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목재로동자들
김좌혁
1936년 12월경, 녕안현 촨옌툰부근에서 활동하던 우리 부대는 안길동지의 지휘하에 로야령산맥 밀림속을 행군하고있었다.
낯설은 길인데다 허리를 치는 눈은 우리의 걸음을 매우 더디게 하였다.
모진 추위에 얼어터지는 나무들의 《쩡-쩡》하는 소리가 사처에서 울려오고 눈우에 얼어죽은 산짐승들이 곳곳에 나딩굴어있었다.
우리는 벌써 여러날동안 줄곧 눈속을 걸어왔다. 걸어왔다기보다 오히려 눈속을 헤염쳐왔다고 말하는 편이 더 나을것이다.
그러나 이 추위와 이러한 곤난속에서도 누구하나 괴롭다는 말한마디 하지 않았으며 모두가 기세당당히 앞으로만 걸어가고있었다.
이 고난의 행군은 우리에게 있어서 참으로 잊을수 없는 뜻깊은 해의 마지막행군이였다.
우리 부대는 요영구회의에서 제시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방침에 따라 광활한 북만지역에서 혁명의 씨앗을 뿌리면서 유격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때에 우리 부대가 철령부근 벌목지대로 이동하는것도 아직까지 우리의 영향을 받지 못한 이곳 로동자들속에 혁명적영향을 주는 동시에 그들과의 련계를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어느날 해질무렵에 우리 부대는 목재소합숙에 이르렀다.
산판에서 대부분의 로동자들이 돌아오지 않은 합숙방에는 취사부로인을 비롯한 몇명의 로동자들만이 있었다. 우리가 주인을 찾아 방안으로 들어가자 로동자들은 놀란 기색으로 우리를 대하면서 부산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이곳 로동자들은 지금까지 인민의 재산을 로략질하는 토비군대가 아니면 산림대들만을 상대하여왔다.
때문에 무장한 사람이면 모두가 그들처럼 무서운 사람으로 알고있었다.
안길동지는 이곳 로동자들의 이러한 형편을 미리부터 알고있었으므로 방에 들어가자 우리가 조선인민혁명군이라는것과 이곳에 오게 된 목적에 대하여 이야기하여주었다.
우리는 로동자들에게 잎담배를 권하고 한대씩 말아물었다.
잠시후에 취사부로인이 우리에게 더운물을 날라왔다.
모든 일에서 찬찬한 안길동지는 그것을 반가이 받으면서 무엇때문인지 주의깊게 로인의 손을 살피는것이였다. 로인의 손은 보기에도 끔찍스러울만큼 험하게 터있었다.
안길동지는 로인의 손에다 약대신으로 노루기름을 정히 발라주었다. 그리고 난다음 로인을 보고 동정어린 목소리로 《할아버지, 가족은 어디에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로인은 인차 대답할 생각이 안나는듯 한참동안 기름바른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더니 이윽고 땅이 꺼지는듯한 긴 한숨을 몰아쉬면서 《가족이 다 뭐요.》하고는 맥없이 창가로 다가갔다.
밖에서는 저녁부터 일기 시작한 눈보라가 마치도 늙은이의 가슴에서 설레이는 불행에 찬 상념과도 같이 부산을 부리고있었다. 이 로인은 젊은 시절에 목단강지방의 어느한 지주집 머슴군으로 일했다고 한다.
그는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황소 같아서 그 지방사람들에게 《장사》라고 불리웠다.
추수탈곡때면 지주집마당에 털어놓은 낟알을 단김에 두포대씩 헛간으로 날라들였고 겨울에는 지주집에서 땔나무를 혼자힘으로 감당했다.
그런데도 지주놈은 그에게 옷한벌 변변히 해주지 않았을뿐더러 그를 늘 마구간에서 잠을 자게 하였다.
