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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5)

조기천의 장편서사시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23/01/09 [10:32]

백두산(5)

조기천의 장편서사시

프레스아리랑 | 입력 : 2023/01/09 [10:32]

조기천의 장편서사시

 

백두산

 

 

  © 프레스아리랑



 

백두산 (5)

 

 

 

제4장

1

 

우등불이 밤을 태운다-

무쇠같이 장백을 내려누르는

캄캄한 밀림의 밤을!

끝없이 몰아 죄여드는 모진 어둠

머리속에도 흑막이 드리운듯-

허나 불길은 솟고

불꽃은 튀고

솟아서는 태우고 죽고

죽고는 또 솟거니

이름모를 결사의 싸움이

이 밀림속에 벌어진듯

빨찌산우등불-

어느때 한번 사람이

그 불길에 두손을 쬐였다면

어찌 줄달음치는 피속에서

생을 읊조리는

그 기쁨이 식어질수 있으랴!

어느때 한번 사람이

그 불꽃튀는 소리 들었다면

어찌 그 소리소리

마음의 줄을 울리며

희망과 신념을 길이 일으키지 않으랴!

빨찌산우등불-

그것은 집이였고 밥이였다

그것은 달콤한 잠자리였고

그것은 래일의 투쟁-

하물며 《토벌》 철망을 헤치고

사지를 육박으로 지났으니

그것은 승리의 상징

야반의 노도속

반짝이는 구원의 등대!

 

2

초병들도 긴 하품에

눈시울이 아파질무렵

빨찌산부대 깊은 잠 들다

이슬속 고달픈 이 잠자리

몇날만에 발펴게 되였는고?

어제날의 상처 아직도 저리지만

나흘째나 굶주렸지만

또 앞날의 길 즐펀하지만

이 밤엔 우등불이 붙거니

깊은 잠 안식의 잠

그런데 한분만이 잠 못들고

우등불옆에 비스듬히 앉아

밤가는줄 모르네-

이런 밤엔 그이는 책을 보았다-

봄날의 아지랑인양

희망이 멀리서 어른거리고

기쁨이 마음을 한끝 부필 때도

그이는 책을 보았다

불안의 구름장이 가슴가에 낮게 떠돌고

어느 구석에선가 절망이 머리들 때도

그이는 책을 보았다-

그러면 새힘을 얻고 목적을 보았다

혁대를 남비에 끓이는 냄새

주린 창자를 놀라게 할 때도

이 책을 보았고

먼 옛날 그이의 어린시절이 흘러간

어느때나 그리운 고향의 옛집-

다복솔에 덮인 뒤산밑

그 쓰러져가던 옛집이

세월과 망각을 헤치고 또렷이 떠오를 때도

또 어느 봄날 부엌에서

미음드레 가리며 한숨짓던

수심에 어린 어머니의 모습이

기억의 쪽문을 열고 들어설 때도

그이는 책을 보았다-

그러면 새힘을 얻고 목적을 보았다

이 밤에도 글줄을 밟으며

- 훨- 걸어가는 생각-

《우리 비록 적지만

우리 비록 굶으며 피흘리지만

인민이 우리를 받들거던

또 북에 있는 자유의 나라 정의의 나라

신세의 성벽을 영원히 뻗치며

불의와 침략을 우리 물리치거던

백일하에 빛나빛나는

창조의 휘황한 성진이

누리에 퍼지여 장백에 비치노니

우리의 신념은 크나큰 화염이 되여

캄캄한 조국의 땅 밝히리라!

내 이렇게 마음조려 기다리는

식량부대도 돌아오리!

철호의 소식도 내 들으리!》

밤새도록 어둠과 싸우던 우등불도

휴전인양 수그러졌는데

오로지 그옆에 앉았던 한분만이

가볍게 일어서며-

《어! 날이 밝는구나!》

동편하늘은

새벽을 이륵이륵 걷어이고

쉽사리도 일어선다, 일어선다!

 

3

그렇게 기다리던 식량부대

아침에야 돌아왔다-

얻은것이란 소 두마리뿐

나물죽 생각만도

두 가슴을 째는듯 파내리거니

장도 알기 전에

소잡을 차림 서둘렀다-

썩- 썩- 칼도 갈고

모닥불도 푸- 푸- 피우고

대장이 왔을 때는

모여든 빨찌산들 눈살에

소 두마리도 어둥지둥

정신부터 잃은듯-

목재소 일본소로는

살도 푸등 굴레도 호함졌다

《소는 어디서 가져왔소?》

대장의 묻는 말

삼밭골 목재소어구에서…》

소대장 순선의 대답

대장은 굴레를 보았다-

동전을 단 굴레

수놓은 굴레… 아낙네의 솜씨

독특한 코뚜레- 민족의 이색-

어김없이 일본소는 아니다

《동무들!

우리 빨찌산들이

어느때부터 마적이 되였는가?

어느때부터

평민의 재산을 로략했는가?

