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용암(재중동포 시인)의 장편서정서사시
백두산
제 2 장
1. 백두광명성 탄생
1
박달나무 떵떵 얼어터지고
여우도 찔찔 눈물을 쥐여짜는
여기는 중중첩첩 깊은 산 백두밀영!
울울창창 원시림이 병풍처럼 두르고
항일의 총포성 간단없이 들려오는
빨찌산사령부가 자리잡은 소백수골-
둘러보면 사면은 온통 은세계
한겨울 수북이 내리고 쌓인 눈에
락락장송 가지들도 무거워 축-드리운
백두산자락의 우뚝 솟은 정일봉!
그아래 추녀낮은 작은 귀틀집-
이놈의 세상을 바꾸려는가
삽시간 하늘땅을 뒤집을듯
밖에서는 광풍이 악을 쓰고
미친바람 윙- 윙-
세차게 눈보라 휘말아올려
천지조차 분간하기 힘든 이 새벽
험악한 이 새벽…
2
《응아-! 응아-!》
귀틀집 그안에서 울려나오는
우렁찬 아기의 고고성-
《영특한 옥동자로구먼…》
소곤소곤 들리는 말소리…
귀를 강구고 동정을 엿듣던
지나가던 바람이 끌끌 혀를 찬다.
(쯧-쯧-, 모질기도 해라!
첩첩산중 이 험한 곳, 험한 세월에
뉘 집 아기 여기서 태여났노? …)
홀연히 천지신명 조화런듯
어둡고 침침하던 하늘에서
한가닥 눈부신 해살이 쫙- 비치며
귀틀집 창가에 쏟아져내린다!
삽시간 광풍도 수그러들고
눈보라도 가뭇없이 사라지고
눈덮인 얼음장밑에서
돌돌돌 노래하는 소백수 맑은 물
모락모락 따스한 흰 입김 뿜어올리며
백두밀영 이깔나무가지마다에
새하얀 서리꽃을 활짝활짝 피워준다!
아기의 탄생을 축복하는듯
산새들도 빙빙 귀틀집 에돌며
목청껏 삣쭁 삣죠롱-
이 세상에서 가장 고운 자장가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준다…
3
이윽고 귀틀집주변 몇십리
초소들에 희소식 전해졌다.
《백두산 특대경사다!》
《혁명의 후대가 태여났다…》
세차게 들끓는 백두밀영
대원들 서로 얼싸안고 돌아간다!
저 멀리 전장에서 총소리도 멎고
잠자던 밀림도 깨여나서 설레인다!
격동된 빨찌산대원 하나
칼집에서 칼을 쭉- 뽑아들더니
갑자기 아름드리나무를 깎는다
깎아서 큼직한 글발을 새긴다.
《삼천리에 백두광명성 탄생!》
더더욱 열광하는 빨찌산대원들
산천을 뒤흔드는 환호소리-
《옳거니, 백두광명성이다…》
흥분한 다른 대원들도 뒤질세라
앞다투어 나무에다 글을 새긴다.
《아, 조선아 겨레들아
백두광명성 탄생을 알린다!》
《백두산에 백두광명성
독립천출룡마 타고 솟았다!》
《2천만 동포여 겨레여
광명성은 조선독립 대통운!》
4
그날 밤-
맑게 개인 백두산 하늘가에
장군별 유난히 빛뿌리는데
그옆엔 환한 달이 밝게 웃고
그사이로 갓 떠오른 애기장수별
장수별 하나 더 생겨났다.
그로부터 소문은 나래가 돋친듯
삽시간 파다하게 쫙- 퍼져나갔다.
백성들도 한데 모여만 앉으면
서로 머리 맞대고 수군수군-
《그 별이 어떻게 솟았나 하면
갑자기 겨울천둥 크게 울고
서리안개 자욱하게 끼였는데
불덩이같은 태양이 불쑥 솟아올라
해살을 곧게 쫙- 비추더라나?!
그러자 소백수 흐르는 구중천에
아름다운 무지개 곱게 서더니
천출룡마로 둔갑한 룡마바위
네굽안고 골짜기에 내려서더라오!
그다음 그 룡마가
고분고분 잔등을 낮춰 들이밀자
금빛 번쩍 갑옷 입은 아기장수가
번개처럼 훌쩍 타고 하늘로 오르더라오.
그 아기장수가 장수별이 되였는데
그게 바로 백두광명성이라오!
오천년 이 나라에 솟아오른
백두산 장군별에 이어
두번째로 나타난 대운성이라오…》
5
깊은 밤-
삼라만상에 깊은 정적이 깃든
칠흑같이 깜깜한 그 야밤-
바다에서 길 잃은 배들에게
한갈래 나아갈 방향을 가리켜주며
아득히 반짝이는 등탑이런듯
한점한점 어둠을 불사르며
고요한 귀틀집안에서
희미하게 새여나오는 등잔불빛!