한번은 어려운 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쳐서 앓아눕게 되였는데 그후부터 그는 힘겨운 일을 도무지 할수가 없게 되였다. 그러자 지주놈은 그를 밥만 처먹고 일을 하지 않는다고 시비를 걸면서 집에서 내쫓았다.
그런 다음부터 그는 지금까지 이렇게 로동판을 찾아다니며 취사부로 일하면서 입건사나 하는 신세로 되였던것이다.
《…내 이리 늙었으니 이놈의 세상에서 얼마 더 고생하겠소?》하고 로인은 서글피 부르짖었다.
안길동지는 다 꿰진 개털모자를 쓰고 구부정하게 서있는 로인의 뒤모습을 한참 말없이 바라보더니 천천히 그에게로 다가갔다.
《할아버지, 이리 오셔서 담배나 한대 태우시지요.》
안길동지의 말소리는 부드럽고 친근스러웠다.
우리는 이날밤 로동자들과 함께 밤늦도록 앉아있었다. 우리는 로동자들에게 우리가 못사는 원인이 결코 타고난 팔자때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지주, 자본가들때문이며 우리 조선과 동북을 강점한 악독한 일본제국주의자들때문이라는것을 자세히 이야기하여주었다. 그리고 우리들이 잘살수 있는 무산자주권을 세우기 위하여 당신들은 우리와 손을 맞잡고 일제를 타도하는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라는것을 말했다.
이렇게 하루밤을 지내고 이튿날아침 우리가 합숙앞마당에 정렬했을 때였다. 로동자들이 첫날 대할 때와는 생판 다른 그러한 친숙한 얼굴로 우리를 내다보는것이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로동자들은 간밤 로인의 손에다가 노루기름을 발라주고 자기들과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던 그 젊은이가 바로 대렬을 지휘하는것을 보자 더없이 경탄하였다고 한다.
그때로부터 로동자들은 우리를 《김일성장군님부대 어른들!》이라고 부르면서 아침저녁으로 짬만 있으면 찾아와서 이야기를 나누는것이였다.
《우리는 이 추운 겨울에도 겨우 누데기나 걸치고 온 하루를 쉬지 않고 나무를 찍지요. 글쎄 찍기만 하면 뭘합니까? 내내 그 꼴이 그 꼴인걸요. 보다싶이 인제는 살가죽이 뼈에 맞붙을 지경이 되였소다.》
참으로 이들은 목재소에 들어와서 계절로동을 한지가 3~4년이 되여도 언제한번 집이라고 가본적이 없었다. 가족들의 생활이 하도 걱정되여서 관리측의 눈을 피하여 목재소를 빠져나가다가도 놈들에게 붙잡히는 날이면 의례히 반죽음을 당하였다. 말이 로동자이지 사실은 노예나 다름이 없었다.
우리는 로동자들의 이러한 비참한 생활형편을 알았을 때 몹시 가슴이 아팠다. 그리하여 우리 유격대지휘부에서는 어떻게 해서라도 이 로동자들의 생활조건을 풀어줄데 대한 심중한 토론을 하였다.
우리는 목재소경영주의 심복자를 시켜서 경영주놈을 데려오도록 하였다.
경영주놈은 일본 귀족가문의 태생으로 이미전에 일본군 소위까지 지낸자였다.
그자는 우리와 약속한 날자에 올라오지 않으면 큰 봉변을 당하리라는것을 타산하고 제날자에 목재소로 올라왔다. 그자는 우리를 산림대나 토비와 같은 군대인줄만 알고있은 모양이였다.
안길동지는 그자를 앞에 불러앉히고 한참동안 묵묵히 주시하더니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우리가 요구하는것은 당신이 여기 로동자들에게 8시간로동제를 실시하고 공정한 임금을 지불하라는것이요.》
경영주는 자기가 생각하던바와는 천만뜻밖의 문제여서 잠시 어안이 벙벙해있었다.
