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연재】 나와 주체사상과의 대화 (19)
제 1장 주체사상의 창시와 전일적 체계를 갖춘 학설로의 심화발전
제2장 김일성주의의 견인력의 원천
제 3장 인간위주의 철학적 세계관의 독창성문제
제 4장 민중중심의 사회역사관의 독창성 문제
제 5장 주체의 혁명적 수령관의 독창성 문제
제 1절 혁명적 수령관의 본질에 관한 논의
제 2절 '수령' 범주의 정치철학적 의미
제 3절 수령의 지위와 역할 문제의 논의
(1) 역사발전에서 수령의 지위와 '계급 화해론'
나: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은 "수령"의 철학적 범주를 부정하면서 역사발전에서 수령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에 대한 주체의 원리를 전면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역사발전에서 수령이 차지하는 지위에 관한 주체의 이론을 ‘관념의 외화’니 ‘계급화해론’이니 하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주: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의 반역사적, 반민중적인 기회주의적 정체는 역사발전에서 노동자계급의 수령이 차지하는 지위에 관한 전면 부정에서 뚜렷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김정일총비서께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셨습니다.
"수령은 인민대중의 자주적인 요구와 이해관계를 분석종합하여 하나로 통일시키는 중심인 동시에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인민대중의 창조적 활동을 통일적으로 지휘하는 중심입니다."(17)
역사의 주체인 민중이 자기운명을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개척해 나가기 위해서는 사상의지적으로 단결되고 조직적으로 결속되어야 하며 행동의 통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민중이 하나로 통일되는 것은 세계의 주인, 자기운명의 주인으로 되려는 민중의 본성적 요구이며 이러한 요구는 오직 하나의 중심을 가지고 하나의 영도를 받을 때에만 실현될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하나의 뇌수가 있는 것처럼 민중에게도 오직 하나의 뇌수, 하나의 중심이 있어야 합니다. 사회정치적 집단의 생명의 중심이 수령이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수령이 바로 민중을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통일시키는 중심, 영도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나: 그런데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은 민중을 하나의 사상의지로 단결시키는 중심이 수령이라는 주체적 이해를 ‘관념의 외화’라고 하면서 민중을 하나의 역량으로 조직적으로 결집시키고 통일적으로 영도하는 중심을 수령이라고 보는 것을 ‘계급화해론’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먼저 수령의 지위를 '관념의 외화’라고 주장하는 이해의 부당성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분석해야 하는지요.
주: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은 "어떤 사상이 설령 그것이 '수령’의 사상이라 할지라도 다양한 계급들 사이의 서로 상이한 계급적 이해를 동일한 것으로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 ...다양한 계급들의 서로 상이한 계급적 이해들을 동일한 것으로 만드는 그러한 '사상,’ 그것은 단지 계급적 당파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사상’이다.” (18) 라고 지적하면서 어떤 사상에 대하여 각이한 계급, 계층을 통일시킨다는 것은 ‘관념의 외화’이며 ‘관념론’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첫째로 ‘동일성’과 ‘공통성’을 바로 식별하지 못하고 서로 다른 개념을 같은 개념으로 해석하는 논리적 궤변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민중을 이루는 각이한 계급, 계층의 공동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사상을 제시하여 그들을 하나의 사회정치적 집단으로 결속시키는 주체의 진리를 ‘각이한 계급의 계급적 이익을 동일한 것으로 만드는 사상’이라고 왜곡하는 데서 그대로 노현되고 있습니다.
노동자, 농민, 근로인테리를 비롯한 근로민중은 계급, 계층에서 서로 다른 사회적 집단이지만 그들은 온갖 예속과 구속에서 벗어나 세계와 자기운명의 주인으로 살며 발전하려는 공통의 요구와 지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식민지사회의 근로민중은 민족적 예속에서 벗어나 민족의 자주성을 실현하려는 공동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가지며 사회주의 혁명시기에는 온갖 계급적 착취와 예속에서 벗어나 사회의 참다운 주인으로 살려는 공동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가지며 사회주의적 근로자로 개조된 근로민중은 다같이 인간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려는 공동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가집니다. 따라서 그들은 계급, 계층상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변혁운동 발전의 각이한 단계에서 자주적 요구와 지향의 공통성으로 하여 하나의 시회정치적 집단으로 결속될 수 있습니다.
사회변혁운동 발전의 매 단계에서 각이한 계급, 계층의 공동의 요구와 지향을 집대성하고 그 실현을 위한 과학적인 방도를 제시한 사상이 바로 수령의 사상입니다. 그러므로 수령의 사상은 각이한 계급, 계층을 이룬 민중을 하나로 통일단결시키는 사상적 기초로 됩니다.