이 굴레를 보라-

이 소는 조선농민의 소다

저 소는 중국농민의 소다》

이렇게 김대장이 말했다

이것은 소를 돌려보내라는 명령

이것은 산채를 캐여

아침 하라는 명령

빨찌산들이 산채를 듯보며

산조하듯 퍼졌을 때

살진 소 두마리

가담가담 풀을 뜯으며

산등타고 마을로 내려간다

어떤 화를 지날지도 모르며

또 어떤 불행 있을지도 모르며…

 

4

 

빙- 둘러선 빨찌산들…

그앞에 말없이 선 김대장…

머리우에 휘도는 싸늘한 기운

가을서리 내리듯

아침해발도 눈치채고

밀림으로 삼가 기여드는듯-

《뉘가 소를 죽였는가?》

대장이 낮게 묻는다

《…》- 군중은 잠잠

《뉘가 소를 죽였는가?》

낮고도 얼구는 목소리

그래도 대답은 없었다

높다란 침묵이 잉-

빨찌산들 고막을 친다

《대장동무!

내가 죽였습니다…》

한걸음 나서며 말하는

청년빨찌산 최석준

《네가?》

빨찌산들이 놀란다

싸움에서도 대담한

척후로도 이름있는 석준이…

더없는 전우라던 석준이

《네가 어찌?》

빨찌산들이 더 분해한다

새파랗게 고민에 질린

땅에 수그러진 그의 낯-

《대장도 우리도

나흘째나 굶게 되니…》

그러나 군중속에서 누군지-

《응, 변명을 하는구나!》

또 누군지-

《너는 명령을 거역했다!》

소대장 순선이 주먹을 들며-

《너는 왜놈들을 도와준다!》

석준이 번쩍 머리들며-

《왜놈들을 도와준다고?》

《그렇다!》

《내가?》

《그렇다, 네가!》

《아니 내가

왜놈들을 도와준다고?》

《그렇다 네가! 네가!》

《그렇다면…》

잘칵- 총재우는 소리

《자, 나는 죽어 마땅하니…》

석준이 총박죽을 내민다

《기척!》- 대장의 호령소리

철판으로 밀림을 들부시는듯

빨찌산들은 선자리에 붙은듯

오로지 무거운 침묵만

꽈악 뚜껑인듯 내려누르고-

 

5

《가마속의 물은 끓다가도 없어진다-

원천이 없거니-

허나 내물은 대하를 이룬다

동무들!

우리는 대하가 되련다 바다가 되련다

우리의 근간도 민중속에

우리의 힘도 민중속에 있다!

민중과 혈연을 한가지한

빨찌산임을 우리 잊었는가?

우리 이것을 잊고

어찌 대사를 이루랴!

민중과의 분리-

이것은 우리의 멸망

이것을 왜놈들이 꾀한다

우리 이것을 모르고

어찌 대사를 이루랴!》

기척해선 빨찌산들

쩌엉- 가슴을 가르고

치밀어솟는 의분!

《이제도 죄책을 모르겠는가?》

석준에게 대장이 하는 말

《압니다!》 석준의 대답

첫서리맞은 풀…

그것도 이것보다는 생생하리…

《나는 죄책을 잘 압니다》

석준의 떨리는 목소리…

재가 내여돋은 입술…

허나 이제도 처벌의 고개

어떻게 석준이 그 고개 넘으려나!

빨찌산들은 잘 안다

오직 한가지뿐-

《총살》!

폭풍우전 짧은 순간…

침묵… 침묵… 침묵…

《임자를 찾아 소값을 주라!》

이렇게 명령하고

대장이 돌아선다

새파랗던 석준의 낯에

몇줄기 붉은빛

빨찌산들의 낯에도

해발이 비친다

어떠한 커다란 충직과 신념이

빨찌산들의 가슴에 드러누워

툭- 툭 어리광치듯

심장을 쥐여박는다

 

6

빨찌산부대 열흘만에

동남으로 길떠났다

산촌사람들도 승벽내여

식량도 걸메올리고

부상된 전사도 치료하고

소대장을 몇십리 보내여

《토벌대》도 홀려가고-

허지만 밤마다 밤마다

대장은 잠 못들더니

어느날인가 약재 짊어진

로동복입은 중로인이 왔을 때

작은 지도 대장의 손에 쥐웠더니

그 이튿날 아침

동남으로 길떠났다

동남의 길-

앞에는 고개 뒤에 또 고개

골짜기도 많고 멀기도 하련만

어느 뉘가 괴롭다 하랴!

어느 뉘가 뒤서자 하랴!

앞으로! 앞으로!

승냥이도 추위에 얼어죽는 때

빨찌산들이 이 길을 그리였다-

그러면 새움이 마음속에 자라났다

나날이 주림이 모지름할 때도

빨찌산들이 이 길을 그리였다-

그러면 큰 낟가리 가슴속에 자라났다

돌아갈 길이 잡초에 막히고

마음 한바닥에 재만 무질 때도

빨찌산들이 이 길을 그리였다-

그러면 희망의 모닥불이

앞길을 가리켰다

동남의 길-

자나깨나 그리던 이 길

죽어도 한번은 가겠다던

살아서 살아서 못간다면

죽어서라도 기어코 가겠다던

조국으로 가는 길, 싸움의 길-

빨찌산들이 길떠났다

동남으로 길떠났다

앞으로! 앞으로!

오오! 앞에는

압록강! 압록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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