 되여 내달렸다. 그런들 어느 누가 춥고 배고프다 하였으며 이 길이 고되다 하였으랴. 오직 《억천만번 죽더라도 원쑤를 치자》는 일념에 불탔고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억센 발걸음을 내디디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명령으로 1사 사단지휘부의 일부 간부들을 호위하면서 우리가 장백령을 넘어 먼 행군을 하게 된것도 바로 이러한 때 일이다. 적들의 《토벌》을 물리치면서 무인지경인 삼차령밑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량식이 떨어졌으나 보충받을곳이 없었다.
바위산전투를 하게 된 그날은 이틀째 불조차 피우지 못했고 더운 물 한모금 마시지 못했다. 그러면서 계속 험준한 령을 넘고 사나운 눈보라속을 헤치며 나아가느라니 지친 몸은 돌에 눌린듯 무거웠고 땀은 계속 흘렀다.
그럴수록 우리는 휴식시간을 더욱 줄여가면서 행군을 계속했다. 굶주리고 지친 몸으로 혹한속에서 활동을 멈춘다는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바로 이러한 때에 적들은 또다시 우리앞에 나타났다. 우리를 《토벌》하겠다고 개처럼 싸대던 적들이 인원을 보충받아가지고 장백령 뒤등으로부터 달려넘어온것이다.
이때 아군의 력량은 지휘부인원과 내가 인솔하는 경기관총분대원들 17명까지 합하여 40명밖에 안되였다. 또한 우리는 지형상으로도 극히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지척을 분간할수 없는 눈보라속에서 비록 어방치기로 내두르는 적들의 총탄이였지만 워낙 수량상으로 많은 놈들의 화력이라 골짜기안은 금시에 뒤집힐듯 하였다.
우리는 지휘관의 결심에 따라 급히 벼랑밑으로 다가붙었다. 그리고 총은 한방도 쏘지 않고 우선 침착하게 적정을 살폈다. 적들은 등마루와 벼랑턱에서 계속 경기관총을 란사하였고 동시에 반월형으로 포위망을 조이면서 벼랑아래 골짜기로 차츰 내려오고있었다.
위험은 각일각으로 조여들고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당황하지 않았다. 우리는 오직 지휘관을 믿었고 지휘관은 우리를 믿었다. 이러한 일심동체의 행동은 항상 승리를 떨치게 하였으니 바로 그러한 자부심으로하여 우리의 마음은 든든하였다. 공포에 질려서 소란스럽게 날뛰는것은 오직 적들뿐이였다. 미친듯 짖어대는 기관총소리와 아우성소리… 얼마동안 긴장한 시간이 흘렀다.
뼈속까지 얼어드는듯한 혹독한 추위속이였지만 저마다 차디찬 총신을 가슴에 품고 엎드려서 지휘관의 명령을 기다리는 대원들의 얼굴에서는 열기가 확확 피여올랐다. 참으로 지휘관의 숨소리 하나 놓칠세라 온 정신을 가다듬고있는 나의 품에서도 기관총의 총신이 따뜻한 체온을 받아들이면서 《어서 저 원쑤들에게 마음껏 불을 뿜게 해달라.》는것 같았다.
사실 우리가 자기 심장의 한 부분처럼 여기는 무기는 마치 생명을 가진것처럼 잠을 잘 때에도 품속에 안겨 꿈을 즐겁게 해주었다. 《어서 원쑤에게 마음껏 불을 뿜게 해주.》
나는 그때에도 이러한 심정으로 가슴밑에 기관총을 더 당겨안으며 지휘관에게로 계속 눈길을 돌렸다. 적들의 흉악한 기도와 약점을 민속히 포착하고 지형지물을 세심히 판정한 지휘관은 드디여 명령을 내렸다.
그것은 우선 내가 책임진 1개분대(경기관총분대)로 하여금 벼랑우에 있는 적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리도록 유인하면서 다음명령을 기다리는것이였다. 그리고 이틈을 타서 리련대장이 지휘하는 기본력량은 사나운 눈보라와 험준한 골짜기를 리용하여 적들의 배후인 산마루에 오르라는것이였다.
