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천의 장편서사시
백두산
백두산 (5)
제4장 1
우등불이 밤을 태운다- 무쇠같이 장백을 내려누르는 캄캄한 밀림의 밤을! 끝없이 몰아 죄여드는 모진 어둠 머리속에도 흑막이 드리운듯- 허나 불길은 솟고 불꽃은 튀고 솟아서는 태우고 죽고 죽고는 또 솟거니 이름모를 결사의 싸움이 이 밀림속에 벌어진듯 빨찌산우등불- 어느때 한번 사람이 그 불길에 두손을 쬐였다면 어찌 줄달음치는 피속에서 생을 읊조리는 그 기쁨이 식어질수 있으랴! 어느때 한번 사람이 그 불꽃튀는 소리 들었다면 어찌 그 소리소리 마음의 줄을 울리며 희망과 신념을 길이 일으키지 않으랴! 빨찌산우등불- 그것은 집이였고 밥이였다 그것은 달콤한 잠자리였고 그것은 래일의 투쟁- 하물며 《토벌》의 철망을 헤치고 사지를 육박으로 지났으니 그것은 승리의 상징 야반의 노도속 반짝이는 구원의 등대!
2 초병들도 긴 하품에 눈시울이 아파질무렵 빨찌산부대 깊은 잠 들다 이슬속 고달픈 이 잠자리 몇날만에 발펴게 되였는고? 어제날의 상처 아직도 저리지만 나흘째나 굶주렸지만 또 앞날의 길 즐펀하지만 이 밤엔 우등불이 붙거니 깊은 잠 안식의 잠 그런데 한분만이 잠 못들고 우등불옆에 비스듬히 앉아 밤가는줄 모르네- 이런 밤엔 그이는 책을 보았다- 봄날의 아지랑인양 희망이 멀리서 어른거리고 기쁨이 마음을 한끝 부필 때도 그이는 책을 보았다 불안의 구름장이 가슴가에 낮게 떠돌고 어느 구석에선가 절망이 머리들 때도 그이는 책을 보았다- 그러면 새힘을 얻고 목적을 보았다 혁대를 남비에 끓이는 냄새 주린 창자를 놀라게 할 때도 이 책을 보았고 먼 옛날 그이의 어린시절이 흘러간 어느때나 그리운 고향의 옛집- 다복솔에 덮인 뒤산밑 그 쓰러져가던 옛집이 세월과 망각을 헤치고 또렷이 떠오를 때도 또 어느 봄날 부엌에서 미음드레 가리며 한숨짓던 수심에 어린 어머니의 모습이 기억의 쪽문을 열고 들어설 때도 그이는 책을 보았다- 그러면 새힘을 얻고 목적을 보았다 이 밤에도 글줄을 밟으며 훨- 훨- 걸어가는 생각- 《우리 비록 적지만 우리 비록 굶으며 피흘리지만 인민이 우리를 받들거던 또 북에 있는 자유의 나라 정의의 나라 신세의 성벽을 영원히 뻗치며 불의와 침략을 우리 물리치거던 백일하에 빛나빛나는 창조의 휘황한 성진이 누리에 퍼지여 장백에 비치노니 우리의 신념은 크나큰 화염이 되여 캄캄한 조국의 땅 밝히리라! 내 이렇게 마음조려 기다리는 식량부대도 돌아오리! 철호의 소식도 내 들으리!》 밤새도록 어둠과 싸우던 우등불도 휴전인양 수그러졌는데 오로지 그옆에 앉았던 한분만이 가볍게 일어서며- 《어! 날이 밝는구나!》 동편하늘은 새벽을 이륵이륵 걷어이고 쉽사리도 일어선다, 일어선다!
