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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조선 정당, 사회단체대표자연석회의 75주년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23/04/21 [14:47]

남북 조선 정당, 사회단체대표자연석회의 75주년

프레스아리랑 | 입력 : 2023/04/21 [14:47]

남북 조선 정당, 사회단체대표자연석회의 75주년

 

 

 

 

우리민족끼리 매체는 지난 19일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대표자 연석회의 75주년을 맞이하여 김일성주석과 김 구선생의 일화를 소개하였다.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로서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정착하기 위한 절대절명의 사명이 요구되는 이 시기에 항일운동과 단일정부반대 투쟁등 통일국가 건설을 위해 사상을 초월해 노력했던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대표자 연석회의를 다시한번 돌아보는 귀한 내용을 소개한다.

 

 

 

아래 전문은 다음과 같다

 

 

 

그날의 인장은 말한다

 

 

 

주체37(1948)4월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대표자련석회의가 진행된지도 어느덧 75돌기의 년륜이 새겨졌다.

 

해방직후 복잡다단한 정치정세속에서 극소수 민족반역자들을 내놓고는 남조선의 거의 모든 정당, 사회단체대표들과 완고한 반공민족주의자들까지 참가한 력사적인 민족적대회합의 그날에로 추억의 배를 노저어 가면 잊지 못할 하나의 이야기가 가슴뜨겁게 안겨온다.

 

그것은 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한 남조선의 이름있는 우익정객의 한사람인 김구선생이 위대한 수령님께 바치려했던 상해림시정부의 인장이 전하는 이야기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의 한생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고 사상과 령도에 구현하여 현실로 꽃피우신 인민적수령의 숭고한 한생이였다.

 

김구선생으로 말하면 지난날 공산주의자들을 배척하고 테로행위를 서슴지 않고 해온 사람으로서 민족주의자들의 집단인 상해림시정부를 미래의 조선정부, 자기를 조선민족의 지도자로 내세우면서 해방이 되자 서울에 돌아와 리승만과 정권쟁탈전을 벌려온 완고한 민족주의자였다.

 

그러기에 그는 남북련석회의초청장을 받고서도 자기의 비서를 평양에 보내여 자기와 같은 과거를 가진 사람들이 회의에 참가하면 어떻게 대하겠는가를 알아보게까지 하였다.

 

일체 과거를 백지화한다는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에서 힘을 얻은 김구선생은 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을 떠나기 앞서 기자들에게 이렇게 자신의 립장을 표명하였다.

 

유엔이 아무리 단선단정을 수립한다 하더라도 이것은 우리가 자손만대에 넘겨줄수 있는 정부가 될수 없는것이다. 나는 외국인의 유혹과 국내 일부인의 반대를 물리치고 흔연 남북회담에 참가하기로 결정하였다. 공수래공수거(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간다는 뜻)라고 기우하는 이도 있으나 우리의 전도에는 위대한 희망이 보이고있다. 민족의 정의와 단결을 위하여 실패를 불문하고 독립과 활로를 찾으러 나는 결연 떠나겠다.

 

북행길에 올라 련석회의에 참가하여 꿈만 같은 나날을 보내면서 김구선생의 마음속에는 하나의 생각이 끝없이 갈마들었다. 그것은 자신이 오랜 기간 한시도 몸에서 떼지 않고 소중히 간직해온 상해림시정부의 인장을 위대한 수령님께 바칠 결심이였다.

 

그의 이러한 결심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니신 투철한 자주의 신념, 숭고한 민족애와 고결한 인품에 대한 매혹의 분출이였고 수령님의 령도밑에 눈부시게 발전하는 북반부의 현실을 목격하면서 내린 결단이였다.

 

민족주의자들이 이 나라의 법통으로 여기고 생명과 같이 여겨오던 상해림시정부의 인장을 꺼내놓으며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 절절하게 말씀올리였다.

 

장군님, 조선이 정말 주인을 만났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을 이끄실분은 장군님뿐이십니다. 나는 모든것을 장군님께 맡깁니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간절한 청을 만류하시며 말씀하시였다.

 

선생이 내놓은 <상해림시정부>의 인장은 그냥 가지고 가십시오. 내가 그 인장은 받아서 무엇하겠습니까. 우리에게는 그저 인민대중의 두터운 신임이 있으면 됩니다.

 

우리에게는 그저 인민대중의 두터운 신임이 있으면 됩니다.

 

이것은 인민을 제일로 내세우시고 인민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간직하신 우리 수령님께서만이 터놓으실수 있는 진정이였다.

 

해방전 반일독립을 한다고 하면서 상해와 중경을 떠돌며 제노라하는 사람들을 만나보았어도, 해방후 남조선에서 주의주장이 서로다른 정객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어도 우리 수령님처럼 인민의 믿음을 법통보다 더 귀중히 여기시는 위인은 찾아보지 못한 김구선생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고 고귀한 가르치심을 받은 잊지 못할 그날 김구선생이 근로인민을 세상에서 가장 힘있는 존재로 굳게 믿으시고 자주독립국가건설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시는 김일성장군님의 사상과 뜻을 받드는 길에 여생을 다 바칠 맹세를 다졌을것이라는것은 그가 서울로 나가 미제와 리승만괴뢰역도의 민족분렬책동을 반대하는 투쟁의 길에 바친 애국의 삶이 잘 말해주고있다.

 

상해림시정부의 인장은 75년전 그날에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오늘도 후손들에게 전하며 력사의 갈피에 이렇게 아로새겼다.

 

위대한 수령님이시야말로 억압받고 천대받던 인민대중을 력사의 주인으로 내세우고 인민대중의 존엄과 가치를 최상의 경지에서 빛내여주신 인민의 태양이시다. 그 태양을 따라 민족분렬의 거품을 밀어내며 애국애족의 대하, 조국통일의 대하가 굽이치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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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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