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천의 장편서사시
백두산 (4)
백두산
제3장
1
머나먼 옛날
백두산포수막이
잣솔밭에 숨어있는 곳-
소리개 많다 하여 솔개골
허나 그렇게 많던 소리개도
그림자까지 찾을 길 없어지고
사발봉우엔 외까마귀 앉아
두메를 하소연하듯 울고만 있어라!
옛날엔 범잡는 포수들이
저녁이면 모닥불옆에 모여앉아
래일의 희망을 떳떳이 그리며
화승대 닦고 창끝 벼렸으리!
그러나 조상의 녹쓴 화승대도
귀뿌리 어루만지며 주재소에 바치고
포수의 후손들은
검둥이화전농이 되였다
2
세상에서 떨어져나간 솔개골-
이 마을에 김윤칠이 산다
피투성이 《3. 1》을 다시 맞은 해 봄
안해도 왜놈들의 뭇매에 죽고
의병들도 두만강 건넜을제
참나무통에 의의 총 감추고-
품팔이로 이곳저곳-
몇해인가 보내다가
이 솔개골에 화전농이 되였다
혜산에 있는 어린 딸 데려다가
분노도 희망도 두메의 흙속에 묻고
그날그날 보내더니
지난해 어느때부터
새 희망 새힘 얻었다
그것은
솔개골에 이런 전설 돌던 때
《백두산속엔 크나큰 굴
해도 달도 있고 별도 반짝이는
넓으나넓은 굴 있는데
그속에선 용사 수만이 장검을 간다고
장검을 바위돌에 갈면서
령 내리기만 기다린다고
때가 되면 령이 내리고
령만 내리면
석문이 쫘악 열리고
석문이 열리면
용사들이 벼락같이 쓸어나오고
용사들만 쓸어나오면
이 땅에 해방전이 일어난다고
왜놈들을 쳐부시리라고-》
이때부터 꽃분이도
철호의 지도받았고
이때부터 백두산을 바라보면
마르고 쪼들린 마음속에
오월의 대하인양 격랑이 도도
3
백두산! 백두산!
너, 세기의 증견자야!
칭기스한의 들띄우는 말발굽도
풍신수길의 피묻은 칼도
너의 가슴에 잊히지 않은 상처를 남겼고
오백년 왕업도
사신의 두어깨에 치욕의 짐이 되여
너의 등골에 모멸의 발자욱치며
해마다 압록을 건너야만 될 때도
인민만은 자유의 홰불을 쳐들고
홍경래의 창기를 뒤따랐고
동학의 싸움을 펼쳤다
허다가 반만년 다듬기운 이 땅이
왜적의 독아에 을크러질제
백두야, 너도 가슴막히여
숙연히 머리 숙이였지!
그러나 인민만은 봉화를 일으켜
칼을 들고 의병이 일어났고
피를 들고 《3. 1》이 일어났다
파업의 굴뚝에 분노 서리우고
《소작》을 안고 주림이 통곡칠 때
또 송화강물결까지도
왜적의 그림자에 거칠어지고
만리장성도 놈들의 멸시에 맞아
조약돌로 딩굴 때
이 나라의 빨찌산들이 일어나
반항의 기치를 피로 물들이거니
아아, 백두야 네 얼마나
동해의 날뛰는 파도인양
격분에 가슴을 떨면서
바다속 섬나라 저 원쑤를-
하늘아래 한가지 못살 저 원쑤를
피어린 눈으로 노렸느냐!
4
꽃같다고 꽃
분같이 희다고 분-
꽃분의 어린 때는
혜산 어느 마을에서 지냈다
솔개골로 온지도 십여년-
학교라곤 구경도 못한 꽃분이
허나 기나긴 겨울밤은 한글의 밤
아버지의 가르침받아
손싸래에 때묻고 모지라진
몇해전 《신녀성》도 쉽게 보았다
임당수 깊은 물에
심청이를 버린 그 배사공들이
한없이 야속하다 눈물도 지었고
드덜기 캐면서도
신관사또 변학도의 목 버이노라
중동을 찍어 동댕이도 쳤다
때로는 아버지의 구슬픈 이야기-
그것은 소녀의 가슴속에
세월은 흘러도 더 피여오르는
불멸의 불덩이!