그 귀틀집, 몇백보 주변
보초를 교대하는 구령소리-
《구령! 백두-?》
《광-명-성-!》
《알았음, 교대한다…》
《그럼, 차렷! 왼쪽으로 돌앗!
앞으로 구보로 갓…》
낮으나 박력있는 구령소리
아기의 안녕을 기하는 소리-
경각성 높은 빨찌산대원들
위엄스레 손에 굳게 총을 잡고
저 멀리 적진을 노려보며
아기의 요람을 지켜주고있었다…
2. 백두산아기의 요람
1
아, 요람!
비단줄에 매달린 그네가 춤추고
고요한 평화와 사랑이 넘치고
아름다운 자장가가 일렁이는
아늑한 잠자리 보금자리
이가 바로 자고로 아기들의 요람-
그러나 백두산아기의 요람은
그것이, 그것이 아니였다!
백두산아기의 요람은
사나운 맹수들이 울부짖는 백두밀영
항일의 총포성 그칠새 없는 격전장!
그리고-
그 오싹 소름끼치는 야수의 울부짖음,
그 자지러진 총소리가 은은한 자장가!
어머님은 아가를 요람에 눕히고
다독다독 노래를 불러준다-
《아가아가 자장자장 어서 자거라
어서 자라 속히 자라 총칼을 메고
조국해방 만세소리 우렁찬 곳에
너 앞서고 나 뒤서고 나가 싸우자!》
어머님 아가 위해 자장가 짓는다
아기는 그 자장가 들으며
달콤한 꿈나라로 들어간다…
2
다 닳고닳아진 군용모포
헌 모포 한자락 베여내여
아가 감쌀 포대기 만들고
초연에 절고절은 낡은 군복
그 옷감 다시 뜯고 줄이여
어머님 아가 위해 옷을 짓는다
정성껏 깨끗이 빨아서
아가 입힐 《새옷》을 짓는다
《아가아가 자장자장 어서 자거라
어서 자라 속히 자라 총칼을 메고…》
옆에 쌔근 잠든 아기를 보고
어머님 자장가 부르며
손에는 노래하듯 재깍재깍
부지런한 가위가 춤을 추고…
아가 보러 귀틀집 들렸다가
일손을 거드는 녀대원들
그 모습에 저마다 가슴이 뭉클
소리없이 눈물을 집어삼키고…
3
그길로 단숨에 달음박질
빨찌산병영으로 돌아온
눈이 퉁퉁 부은 녀대원들
벌겋게 부어오른 눈 마주보며
서로 머리 맞대고 소곤소곤
무엇인가 남몰래 의논한다
그리고 몸에 입은 겨울군복
그 엷은 군복을 벗어
저저마다 솜을 한줌 뜯어낸다
그다음 평소에 애지중지
배낭속에 간수했던
천쪼박 몇개를 한데 모아
밤새워 정성껏 한뽐 두뽐
자그마한 포단을 꾸민다
혁명의 후대인 백두산아기
아기 감쌀 포단을 만든다…
4
빨찌산녀대원들 갖고온
호랑탄자보다 더 귀한 새 선물
지난 밤 졸음을 이겨가며
바느실로 한뜸한뜸 이어 만든
열뽐도 안되는 쪽무이포단
그 포단에 아기를 감싸안고
너무 기뻐 고맙다고 인사하며
환하게 활짝 웃는 어머님-
혁명의 후대인 아기에게
초라한 포단밖에 못 드리니
황송해서 어쩔바 모르며
엉거주춤 서있는 녀대원들
《흑… 흑…!》
누군가 낮다란 흐느낌소리-
갑자기 썰렁해진 분위기에
의아하여 고개드는 어머님
(왜? 왜, 다들 이러나…???!)
5
다음순간-
어머님 재빠르게 눈치채고
위로하듯 웃으면서 격려한다
《이제 조국이 광복되면
모두가 옛말하며 잘살거라고,
그때 가서는 가는 곳마다
탁아소랑 유치원이랑
소년궁전까지 덩실 꾸려놓고
우리 나라 아기들을
몽땅 비단에 감싸 키우자고…》
어머님은 신심에 넘쳐 고무하며
희망찬 그 앞날을 내다본다
새 조국 새 미래를 동경한다!
그제야 녀대원들도 웃으며
서로 굳게 손을 잡고 맹세한다!
