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물주제 소설작가 허문길
조선인민들이 애독하는 소설들가운데는 허문길선생의 장편소설이 적지 않다.
그의 작품들은 전쟁물주제로 관통되여있는것이 특징이다.
허문길선생은 이렇게 말하였다.
《전쟁의 포화가 멎은지도 어언 70여년이 된다. 그러나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자기의 목숨을 아낌없이 바친 전승세대들의 위훈은 대대손손 전해지고있다. 내가 그들의 위훈을 전해가는 소설창작의 길에 들어선것은 후대들이 전쟁물주제의 소설들에 그려진 영웅들의 넋을 그대로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독자들이 보풀이 일도록 보고 또 보고있는 장편소설 《포성없는 전구》(1부-2부), 그 창작경위와 발행후기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 어느날이였다.
미제의 무력침공을 물리친 조국해방전쟁시기 영웅적위훈을 세운 용사들에 대한 소설을 쓸 결심을 안고있던 허문길선생은 어느날 한 동료로부터 70고령의 녀성영웅(로남교, 당시 76살)이 평양시 만경대구역에 살고있다는 말을 듣고 즉시 취재길에 올랐다.
로남교녀성은 《먼저 가신분들이 나를 욕해요.》라는 짧은 말로 거절했다.
그러나 그는 락심하지 않고 녀성영웅을 계속 찾아갔다. 몇번의 걸음끝에 영웅을 다시 만난 자리에서 허문길선생은 《후대들에게 알려줄 의무가 있습니다.》라고 하며 몇번이고 설복하였다.
이렇게 되여 허문길선생은 왕년에 지와 미를 갖춘 미인으로 소문났던 녀성영웅과 마주앉게 되였다. 그때 영웅은 나이가 많고 전쟁시기 적들에게 체포되여 당한 모진 고문의 후과로 팔다리를 잘 쓰지 못하는 불편한 몸이였지만 지난 일들을 생동하게 기억하고있었다.
허문길선생은 꽃나이청춘을 조국에 바친 녀성영웅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끓어오르는 창작적흥분을 안고 펜을 달려 6개월만에 2부작으로 된 장편소설 《포성없는 전구》를 내놓았다.
발행후 하루는 그에게 소년단원들이 찾아와서는 《우리도 커서 선생님이 쓰신 소설의 영웅들처럼 살겠습니다.》라고 씩씩하게 말하였다.
허문길선생은 평안남도 평성시의 어느한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있는 녀선생에게서도 편지를 받았다. 녀선생은 장편소설 《포성없는 전구》를 감동깊게 보았다고, 제자들을 조국을 위해 자기의 귀중한 모든것을 깡그리 다 바쳐싸운 작품의 주인공과 같은 나라의 기둥감들로 키워내겠다고 하였다.
이렇게 허문길선생은 전국각지에서 날아오는 이러한 독자들의 편지를 받을 때마다 작가로서 커다란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군 하였다. 동시에 문학의 참의미를 재음미해보는 기회도 갖군 하였다.
바다속깊은 곳에서 진주를 캐내듯 소설속에서 아름다운 인간들을 형상해내여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속에 쪼아박아 그 진주처럼 인간의 안팎모양새를 다듬어주며 나아가서 사회를 더 훌륭히 가꾸어가는것, 바로 이것이 문학이라고 그는 확언하였다.
하기에 달리는 그의 펜끝에서는 수많은 진주들이 모습을 드러냈으며 그 진주들은 또 수많은 진주들을 낳았다.
그가 창작한 장편소설 《력사의 대결》(1부-4부)의 원형인 공화국영웅 성시백도 그 아름다운 진주의 하나이다.
처음 그는 성시백의 투쟁자료들을 보았을 때 창작적령감과 흥분속에 조선과 미국의 대결은 말그대로 수호자와 침략자와의 력사적대결이라는 종자를 찾아쥐였다.
이렇게 장편소설의 제목을 달아놓은 그는 주인공의 지위와 격에 맞게 폭이 넓고 심도가 있으며 지성미가 넘치는 대서사시적인 작품을 써보자고 마음먹었다. 무릇 창작적고충속에 작가의 키가 크는것은 사실이지만 허문길선생은 소설을 전개해나갈수록 신심이 없어지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한것은 력사의 대결을 펼쳐보이려면 어차피 당시의 시대모습을 정면에서 전면적으로 파헤쳐야만 하였고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도 이미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형상되여있었기때문이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실지 력사에 대결한다는 심정으로 탐구의 낮과 밤을 이어 영웅의 품격과 지성도, 철학적심도가 훌륭히 보장된 다부작장편소설 《력사의 대결》을 내놓게 되였다. 소설은 출판되여나오자마자 독자들속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탁월한 전승업적을 감명깊이 보여주는 장편실화소설 《령장의 보검》을 비롯하여 10여편의 전쟁물주제의 소설과 100여편에 달하는 단편소설, 실화, 영화문학, TV련속극문학, 장막극을 창작하였다.
올해 77살인 허문길선생은 독자들이 나름대로 머리속에 그려보는 표상과는 전혀 달리 너무도 평범하고 소박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 소박함속에 강한 극성과 간결하면서도 통속적인 언어구사, 실감있고 생동한 세부묘사로 특징지어지며 치차처럼 맞물린 째인 구성과 여러 분야의 지식을 담고 한번 붓을 들면 놀라운 속도로 글을 써나가는 문필가로서의 남다른 창작적기풍이 슴배여있다.
함경북도 화대군의 궁벽한 산골에서 여섯형제의 셋째아들로 태여난 그는 어릴적부터 책읽기를 즐겨했고 군사복무시절에는 문학작품을 창작발표하였다.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를 졸업하고 어느한 중앙기관에서 사업하던 그는 50대에 이르러서야 작가대렬에 들어섰다.
창작의 나날 그는 김일성상계관인의 값높은 영예를 지니였으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보내주신 일흔번째 생일상을 받아안았을뿐 아니라 두해전 4월에는 보통강강안다락식주택구에 보금자리를 폈다.
지금 그는 경루동에 자리잡은 보금자리의 불밝은 서재에서 새 작품창작을 다그치고있다.
불타는 열정과 뛰여난 재능으로 조국인민들의 반제반미투쟁과 애국주의교양에 큰 공헌을 한 허문길선생을 인민은 존경하고있으며 그의 다음작품을 기다리고있다.
연 옥 2024-07-24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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