둘째로 그들은 수령의 사상이 민중을 결집시키는 사상적 기초라는 주체의 진리를 곧 각이한 계급, 계층을 하나의 계급으로 만들어내는 ‘사상’으로 왜곡하고는 그것을 ‘관념의 외화’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자신이 부정할 전제를 조작하고는 그것을 비판하는 철학적 희극에 불과한 것입니다. 주체의 진리는 사상이 각이한 계급, 계층을 하나의 계급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수령의 사상이 각이한 계급, 계층의 공동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집대성한 사상인 것으로 하여 그들을 하나의 사회정치적 집단으로 결속시킨다는 것을 명시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이 어떤 사회든간에 한 사회를 그것에 관한 사상이 구현된 것으로 이해하는 관념, 다시 말해 현실을 관념의 외화로 간주하는 견해를 우리는 바로 관념론이라고 부른다."(19)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민중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집대성하는 것을 ‘선험성’이라고 생각하고 사상을 구현하는 활동을 ‘관념론,’ ‘관념의 외화’라고 주장하고 있는 이들은 인간의 목적의식적 활동을 ‘관념의 외화’로 보고 민중을 객관적 조건에 수동적으로 순응하여 사는 생물학적 존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역사는 새로운 사회체제가 그 체제를 세우는 데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의 집단, 계급의 형성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사회체제를 요구하고 그것을 세울 사람들의 집단이 먼저 나오고 그 다음으로 그들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한 사상이 형성되며, 그리고 나서 새로운 사회체제를 세우려는 선진사상으로 정신무장한 사회정치적 집단의 자주적이며 창조적이고 목적의식적인 투쟁이 전개되어 새로운 사회체제가 서게 된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셋째로 그들은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는 기성의 이론을 잣대로하여 수령의 사상이 각이한 계급, 계층을 통일시킨다는 주체의 진리를 ‘관념의 외화’로 매도하고 있습니다. 물론 인간의 사상의식이 생산양식, 사회의 경제적 조건을 반영하여 그것에 의하여 제약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조건 그 자체가 직접 어떤 사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닙니다. 생산양식, 사회경제적 조건은 어디까지나 각이한 계급, 계층으로 하여금 그들의 상이한 요구와 이해관계를 가지게 하는 객관적 조건이지 그 자체가 사상의식의 담당자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의식성을 본질적 속성으로 가지고 있는 유일한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객관적 경제적 조건에 의해 규제되는 경제적 이해관계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정치 제도에 의해 제약되는 정치적 이해관계도 가집니다. 개별적 인간들의 경우에는 사회경제적, 정치적 처지뿐 아니라 어떤 교육을 받으며 어떤 사회적 영향을 받는가에 따라 사상의식이 규정됩니다.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는 기성이론은 사상의식의 담당자가 인간이며 인간이 자기의 자주적 본성에 기초하여 주동적으로 객관세계를 반영한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역사 발전과정을 사회의 경제적 조건의 변화에 따라 자연사적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사적 과정으로 발전하는 사회경제적 조건을 반영한 것이 사회적 의식이라는 이해로서는 사회적 존재인 인간의 주동적이며 적극적인 활동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사회역사적 운동, 변혁운동의 합벅칙성이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논리를 조작 유포시키는 저의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 자신이 민중을 자주의식으로 정신무장시키고 통일된 변헉역량으로 만들기 위한 사업을 막아보려고 '사상가,’ ‘운동가’로서의 체면과 양심을 저버리는 데 있습니다. 그들식으로 말하면 이것이야말로 '관념의 외화’를 시도하는 행위입니다.
나: 다음으로 '계급 화해론’의 주장의 내용과 부당성을 어떻게 분석할 수 있겠습니까.
주: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은 민중의 영도의 중심으로서의 수령의 지위를 부정하기 위하여 각이한 요구와 이해관계를 가진 계급, 계층을 통일적으로 영도한다는 것은 '계급 화해’이며 그 통일적 영도의 가능성은 중간계급들이 ‘프롤레타리아트에로의 전락이 임박’했음을 예감하고 스스로 프롤레타리아트 의 입장을 취하는 경우라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첫째로 각이한 계급, 계층의 활동을 통일적으로 영도한다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당파성의 포기’이며 ‘계급화해론’(20)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노동자계급의 변혁투쟁은 노동자계급만을 위한 투쟁이 아닙니다. 노동자계급은 민족해방, 계급해방, 인간해방을 이룩함으로써 피압박, 피착취 근로민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계급입니다. 노동자계급의 이러한 역사적 사명은 자연발생적 운동으로서는 이룩될 수 없습니다.
수령은 변혁운동 발전의 매 단계에서 근로민중의 자주성에 대한 공동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정확히 반영한 투쟁목표를 제시함으로써 민중을 하나로 결집시키고 통일적으로 영도합니다. 이것은 온갖 착취와 압박을 청산함으로써만 자기해방을 이룩할 수 있는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본성과 그의 역사적 사명으로부터 나오는 혁명적 입장이며 활동원칙입니다.
변혁운동 발전의 매 단계에 상응하게 주체적 역량을 꾸리는 혁명적 원칙을 거부하고 노동자계급만이 혁명적이고 기타의 모든 계급은 비혁명적 계급이라고 보며 노동자계급은 그 어떤 계급과도 단결할 수 없고 공동투쟁을 할 수 없으며 노동자계급만의 힘으로 투쟁해야 한다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당파성’의 구호하에 변혁운동의 주체적 역량을 분열와해시키는 좌경기회주의적 언동입니다.
원래 적수공권의 민중이 발톱까지 무장한 압제자들과의 투쟁에서 의거하여야 할 창조력은 단결입니다. 혁명은 곧 단결이며 단결은 곧 승리입니다. 그런데 각계 각층의 군중을 하나의 정치적 역량으로 결집시키는 사업은 수령이 민중을 자주적인 사상의식으로 정신무장시키고 하나와 같이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회정치적 집단으로 결집시킴으로써만 이루어집니다.