그날을 위해 후대를 위해
우리 혁명을 끝까지 진행하자고
3. 《꼬마빨찌산》
1
아기가 세상에 태여나서
맑은 눈에 제일 처음 비친것은
혁명하는 빨찌산의 용감한 모습
밝은 귀로 가장 먼저 들은것도
왜적을 무찌르는 자지러진 총소리-
그리고 제일 처음 입은 옷은
엄마가 지어준 군복
고사리손에 가장 먼저 잡은것도
아빠가 쥐여준 작은 권총-
백두산아기는 정말 령리해
《독립》, 《혁명》도 쓸줄 알고
아기는 또 노래도 잘 불러
처음 배운 노래도 《유격대행진곡》
아빠, 엄마, 유격대원들앞에서
아기는 두주먹 휘두르며
그 노래 씩씩하게 높이 불렀다.
《동무들아 준비하라 손에다 든 무장
제국주의침략자를 때려부시고
용진용진 나아가세 용감스럽게
억천만번 죽더라도 원쑤를 치자
나가자 판가리 싸움에
나가자 유격전으로…》
2
너무 일찍 헴이 든 백두산아기
아기는 빨찌산대원들중
가장 나어린 《꼬마병사》
대원들을 따라 행군을 하고
대원들과 함께 쪽잠을 자고
대원들과 같이 풀죽을 먹으며
추위와 굶주림도 견딜줄 알았다
사자 간을 빼먹은듯 담대하기도 해
눈앞에 맹수가 나타나도
아기는 두려움을 몰랐다
놈들의 총알이 귀전을 스쳐도
아기는 태연자약 끄떡없었다!
백두산에서 백두산 물 마시고
백두산 풀뿌리 캐여먹으며
백두산 소나무처럼 푸르게
백두산 바위처럼 굳세게
백두산 폭포처럼 용감하게
아기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혁명의 후계자로 성장했다!
대원들은 아기도 《꼬마빨찌산》
《백두호랑이》라 불렀다…
3
그로부터 몇해후
백두산호랑이 산을 내렸다!
어리신 그이도 따라 산을 내렸다!
긴긴세월 백두산 산속에서
이발을 갈고 발톱을 갈며
침음하던 무서운 호랑이
그 빨찌산호랑이 김대장
마침내 총진군의 포성을 울려
산을 내렸다 산을 내렸다-
화산이 폭발하듯 벼락이 치듯
원한을 터치우며 복수를 웨치며
원쑤에게 죽음을 선언했다!
여기서도 《돌격-!》
저기서도 《돌격-!》
이쪽에서도 《악-!》
저쪽에서도 《악악-!》
왜적들을 무리로 쓸어눕히며
이 나라의 독립을 부르짖었다!
3천만의 해방을 부르짖었다!
그이도 함께 부르짖었다!
4
호호탕탕 파죽지세-
그렇게 산을 내린 백두산호랑이
장백을 주름잡던 용맹한 그 위용
쥐락펴락 삼천리에 떨치노니
일거에 일제를 몰아내고서
폭압의 그 쇠사슬 부셔버렸다
혁명의 승리를 맞이하였다!
봄이 온 강산에 꽃들이 활짝 피고
억압받던 최하층 무산대중
새 나라 떳떳한 주인이 되였다.
탁- 트인 새 조선 저 하늘가에
람홍기 서서히 솟아오르고
환호소리 하늘땅을 진감할 때
《만세-! 만세-!! 만만세-!!!》
빨찌산들 목터지게 만세를 웨쳤다
그이도 목청껏 만세를 웨쳤다!
그러나, 폭풍전야 청청하늘
개인 하늘 새까맣게 뒤덮으며
또다시 몰려오는 먹장구름-
혁명은 아직 채 끝나지 않았다…
5
짓밟히던 금수강산 이 땅에
광복의 새봄을 맞아 몇해더냐?
또다시 몸부림하는 《한》반도-
《6.25》전쟁이 폭발하고
내정간섭 외세가 침입하고
국토분단 비운이 드리우고
파란만장 민족의 력사는
골물처럼 사품치며 흘러왔다
대해처럼 파도치며 흘러간다!
어언 장장 륙십년 풍우의 세월
그제날 자유를 부르짖으며
백두에서 붉은기 휘날리던
혁명의 일세대는 모두 갔다-
세월따라 그 투사들 모두 가고
준엄한 력사의 새 시련이 닥쳐왔다!
하지만 백두야 너 보느냐?
우뚝 나선 혁명의 계승자-
백두의 혁명정신 살아있다!
백두의 그 정신은 길이 빛난다!
오늘도 거센 풍랑 헤가르며
변함없이 혁명의 계승자는
붉은기 높이 들고 전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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