3 그렇게 기다리던 식량부대 아침에야 돌아왔다- 얻은것이란 소 두마리뿐 나물죽 생각만도 두 가슴을 째는듯 파내리거니 대장도 알기 전에 소잡을 차림 서둘렀다- 썩- 썩- 칼도 갈고 모닥불도 푸- 푸- 피우고 대장이 왔을 때는 모여든 빨찌산들 눈살에 소 두마리도 어둥지둥 정신부터 잃은듯- 목재소 일본소로는 살도 푸등 굴레도 호함졌다 《소는 어디서 가져왔소?》 대장의 묻는 말 《삼밭골 목재소어구에서…》 소대장 순선의 대답 대장은 굴레를 보았다- 동전을 단 굴레 수놓은 굴레… 아낙네의 솜씨 독특한 코뚜레- 민족의 이색- 어김없이 일본소는 아니다 《동무들! 우리 빨찌산들이 어느때부터 마적이 되였는가? 어느때부터 평민의 재산을 로략했는가? 이 굴레를 보라- 이 소는 조선농민의 소다 저 소는 중국농민의 소다》 이렇게 김대장이 말했다 이것은 소를 돌려보내라는 명령 이것은 산채를 캐여 아침 하라는 명령 빨찌산들이 산채를 듯보며 산조하듯 퍼졌을 때 살진 소 두마리 가담가담 풀을 뜯으며 산등타고 마을로 내려간다 어떤 화를 지날지도 모르며 또 어떤 불행 있을지도 모르며…
4
빙- 둘러선 빨찌산들… 그앞에 말없이 선 김대장… 머리우에 휘도는 싸늘한 기운 가을서리 내리듯 아침해발도 눈치채고 밀림으로 삼가 기여드는듯- 《뉘가 소를 죽였는가?》 대장이 낮게 묻는다 《…》- 군중은 잠잠 《뉘가 소를 죽였는가?》 낮고도 얼구는 목소리 그래도 대답은 없었다 높다란 침묵이 잉- 빨찌산들 고막을 친다 《대장동무! 내가 죽였습니다…》 한걸음 나서며 말하는 청년빨찌산 최석준 《네가?》 빨찌산들이 놀란다 싸움에서도 대담한 척후로도 이름있는 석준이… 더없는 전우라던 석준이 《네가 어찌?》 빨찌산들이 더 분해한다 새파랗게 고민에 질린 땅에 수그러진 그의 낯- 《대장도 우리도 나흘째나 굶게 되니…》 그러나 군중속에서 누군지- 《응, 변명을 하는구나!》 또 누군지- 《너는 명령을 거역했다!》 소대장 순선이 주먹을 들며- 《너는 왜놈들을 도와준다!》 석준이 번쩍 머리들며- 《왜놈들을 도와준다고?》 《그렇다!》 《내가?》 《그렇다, 네가!》 《아니 내가 왜놈들을 도와준다고?》 《그렇다 네가! 네가!》 《그렇다면…》 잘칵- 총재우는 소리 《자, 나는 죽어 마땅하니…》 석준이 총박죽을 내민다 《기척!》- 대장의 호령소리 철판으로 밀림을 들부시는듯 빨찌산들은 선자리에 붙은듯 오로지 무거운 침묵만 꽈악 뚜껑인듯 내려누르고-
5 《가마속의 물은 끓다가도 없어진다- 원천이 없거니- 허나 내물은 대하를 이룬다 동무들! 우리는 대하가 되련다 바다가 되련다 우리의 근간도 민중속에 우리의 힘도 민중속에 있다! 민중과 혈연을 한가지한 빨찌산임을 우리 잊었는가? 우리 이것을 잊고 어찌 대사를 이루랴! 민중과의 분리- 이것은 우리의 멸망 이것을 왜놈들이 꾀한다 우리 이것을 모르고 어찌 대사를 이루랴!》 기척해선 빨찌산들 쩌엉- 가슴을 가르고 치밀어솟는 의분! 《이제도 죄책을 모르겠는가?》 석준에게 대장이 하는 말 《압니다!》 석준의 대답 첫서리맞은 풀… 그것도 이것보다는 생생하리… 《나는 죄책을 잘 압니다》 석준의 떨리는 목소리… 재가 내여돋은 입술… 허나 이제도 처벌의 고개 어떻게 석준이 그 고개 넘으려나! 빨찌산들은 잘 안다 오직 한가지뿐- 《총살》! 폭풍우전 짧은 순간… 침묵… 침묵… 침묵… 《임자를 찾아 소값을 주라!》 이렇게 명령하고 대장이 돌아선다 새파랗던 석준의 낯에 몇줄기 붉은빛 빨찌산들의 낯에도 해발이 비친다 어떠한 커다란 충직과 신념이 빨찌산들의 가슴에 드러누워 툭- 툭 어리광치듯 심장을 쥐여박는다
6 빨찌산부대 열흘만에 동남으로 길떠났다 산촌사람들도 승벽내여 식량도 걸메올리고 부상된 전사도 치료하고 소대장을 몇십리 보내여 《토벌대》도 홀려가고- 허지만 밤마다 밤마다 대장은 잠 못들더니 어느날인가 약재 짊어진 로동복입은 중로인이 왔을 때 작은 지도 대장의 손에 쥐웠더니 그 이튿날 아침 동남으로 길떠났다 동남의 길- 앞에는 고개 뒤에 또 고개 골짜기도 많고 멀기도 하련만 어느 뉘가 괴롭다 하랴! 어느 뉘가 뒤서자 하랴! 앞으로! 앞으로! 승냥이도 추위에 얼어죽는 때 빨찌산들이 이 길을 그리였다- 그러면 새움이 마음속에 자라났다 나날이 주림이 모지름할 때도 빨찌산들이 이 길을 그리였다- 그러면 큰 낟가리 가슴속에 자라났다 돌아갈 길이 잡초에 막히고 마음 한바닥에 재만 무질 때도 빨찌산들이 이 길을 그리였다- 그러면 희망의 모닥불이 앞길을 가리켰다 동남의 길- 자나깨나 그리던 이 길 죽어도 한번은 가겠다던 살아서 살아서 못간다면 죽어서라도 기어코 가겠다던 조국으로 가는 길, 싸움의 길- 빨찌산들이 길떠났다 동남으로 길떠났다 앞으로! 앞으로! 오오! 앞에는 압록강! 압록강!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조기천, 백두산, 장편서사시 관련기사목록
|
삶과 문학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