둘째로, 그들은 노동자계급이 변혁운동에서 농민을 비롯한 소생산자계급을 결속시킬 수 있는 것은 소자산자계급이 노동자계급과의 계급적 이해관계의 공통성의 자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몰락의 임박성을 예감하고 그들 스스로가 자기들의 입장을 버린 결과라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계급들이 서로 다른 계급적 이해들을 가지고 있으므로 상이한 계급들이 하나의 계급적 이해로 통일단결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오직 프롤레타리아트 이외의 중간계급들이 자신들의 '프롤레타리아트로의 전락이 임박했음을 예감'하고 '자신의 현재의 이익이 아닌 미래의 이익을 수호하며 자신의 입장을 버리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입장을 위하는' 경우(21)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민족해방투쟁에서 민족자본가들이 노동자계급이 영도하는 반제민족해방 투쟁에 합류한 것은 그들이 '프롤레타리아트에로의 전락이 임박했음을 예감’하고 스스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입장'을 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반제반봉건민주주의 혁명에서 노동자계급의 영도밑에 농민이 봉건적 토지소유관계를 청산하기 위한 투쟁에 합류한 것도, 근로인텔리들이 민족해방혁명, 계급해방혁명, 사회주의 건설에 참여한 것도 ‘프롤레타리아트로의 전락이 임박했음을 예감’하고 '스스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입장을 취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사회역사적 운동의 사실자체를 억지로 부정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자들의 억지공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은 역사발전에서 수령의 지위를 부정하기 위하여 이처럼 서로 다른 개념을 억지로 같은 개념으로 해석하여 변혁운동 발전의 합법칙성과 원칙적 요구를 부정하고 역사적 사실 자체마저 부정하는 반민중적 반역사적 논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결코 맑스-레닌주의에 충실한 '사상가’도 아니며 우리 민족이 안고있는 민족분열과 계급분열을 해결하기 위하여 진지하게 사회변혁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운동가‘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 역사발전에서 수령의 역할과 '자각론'
나: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은 역사발전에서 차지하는 수령의 지위를 전면 부정하면서 수령의 역할에 관한 주체의 진리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은 역사발전에서 노동자계급의 수령의 역할에 관한 주체의 진리를 전면 부정하기 위하여 '자각론,’ ‘자생론’을 창조하였으며 수령의 역할과 민중의 역할을 분리대립시키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의 이른바 '자각론,’ '자생론’의 부당성을 어떻게 분석할 수 있는지요.
주: 김정일총비서께서는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밝혀주시었습니다.
“수령은 단결과 영도의 중심으로서 인민대중의 운명을 개척하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22)
수령은 민중의 사회변혁운동을 승리에로 이끄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수령은 민중의 자주적 요구와 이익을 정확히 반영한 과학적인 지도사상을 창시하여 자주성을 위한 투쟁의 진로를 명시합니다. 과학적인 지도사상을 가지는 것은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사회변혁운동의 선결조건입니다. 그런데 민중의 자주위업을 승리에로 이끌어줄 지도사상은 민중을 이루는 개별적 구성원들에 의해 창조되는 것은 아닙니다.
민중이 자기의 자주적인 사상을 가진다는 것은 하나의 정치집단으로서의 자기의 지도사상을 가진다는 것이며 그 지도사상이란 민중전체의 근본적 요구와 이익을 반영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이론과 방법을 말합니다. 이러한 지도사상을 사회의 어느 개별적 인간이 창조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사회변혁운동에서 민중이 지침으로 삼아야 할 지도사상은 오직 민중전체를 대표하는 수령에 의해서만 창시될 수 있습니다. 민중은 수령이 창시한 지도사상을 혁명적 세계관으로 삼고 자기운명을 개척하기 위한 투쟁을 벌려나가게 됩니다.
수령은 또한 사회변혁운동의 과학적인 지도사상으로 민중을 사상적으로 각성시킵니다. 지도사상이 있다고 해서 민중이 그것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자기의 혁명적 신념으로 만들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민중을 자주적인 변혁사상을 가진 사회적 존재로 만들자면 그들을 사상적으로 각성시켜야 합니다. 요구와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고 오랜 기간 낡은 사상의 영향을 받아온 각이한 계급, 계층을 정치사상적으로 각성된 자주적인 존재로 키우는 거창한 역사적 과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오직 노동자계급의 수령만이 수행할 수 있습니다.
수령은 또한 민중을 하나의 정치적 역량으로 조직화하는 위업을 수행합니다. 민중에게 있어서 단결은 곧 승리이며 분열은 패배를 의미합니다. 의식화되고 조직화된 민중만이 자기운명을 자신의 힘으로 개척해 나가는 역사의 주체, 자기운명의 주인으로 될 수 있습니다. 민중의 통일단결은 그들 속에 자주적인 사상이 보급된다고 하여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민중을 역사의 자주적인 주체로 조직화하는 것은 민증의 수령에 의해서만 이룩될 수 있습니다. 수령은 투쟁 속에서 단련되고 검열된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선진투사들로 전위당을 창건하고 당의 영도밑에 여러가지 형태의 대중단체들을 조직하여 거기에 각계각층의 군중을 망라시켜 민중을 하나의 조직적인 정치적 역량으로 결집시킵니다. 수령은 또한 민중에게 과학적인 전략전술을 제시하고 그들의 사회변혁운동을 승리에로 이끌어 나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은 ‘자각론’을 들고나와 수령의 역할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육체는 뇌수없이는 사고할 수 없지만 민중은 수령이 없이도 그들의 뇌수로 사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23) 라고 지적합니다.
