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단합과 통일에 바친 애국의 삶 (3)몽양 려운형선생과 그 자녀들이 받아안은 가슴뜨거운 사랑의 이야기민족단합과 통일에 바친 애국의 삶 (3)
- 몽양 려운형선생과 그 자녀들이 받아안은 가슴뜨거운 사랑의 이야기 -
우리 민족의 조국통일운동사를 돌이켜보면 그 갈피마다에는 민족의 태양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서 공헌한 사람들을 언제나 잊지 않으시고 그들모두에게 영생하는 삶을 안겨주시고 그 혈육들까지 친어버이심정으로 보살펴주신 수많은 사랑의 이야기들이 새겨져있다.
그 가운데는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 생을 바친 려운형선생과 그 자녀들이 받아안은 가슴뜨거운 사랑의 이야기도 있다.
* *
이날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는 려운형선생이 알고싶어하는 정치적문제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어느덧 시계는 오후 1시를 가리켰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서시며 말씀하시였다. 《려선생, 이젠 점심식사하러 갑시다.》 려운형선생은 따라일어서며 위대한 수령님께 어데로 가시려는가고 말씀드렸다. 《가기는 어델 가겠습니까. 우리 집에 가지요.》 그이께서는 기별도 없이 왔으니 집에 가서 조밥이나 같이 들자고 웃으시며 말씀하시였다. 초면인 자기를 이토록 허물없이 따뜻하게 대해주시는 수령님의 너그러우신 풍모에 가슴뜨거움을 금할수 없었던 려운형선생은 행복한 얼굴로 그이를 우러러보며 혹시 국수집에라도 보내면 어찌나 했노라고 하면서 역시 웃음으로 대답을 드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이끄시면서 친근하게 말씀하시였다. 《국수집에는 왜 가겠습니까. 국수집에 가면 더 맛있는것이 있겠지만 우리 집에 가서 된장국이라도 같이 드십시다.》 위대한 수령님의 댁으로 간 그는 생각했던바와는 너무도 다른 방안과 가구들을 보며 자기 눈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정갈하고 깨끗하기는 하였으나 너무나도 검소하였기때문이였다. 이윽고 식사가 들어왔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겸상을 들고들어와 조심히 내려놓으며 식찬이 변변치 않지만 많이 잡수세요라고 하시면서 려운형선생에게 인사를 하시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정숙동무, 이분이 바로 려운형선생이시오.》라고 하시자 김정숙동지께서는 인사가 늦었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광복전에도 잘 싸우시고 지금도 견결히 싸우시는 선생께 경의를 드립니다라고 허리굽혀 인사를 하시였다. (바로 이분이 이름난 백두산의 녀장군이란 말인가. 그런데 어찌 이토록 수수하고 평범할수 있으랴.) 려운형선생은 김정숙동지의 영채도는 눈매, 당돌하고 민첩한 몸가짐, 맑고 청아한 목소리, 티없이 밝은 미소, 온몸에 배여있는 담찬 기상을 경건한 마음으로 우러러보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귀한 손님이 내 집에 왔는데 식찬이 변변치 않아 미안합니다. 이제 통일정부를 세운 후 선생께 꼭 성찬을 대접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며 그에게 수저를 들려주시였다. 자개도 박지 않은 보통 밥상우에는 팥물을 올린 조밥에 구수한 토장국, 두부찌개, 무우장절임, 산나물볶음, 고추절임, 조개구이 등외에 색다른 찬도 없었다. 려운형선생이 수수한 밥상에 의혹을 감추지 못하고있는데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선생이 술, 담배를 안하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내 집에 와서야 한잔 해야지요.》라고 하시면서 놋잔에 술을 가득 부어 려운형선생에게 주시였다. 그는 《예, 고맙습니다. 달게 들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단숨에 잔을 비웠다. 사실 려운형선생은 해방전이나 해방후나 술을 입에 대본적이 없었다. 원래 그는 일찌기 술과 담배를 배웠지만 《을사5조약》조작후 국채보상운동에 참가하면서 술과 담배를 딱 끊었다. 조선이 독립되기 전에는 절대로 입에 대지 않겠다는 결심을 그는 독실하게 지켜왔다. 해방이 되자 친지들이 이젠 마시라고 권했지만 려운형선생은 나라가 통일된 다음에야 마시겠다고 하며 여전히 술,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와 김정숙어머님께서 부어주시는 술을 다 마셨던것이다. 려운형선생은 위대한 수령님께 끊었던 술을 40년만에 처음으로 마셨다고 하면서 꿈속에서만 그리던 장군님을 만나뵈운 오늘은 자기가 세상에 다시 태여난 날이며 독립운동을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라고 말씀올렸다. 그러면서 그는 장군님께서 손수 부어주신 약주를 달게 마시고나니 웬일인지 지나온 곡절많은 인생이 돌이켜진다고 하면서 미국에 기대를 걸고 독립청원서를 써서 빠리강화회의에 보낸 일도, 쏘련(이전)의 힘을 빌어 독립을 해볼가, 중국의 힘을 빌어 독립을 해볼가 정신없이 뛰여다닌 일도 스스럼없이 말씀드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허물도 많고 과실도 많은 려운형선생을 탓할 대신 모진 괴로움과 역경속에서도 끝까지 민족적지조를 지켰다고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화제는 다시 정치문제로 옮겨졌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고나서 려운형선생은 장군님의 말씀을 들으니 답답하던 가슴이 후련해지고 조선이 나아갈 길이 환히 내다보인다고, 남조선에서는 물론이고 외국의 이름있는 정치가들도 많이 만나보았지만 장군님 같으신분을 만나뵙기는 처음이라고, 겉치레가 아니라 진심으로 말씀을 드린다고 하면서 장군님께서 계시여 우리 조선에 대통운이 텄다고 감탄을 금치 못해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는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힘자라는껏 일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는 그날로부터 오래동안 위대한 수령님의 댁에 머물러있으면서 따뜻한 지도와 분에 넘친 배려를 받았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은 탁월한 령도력을 지니신 희세의 정치가이실뿐만아니라 한없이 고매한 인민적풍모를 지니신 인민의 수령이시였다. (계속)
이번 연재의 글은 세 번째이다. 이 글은 2015년 3월 23일 《조선의 오늘》에 연재된 내용이다.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 생을 바친 여운형선생과 그 자녀들이 받아 안은 가슴 뜨거운 사랑의 이야기를 9회에 걸쳐 연재하겠습니다. (프레스아리랑 편집국)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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