안길동지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당신은 지금까지 우리의 산림을 제멋대로 략탈하였으니 5만원의 세금을 내놓아야 하겠소.》
이 말이 떨어지자 경영주놈은 어지간히 당황해하는 기색이더니 이윽고 비겁스럽게 웃음을 지으면서 다가드는것이였다.
《헌데… 당신들은 당분간 나하고 동업을 하는 형식을 취하는것이 어떻습니까? 말하자면, 에… 당신들이 산에서 나무를 내려보내주면 나는 시내에 내려다 팔아서 그 수익금을 절반씩 나눠먹자는거지요.》
안길동지는 그놈의 더러운 소갈머리에 쓴웃음을 짓더니 《당신은 우리를 어떻게 알고있는거요?》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는것이였다.
《네, 잘 알고있습니다. 당신들에게는 돈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안길동지는 이 말에 경영주놈을 한참동안 쏘아보더니 이윽고 위엄있는 어조로 타이르듯 말하였다.
《우리는 돈이나 재물을 탐내는 토비가 아니다. 우리로 말하면 나라를 광복하기 위하여 싸우는 조선인민혁명군이다.
당신이 지금까지 우리 로동자들의 고혈을 빨아낸 죄만 하여도 용서할수 없다.
당신이 여기의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가 모두 누구의것인줄 아는가. 그것은 인민의 귀중한 재산이다. 그런데 당신은 파렴치하게도 이러한 산림을 마음대로 략탈하고서도 그 죄악을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단 말인가.》
경영주놈의 눈은 휘둥그래졌다.
그놈은 안길동지의 정당하고 론리정연한 주장앞에 두번다시 말할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그놈은 우리가 어떤 군대인가를 비로소 깨달았던 모양이다.
그놈은 우리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락한다고 하면서 자기를 용서하여달라고 애원하는것이였다.
안길동지는 경영주놈에게 《당신의 목숨을 빼앗기는 어렵지 않소.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목적이 아니요. 거듭 말하거니와 당신은 우리 로동자들의 권리를 존중히 여겨야 하오. 만약 그렇지 못할 때는 용서치 않겠소.》라고 경고를 주어 돌려보냈다.
며칠후에 우리는 이웃에 있는 목재소로동자들의 요구조건도 해결하여주었다. 이러한 사실은 로동자들의 계급의식을 높여주는데 커다란 의의를 가졌다. 로동자들속에서는 어느덧 이런 말이 돌기 시작하였다.
《과연 김일성장군님부대는 우리 로동자들의 리익을 위해주는 인민의 군대다.》
그러면서 로동자들은 우리 유격대에 대하여 존경과 감탄의 뜻을 금치 못하는것이였다.
우리는 목재소로동자들이 있는 합숙의 바로 뒤등성이를 넘어서 숲속에 새로 지은 병실로 이동하게 되였다. 누구든지 이곳으로 오자면 목재소로동자들의 합숙을 거쳐야하므로 매우 유리하고도 안전한 지대였다.
숙소를 옮긴 다음부터의 로동자들의 방조는 더욱 각별하여졌다.
취사부로인은 오래간만에 한번씩 만두를 빚는 날이면 의례히 우리의 몫을 먼저 빚어서 보내오군 하였다.
우리는 될수록 로동자들에게 페를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지만 결국 허사였다.
로동자들은 노루, 꿩, 사슴 등 여러가지 산짐승을 잡기만 하면 그것을 우리에게 가져와서는 《꼭 받아주셔야 합니다.》하면서 어떻게 해서라도 거절할수 없게 하였다.
어느날 대낮이였다. 한 로동자가 우리한테로 숨을 헐떡거리면서 달려왔다.
적들이 목재소로 기여들었으니 조심하라는것이였다.
우리는 긴급히 회의를 열고 훈련을 하고있는 대오를 수습하였다. 적의 력량은 보잘것이 없었으나 우리는 그들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가 그놈들을 건드린다면 이곳에서의 겨울나이와 로동자들에 대한 정치공작을 뜻대로 할수 없었기때문이였다.