민증이 스스로 선진사상을 만들어내고 그것으로 정신수양한다는 '자각론’의 부당성은 첫째로, 민중의 의식화가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보는 데 있습니다. 사회를 발전시키고 역사를 전진시키는 것은 언제나 민중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민중이 언제나 자기운명의 주인으로서의 자각을 가지고 역사를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개척해 나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착취계급사회에서 반동적인 통치체제와 착취체제가 서있고 사상적 우매화 책동이 집요하게 감행되고 있는 여건에서 민중은 자기의 자주적 요구와 이익을 자각하지 못하고 그에 맞는 투쟁목표를 내세우고 목적의식적으로 투쟁하지 못하였습니다. 한편, 사회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한 반동적 통치계급은 그것을 악용하여 저들의 특권적 요구와 이익을 신성화하고 사회의 공동의 이익인 것처럼 내세우고 많은 경우 민중에게 저들의 의사와 요구에 맞게 역사를 창조하게 하는 무거운 부담을 짊어지게 하였습니다. 민중은 수령에 의하여 비로소 자주적인 혁명사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역사에 의해 확증된 진리입니다.
'자각론’의 부당성은 둘째로 집단과 개인의 개념도 식별할 줄 모르는 무지의 산물이라는 데 있습니다. 민중이라는 사회적 집단은 개별적 사람들로 구성되지만 개인들의 산술적 합이 아니라 유기적인 결합체입니다. 개인은 나면서부터 육체의 한 부분인 뇌수를 가지지만 민중이라는 사회적 집단은 그를 구성하는 개별적 사람들의 뇌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적 집단의 생명의 중심, 뇌수를 가지게 됩니다. 민중은 수령을 모셨을 때에 비로소 자기의 생명의 중심, 뇌수를 가진 사회정치적 집단으로 됩니다.
민중을 구성하는 개별적 인간들이 뇌수를 가지고 사유하기 때문에 민중이라는 사회적 집단도 개별적 사람들의 그 생물학적 뇌수로 자기의 사상을 만들어 내고 스스로 자각한다는 것은 황당한 논리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은 또한 '자생론’을 창조하여 수령의 역할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주: "자기 자신을 지배계급으로 조직한 프롤레타리아트는 스스로 국가기구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24) 라고 그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여 민중이 수령의 영도없이 스스로 국가기구도 만들고 당도 창건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민중의 조직화가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변하는 것으로 언어도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이 역사발전에서 수령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전면 부정하는 것은 결국 수령과 민중을 분리대립시키고 역사발전에서 민중이 노는 결정적 역할도 부정하는 것으로 된다고 생각합니다.
주: 그렇습니다.
김정일총비서께서는 다음과 같이 해명해주셨습니다.
“수령의 역할, 당의 역할, 대중의 역할은 언제나 하나로 통일되어 있습니다."(25)
변혁운동의 주체는, 수령, 당, 대중의 통일체입니다. 수령, 당, 대중이 하나로 결합되어 3 위일체를 이루어야 민중은 변혁운동의 자주적 주제로 될 수 있는 것만큼 수령, 당, 대중을 분리시키거나 대치시켜서는 안됩니다. 당과 수령의 영도를 떠나 민중이 역사의 자주적 주체로 될 수 없으며 민중과 떨어진 당과 수령은 역사를 향도하는 정치적 영도자로서의 생명을 가질 수 없습니다. 민중과 떨어진 수령은 수령이 아니라 하나의 개인이며 민중과 떨어진 당은 당이 아니라 하나의 개별적인 집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역사발전에서 수령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에 대한 주체의 진리는 민중이 어떻게 역사의 자주적 주체로 되며 자기의 사명을 다해나가는 위력한 존재로 되는가를 명시하여 줍니다. 역사의 자주적 주체, 자기운명의 주인으로서의 민중의 지위는 곧 탁월한 수령을 최고수뇌로 모신 민중의 지위이며 세계를 개조하고 자기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민중의 역할은 곧 탁월한 수령의 영도를 실현해 나가는 민중의 역할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민중을 중심으로하여 전개된 주체의 사관, 주체의 변혁론은 곧 수령문제를 근본핵으로하여 전개된 사관이며 변혁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역사별전에서 수령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에 관한 주체의 이론에 의하여 역사발전에서 민중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 민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변혁운동의 합법칙성, 역사발전의 합법칙성이 깊이 있게 해명되고 완벽한 이론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제 4절 수령을 모시는 자세와 입장의 논의
(1)수령을 모시는 자세와 입장, ‘종교적 교권주의' 주장의 저의
나: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은 주체의 혁명적 수령관을 거부하기 위하여 수령에 대한 민중의 충효성에 대하여 여러가지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수령을 모시는 주체주의자들의 자세가 본질적으로 종교적이라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26) "주체사상의 혁명적 수령관은...근본에 있어서는 종교 즉 중 세기적인 교권주의와 다르지 않다…”(27) 그것은 "봉건적 윤리관”(28)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주: 수령을 모시는 민중의 충효성을 ‘종교적 교권주의,’ '봉건적 윤리관’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황당한 논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정일총비서께서는 다음과 같이 밝혀주셨습니다.