이러한 지휘관의 명령은 지체없이 행동에 옮겨졌다. 비록 여러날의 어려운 행군과 굶주림에 지친 몸들이였지만 명령앞에 항상 승리를 확신하는 일념과 수백수천차례의 가렬한 싸움과 산악지대에서 단련된 우리의 몸에서는 산이라도 뒤엎을듯한 힘이 솟았다.
나는 기관총을 들고 벼랑우측 선두에 서고 김택만동무는 벼랑좌측 선두에 서서 각각 3명씩의 보총수들과 함께 벼랑우의 적을 향하여 기여오르면서 맹렬한 사격을 시작했다.
물론 아슬하게 깎아지른듯한 높은 절벽우에 있는 적들을 이런 방법으로 완전히 소멸할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는 적들의 시선을 우리에게로 집중시키면서 아군부대의 기본주력을 골짜기우로 우회시키고 적들의 배후인 등마루로 오르게 하는데는 가장 좋은 방법이였다.
적들의 시선이 우리에게로 쏠리고 화력이 교차되는 틈을 타서 아군의 기본주력이 산마루로 올라 반격태세를 갖춘것은 약 20~30분후이였다.
이사이에 우리 분대는 《돌격!》소리를 치면서 달려내려오는 놈들부터 쏘아눕혔다. 그중에 어떤 놈들은 급한 벼랑끝에 달려나왔다가 우리의 총탄을 맞고 허궁 넘어지면서 우리들이 기여오르는 절벽아래로 떨어졌다. 바위산절벽의 경사는 급했다.
우리가 적들의 턱밑을 치받아오르면서 올리사격을 맹렬히 전개하자 절벽우의 적들도 더욱더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적아간의 격렬한 총소리는 귀가 먹먹하도록 골짜기안을 뒤흔들었고 사나운 눈보라와 적들의 아우성소리는 절벽을 휩쓸고있었다.
이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아군의 기본력량이 적들의 배후로부터 나타나기만 하면 우리는 포위상태에서 벗어날뿐만아니라 오히려 적들을 포위하고 뒤집어때리게 될것이였다. 그러나 이때 우리 분대에 사격을 계속할수 있는 무기는 불과 몇자루 없었다. 내가 사격하던 경기관총도 이미 사격을 중지하게 되였고 다른 동무들의 무기도 거의 빈총뿐이였다. 다만 내가 예비로 차고있던 싸창과 김택만동무가 차고있던 싸창만이 한탄창씩의 탄알이 있을뿐이였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일가? 산우로 오른 아군주력은 거의 한시간이 넘도록 감감 소식이 없었다. 게다가 절벽은 우로 오를수록 더욱더 행동하기 어려웠고 바위우에는 얼음이 뒤엉켜서 발을 옮겨디디기 힘들었다. 그러나 나는 지휘관의 명령을 굳게 믿었다. 《적들의 시선을 한곳에 집중시키면서 맹렬히 반격하라! 그러면서 다음명령을 기다리라!》
나는 약 30m 좌측에서 머리만 내다보이는 김택만동무와 서로 손신호를 해가며 번갈아 사격을 계속했고 한걸음씩 우로 기여올랐다. 머리우에서 무너져내리는 눈이 계속 뒤덮이므로 총한방을 쏘고는 한참씩 눈을 헤쳐야 했으며 한걸음을 옮기고도 뒤덮이는 눈속에서 몸을 끌어내야 했다.
그러다가 우리들의 사격이 뜸해지면 적들의 기관총사격은 더욱 심해졌다. 마침내 적들은 5정이나 되는 경기관총을 벼랑끝에 걸어놓고 불을 뿜기 시작했다.