그런데 그때 다른 한명의 로동자는 나무를 실은 발구를 끌고 앞등성이를 넘어와서 우리가 있는 부근을 헤매고있었다. 여러가지로 의문이 생기게 된 우리는 그를 불러세우고 사유를 물으려고 하였다. 그러자 그 로동자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벙그레 웃는것이였다.
《념려하실것 없습니다. 나는 당신들이 다닌 발자국을 메우고있는 참입니다. 놈들이 당신들의 발자국을 따라 이곳으로 오면 어찌겠습니까? 우리는 당신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를 진심으로 도와주려는 그의 행동에 우리들은 몹시 감복하였다.
이렇게 우리와 목재소로동자들과의 관계는 나날이 깊어갔다.
우리는 로동자들속에 혁명조직을 내오기 위하여 25개의 로동자합숙들에 정치공작원들을 파견하였다.
공작원들은 밤에 로동자합숙들을 찾아가서 이야기모임을 가졌다. 그들은 로동자들에게 전번 경영주놈과의 투쟁에서 8시간로동제를 쟁취하게 된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이것은 로동자들의 커다란 승리였다는것을 말하여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승리를 고수하기 위하여서는 모두가 단결하여야 하며 일제를 타도하는 성전에 한결같이 일떠서야 한다는것을 말하였다.
공작원들은 이러한 사실을 로동자들이 더 깊이 깨닫도록 하기 위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방침에 따라 유격근거지해방지구들에서 실시된 민주개혁과 그곳 인민들의 자유롭고 행복한 생활을 이야기하여주었다.
로동자들은 커다란 관심을 가지면서 이러한 이야기모임을 자주 조직해줄것을 공작원들에게 제의하였다.
공작원들은 적극분자들을 장악하고 료해하기 시작하였다. 그런 다음 그들가운데서 우리와 련계를 취하고 모임날자, 시간 및 장소들을 로동자들에게 통지하는 책임자를 선발하였다.
그가 곧 반일회조직의 지부책임자로 되였다. 그리고 그밑에 합숙별로 되는 분회책임자들을 선정하였다.
이처럼 우리는 로동자들속에 반일회를 조직하는 한편 그 조직을 강화하며 나아가서는 이곳 목재소 전체 로동자들의 계급의식을 빠른 시일내에 각성시키도록 하는데 힘을 넣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들을 통하여 적들에 대한 정보수집과 기타 필요한 방조들을 받도록 하였다.
혁명조직은 비단 목재소 채벌로동자들속에서만이 아니라 목재운반로동자들속에도 뿌리를 내렸고 그들을 통하여 혁명적인 영향은 급속히 사방으로 퍼져갔다.
우리 부대지휘부에서는 이렇듯 튼튼한 군중적토대와 군사지리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고려하여 훈춘, 왕청방면에서 활동하고있던 중대를 모두 이곳으로 집결시켰다.
어느덧 설명절이 닥쳐왔다.
온 부대가 한자리에서 설을 지내게 된 우리의 기쁨은 참으로 컸다.
목재소로동자들도 활기에 넘쳐 설준비를 하였다.
안길동지는 자신이 대원들과 함께 만든 퉁소, 피리를 비롯한 악기와 오락기구들을 로동자들에게 선물했다. 그리고 로동자들을 위안하기 위하여 연예곡목들을 준비하였다.
그믐날 밤 로동자들은 우리를 연회장으로 청하였다. 모임에 우리가 나타나자 모두들 일어서서 손을 마주잡고 《새해에 복을 많이 받으시오.》하면서 더운 차와 담배를 우리에게 권하였다.
우리는 그들과 한사람씩 어기여 자리에 앉았다.