"수령은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최고뇌수로서 집단의 생명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에 수령에 대한 충실성과 동지애는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것으로 됩니다."(29)
변혁의 주체로서의 민중의 최고뇌수, 사상과 영도의 중심, 민중결집의 중심인 수령에 대한 충성, 사회정치적 생명의 어버이인 수령에 대한 효성은 수령을 받들어 모시는 민중의 기본자세와 입장이며 품성입니다. 수령에 대한 민중의 충효성은 사회정치적 집단의 생명이 개인의 생명의 모체라는 집단주의적 생명관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인간에 있어서 가장 귀중한 것은 육체적 생명보다 사회정치적 생명이며 개인의 생명보다 사회적 집단의 생명입니다.
민중의 자주적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한 사상을 신념으로 삼고 그 실현을 위한 정치조직의 한 구성원으로서 받게되는 사회정치적 생명은 결국 수령의 사상을 실현하기 위해 결집된 사회정치적 집단을 모체로 하여 받게되는 사회적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생명의 모체인 수령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정치적 집단에 충효성을 다하는 것은 그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자신이 지니고 있는 사회정치적 생명의 근본적 요구입니다. 사회적 집단의 생명이 있고서야 그 한 구성원인 개인의 사회정치적 생명도 있을 수 있습니다.
수령에 대한 민중의 충효성은 또한 자기운명의 주인, 세계의 주인으로 되기위한 근본적 요구이며 자기운명의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한 근본적 요구입니다. 변혁의 자주적 주체, 자기운명의 주인으로서의 민중의 지위는 위대한 수령을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최고뇌수, 결집의 중심으로 모신 민중의 지위이며 변혁의 자주적 주체, 자기운명의 주인으로서의 민중의 역할은 수령을 최고영도자로 모시고 그의 영도를 전면적으로 실현해 나가는 민중의 역할입니다. 그러므로 수령을 모시는 민중의 자세와 입장은 중효성으로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 ‘충효’의 개념은 과거 봉건시기에도 있었고 봉건적 윤리의 기초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은 바로 그 봉건적 ‘충효’를 주체의 충효관과 동일시함으로써 수령을 모시는 민중의 주체적 자세와 입장을 부정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여기에 대하여 분석해 주셨으면 합니다.
주: 김일성주석께서는 오랜 경륜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하시었습니다.
“우리는 삼강오륜을 덮어놓고 나쁜 것이라고 보지않으며 그것을 공산주의 이념에 인위적으로 대치시키고 그 도덕과 배치되는 것이라고 비평하는 사람들의 극단적인 견해도 용납하지 않는다. 나라를 섬기고 받드는 신하의 도리가 무엇이 나쁘고 부모를 공경하는 자식의 효도가 어찌 법도에 어긋나는 행위로 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러한 도덕관념이 봉건적인 국가사회제도를 합리화하고 인민들을 무저항과 맹목적인 굴종에로 내모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지 인간 본연의 도덕적 기초를 강조하는 삼강오륜의 원리적 측면은 결코 부인하지 않는다."(30)
수령에 대한 민중의 충효성은 사회정치적 집단의 생명의 중심을 받들고 옹호하는 것이 곧 고귀한 사회정치적 생명을 간직하고 빛내이는 것이라는 자각에 기초한 것으로서 '왕’이나 '황제'가 자신을 '천자’로 내세우고 인간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하면서 맹목적인 숭배와 복종, '자기 희생’을 강요하던 ‘충’의 개념, 부모에게 맹목적으로 굴종하던 '효’의 개념과 근본적으로 구별됩니다. 충효에 관한 문제에서는 응당 무엇을 위한 충효이며 누구를 위한 충효냐 하는 문제가 세워져야 합니다. 억압자를 위한 ‘충효,’ ‘불의’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충효,’ 이해타산을 앞세우는 ‘충효’는 참다운 충효라 말할 수 없습니다.
주체사상은 충효의 문제를 민중중심의 관점에서 집단주의적 생명관에 기초하여 고찰합니다. 수령에 대한 민중의 충효성은 자주성을 생명으로 하는 사회적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가장 진실하고 숭고한 사상감정이며 사회정치적 생명체안에서 수령과 민중간의 정치윤리입니다.
개인주의적 생명관에 기초한 봉건적 정치윤리는 첫째로, 육체적 생명에 대한 맹목적 복종의 정치윤리입니다. 부모 형제 처자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의 질서가 그것입니다. 둘째로,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권리와 의무, 지배와 복종의 정치윤리입니다. '왕’을 비롯한 봉건통치 계급에게 절대적인 권리, 지배의 권리를 부여하고 민중에게 복종의 의무만을 강요하는 정치질서가 그것입니다. 셋째로, 봉건통치 계급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하여 민중의 자주성을 유린하는 정치질서입니다.