머리를 들면 적의 탄알이 귀전을 스치고 절벽에 몸을 붙이면 무너져내리는 눈이 계속 뒤덮여서 앞을 분간할수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위험과 곤난은 아무렇지도 않고 아군주력의 그후 일이 궁금하고 가슴이 조였으며 적에 대한 참을수 없는 증오로 당장 절벽우로 기여올라가서 육박전을 전개하고싶은 생각이 부쩍부쩍 머리를 쳐들게 하였다.
심장이 고동치는 한 투쟁을 멈출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한쪽 겨드랑이에 경기관총을 껴안고 눈속에 몸을 묻어가며 계속 기여올랐다. 이때 내뒤를 따라오르던 김택만동무가 다급히 소리쳤다.
《아, 분대장동무. 머리우를 조심하세요. 적들이…》
그 소리에 나는 머리를 들었다.
적들의 경기관총구가 바로 손이 닿을듯한 곳에서 불을 뿜고있었다. 이 순간 내 머리에는 적의 경기관총을 빼앗을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한걸음 더 앞으로 몸을 올려밀었다. 팔소매없는 개털등거리에 털모자를 뒤집어쓴 왜놈 헌병들이 벼랑우에 시누렇게 엎드려서 골짜기에 대고 마구 총을 쏘아대는것이 보였다.
《옳지, 됐다.》하고 나는 탄알이 없는 경기관총을 바른손에 옮겨쥐며 눈속에 몸을 푹 파묻었다. 그리고 물속을 헤염쳐나가듯이 머리만 들고 배밀이로 벼랑턱을 기여올랐다.
이때 기본주력을 인솔하고 산마루로 올라간 리련대장은 안타깝게 골짜기쪽을 내려다보고있었다.
그는 만단의 반격태세를 갖춤과 동시에 《경기관총분대원들은 속히 퇴각하라.》는 명령을 주어 련락병을 파하였다. 그런데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나도록 골짜기아래서는 분대원들이 퇴각을 하지 않고 계속 싸우고있었다. 뿐만아니라 골짜기아래서 들려오는 총소리는 점점 더 격렬하여지고 적아간의 거리는 차차로 좁혀진다는것을 짐작할수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일가?》
등마루에서 초조히 기다리고있던 지휘관은 이렇게 혼자말을 하면서 두서너걸음 더 앞으로 나서서 산마루아래를 굽어보았다. 그러나 사나운 눈보라속에 뒤덮인 골짜기에서는 총소리만이 자지러지게 울릴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경기관총분대원들이 너무 깊이 달려들었다가 적들에게 휩싸여서 악전에 빠진게 아닐가?》
너무 대담한것이 오히려 념려될 지경인 귀중한 대원들에 대해서 이렇게 가슴을 조이고있던 리련대장은 또 다른 련락병을 보내기로 하였다.
사실 우리 분대가 적들과 가까이 접근하고있는 조건에서는 아군주력이 적의 배후를 칠수는 없는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분대가 있는 골짜기로 다시 내려올수도 없고 그래서 지휘관은 리동화련락병을 우리 분대에 거듭 보내였다.
그러나 두번째 파견한 리동화련락병도 얼마쯤 내려오다가 적들의 총탄에 왼쪽다리를 맞고 눈속에 쓰러졌던것이다.
이때 우리 분대는 이미 절벽우로 거의 기여올랐으며 김택만동무와 나는 각각 적의 경기관총 1문씩을 목표로 행동을 개시하였다.
제정신 모르고 미친듯이 불을 뿜던 왜놈의 경기관총 사수 하나가 바로 턱밑에 다가든 나를 발견했는지 무어라고 기겁스런 소리를 치며 총구를 나에게로 돌리는것이였다.
