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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창건의 역사적 경험과 교훈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24/05/30 [21:50]

당 창건의 역사적 경험과 교훈

프레스아리랑 | 입력 : 2024/05/30 [21:50]

당 창건의 역사적 경험과 교훈(1)

 

1945년 조국광복이 이루어진 혁명적 정세 속에서 당 창건 작업은 급속도로 이루어져 19451010일 당의 창건이 선포되기에 이른다. 당시 38선 이북 지역의 정세가 변혁에 유리하게 전개된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당 창건의 주객관적 요인 중 객관적 요인의 일부분일 뿐이며 단기간에 강력한 당조직 체계가 형성되고 건국, 건군사업을 추진하며 모든 대중단체를 전위적으로 지도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타도제국주의 동맹결성 이래 20년에 걸친 투쟁의 역사와 조직사상적 준비과정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와같이 1926년 타도제국주의동맹에서 시작되어1945년 결실을 맺은 당창건 작업은 이 척박한 식민의 땅에서 투쟁하는 우리에게 어떤 의의를 남겨 주고 있는 것일까?

 

당 창건 투쟁의 역사적 의의는 먼저 그것이 레닌에 의해 정립된 혁명의 전위조직인 당에 대한 이론과 경험을 전세계 피억압민중들이 혁명의 주인으로 광범하게 진출한 자주시대에 맞게 창조적으로 발전시킨 점에 있다. 이것은 마르크스-레닌주의 당 발전사에서 하나의 뚜렷한 획을 긋는 일이었다. 중국, 베트남 등의 경우를 살펴보아도 레닌의 당이론을 기계적으로 옮기거나 코민테른의 투쟁노선을 따랐을 때마다 그 나라 혁명의 전위조직의 전도에 커다란 어려움이 조성되었다. 이 나라들에서 당이 전위적 지도력을 갖추고 혁명을 성공시키는 것은 각 나라의 독자적인 노선과 전략전술을 세울 때 가능했다. 코민테른의 간섭을 물리치고 실사구시, 독립자주, 자력갱생의 기치를 내세우며 농민을 주력으로 하는 지구전을 통해 당의 지도력을 높이고 혁명을 성공시킨 마우쩌뚱과 중국공산당의 경우나 좌경모험주의적 소비에트 설립투쟁으로 만들어진 베트남공산당(ICP)을 베트남의 현실에 맞는 유격투쟁노선으로 전환하면서 당을 수습하고 혁명의 지주로 일으켜 세운 호찌민의 경우가 그러했다.

 

항일무장투쟁과 결합되어 진행된 식민지하의 당창건 투쟁은 이러한 전반적인 세계혁명운동 및 전위조직 수립경험들 중에서도 가장 선구적인 것으로 당창건 이론의 전형을 이루었다.

 

당창건의 역사적 경험과 교훈(2)

 

당창건 투쟁의 역사적 의의는 둘째로 이 투쟁과정이 일제식민지하 조선혁명의 정수, 혁명전통을 이루면서 최초로 그 역할과 위상에서 명실상부하게 전위조직으로 인정되는 당을 결성하게 하였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조선민중의 반일투쟁은 이 당창건투쟁의 개시와 함께 올바른 자기목표와 방침을 가지고 발전했으며, 강대한 제국주의의 온갖 침략과 반동적 책동 속에서도 조선혁명의 필연성과 정당성을 만방에 과시하였다. 이로부터 조국광복이 외세에 의해 주어진 선물이 아니라 선각자들의 피어린 투쟁으로 쟁취한 당연한 결과임을 자부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 투쟁은 전체조선혁명에서 가장 위력적이고 간고하며 무장투쟁이라는 반일민족해방운동의 최고수준의 투쟁을 추동해냄으로써 손색없는 조선혁명의 정수로 간주되며 이렇게 해서 실현된 민족해방의 역사적 사업속에서 조선의 혁명전통이 세워졌다. 당중앙을 선포한 것은 차후의 일이었지만 이미 당의 조직사상적 준비과정에서 혁명적 전위조직으로서의 자기의 지위와 역할을 수행하였으므로 조선혁명운동의 주류는 당적 지도아래 성장 발전했음을 이로부터 확인하게 된다.