그러나 집단주의적 생명관에 기초한 '이민위천'의 정치윤리, 충효의 정치윤리는 첫째로, 사회정치적 생명체안의 혁명동지들 사이의 정치윤리입니다. 공산주의자들에게도 부모, 형제, 처자들 사이의 육친적 사랑이 있으며 공산주의자들은 그것을 대단히 귀중하게 여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들은 혈육들사이의 육친적 사랑을 민중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에서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동지적 사랑에 바탕을 둠으로써 가장 공고하고 값있는 사랑으로 승화시키며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공고한 발전에 이바지하도록 합니다.
둘째로, 수령과 민중사이의 관계를 사회정치적 집단의 생명의 중심과 개별적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로 봅니다. 수령에 대한 민중의 충효성의 의리는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중심인 수령과 조직사상적으로, 동지적으로 결합되어야 사회정치적 생명을 지닐 수 있으며 민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고 자기운명의 주인으로 될 수 있다는 자각에 기초한 것입니다.
셋째로, 그것은 사회적 인간의 자주성을 존중하고 발양시키며 자주적 주체를 강화함으로서 자주위업의 실현을 보장하는 인간관계의 질서입니다. 사회정치적 생명의 본질, 인간운명개척의 합법칙성에 대한 분석과 거기에서 수령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에 대한 과학적 해명에 바탕하여 정립된 것이 바로 "이민위천"의 정치철학에서 새롭게 정립된 "충효"라는 개념의 내용입니다.
따라서 수령에 대한 가장 뜨겁고 순결한 ‘충효성의 의리’를 ‘종교적 교권 주의'니 '봉건적 윤리관계의 대체'니 하는 것은 그 어떤 논리적 합당성도, 역사적 근거도 없는 철학적 무지의 극치이며 수령과 민중을 분리대립시키려는 반민중적 반혁명적 의도가 그 밑에 깔려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2) '수령복'과 '인민복'
나: 오늘 이북의 민중은 '수령복’에 대하여 자긍심에 넘쳐 자랑하며 김정일총비서께서는 '인민복’에 대하여 자랑하고 계십니다. '수령복’과 '인민복’은 민중중심의 사회주의인 이북 사회에서 처음으로 형성된 숭고한 사상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이러한 사상감정에 대하여 간단히 개괄해 주셨으면 합니다.
주: ‘수령복’과 '인민복’은 '이민위천'의 정치가 구현된 민중중심의 사회주의 사회에서 처음으로 형성된 숭고한 사상감정이며 수령, 당, 대중이 일심단결, 혼연일체를 이루게 된 사상감정입니다.
김정일총비서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셨습니다.
"인민들에게 있어서 빛나는 예지와 탁월한 영도력, 고매한 덕성을 지니고 불멸의 업적을 이룩한 것으로 하여 인민대중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 수령의 영도를 받는 것보다 더 큰 행운은 없다...인민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불행은 지도자를 잘못 만나는 것이다."(31)
민족, 민중이 얼마나 큰 힘으로 자기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위대한 민족, 민중으로 되는가 하는 것은 결코 영토의 크기나 민족의 대소, 역사의 장단, 자연자원의 다소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수령의 영도를 받는가, 받지 못하는가 하는 데 의하여 규정됩니다. 구소련과 동유럽의 민족, 민중이 겪고 있는 오늘의 재난과 불행은 민족, 민중에게 있어서 가장 큰 불행은 지도자를 잘못 만나는 것이라는 진리를 현실로 확인해 줍니다. 이북 민중의 세계적인 존엄과 영향력, 불패의 위력은 탁월한 수령인 김일성주석과 김정일총비서를 수위에 모시고 혁명과 건설을 수행해 온 데 있습니다.
수령의 위대성은 그 사상의 위대성, 영도의 위대성, 풍모의 위대성에 있습니다. 김일성주석과 김정일영도자께서는 인간중심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시고 심화발전시키시어 민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는 사상, 즉 <김일성-김정일주의>를 확립하시었습니다. 김일성주석과 김정일총비서께서는 주체사상을 현실에 구현하시어 두차례의 혁명전쟁에서 제국주의를 격파하시고 민족의 자주독립을 이룩하고 수호하시었습니다. 오늘은 제국주의자들의 집요한 고립압살 책동을 짓부수고 민중중심의 주체사회주의를 사회주의의 보루로 옹호고수하고 빛내이시었으며 두단계의 사회혁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시어 이북 땅위에 민중중심의 사회주의, 애국애족의 사회주의를 튼튼하게 확립하시었습니다.