그러나 이때 나는 이미 눈속에서 뛰쳐일어났고 손에 든 싸창으로 그놈을 겨누었다. 나는 왜놈의 경기사수와 부사수 그리고 그옆에 있는 3명의 왜놈헌병을 연거퍼 쏴갈겼다. 왜놈의 경기사수를 벼랑끝에 차던지고 그놈의 경기관총을 집어든 나는 계속 그 부근에 있는 놈들을 휘둘러갈겼다. 이때 벼락불을 맞고 쓰러지는 왜놈들은 별의별 기괴한 비명을 다 질렀다. 그러나 나는 그놈들을 거들떠볼 사이가 없었다. 바로 내가 서있는 웃턱에는 아직도 수없이 많은 적들의 기본주력이 있었고 내가 경기를 빼앗은 지점에도 적들이 아직 남아있어 저항하였다.
로획한 경기관총을 잡은채 나는 급히 사격위치를 정하고 엎드렸다. 그리고 뒤에 올라오는 분대원들을 엄호하기 시작했다. 후에 안 일이지만 이때 나의 좌측에서 나타난 김택만동무도 두곳이나 부상을 당하여가면서 끝내 적의 경기사수 한놈을 쏴눕히고 경기관총 1문을 또 빼앗아들었다. 좌우옆에 쏟아지는 적탄을 돌볼새없이 경기관총을 두르며 앞고지 턱밑에 뛰여든 내가 적의 기본주력이 있는 방향에 불을 뿜기 시작하였을 때에 바로 김택만동무가 나의 좌측에서 뛰여나가며 적을 향하여 련발사격을 하는것이 보였다.
이에 새 기운을 얻은 나는 더욱 용기를 내여 계속 적들에게로 기여오르며 련발사격을 퍼부었다.
한편 리동화련락병은 부상당한 다리를 끌고 적들이 조여드는 맞은편 산턱을 더듬어내리다가 갑자기 다리에 힘을 잃고 또다시 주저앉아버렸다.
그는 적탄에 거듭 부상을 당한것이였다. 그는 눈무지를 짚고 일어나려 하였으나 바른쪽다리마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안타깝게 입술을 깨물며 다리를 보았다. 이미 부상당한 다리에 감았던 헝겊은 어느 틈엔가 풀어져버렸고 거듭 부상을 당한 오른쪽 무릎마디에는 시뻘건 피가 내배였다.
그는 분한 생각을 금할수 없었다. 그는 옷자락을 찢어서 상처를 동이고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다리는 여전히 말을 듣지 않고 상반신이 앞으로 숙어지며 어푸러졌다. 그는 그만 벼랑밑으로 굴러떨어졌다.
《이 일을 어쩌나…》
상처의 아픔보다도 련락을 보장해야 할 책임감이 동화동무의 가슴을 죄였다. 그는 눈우에 내쳐진 총을 더듬어들고 엎디여기기 시작하였다. 내리막길이기는 하였으나 얼굴을 휩싸갈기는 눈보라가 앞길을 방해했다. 그런데다가 싸창목갑이 자꾸 흘러내려서 오른쪽 팔굽을 때리기때문에 더욱 전진하기 힘들었다.
총소리로 판단해서는 경기관총분대원들은 그리 멀지 않은곳에 위치하고있는것 같았다. 그는 급한 경사를 골라서 굴러내리기로 하였다. 그것은 위험하기는 하지만 분대원들을 단 1분이라도 속히 만나는데 더 쉬울것 같았다.
그는 경사진데를 찾아서 골짜기아래로 다리를 뻗고 손으로 눈을 짚으며 몸을 콱 내밀었다.
상한 다리를 몇번인가 나무옹이에 부딪쳐 깜박깜박 정신을 잃을것 같은 고통을 받았으나 엎드려서 기기보다 빠르게 골짜기로 내려갈수 있는것이 기뻤다.
골짜기에 다 내려간 그는 총소리를 분간해들으면서 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는 손마저 얼어서 마음대로 놀려지지 않았으며 눈은 부어서 앞을 잘 볼수 없었다.
그럴수록 리동화동무의 머리속에는 지휘관의 명령이 불길처럼 력연했다.
(경기관총분대를 구원하는것도, 전체 부대의 승리를 앞당기는것도 나의 임무수행여부에 크게 달려있다.)는 생각이 리동화동무를 채찍질했다.
