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단합과 통일에 바친 애국의 삶 (7)몽양 려운형선생과 그 자녀들이 받아안은 가슴뜨거운 사랑의 이야기민족단합과 통일에 바친 애국의 삶 (7)
- 몽양 려운형선생과 그 자녀들이 받아안은 가슴뜨거운 사랑의 이야기 -
우리 민족의 조국통일운동사를 돌이켜보면 그 갈피마다에는 민족의 태양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서 공헌한 사람들을 언제나 잊지 않으시고 그들모두에게 영생하는 삶을 안겨주시고 그 혈육들까지 친어버이심정으로 보살펴주신 수많은 사랑의 이야기들이 새겨져있다.
그 가운데는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 생을 바친 려운형선생과 그 자녀들이 받아안은 가슴뜨거운 사랑의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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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김일성동지의 가르치심을 받들어 민주진영의 마지막병졸로 남을지언정 여생을 끝까지 민주건국을 위하여 힘껏 싸울것을 다짐한 려운형선생이였기에 그는 남조선의 광범한 중간계층을 튼튼히 묶어세워 그들을 미제와 그 주구들을 반대하고 나라의 통일독립을 이룩하기 위한 투쟁에로 힘있게 조직동원하였다.
이것은 미군정의 《단독정부》수립야망을 실현하는데 커다란 위협으로 되지 않을수 없었다. 려운형선생의 활동이 저들의 정책을 펴나가는데서 장애가 되고있다고 판단한 미군정은 그를 제거할 음모를 꾸미였다. 그리하여 인민당 당수로서 민주세력의 통일전선을 이룩하기 위해 싸우던 려운형선생은 1947년 7월 백주에 서울거리 한복판에서 미제의 사촉을 받은 반혁명테로분자들의 흉탄에 쓰러지고말았다.
려운형선생이 피살되였다는 소식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려운형선생이 가시다니 … 그렇게 열정에 넘쳐 조국통일을 위해 싸우던 선생이 이렇게 가시다니 …》 하시며 못내 가슴아파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가슴이 미여지시는듯 저려오는 통분을 막을길 없으시여 사랑하는 전사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르시였다.
그처럼 사랑하셨고 믿음과 기대가 크셨던 려운형선생, 그가 영영 떠나갔단 말인가. 그 많은 일들을 앞에 두고 다시는 오지 못할 길을 갔단 말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창문가에서 멀리 어두운 남쪽하늘을 바라보시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시였다. 민족의 분렬을 반대하며 조국을 통일하기 위한 투쟁은 이제부터 시작해야 하고 뚫고나갈 난관과 시련도 중중첩첩한 이때에 사랑하는 전사의 희생을 두고 가슴아파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그 헤아릴길 없는 심려에 하늘도 검은 비구름을 몰아오며 애도의 눈물을 쏟아붓는가싶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한 책임일군을 부르시여 서울에서 려운형선생의 장례식이 있는데 내가 직접 참가하고싶지만 그럴수 없으니 조의대표를 보내야겠다고 하시며 적들의 준동이 심하니 《민전》대표의 명의로 참가하여 조사를 하도록 하라고 이르시였다. 그리고 려운형선생의 부인과 유가족에게 자신의 인사를 전하고 잘 위로해주며 앞으로 반동들의 책동이 있을수 있으니 유가족들이 피해를 받지 않게 대책을 잘 세우고 돌아오라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그토록 애국적열정에 불타던 사람이 벌써 가다니, 그를 잃은것은 우리 혁명에 커다란 손실이라고 하시며 애석해마지 않으시였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려운형선생의 부인은 참고참던 눈물을 쏟았다. 위대한 수령님께 마음속으로 감사를 드리고 또 드리며 …
위대한 수령님께서 파견하신 조의대표가 선생의 장례식에 참가하여 조사를 하였다. 그의 연설은 사람들에게 통일의 절박감을 새롭게 인식하게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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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재의 글은 일곱 번째이다. 이 글은 2015년 3월 27일 《조선의 오늘》에 연재된 내용이다.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 생을 바친 여운형선생과 그 자녀들이 받아 안은 가슴 뜨거운 사랑의 이야기를 9회에 걸쳐 연재하겠습니다. (프레스아리랑 편집국)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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