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서사시
백두산
제1장 1
고개뒤에 또 고개… 몇몇이나 있으련고? 넘어 넘어 또 넘어도 기다린듯 다가만 서라! 한 골짜기 지나면 또 다른 골짜기- 이깔로 백화로 뒤엉켜 앞길 막노니 목도군이 고역에 노그라지듯 골짜기는 으슥히 휘늘어져있어라! 울림으로 삑삑하여 몇백리 백설로 아득하여 몇천리- 사나운 짐승도 발길 돌리기 서슴어하고 날새도 고적에 애태우다 날아날아 떠나고야마는 장백의 중중심처 홍산골- 절벽사이 칼바람에 쌓인 눈우에 뚜렷이 그려진 이 발자욱 어디론지 북으로 북으로 가버린 가없이 외로운 이 발자욱- 어느 뉘의 자취인가 눈보라에 길 잃었던 포수 절망에 운명 맡긴 자취인가? 어느 뉜지 북으로 웨 갔느뇨? 북에선 백두산이 백발을 휘날리며 한설을 안아 뒤뿌려치는데 서리발로 한숨 쉬고있는데!
2
눈우에 뚜렷한 이 발자욱 눈여겨 살피라- 그속엔 절망의 흔적 없으리 지난밤 흰 두루마기사람들 설피 신고 이곳 꿰여 북으로 갔으니 사람은 몇백이나 되여도 발자욱은 하나만 남겨두고- 그런데 오늘은 이 발자욱 허물이며 수십의 왜놈의 무리 허리까지 눈무지에 빠지며 《토벌》의 큰 불 밀림에 지르련다 맨앞에 군견 두마리 날뛰고 그뒤엔 안경이 번뜩이고 또 그뒤엔 서리어린 총부리와 총부리- 《대체 한사람의 발자욱뿐- 모두 어디로 갔느냐 말이야!》 절벽에 안경을 두리번두리번- 맨 앞놈의 중얼거림 《글세요…신출귀몰은…》 옆놈의 대답 끝나기도 전에 《땅》-총소리 얼어든 대기를 깨뜨린다 《안경》이 눈에서 다리도 못 뺀채 경례나 하듯이 꺼꾸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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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그담엔 홍산골이 터졌다- 총소리 작탄소리 기관총소리 놈들의 아우성소리! 그담엔 절벽이 무너졌다 다닥치며 뛰치며 부서지며 바위들이 골짜기를 쳐부신다 《만세!》, 《만세!》- 골안을 떨치며 산비탈에 숨었던 흰 두루마기들 나는듯이 달려내렸다 여기서도 돌격의 《악》 저기서도 《악!》 《악!》 설광과 마주치는 날창 번개같이 서리찬 하늘을 찢는다 《동무들 한놈도 놓치지 말라!》 이것은 작렬되는 육박의 첫 구령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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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비탈바위우에 청년 하나이 버쩍 올라선다 후리후리한 키꼴에 흰두루마기자락이 대공으로 솟아오르려는 거센 나래같이 퍼덕이는데 온몸과 팔과 다리- 모두다 약진의 서슬에 불붙고 서리발 칼날의 시선으로 싸움터를 단번에 쭉- 가르며 《한놈도 남기지 말라!》 그이는 부르짖었다 바른손 싸창을 바위아래로 번쩍이자 마지막발악쓰던 원쑤 두놈이 미끄러지듯 허적여 뒤여진다- 《한놈도 남기지 말라!》 그이는 재쳐 부르짖었다 이는 이름만 들어도 삼도왜적이 치떠는 조선의 빨찌산 김대장! 이는 장백을 쥐락펴락하는 태산을 주름잡아 한손에 넣고 동서에 번쩍! 천리허의 대령도 단숨에 넘나드니 축지법을 쓴다고- 북천에 새별 하나이 솟아 압록의 줄기줄기에 그 유독한 채광을 베푸노니 이 나라에 천명의 장수 났다고 백두산두메에서 우러러 떠드는 조선의 빨찌산 김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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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박의 불길 멎었을 때 밀림의 주인공 빨찌산들 주섬주섬 원쑤의 무기 거둔다 몇놈이나 복수의 칼 맞았느냐? 몇놈이나 빨찌산전법에 《천황페하》도 산산 줄달음에 팽개치고 《무사도》도 갈데로 가라- 도망치다 엎드러졌느냐? 《한놈도 빼우지 않았습니다》 철호의 보고 《놈들은 이번에도 무장을 바치러 왔지!》 김대장의 높은 말소리 그리곤 호탕한 웃음소리- 《하…하…하…》 함박꽃인양 그 웃음소리 떨기떨기 내려져 눈우에 꽂기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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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밤에 눈이 내렸다- 하늘도 땅도 바위츠렁도 홍산골싸움터도 눈속에 묻히였다 이깔밭만 칠월의 꽃피는 삼밭이 되고 대부동 고목에도 때아닌 꽃이 피다 이 밤 빨찌산부대 나흘만에 천막에 들다! 내굴냄새 웨 그리도 구수하고 모닥불도 불꽃채로 품속에 껴안을듯 이날 밤 대장이 든 천막엔 새벽까지 등불이 가물가물… 허더니 아침엔 눈보라치는데 정치공작원 철호 먼길 떠났다 전송하는 대장의 말- 《철호, 조심하게! 믿네!》 덤썩 틀어쥐는 대장의 손길 심장속에 해발을 일으켜라 해는 눈보라속에 숨어있어도 추위는 박달같이 땅을 얼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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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눈보라… 겨울이 마지막악을 쓴다 무엇이나 찾는듯 골짜기에서 이리저리 헤매다가도 잣솔을 뒤잡아 흔들며 잉-잉 통곡치누나… 자작나무 휘여잡고 못살겠다 몸부림치다가도 노한 짐승같이 절벽에 달려드누나… 절벽에 달려들어선 쳐부시고 딩굴고 물어뜯다가는 산등에 올라 미친듯 아우성치며 하늘도 땅도 휩쓸어가지고 동남으로 줄달음치누나! 눈보라… 눈보라… 네야 산넘고 골지나 또 지나 압록강까지 이르리라! 너를 동무삼아 철호 저 산 넘으리! 압록을 건너 조상의 땅 밟으리! 눈보라! 눈보라! 듣느냐? 너는야 철호를 도와주거라- 너도 장백의 눈보라 아니냐! 철호는 멀리도 간단다 국경선 H시도 그의 길에 놓였고 성진 함흥도 가야만 되고 너 장백의 눈보라야! 불어 또 불어 철호를 감추라- 왜놈들을 기절케 하라 불어 또 불어 철호를 건네우라 압록강을 건네우라!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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