그 폭과 심도에 있어서, 사회변혁의 단계별 임무의 해결에 있어서, 그 속도와 영향력에 있어서, 김일성주석과 김정일총비서와 같은 거대한 업적을 이룩한 민중의 위대한 수령은 아직 역사는 알지 못합니다. 김일성주석과 김정일총비서께서는 "이민위천," “이신위민”을 생활의 본령으로 삼으시고, ‘민중행 열차’에 오르시어 민중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시며 민중과 무릎을 마주하시고 국사를 의논하시어 노선과 정책을 입안, 책정하시고 모든 것을 민중의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에 복종시켜 오셨습니다. 수만리의 현지지도 노정은 민중에 대한 김일성주석과 김정일총비서의 가장 뜨겁고 진실한 사랑과 봉사의 서사시로 수놓아진 '이신위민'의 노정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북 민중은 김일성주석과 김정일총비서를 모신 크나큰 행복에 대하여 ‘수령복'을 지닌 가장 영광스럽고 긍지높은 민족, 민중이라고 자랑하며 수령을 충효성을 다하여 받들어 모시고 있습니다. 김일성주석과 김정일총비서를 숭앙하는 이북 민중의 충효성의 의리는 무엇보다 주체의 신념에 기초 한 가장 뜨거운 충효심입니다.
1992 년 10월 제 3차 남북적십자 회담차 이북에 갔던 남측의 한 성원이 만수대의 정상에 높이 모셔진 김일성주석의 동상을 보고 그 앞에 있던 15 세 가량의 소녀에게 동상의 받침돌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가고 물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때 갑작스러운 질문에 의아한 표정을 짓던 그 소녀는 그가 적십자 회담차 남에서 온 성원이라는 것을 알자 별빛같은 눈을 반짝이며 "아버지 원수님의 동상 받침돌의 무게는 북남 5 천만 민족의 심장을 합한 무게와 같습니다." 라고 또렷하게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한 방울의 물에 온 우주가 비낀다는 말이 있는데 평양소녀의 이 한마디 말에 이북 민중의 수령에 대한 충효성의 신념이 그대로 비껴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김일성주석과 김정일총비서에 대한 이북 민중의 충효성의 의리는 또한 그 어떤 어려운 광풍이 불어와도 티와 먼지가 앉지 않고 새벽이슬마냥 맑고 순결한 충효심입니다. 그것은 김일성주석과 김정일총비서를 모시어 우리 민족, 민중의 존엄이 있고 빛나는 과거가 있었으며 영원히 융성번영할 미래가 약속되어 있다는 자각과 확신에 기초한 것입니다. 김일성주석과 김정일총비서에 대한 이북 민중의 충효성은 또한 항일의 준엄한 불길 속에서 뿌리내리고 오늘까지 이어져 온 가장 뿌리깊은 충효성이며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 민족, 민중의 가슴 속에 깊이 새겨진 것입니다.
김일성주석과 김정일총비서에 대한 충효성의 의리는 이북 민중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또한 그 어떤 특정한 계급, 계층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해내외의 모든 계급, 계층을 포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민족, 민중의 가장 폭넓은 추앙심입니다. 특히 김일성주석을 잃고 김정일총비서를 받들어 나가는 민족, 민중의 충효성의 의리는 더욱 뜨겁습니다. 사상과 영도, 풍모에서 김일성주석 그대로이신 김정일총비서를 높이 모신 우리 민족, 민중은 대를 이어 누리는 "수령복"을 더욱 가슴깊이 절감하며 해와 달이 다하도록 김정일총비서를 높이 받들어 모실 충효의 신념을 굳히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민족, 민중에게 있어서 김정일총비서는 곧 주체이십니다. 김정일총비서를 수령으로 높이 모시고 있기 때문에 이북 주체사회주의는 수령, 당, 대중의 일심일체를 더욱 강화하고 그 어떤 제국주의자들의 고립압살책동도 짓부수고 민중중심의 사회주의를 옹호고수하고 빛내어 나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민족, 민중에게 있어서 김정일총비서는 곧 승리이십니다. 김정일총비서의 탁월한 전략전술적 영도로 역사의 궤도를 역전시키려는 온갖 내외의 반동적 세력은 힘을 잃고 이북의 주체사회주의사회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북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위업, 민족, 민중의 자주위업은 주체의 궤도를 따라 힘있게 전진해 나가고 있으며 김정일총비서께서 계시는 한 주체의 혁명위업은 필승불패입니다.
오늘 우리 민족, 민중에게 있어서 김정일총비서는 곧 통일이십니다. 그분의 높은 권위는 남, 북, 해외의 민중을 하나로 결집시켜 통일의 주체적 역량을 이룩하게 하는 원천이고 담보입니다. 김정일총비서의 탁월한 사상과 영도는 남, 북, 해외의 모든 민중을 김일성주석의 통일유훈 관철에로 분기하게 하며 조국통일의 3 대기둥, 3 대헌장을 철저히 실현하여 조국통일의 성업을 완성할 수 있게 하는 지침이며 담보입니다. 대를 이어 "수령복"을 누리는 우리 민족, 민중과 같이 행복한 민중은 역사에 있어 본 적이 없습니다.
나: 김일성주석과 김정일총비서께서는 언제나 "인민복"에 대하여 자랑하시었습니다. 이번에는 이에 대하여 간단히 말씀해 주시지요.
주: 민중이 탁월한 수령을 모신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수령복'을 노래하고 충효성의 의리를 다할 때 수령은 "인민복"에 대하여 자랑하는 여기에 “이민위천" 사회의 정치윤리적 근본특징이 집약되어 있다고 보겠습니다.
김정일총비서께서는 다음과 같이 강조하셨습니다.