 

셋째로 당창건 투쟁에서 전위조직 결성을 위한 가장 과학적이고 풍부한 방침이 남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우리가 익히 살펴보았듯 당건설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일차적으로 당의 조직사상적 기초를 축성해야 한다는 점을 실천적으로 제시 했다는 점이다. 러시아 당창건 경험에서도 우선적인 당의 기초축성은 전제되는 것이지만 종파사대주의자들의 폐해로 분열과 패배감밖에 남은 것이 없는 실정에서 초기부터 일관된 방침을 세우고 당창건의 모든 준비를 진행시킨 주체형의 당창건 투쟁은 그 내용적 깊이와 풍부한 경험과 성과에서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경험을 압도하는 것이었다.

 

핵심과 골간대오로 지침조직을 만들고 이를 기층당조직으로 전화시켜내며 이들 조직에 의해 대중사업과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고 다시 광범위한 반일통일전선과 무장투쟁을 통해 당을 형성한 핵심을 단련, 육성시키는 정형화된 체계는 식민지 당창건 투쟁의 최고, 최대의 전형이 되는 것이다.

 

넷째로 주체형의 당창건을 위한 20년에 걸친 지난한 투쟁은 사상적 뇌수, 통일단결의 구심, 혁명의 영도자로서의 수령의 지위와 역할을 정립해 나간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미 러시아혁명은 레닌이라는 탁월한 영도자를 배출함으로써 혁명에 있어서 그리고 전위조직의 창건에 있어서 수령의 존재를 강력히 부각시킨 바 있다. 이것이 일제하 조선혁명투쟁시기에 오면서 레닌 당대에 그 단초가 제기된 수령의 지위와 역할이 모든 부분에 있어서 완결적으로 정립되기에 이른다. 즉 혁명투쟁에서 혁명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최대의 관건이 광범한 각계각층민중을 자주적 투쟁주체로 불러일으키고 정연한 조직체계에 묶어 그들의 혁명성을 최대한 동원해야하는 식민지혁명운동시대에 대중영도의 중추로서의 당, 당의 중심으로서의 수령이라는 과학적 영도체계를 세움으로써 영도문제가 이론, 실천적으로 해결되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은 주체사상을 창시하고 사대교조주의로 찌들은 조선혁명운동의 대오를 하나의 지도사상으로 뭉치게 함으로써 혁명대오의 통일단결을 이루었고 강대한 제국주의 일본과의 무장투쟁을 독창적인 전략전술을 발휘하여 최후 승리로 이끌었으며 혁명적 영도체계와 영도방법의 구현에 성공했다. 따라서 영도문제의 중핵인 수령관은 이때에 이미 정립되기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당창건의 역사적 경험과 교훈(3)

 

간혹 우리는 1920~1930년대 전위조직건설 경험을 배우는 과정에서 잘못된 자세를 발견하기도 한다. 당이 그 시기 혁명운동의 합법칙적 요구를 거장 정확히 반영하고 실지투쟁하는가의 여부를 중심으로 그 당의 정통성과 유일성을 바라보지 못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올바른 당건설 경험을 찾기 위해선, 20년대와 30년대를 같이 놓고 비교검토해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절박한 혁명의 요구가 무엇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중심에 놓고 보아야 한다. 단순히 당의 형태에 대한 비교검토방식은 몇몇 좋은 점은 있지만 당대의 진정한 혁명적 요구를 파악해 실천 투쟁하는가 여부를 중심으로 보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없는 사지선다형의 선택방식으로 나아가기 쉽다. 이런 방법은 혁명하는 사람의 기본태도가 아니다. 실제로 30년대의 당창건 방침은 식민지적 폭압 하에서, 자주적으로 폭동적 형태로 발전하는 노농운동의 혁명적 요구를 적극 발전시킬 것과 종파사대주의의 해악성을 전면적으로 극복해 내는 것이 가장 절박한 시대적 요구와 과제였다. 이속에서 당창건 투쟁도 식민지 민족해방운동의 실질적 승리를 개척하고 새사회건설로 나아가야만 했다. 이것을 중심으로 당건설 경험을 보아야지 20년대의 당과 비교하는 정도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야말로 한 나라를 책임지는 당의 진수와 그 나라 당의 유일성을 검증하는 유일한 척도이다 때문이다.

 

주체형의 당창건 투쟁이 가지는 이와 같은 역사적 의의로부터 그 결과로 수립된 당을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갖게 된 진정한 전위조직으로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그러나 수립된 당에 의한 전체 조선혁명의 완전한 지도는 해방 후의 정세 속에서 일정기간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2024529일  서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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