안길동지는 로동자들에게 이렇게 푸짐한 자리를 베풀어준데 대하여 사의를 표하고 이번 설은 마치도 고향집 식구들과 함께 지내는것 같다고 하면서 인사의 말을 하였다.
안길동지의 말이 끝나자 그에게 한 로동자가 설음식을 가져왔다.
안길동지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원래 설음식은 할아버지들부터 받으셔야 하는 법이라고하면서 그 음식그릇을 나의 곁에 앉아있는 취사부로인에게로 가져왔다.
그리고 《우리 유격대원들은 모두가 로동자와 농민의 자식들이고 당신들을 위하여 혁명을 하는 군대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안길동지의 말은 로동자들을 몹시 감동시켰다. 우리는 축배를 들었고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얼마후에 하모니카를 불었으며 꽹과리도 울렸다.
초불을 든 로동자들의 《양거리춤》에 뒤이어 우리의 무장춤이 벌어졌다.
내옆에 앉아있던 취사부로인은 감격의 눈물을 억제할 길이 없었던지 소매깃을 얼굴로 가져가며 말하는것이였다.
《유격대어른! 내 평생에 애수하게 보낸 해를 모두 당겨올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 이 몸이 죽어서 널속에 들더라도 나는 당신들만은 못잊겠소.》
로인은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했다.
이럴 때 나와 마주앉아있던 한 로인이 나에게 술을 따라주고는 글썽해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내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소. 밥술 들자 어머니를 잃고 내내 고생속에서 자라온 그애는 그 애비를 위해 갖은 효성을 다 했지요. 그런데 세해전에 일본놈의 도로공사에 강제로 끌려나갔다가 감독놈과 맞섰다는 〈죄〉로 매를 맞아죽었소. … 나는 오늘까지 눈물로 세상을 살아왔소. 그런데 당신들이 우리 같은것을 이렇게 떠받들어주니 가슴에 맺혔던 원한이 봄날처럼 다 풀리오다. 정말이지 당신들을 보니 내 아들을 만난것 같소.》
로인의 눈에서는 기쁨의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리였다.
새날이 밝아왔다.
들창너머 타오르는 붉은 해살을 바라보며 우리의 가슴은 들끓었다. 우리는 새해에도 많은 원쑤를 쳐부시고 우리모두의 행복한 래일을 하루속히 당겨오자고 굳은 결의를 다졌다.
이처럼 벌목지대에서 겨울을 지내는동안 우리는 목재소로동자들과 끊을래야 끊을수 없는 깊은 인연을 맺었다.
그후 이곳 로동자들속에서는 50여명의 우수한 로동자들이 우리 부대에 입대하였으며 그들은 항상 전투에서 용감히 싸웠다. 그리고 나머지 로동자들은 언제나 우리를 잊지 않고 물심량면으로 되는 많은 원조를 하여주었다.
이렇게 우리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교시를 받들고가는곳마다에서 뿌린 혁명의 씨앗은 넓고넓은 동북땅에 열매를 맺었으며 그 이삭은 우리의 승리를 백배천배로 더하여주는 크나큰 힘의 원천으로 되었던것이다.
14. 왕우구인민들
김자린
1933년 초여름, 이 시기 내가 속한 연길현유격대는 왕우구일대를 근거지로 삼고 활동하고있었다.
이때 유격근거지내의 혁명군중들과 그 주변(적통치구역에 속해있는)의 인민들은 언제나 우리의 투쟁을 물불을 헤아리지 않고 방조해주었다. 그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시는 항일유격대만이 일제와 그 주구들인 착취자들을 물리치고 자기들의 리익을 옹호해준다는것을 깨달았기때문에 진정으로 우리를 따르고 또 우리와 일심동체가 되여 일제와 싸워나섰던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굶을지언정 유격대를 배곯게 하지 않으려 하였고 자기들이 헐벗을망정 우리를 추위에서 가려주려 하였다. 일제가 장성하는 우리 유격대의 력량에 겁을 집어먹고 왕우구유격구를 없애려고 매일처럼 달려들었을 때에도 우리는 인민들의 적극적인 방조와 지지밑에 사기충천하여 적을 물리치고 승리하였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마치 친혈육의 품마냥 그들의 사랑과 방조속에서 일제를 격멸소탕하는 싸움마다에 용감할수 있었으며 그들의 진정한 행복과 자유를 위해 몸바침을 더없는 영예로 생각하였다.