그는 끝내 분대원들이 있는 지점에 이르렀다. 그는 부은 눈을 문지르며 벼랑턱을 바라보았다. 눈보라속으로 얼씬얼씬 보이는것은 경기관총분대원들이 분명했다.
《아, 여기에들 있었구나.》
리동화동무는 기뻤다. 그래서 목이 멘 소리를 지르며 급히 일어서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는 일어설수 없었다.
눈우에 쓰러진 그의 심장은 더욱더 참을수 없는 적개심으로 불탔다. 그리고 그는 또 생각했다.
(전우들이 내가 부상당한걸 안다면 …그렇다. 그들은 급히 퇴각하여 아군주력으로 하여금 적들을 몽땅 소멸하게 해야 할것이 아닌가? 나를 업거나 끌고가느라고 이이상 더 시간이 지체되면 어떻게 하나.)
이렇게 생각한 그의 눈앞에는 산우에서 초조해할 지휘관과 전우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놈의 적이라도 더 오래 살려놓을수 없으며 한놈도 놓쳐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명령을 들을 때처럼 머리속에 선명히 떠올랐다.
그는 목갑에서 재빨리 싸창을 뽑아들고 눈속에 다리를 묻은채 엉거주춤이 허리를 폈다. 그리고 분대원들을 향하여 소리를 쳤다.
지휘관의 명령을 전달하는 그 짧은 사이에도 그는 상처의 고통으로하여 몇번이나 정신을 잃을 지경이였다.
그러나 그는 끝내 언덕우에 있는 동무들에게 지휘관의 명령을 알려줄수 있었다. 동시에 자기의 부상을 감출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기뻤다. 그는 분대원들이 후퇴하기 시작할 때에 눈보라속을 리용하여 옆으로 빠졌다. 사나운 눈보라로하여 앞이 더욱 흐려져서 잘 보이지 않아 그는 절반 손짐작으로 언덕을 의지하고 나무그루들을 잡아가며 절벽쪽으로 기여갔다.
그러면서도 그는 분대원들의 총소리가 골안으로 몰리는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는 그만 기운이 진하여 나무밑둥을 그러안은채 쓰러졌다.
잠시동안 그는 정신을 잃었다. 모진 눈보라가 그를 뒤덮는줄도 몰랐다.
요란한 총소리와 눈보라소리가 얼마간 계속되였다. 그러다가 그뒤를 이어 유격대의 함성소리와 적들의 비명소리가 일어났다.
그뒤에도 얼마후에야 리동화동무는 머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하고 깊이 뒤덮인 눈속에서 거의 본능적으로 가슴에 품은 싸창을 꼭 그러안았다.
(숨이 살아있는 한 무기를 손에서 놓지 말라!)
그의 심장은 몹시 뛰고있었다. 이럴 때에 어디선가 지휘관과 동무들이 그를 찾고있는것 같은 소리가 들리는듯 했다. 차츰 정신이 들기 시작한것이다. 그는 눈보라소리도 느꼈고 골짜기안에 어둠이 짙어오는것도 알게 되였다. 《아, 다들 어떻게 됐을가?》
그는 상처의 모진 고통보다도 지휘관과 전우들이 한없이 그리웠다. 그는 머리를 들었다. 그리고 문득 어디선가 웅성이는 말소리를 들었다.
《적이냐? 아군이냐?》
리동화동무는 이렇게 소리쳐보고싶었다. 그러나 목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그는 싸창을 꺼냈다. 싸창의 손잡이를 더듬어서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 그는 다시 귀를 기울였다. 그의 귀에는 자기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리동화동무는 총구를 하늘로 추켜들고 간신히 방아쇠를 당겼다.
《탕!》
이 총소리는 리동화동무를 찾고있던 전우들을 기쁘게 했다. 얼마후에 그는 전우들의 등에 업히여 산마루로 올랐다.
적을 섬멸한 지휘부와 전우들은 다른 부상자들과 함께 리동화련락병도 서로 번갈아업으면서 행군의 길에 올랐다.