“우리 인민은 참으로 좋은 인민입니다. 우리 인민처럼 훌륭한 인민은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인민복을 누리고 있습니다."(32)
민중의 절대적인 신뢰, 존경과 사랑 속에서 삶의 보람과 행복을 찾고 언제나 민중을 위한 충복으로서의 사명을 앞에 내세우는 수령만이 "인민복"에 대하여 말할 수 있으며 그것을 긍지로 여기게 됩니다. 민중의 사랑과 신뢰, 사회적 집단의 사랑과 존경은 원한다고 하여 저절로 생기는 것도 아니며 그것을 권력으로써도 얻을 수 없고 재부로써도 살 수 없습니다. “이신위민"의 헌신적 복무와 거기에서 쌓은 업적과 공로로 하여 민중의 사랑과 존경, 절대적인 신뢰를 받게되고 민중의 요구와 의사를 집대성하는 중심, 조직적 결집의 구심점으로 민중과 혼연일체를 이루게 되는 것이 바로 민중의 탁월한 수령입니다.
김일성주석과 김정일총비서께서는 언제나 "이민위천." 즉 민중을 "하늘" 과 같이 여기시고 "이신위민" 즉 민중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생활의 본령으로 정치적 신념으로 삼으시었으며 민중을 "선생"이라고 부르시고 민중에게서 신심과 용기와 힘을 얻으셨다고 하시며 수령께 바치는 민중의 사랑은 무한대한 것이었다고 지적하시었습니다.
김일성주석께서는 전후의 어려운 시기에 종파분자들이 '인민생활’을 운운하면서 당의 노선을 반대하여 책동할 때에도 태성의 할머니가 종파분자들이 어떻게 시비해도 민중은 김일성장군님만을 믿는다고 한 말과 전쟁의 어려운 시기에 낙원기계공장의 한 여당원이 전쟁만 이기면 복구건설은 문제가 없으며 다 잘 살수 있다고 한 말에서 신심과 용기와 힘을 얻으시었다고 말씀하시었습니다. 또한 전후의 어려운 시기에 만톤의 강재만 더 생산하면 나라가 허리를 펴겠다고 하신 김일성주석의 호소에 적극 호응하여 6 만톤 능력의 분괴압연기에서 9 만톤을 생산할 결의를 다지고 12 만톤을 생산한 강선의 노동계급에게서 힘을 얻으시었다고 말씀하시었습니다.
수령을 정치사상적으로 목숨으로 옹호보위하고 그 어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수령의 교시를 무조건 관철하며 수령의 교시라면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으로 기적과 혁신을 이룩하고야마는 충효성의 의리, 이러한 민중을 가진 것이 바로 수령의 "인민복" 이라고 할 것입니다. “수령복"과 “인민복"은 그 기원을 같이 하는 것이지만 그 기초, 규정적 요인은 탁월한 수령의 영도에 있습니다. 수령은 민중을 "하늘"과 같은 존재로 내세우고 모든 것을 민중의 자주성의 실현에 복종시키며 민중을 "선생"으로 내세우고 언제나 민중과 무릎을 같이하고 나라의 국사를 의논하며 민중은 수령을 "하늘의 태양" "선생의 스승"으로 모시고 받드는 여기에 이북 사회의 정치윤리인 "수령복"과 "인민복"이 있습니다.
수령께 충효성을 다하는 위대한 민중은 탁월한 수령에 의하여 키워집니다.
김정일총비서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셨습니다.
"수령님께서는…인민들을 교양하시어 수령을 알고 당을 아는 훌륭한 인민으로 키워주시었습니다."(33)
위대한 수령을 모시어 위대한 민족, 민중이 있고 수령께 바치는 민중의 충효성과 민중이 누리는 행복 속에 "수령복" "인민복”이 있습니다. 위대한 수령을 모시고 사는 민족, 시대의 지도사상인 위대한 주체사상을 가진 민족, 민중중심의 사회주의, 애국애족의 사회주의 조국을 가진 민족이라는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 바로 여기에 <조선민족제일주의> 정신의 본질적 특징과 내용이 있습니다. 조선민족제일주의 정신은 사실상 "수령복"과 "인민복”을 누리며 수령, 당, 대중이 일심일체를 이룬 우리 민족의 위대성에 있습니다.
주
(17) 김정일, "주체사상교양에서 제기되는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 19 페이지
(18) "역사와 혁명," 192-193 페이지
(19) 위와 같은 책, 172 페이지
(20) 위와 같은 책, 192 페이지
(21) 위와 같은 책, 19 페이지
(22) 김정일, "주체사상교양에서 제기되는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 22 페이지
(23) “역사와 혁명," 178 페이지
(24) 위와 같은 책, 186 페이지
(25) 김정일, "주체사상교양에서 제기되는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 22 페이지
(26) “역사와 혁명," 218 페이지
(27) 위와 같은 책, 223 페이지
(28) 위와 같은 책, 223 페이지 참조
(29) 김정일, "주체사상 교양에서 제기되는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 22페이지
(30)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4권 431-432 페이지
(31) 김정일, "혁명적 당건설의 근본문제에 대하여," 13-14 페이지
(32) 김정일, "위대한 수령님을 영원히 높이 모시고 수령님의 위업을 끝까지 완성하자," 9 페이지
(33) 위와 같은 책, 11 페이지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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