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백두산
조기천
머리시
삼천만이여!
오늘은 나도 말하련다!
《백호》의 소리없는 웃음에도
격파솟아 구름을 삼킨다는
천지의 푸른 물줄기로
이 땅을 파몰아치던 살풍에
마르고 탄 한가슴을 추기고
천년 이끼오른 바위를 벼루돌삼아
곰팽이 어렸던 이 붓끝을
육박의 창끝인듯 고루며
이 땅의 이름없는 시인도
해방의 오늘 말하련다!
×
첩첩층암이 창공을 치뚫으고
절벽에 눈뿌리 아득해지는 이곳
선녀들이 무지개타고 내린다는 천지
안개도 오르기 주저하는 이 절정!
세월의 류수에
추억의 배 거슬러올리라-
어느해 어느때에
이 나라 빨찌산들이 이곳에 올라
천심을 떠받으며
의분에 불질러
해방전의 마지막봉화 일으켰느냐?
×
이제 항일의 의로운 전사들이
사선에 올랐던 이 나라에
재생의 백광 가져왔으니
해방사의 혁혁한 대로
두만강물결을 넘어왔고
백두의 주름주름 바로 꿰여
민주조선에 줄곧 뻗치노니
또 장백의 곡곡에 얼룩진
지난날의 싸움의 자취 력력하노니
내 오늘 맘놓고 여기에 올라
삼천리를 손금같이 굽어보노라!
×
오오, 조상의 땅이여!
오천년 흐르던 그대의 혈통이
일제의 칼에 맞아 끊어졌을 때
떨어져나간 그 토막토막
얼마나 원한의 선혈로 딩굴었더냐?
조선의 운명이 칠성판에 올랐을 때
몇만의 지사 밤길을 더듬어
백두의 밀림 찾았더냐?
가랑잎에 쪽잠도 그리웠고
사지를 문턱인듯 넘나든이 그 뉘냐?
산아 조종의 산아 말하라-
해방된 이 땅에서
뉘가 인민을 위해 싸우느냐?
뉘가 민전의 첫머리에 섰느냐?
×
쉬- 위-
바위우에 호랑이 나섰다
백두산호랑이 나섰다
앞발을 거세게 내여뻗치고
남쪽하늘 노려보다가
《따-웅-》 산골을 깨친다
그 무엇 쳐부시련듯 톱을 들어
《따-웅-》
그리곤 휘파람속에 감추인다
바위 호을로 솟아
이끼에 바람만 스치여도
호랑이는 그 바위에 서고있는듯
내 정신 가다듬어 듣노라-
다시금 휘파람소리 들릴지
산천을 뒤집어 떨치는
그 노호소리 다시금 들릴지!
×
바위! 바위!
내 알리 없어라!
정녕코 그 바위일수도 있다
빨찌산초병이 원쑤를 노렸고
애국렬사 맹세의 칼 높이 들었던 그 바위
빨찌산용사 이 땅에 해방의 기호치던
장백에 솟은 이름모를 그 바위
또 내 가슴속에도 뿌리박고 솟았거니
지난날의 싸움의 자취 더듬으며
가난한 시상을 모으고 엮어
백두의 주인공 삼가 그리며
삼천만이여, 그대에게
높아도 낮아도 제 목소리로
가슴헤쳐 마음대로 말하련다!
(계속)
조기천의 장편서사시 《백두산》
혁명시인 조기천은 1913년 함경북도 회령군(당시)에서 출생하였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한 탓에 그는 부모를 따라 시베리아로 이주하였다. 청소년시절을 이국땅에서 보냈지만 그는 조국에 대하여 언제나 잊지 않았고 모국어에 대한 학습을 꾸준히 하였다.
뜨거운 조국애를 안고 살아온 그는 나라가 해방되자 조국으로 귀국하였으며 창작의 나래를 활짝 펼치었다. 1946년에 해방의 기쁨을 노래한 서정시 《두만강》을 발표한 후 《땅의 노래》, 《을밀대에서 부른 노래》를 연이어 창작하였다.
이 해에 그는 꿈결에도 그리던 김일성 장군을 만나 뵈옵는 큰 영광을 받아 안게 되였다. 이날 장군께서는 조기천 시인은 다른 나라에서 살면서도 우리말을 열심히 익히고 조선 문학을 공부한데 대해 높이 치하해주시였으며 그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 주시여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있었던 가지가지의 이야기들을 들려 주시였다.
장군님을 만나 본 조기천 시인은 커다란 창작적 흥분과 열정에 휩싸이게 되였다. 그는 장군님의 불멸의 혁명업적과 고매한 풍모를 장편서사시 《백두산》에 담기 위하여 길도 제대로 나지 않은 천고의 밀림을 헤치고 백두산에 올라 시상을 무르익혔으며 시어를 한자 한자 골라서 서사시를 엮어나갔다.
해방된 조국과 지도자에 대한 무한한 긍지와 자부심으로 심장의 피를 끓여온 조기천 시인은 항일의 전구를 밟으며 창작한 장편서사시를 장군님 앞에서 직접 낭송해드리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리하여 장편서사시 《백두산》은 1947년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김일성 장군의 항일혁명 투쟁사를 형상한 장편서사시로 태어나게 되였다.
조국을 열렬히 사랑한 조기천 선생은 불같은 정열을 쏟아 부어 《흰 바위에 앉아서》, 《보뚝에서》, 《휘파람》과 같은 훌륭한 시작품들을 창작하였으며 한국전쟁시기에는 종군작가로 인민군군인들과 함께 낙동강까지 나아갔다. 그때에 보고 듣고 느낀 강렬한 체험에 기초하여 그는 《불타는 거리에서》, 《문경고개》, 《조선은 싸운다》, 《죽음을 원쑤에게》, 《나의 고지》를 비롯한 전투적인 시작품들을 창작하였다.
북녘의 역사에 있어 조기천 시인이 남긴 생의 자국은 길지 않다.(1913-1951) 그러나 김일성 장군께서는 조기천 시인이 조국과 혁명 앞에 세운 공적을 높이 평가하여 혁명시인이라는 고귀한 칭호를 안겨주었으며 장편서사시 《백두산》을 혁명영화로 각색하도록 하시고 그를 주인공으로 한 예술영화도 만들도록 해주었다.
‘《백두산》은 해방된 조선의 문단, 근로인민을 위한 우리의 문학예술이 낳은 대걸작이며 당과 혁명에 충실한 시인의 높은 혁명적열정과 정력적인 사색과 탐구, 예술적재능이 가져다준 귀중한 열매입니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북녘의 해방 후 창작활동의 첫 걸음을 떼면서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남아 있는 《백두산》은 조선이 낳은 혁명전통주제의 첫 대서사시적작품으로 혁명적시문학의 훌륭한 본보기로서 그 빛을 뿌리게 했으며 문학예술이 나아갈 방향을 뚜렷이 명시하였다.
1947년 2월 7일부터 11회에 걸쳐 《로동신문》에 연재된 조기천의 <백두산>을 《프레스아리랑》에서 남•북 통일문학사의 지평을 열기 위해 게재하도록 한다.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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