나는 이 전투에서만 하여도 우리 전우들이 어떻게 싸워 승리하였는가 하는것을 일일이 다 이야기할수 없다. 다만 내가 체험한것과 지금도 기억하고있는 리동화동무의 이야기의 일단을 전하는데 불과하다.
8. 고난의 행군
조 도 언
1935년 2월 18일에 안도현 대전자전투에서 어깨에 중상을 입은 나는 그후 몇해동안 내내 후방병원생활을 하였다.
1940년 2월(음력) 내가 화전현 진거우밀영에서 5명의 환자들과 함께 치료를 받고있을 때에 있은 일이였다. 하루는 우리한테 통신원이 왔다. 그는 나에게 진거우밀영에 있는 환자들과 함께 부대를 찾아오라는 명령을 전해주었다. 나는 지체없이 환자들을 데리고 이동중에 있는 부대를 찾아 길을 떠났다.
환자들중에는 마진우, 김완석동무들도 있었는데 마진우동무는 가렬한 전투에서 왼쪽팔을 잃었고 오른쪽 팔마저 부상당하여 쓰지 못했다. 그리고 김완석동무는 오른쪽 무릎을 부상당하여 동무들의 부축이 없이는 길을 걸을수 없었다. 이밖에 김정희, 김용춘 등 녀대원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몸이 극도로 쇠약했다.
진거우후방밀영을 떠나 부대를 찾을 때까지 우리가 겪은 이야기들을 다 말할수는 없다.
우리는 반년이나 산속에서 지냈으며 《토벌대》놈들의 추격을 받으며 밤낮없이 걷지 못하는 전우들을 부축하고 행군해야 했던것이다. 또한 우리는 오래동안 낟알을 먹지 못하고 지냈다. 전우들은 굶주림을 참다 못하여 수림속에 자주 넘어지군 했다.
1940년 5월경이였다. 우리는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다푸르허의 수림속을 걸어가고있었다. 수림속은 어둑컴컴하였다. 몇해를 묵었는지 모를 나무잎 썩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벌써 여러날째 먹지 못한 우리의 행군은 굼떴으며 전우들은 겨우 발걸음을 떼여놓는 형편이였다. 우리는 묵묵히 걷기만 하였다.
그런데 얼마후 맨뒤에서 걸어오던 마진우동무가 그만 쓰러졌다. 쓰러진 그는 전우들의 부축을 받고 간신히 일어서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것이였다.
《아니야, 나무그루터기에 걸렸어.》 그러면서 그는 전우들에게 페를 끼치지 않기 위해 억지로 웃어보이려고 애썼다.
우리는 좀 편안한 자리를 골라서 마진우동무를 눕힌다음 그 두리에 모여앉았다. 전우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볼뿐 아무 말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피로에 지쳤던것이였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전우들에게 기운을 북돋아주고싶었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쓰라린 가슴쥐고 헤매이는자
모두다 모두다 무산 빈농민
잊지 말자 우리 싸움길
어서 빨리 목적지에 도달들 하자
내가 노래를 부르자 전우들도 하나둘 따라불렀다. 이렇게 해서 얼마간 용기를 북돋았으나 노래를 오래 부를수는 없었다. 전우들은 다시 땅바닥에 누워서 눈을 감았다. 그때 내눈앞에는 1940년 설날에 있었던 일이 선히 떠올랐다.
나는 이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모시고 설날을 보내였다. 그이를 모시고 보낸 이날의 감명을 나는 잊을수 없다.
그이께서는 나에게 우리들의 두어깨에는 무거운 짐이 놓여있소, 하루속히 일제를 타도하고 조국을 광복할 숭고한 혁명임무가 우리들에게 맡겨져있는것이요, 이 혁명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그 어떤 난관앞에서도 주저앉을 권리가 없는것이요, 난관을 뚫고나갈 때만이 승리가 있다는것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목소리가 방금 옆에서 울리는것 같았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한달전에 내가 왜놈경찰복으로 가장하고 명월구지방의 한 자위단놈에게서 《민회소》를 로획한 때의 일이 머리에 떠올랐다. (《민회》란 일제놈들의 주구단체였다.)
