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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3)

조기천의 장편서사시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22/12/23 [22:25]

백두산(3)

조기천의 장편서사시

프레스아리랑 | 입력 : 2022/12/23 [22:25]

장편서사시

 

백두산(3)

정철호[백두산 천지](2002)                                                                          © 프레스아리랑



 

 

 

 

 

제2장

1

 

안개 내린다-

산촌에 저녁안개 내린다

어둠을 거느즉이 이끌고

길잡이도 없이 한자욱 두자욱

화전골 오솔길을 더듬어

저녁안개 두메로 내린다

안개내린다-

흰 양의 떼인양 꿈틀거리며

사발봉 츠렁바위에 쓰다듬다가

남몰래 슬며시

솔밭에 숨어들더니

그래도 마을에 내려서

밤이라도 편히나 쉬려는듯

안개내린다-

백두산안개 내린다-

 

2

 

《에그! 벌써 저무는데-》

칡뿌리 캐는 꽃분이 말소리

저물어도 캐야만 될 그 칡뿌리

저녁가마에 맨물이 소품치려니

쌀독에 거미줄 친지도 벌써 그 며칠

손꼽아 헤여서는 무엇하리!

《에그! 벌써 저무는데!》

그래도 캐야만 될 꽃분이의 신세

저녁도 아침도 칠뿌리로 비제비거니

어둠이 대지를 덮으려 한다

날새도 솔잎새에 날아든다

마을이 안개에 잠기였다

그래도 바구니는 채워야 될 꽃분이신세-

 

3

 

아아, 칡뿌리! 칡뿌리!

이 나라의 산기슭에서

봄이면 봄마다 어김도 없이

꽃은 피고 나비는 넘나들어도

터질듯이 팅팅 부은 두다리 끄을며

바구니든 아낙네들이 웨 헤맸느뇨?

백성이 한평생 칡넝쿨에 얽히였거니

이 나라에 칡뿌리 많은 죄이드뇨?

음식내에 치워 사람은 쓰러져도

크나큰 창고, 넓다란 역장과 항구엔

산더미같이 쌀이 쌓여

현해탄을 바라고있었으니

실어간놈 뉘며 먹은놈 그 뉘냐?

아아, 칡뿌리! 칡뿌리!

백성은 네게도 목숨 못단 때 많았거니

이 나라에 네가 적은 죄이드뇨?

 

4

 

까마귀 날아지난다-

까욱- 까욱-

꽃분이를 굽어보며-

까욱- 까욱-

《에그! 가야지!》 꽃분이 일어선다

한손으로 이슬에 적신 치마자락

다른 손엔 어둠이 드러누운 바구니

안개헤치며 오솔길을 내려온다

솔밭도 어둑어둑

맘속도 무시무시

이때 그림자인듯 언듯-

솔밭에서 사나이 나온다

《에그! 웬 사람인가?》

어느덧 꺼멓게 길 막는다

도깨빈듯 꺼멓게 길 막는다

귀신이냐? 사람이냐?

 

5

 

《아가씨 김윤칠이라 아시는지?》

가슴속엔 돌멩이 떨어진듯

그래도 처녀의 시선은 빨랐으니

해볕에 타고탄 사나이의 낯

처녀의 마음 꿰뚫는 그 시선-

《김윤칠? 저의 아버지인데…》

의문에 질린 처녀의 기색

《아, 그럼 당신은 꽃분이?》

처녀의 빛나는 두 눈동자

《아, 이것도 천운이라 할가…》

사나이 부르짖으며

휘익 솔밭으로 돌아서더니

난데없이 뻐꾹소리 높았다-

뻐꾹- 뻐꾹-

잠잠하던 솔밭도 기쁘게 화답한다-

뻐꾹- 뻐꾹-

또 솔밭속에서 나오는 두 사나이

 

6

 

소나무뒤에 숨어앉은 네사람-

한사람은 철호였으니-

눈보라속에 먼먼길 떠나더니

어느때 어느곳에 갔다가

무슨 일 하다가

양지쪽 잔디언덕마냥

파아란 꿈속에 포근하고

진달래아지에 봄 맺히는 이때

웬 짐짝 짊어지고

솔개골에 왔는고?

산이면 몇이나 넘었고

밤길은 얼마나 걸었던고?

두어라 물어선 무엇하리

안물은들 모르랴!

다른 사람은 중로인-

이 밤으로 약재 걸메고

홍산으로 갈 함흥로동자-

홍산속엔 이름없는 새 마을 있다네

그 마을엔 병원도 있는데

병자도 의사도

《동무》라 서로 부른다네

또 다른 사람은 철호의 련락원-

이 밤으로 H시로 가야 될

어느때나 웃음 잘 웃고 노래 잘하는

어느때나 《아리랑고개》 넘는다는

영남이란 열여섯의 소년

 

7

 

《나는 박철호라 부르우

얼마나 괴로우시우?》

길막던 사나이의 첫말

솔밭은 어둑해져도

꽃분의 뺨엔 붉은 노을-

《아이고! 철호동무!》

가늘게 속삭일뿐

처녀는 면목도 모르며

한해나 그의 지도받았다-

삐라도 찍어보내고

피복도 홍산으로 보내고

중년은 되리라 한 그-

그는 새파란 청년

강직하고도 인자스런 모습

호협한 정열에 끓는 눈-

(스물댓이나 되였을가?)

머리숙이는 처녀의 생각

떠날 동무들께 마지막부탁하고

솔개골에 머문다면서

《꽃분동무,

등사기 멀리 있수?》

철호의 묻는 말

《예, 념려 마옵소!》

꽃분의 대답

샘터 돌담불에 감춘 등사기

어두워지면 가져오리라-

꽃분이 생각한다

《자, 그러면 동무들!》

철호 일어서며 말한다

마을은 잠든듯

젖빛 솜을 막 쓰고

오로지 순사주재소 높다란 대문간만

우둑이 상 찌프리고

마을을 흘겨보는듯

어둠은 산촌을 누르며 막 들어서는데

화전골 솔밭속엔

네사람의 말없는 리별

《자, 그러면…》

마음들이 엉성키는 그 악수

그리곤 심장의 벽을 툭 울리는

리별의 첫 발자취소리!

전우들의 악수-

그것은 싸움의 맹세였다

승리의 신념이였다

우리의 동무들이

그렇게 악수하고

탄우속으로 뛰여들었고

사지에 선뜻 들어섰다

그렇게 악수하고

감옥에 뒤몰려갔고

교수대에 태연히 올라섰다

아아, 어린애의 웃음같이도 깨끗하고

어머니의 사랑같이 꾸준하고

의의 선혈같이 빨간

적도의 태양같이 열렬한

충직한 전우의 그 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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