인민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이 미더운 확신은 언제어디에서나 우리 마음속에 간직되여있는 크나큰 힘이였으며 승리에로 이끄는 거대한 추동력이였다.
* *
어느날 지방공작대원들로부터 정보를 보내왔다. 그에 의하면 물자를 가득 실은 수십대의 위만군마차가 왕청현 시가지를 향해 연길시를 떠났다는것이였다.
지휘부에서는 곧 작전계획을 세우고 출동명령을 내렸다.
그때 나는 7~8명의 대원들을 데리고 구룡평 뒤고지에 나가 방차대의 임무를 수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것은 본부대가 마차를 습격할동안 구룡평수비대놈들이 달려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곧 구룡평방향의 산비탈에 매복을 하였다. 만단의 전투태세를 갖춘 우리는 놈들이 마차가 나타나기만 기다렸다.
당시 우리에게는 식량이 부족하였고 피복이며 신발들이 아주 귀했다. 따라서 우리뿐만이 아니라 특히 근거지내 인민들을 위해서도 이 전투는 매우 중요한 의의가 있었다.
(인민들에게 량식을 마련해주자. 그리고 헐벗은 어린이들에게 새옷을 갈아입히자.)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하며 구룡평 산굽인돌이를 주시하고있을 때 갑자기 그쪽에서 삐걱거리는 마차바퀴소리가 들려왔다. 놈들의 마차였다.
마차들은 점점 우리가 매복하고있는 둔덕앞으로 다가왔다. 마차들에는 짐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그리고 마차들 어간어간에는 위만군놈들이 걸어오고있었으며 마차의 짐꼭대기에도 몇놈씩 올라타고있었다.
어떤 놈은 총을 쥔채로 꺼떡꺼떡 졸고있는가 하면 어떤 놈은 제법 코노래를 부르고있었다.
우리는 온 정신을 가다듬어 습격조의 총소리를 기다리면서 방차대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구룡평 앞산을 주시하고있었다. 마지막마차가 습격조원들의 매복구역을 거의 들어서려할 때 《땅!》하는 총소리가 울렸다. 습격조원들의 총성과 벽력같은 함성이 불의에 일어나는바람에 놈들은 혼비백산하여 어쩔줄을 모르고 헤매다가 그 자리에서 쓰러지거나 도망치고말았다.
이 습격전투는 불과 몇분동안에 끝냈다. 습격조원들은 곧 마차들을 왕우구쪽으로 끌고들어갔다.
이때 총소리를 들은 구룡평의 수비대놈들이 예측한대로 우리 방차대가 매복한 맞은편 산고지에 올랐다.
놈들은 산등성이에 기관총을 걸고 왕우구곬으로 들어가는 마차들을 향하여 맹사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적과 우리와의 거리는 불과 500~600m밖에 되지 않았다.
적들의 기관총, 보총탄알은 마차를 끌고들어가는 습격조원들의 주위에 쏟아졌다.
우리 방차대원들은 지체없이 함부로 총질하는 적기관총을 향해 일제사격을 시작했다. 그러자 적들의 화력은 우리에게로 집중되였다. 놈들은 자기들의 수적우세를 믿고 집요하게 저항하였다.
그리하여 적아간에는 치렬한 화력전이 벌어졌다. 적들의 기관총탄은 길옆 바위돌에 맞아 돌가루를 일구기도 하고 나무아지들을 찢어 늘어지게 하였다.