나는 배낭을 뒤지기 시작하였다. 나는 사실 일본경찰고관복을 꺼내려고 하였는데 내가 배낭을 뒤지는것을 보자 누워있던 전우들이 하나둘 나의 배낭을 지켜보았다. 혹여나 먹을것이 나오지나 않을가 해서 그러는 모양이였으나 배낭속에 먹을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게 되자 하는수없이 솔직히 말했다.
《내 배낭속엔 일본경찰고관복밖에 없네.》하고 빙긋이 웃어보이고는 입었던 군복을 벗고 일본경찰고관복으로 갈아입었다. 목이 긴 까만 장화를 신고 채양에 금줄을 두른 경찰고관모자까지 쓴 나는 전우들에게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주게.》하고 말했다.
그제야 기미를 알아차린 전우들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나를 붙들었다.
《위험한데 그만두십시오. 어떻게 이대로 견디여냅시다.》
그러나 참고 견디여낸다는것도 한도가 있는것이 아닌가. 전우들의 심정만은 리해할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나의 결심을 거둘수는 없었다.
《내 걱정은 말고 몸을 쉬면서 기다려주게.》나는 이 말을 남기고 결연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김정희, 김용춘녀대원들이 나의 앞에 다가와서 자기들도 함께 가겠다고 졸랐다. 나는 그들에게 조용히 타일러주었다.
《동무들은 내가 돌아올 때까지 저 동무들을 간호해야 하오.》
나는 그들을 수림속에 남겨두고 다푸르허근방의 산간집단부락을 향해 발걸음을 다그쳤다. 울창한 수림속을 빠져 산아래로 거의 내려갔을 때에 어떤 사람 하나가 마주 올라오고있었다. 그 사람은 손에 낫을 들고있었다. 나는 다래넝쿨뒤에 숨어서 그사람의 동정을 살폈다. 그 사람은 내가 숨어있는 다래넝쿨 있는데까지 왔다. 나는 그를 놀래우지 않기 위하여 기침을 하면서 넝쿨속에서 나왔다. 모자에 금줄을 두른 《일본경찰고관》이 넝쿨속에서 나타나는것을 보게 된 그사람은 아연실색하였다.
그사람은 이곳 집단부락에서 사는 농민이였다. 나는 그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려주고 집단부락의 정형에 대해서 물었다.
농민의 말에 의하면 집단부락에는 자위단놈들이 한 50명 된다는것이다. 그리고 농민은 부락안의 동태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면서 인민들에 대한 자위단놈들의 만행을 폭로하였다.
농민과 헤여진 나는 집단부락에 있는 자위단놈들의 눈에 뜨이지 않도록 엄페지를 리용하면서 집단부락 성문근처에 이르렀다. 만약 《일본경찰고관》이 혼자 산에서 내려오는것을 놈들이 발견한다면 나를 의심할것이기때문이다. 열려진 성문안쪽에 보초놈이 서있었다. 나는 일본경찰고관놈들이 흔히 하는것처럼 거만한 몸가짐에 눈을 부라리면서 보초놈앞에 불쑥 나타났다. 나를 본 보초놈은 한동안 당황망조하여 어쩔바를 몰라하다가 선 자리에 말뚝처럼 굳어져버렸다. 그놈의 입술은 파르르 떨렸다.
나는 그놈의 더러운 낯짝에 증오의 된주먹을 먹이면서 꽥 소리를 질렀다.
《이 개자식아, 고관도 몰라봐!》내 주먹이 어찌나 드셌던지 보초놈은 그 자리에 쓰러졌다.