5
기미년 《토벌》에 돌아가셨다는 어머니-
그렇게 기다리던 보리밥도 못받고…
어떤 때는 치받치는 어머니생각
온 마음을 비트는듯 조이는듯-
《어떻게 원쑤 갚을가!》
꽃분이 온몸 떨었다
꿈속에라도 잠꼬대 피하려고
혀 물어끊어 벙어리되고
대사의 비밀을 죽음으로 감추며
고문대에 매인채 소리없이 죽어간
그 이름모를 청년-
《실루 그런 오빠나 있었으면!》
꽃분이 한숨지었다
빨찌산남편을 천정에 감추고
놈들의 창에 찔려죽으면서도
남편이 알면 뛰여내릴가
한마디 신음도 안낸 그 마을아낙네-
《아, 나도 그래리라!》
남몰래 꽃분이 맹세했다!
6
산천의 밤-
마을집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모지라빠진 뒤웅박같은 두메의 삶이
누덕밑에서 어지러운 꿈자리 펴는
밤에도 4월의 한밤!
물레방아소리도 그쳤다-
마지막물레방아소리…
굶주리는 마을을 조상하듯
밤새 개울물줄기 외로이 부여잡고
목놓아 흐느껴울던 그 소리…
그래도 두메의 외딴 오막살이 한채엔
이밤이 삶의 밤, 투쟁의 밤-
철호와 꽃분이
마지막선포문 찍는다
이제 백부만 더 찍으면 그만
래일 아침엔 철호 떠나리
이때-
밖에서 가벼운 발자취소리-
온몸에 바늘이 돋는듯
포장내린 창밖에서
수직서던 아버지의 숨겨운 소리-
《꽃분아! 불꺼라!》
캄캄한 방안
어느새 철호는 등사기와 선포문 안고-
《꽃분이! 뒤문 여우!》
그러나 벌써 무거운 발자욱소리 들렸다-
가슴을 으스러뜨리는 발자욱소리
심장이 골풀이치다 기절한듯-
꽃분이 한자리에 서있다
《나가면 체포된다!》- 머리속에 언뜻
《어쩔가?》 순간은 천년인듯!
7
다음순간…
신념과 압력에 찬 꽃분의 말-
《철호 이불 쓰고 눕소!
아버지도 정주에!》
어느새에 자리 펴지고
철호도 등사기도 삐라도
이불밑에 들었다
밖에선 건방진 순사의 반말-
《여보 령감! 자나?》
《…》
《이 두상 웬 잠을!》
《그게… 뉘기요?》
꽃분의 목소리 잠내난다
허면서도 그는 저고리 벗었다
창문에 포장 살짝 벗기며-
《가만 있습소… 불을 켜고…
《아뿔싸, 등잔 쏟았네!》
(등잔은 걸린대로 있었다.)
《에그! 석유냄새야!》
(등사유냄새였다.)
빤해진 창문에 비친 그림자-
또렷이 나타난 처녀의 젖가슴
그것은 순사의 눈뿌리 뺐다
능청스런 꽃분의 말-
《가만 있습소… 내 옷입고…》
주섬주섬 방안에 흘려진 선포문
철호의 이불속에 들었다
《나리님, 들어오읍소》- 꽃분이 문연다
8
《에잇! 냄새… 이건 누구야?》
《내…저의 새서방이요…》
《새서방? 너 시집가?
계집년이 초저녁부터 끼고 누워…》
《나리님두… 초저녁이라니…》
꽃분이 웃으며 말한다
《잡말 말고 두상에게 일러!
래일 아침 주재소로 오라구》
아니꼽게 방안을 훑어보고
획 돌아서는 순사
그 발자취소리도 사라졌을 때
불붙는 낯을 두손으로 막으며
꽃분이 주저앉는다
감격에 말없이 일어선 철호에게
《아이고 참! 용서하옵소!》
머리숙이고 부엌으로 나간다
방안에 홀로 남은 철호
감격에 떨리는 입술로
《꽃분동무!》
맘속으로 부르짖고
맘속으로 합장하고 무릎꿇고-
《참다운 전우여!
이 나라의 귀여운 딸이여!》
밤은 깊어도 가누나
창문을 사이 두고
밤은 깊어깊어 한밤에 드누나…
이 한밤
철호 길떠났다…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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