(우리가 만약 여기서 한발자국이라도 물러선다면 인민들이 목마르게 기다리는 귀중한 물품을 빼앗길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끝까지 이 자리를 지켜내자. 놈들의 기관총탄이 왕우구로 들어가는 마차주변에 떨어지게 하여서는 안된다.)
우리의 가슴은 이러한 일념으로 불탔었다.
우리는 놈들의 맹사격을 막아내면서 결사적으로 싸웠다.
이러는사이에 수십대의 6두마차는 왕우구곬으로 깊이 들어가고있었다.
큰 도로에서 왕우구까지는 약 40리가 실했다. 그런데 큰길로부터 왕우구곬으로 들어가는 길은 이전에 닦아놓기는 했으나 며칠전에 비가 왔으므로 여간 험하지 않았다.
이 험한 길로 짐을 실은 6두마차행렬이 들어간다는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였다. 그리고 우리 방차대동무들이 미친듯이 달려드는 구룡평수비대놈들을 피로써 막아내는 그러한 위급한 순간이므로 마차를 잠시도 멈춰세울새없이 몰고들어가야 했다.
유격대원들은 마차앞뒤에 달라붙어 끌며 밀며 하였다. 적들에게 강제로 끌려온 마부들도 우리 유격대원들을 도와 있는 힘을 다하여 마차를 몰았다. 그런데 마차는 마음과는 달리 굼뜨게 움직이고있었다. 이때 왕우구어귀에 사는 적통치구역 인민들이 달려왔다.
그들은 산에서, 밭에서 일하던 쟁기를 그냥 들고 유격대를 돕기 위해 뛰여온것이다. 그들가운데는 로인들도 있었다.
적들이 쏘아대는 총알이 비발처럼 날아왔지만 이들은 자기 일신의 위험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만일 유격대를 도왔다는 사실이 원쑤놈들에게 알려지는 날에는 자기 목숨뿐만아니라 온 가족과 집까지 불속에 들어간다는것을 이들은 잘 알고있었다. 그러나 인민들은 그것을 가리지 않고 유격대를 도와나섰다.
이들은 항일유격대만이 자기들처럼 가난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싸우며 일제를 타도하고 우리 나라를 독립시키는 인민의 진정한 군대이라는것을 믿고 그에서 희망을 얻으며 사는 사람들이였다.
이러한 인민들이 유격대가 어려운 고비를 겪고있을 때 무엇을 주저하겠는가.
마차주변에 총알이 푹푹 떨어졌으나 이들은 마차를 밀기에 여념이 없었다.
마차들이 웅뎅이, 진창에 빠져 움직이지 못할 때마다 사람들은 마차를 떠올리고 산에 올라가 나무를 찍어깔았으며 아낙네들은 개울에 내려가 치마폭에 돌을 날라다 진창길에 깔았다.
사람들의 얼굴과 옷자락에는 흙물이 튀여서 누가 누구인지 분간하기조차 어려웠으며 옷은 갈래갈래 찢어졌다.
해는 벌써 서산에 기울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피로할대로 피로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하나 힘들다는 말한마디 입밖에 내지 않았다.
심한 구렁창에 마차가 빠져서 더 나오지 못하고 게다가 말들까지 피로해서 넘어져버릴 때마다 인민들은 달려들어 마차의 짐짝들을 일정한 장소에 등짐으로 운반하군 하였다.
이렇게 하면서 수십리 산길을 들어가야했으니 그 난관이란 이루 말할수 없었다.
마차대렬은 고성촌 고개밑에 이르고있었다. 고성촌 고개길은 산중턱으로 꼬불꼬불 뻗어져나갔으며 길의 한쪽은 절벽을 이루고있었다. 이 고개너머까지 마차들을 넘겨야 했다. 그런데 유격대원들과 인민들앞에는 보다 큰 난관이 가로놓여있었다.