나는 지체없이 네활개를 치며 자위단실쪽을 향해 걸었다. 얼마간 걸어가는데 자위단실의 마당앞에서 누런 옷을 입은 자위단 몇놈이 나를 힐끔힐끔 보더니만 자위단실이 있는쪽으로 달려가는것이였다. 단장놈에게 《나으리》가 온다는것을 급히 알리려고 뛰여가는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생각하였다.
(혁명이 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대담하고 침착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한 나의 눈앞에는 수림속에 두고온 전우들의 얼굴이 떠올랐던것이다. 이와 동시에 나의 머리에는 이놈들을 족칠 묘한 생각이 피뜩 스쳐지났다. 나는 태연하게 머리를 끄떡거리며 될수록 천천히 마당 있는데로 걸었다. 마침내 자위단실이 있는데서 돼지멱따는듯한 소리가 길게 들려오자 와르르 자위단놈들이 방안에서 뛰여나와 마당에 정렬하고있었다. 정렬한 놈들은 한 40명가량 되였다. 대렬의 맨 우측에 선놈이 이윽고 《기오쯔껫! 가시라 미깃!(차렷, 우로봣)》하고 호령쳤다. 나는 바른손을 모자채양에 대고 대렬 한복판에 가서 굵은 소리로 호령쳤다.
《야스메(쉬엿).》나는 이런 정도의 일본말은 알고있었던것이다. 놈들의 시선은 나에게 집중되였다. 나는 다리를 약간 벌리고 뒤짐을 지고 서서 말을 시작했다.
《나는 너희들에게 긴 말은 하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네놈들의 장교인줄 아느냐?
나는 김일성장군 유격대의 한 대원이다. 이곳 수림속에는 김일성장군님께서 거느린 조선인민혁명군 600여명이 쉬고있다. 아군은 지금 모두 여기를 내려다보고있다.》여기까지 말하자 자위단놈들은 와들와들 떨기 시작하였다. 나는 어조를 낮추어 우리 인민혁명군은 자위단원들의 목숨을 함부로 해하지 않으니 떨 필요는 없다는것과 앞으로는 일본침략자들의 총마개로 될것이 아니라 우리 혁명군과 손을 맞잡고 원쑤 일제를 반대하여 싸워야 한다는것을 알기쉽게 해설해주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혁명군 600명의 한끼분 군량을 곧 마련해서 저 산우에까지 운반해놓으라고 말하였다. 나의 말이 떨어지자 놈들은 부랴부랴 식량을 마련하느라고 돌아쳤다. 나는 마당에 뻗치고선채 들락날락하는 놈들을 살피였다.
식량을 진 자위단 몇명을 앞세우고 떠나면서 나는 자위단 단장놈에게 일러두었다. 만약 불손한짓을 하게 된다면 불벼락을 맞을것이니 그리 알라고.
이렇게 식량을 구해가지고 수림속에 돌아오니 전우들이 없었다.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것 같았다. 그래 막 수림속을 들추었다. 얼마만에야 나는 그 눈물겹도록 반가운 유격대전우들의 《뻐꾹!》하는 소리가 저편 산중턱에서 울려옴을 들었다.
나는 거기로 달음질치며 《동무들ㅡ》하고 몇번이고 불렀다.
산중턱에서 나의 거동을 살피고있던 전우들중 두 동무가 그제야 나있는데로 맞받아내려오며 환성을 올리는것이였다. 전우들은 만일의 경우를 고려하여 자리를 옮기고 내가 돌아오기를 고대하는중이라고 했다. 우리는 너무도 반가운김에 서로 그러안고 돌아갔다.
우리는 오래간만에 낟알을 끓여먹었다. 그리고 다시금 행군을 계속하였다. 실로 중첩되는 그 어떠한 난관도 우리가 가는 길을 막지 못하였다.
혁명가들은 난관앞에 주저앉을 권리가 없으며 그 난관을 뚫고나갈 때만이 승리가 있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교시는 모진 난관에 부닥칠 때마다 항상 우리의 앞길을 열어주었고 새힘이 용솟음치게 하여주었던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진거우후방밀영을 떠난지 반년만에 그리운 혁명대오를 찾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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