마차들이 이 고개길에 들어서게 되면 적들과 가까운 직선거리에 놓이게 되므로 생길로 질러서올라가야만 하였다. 그런데 인제는 사람들도 피로할대로 피로했고 말들도 기운을 쓰지 못했다.
날은 점점 어두워갔다. 이러한 때에 왕우구유격구 인민들이 삽과 곡괭이, 도끼 등을 들고뛰여왔다. 그리하여 새로운 기세로 지름길을 닦기 시작했다.
깎아지른듯한 절벽의 바위돌을 허물어 길을 닦느라고 불꽃을 튕기는 사람들, 나무를 찍어서 홈타기에 까는 사람들, 험한 길에 돌과 흙을 펴는 녀성들… 이처럼 왕우구인민들은 유격대와 한덩어리가 되여 지름길을 닦았다.
유격대원들과 인민들의 하나로 뭉친 힘, 굴할줄 모르는 투지와 정열앞에 그 어떤 난관인들 극복 못하랴. 지름길은 닦아졌다. 마차들은 고개중턱을 오르기 시작했다.
《끝까지 싸웁시다. 지금 구룡평쪽에선 유격대동무들이 우리가 가는 길을 피로써 지켜주고있습니다!》
《우리모두 더욱 용기를 냅시다. 유격대와 인민들의 단결된 힘을 시위합시다!》
이렇게 서로 고무격려하면서 유격대와 한덩어리가 된 인민들은 있는 힘을 다했다.
그리하여 마차들은 고성촌고개우까지 거의거의 오르고있었다.
이때였다. 마차들중 한대가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뒤따르던 마차들도 껴묻혀서 뒤로 밀리게 되였다. 좁고 험한 언덕길에서 이것은 참으로 위급한 일이였다.
사람들은 밀려내리는 마차에 결사적으로 달라붙었다. 녀성들도 말고삐를 끌어당기며 채찍질했다. 이때 한 로인이 밀려내리는 마차바퀴밑에 몸을 던졌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그 로인의 뒤를 따라 바퀴밑에 몸을 던졌다. 이리하여 위험은 극복되였으며 하나로 뭉쳐진 이 힘앞에 다시금 두줄기의 자리를 내면서 마차는 언덕우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때야 로인은 《그러면 그렇겠지, 우리가 나아가는 길을 어느놈이 감히 막아낸담.》하며 소리쳐 말하였다.
마차들은 드디여 고성촌고개우에 올라섰다.
《야-!》하고 사람들은 서로 그러안으며 환성을 올리였다. 그리고 너무나 기뻐서 말잔등을 어루만지며 좋아하였고 젊은이들은 유격대원들을 공중으로 떠받들어 올리면서 소리높이 만세를 불렀다.
어떤 녀성들은 기쁨에 겨워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우리 방차대는 맡겨진 전투임무가 끝났으므로 즉시 철수하라는 련락을 받고 유격구로 돌아왔다.
우리가 철수하여 유격구에 와보니 로획한 물품은 굉장히 많았다.
광목, 신, 밀가루, 약품, 발동기, 철근… 이 모든 물품들은 유격대와 왕우구인민들이 피로써 쟁취한 물품들이였다.
왕우구유격구는 명절날처럼 흥성거렸다. 난생처음으로 새 운동화를 신은 아동단원들이 너무나 기뻐서 유격대원들의 목에 매여달리며 좋아하던 일이 지금도 나의 눈앞에 선히 떠오른다.
참으로 왕우구인민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시는 항일유격대에 자기들의 모든것을 의탁하였으며 유격대를 위하여서라면 목숨도 서슴없이 바치였다. 그들은 유격대와 일심동체가 되여 간고하고 험악한 투쟁의 길에서 언제나 용감히 싸웠다.
이런 혁명적군중에 의거했으며 혁명적군중에게서 힘을 얻었기에 우리 항일유격대는 15성상 일제와 싸워 승리할수 있었다.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삶과 문학 많이 본 기사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