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천의 장편서사시
백두산
제5장
1
총소리 난지도 이슥할제 추격의 마지막총소리- 철호 걸음 멈춘다 심장이 악쓰며 미지의 길 달리고 목에서도 재불이 날리고- 그런데 온 삶은 청각에 올랐거니 달빛아래 휘늘어진 수림속 나무들만 우중충- 사방은 죽은듯… 그때에야 껴안은 소년을 땅우에 삼가 내리우며 - 《영남아! 영남아!》 철호 낮게 부르짖는다 달빛에 해쓱한 소년의 낯 괴로운 잠꼬대인양 가느다란 신음… 가슴에서 흐르는 피 저고리섶 적신다 — 옷소매 끊어 상처 싸매며- 《영남아 우리 가자! 우리 솔개골로 가자!》 허나 소년은 눈감고 말이 없다 어머니 앓는 애를 안아일으키듯 철호 소년을 안고 일어선다 2
이밤은 불운의 밤- 이밤에 마지막보고 가지고 철호와 영남이 압록강 건느려다 일본수비대의 추격에 들었다 이밤은 불행의 밤- 그러나 이 살판치는 불행을 한사람만 알고있으니 영남이는 정신 잃어 모르고 철호만 그 불행을 한아름 가득안고 허둥- 지둥- 밤길로 동북으로 나간다 솔개골로 가려고… 영남이를 살리려고… 밤길- 밤길에도 산속에 밤길… 뒤에는 감옥과 죽음을 두고 앞에선 이름도 모를 위험이 고양이같이 모퉁이 지키는데 죽어가는 소년을 안고 터지는 가슴을 눅잦히며 한걸음 두걸음 걸음마다 애끊어지는 산속의 밤길 철호의 길! 이 나라의 맘있는 길손들이여 몇번이나 그대 이런 밤길 걸었느뇨? 그대 정녕코 철호의 길 모를리 없거늘 맘속에라도 이곳에 오라- 이곳에 와서 철호를 도와주라 손톱까지 적시는 땀 철호 몰래 씻어주라! 고통의 밤길 이 밤길 어느 뉜들 그 이름이나 알리오만 그러나 이 나라에 열리고야말 그 생의 대로에 련하여지리 아무도 모르게 이름도 없이…
3
몇리나 걸었는지도 모른다 몇시나 걸었는지도 모른다 오로지 하나의 생각뿐- 솔개골로 빨리 가자! 영남이를 살리자! 새벽을 잡아서 화전골 첫 어구에 들어섰을 때 영남이 정신차렸다 그의 첫말- 《보고를… 보고를…》 그담 물을 달라고 철호는 물 얻으러 달려가고 소나무밑 이름모를 봄풀우에 반듯이 누워있는 소년- 그 크다란 불타는 두눈 부릅뜨고 검푸른 하늘 노려보다가 벌떡 일어나며 두주먹 높이 들며- 《끝까지 싸우라! 조선독립 만세!》 높이 부르짖었다 이렇게 총에 맞은 갈매기 바위에 떨어져 부닥쳐도 꺾어진 나래를 퍼덕이며 생과 투쟁에 부른다 그렇게 마지막 부르짖은 소년 다시 스르르 모으로 쓰러진다 입술로 두줄기 피 흘러서 풀잎에 맺힌 밤이슬에 섞인다… 눈동자에 구름장이 얼른… 바람이 우수수- 소나무를 흔든다…
4
철호 무덤을 판다 소나무밑에 영남의 무덤을… 파다가는 한숨 쉬고 한숨 쉬고는 또 파고… 어찌 이곳에 그를 묻을줄 알았으리- 그 생을 즐기던 소년을 이 나라의 강물인양 그 맑은 마음을 그 조국애에 끓던 심장을! 철호 무덤을 팠다- 소나무밑에 전우의 무덤을 《잠자라 동무야! 우리들이 우리들이 원쑤 갚으리라!》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누런 흙에 점점이 떨어진다 장백의 높고낮은 고개고개에 이 무덤이 첫 무덤 아닌줄이야 우리 어찌 모르랴! 침략의 피서린 밤이 이 나라에 칭칭 걸치였거니 새날을 위해 싸우다 죽은이 헤여보라 몇만이나 되는고? 어느 고개 어느 골짜기에 어느 나무 어느 돌밑에 이름도 없이 그들이 묻히였노? 이 나라의 초부들이여 부디 삼가 나무를 버이라- 우리 선렬의 령을 그 나무 고이 지키는지 어이 알리 부디 삼가 길옆에 놓은 돌 차지 말라- 우리 선렬의 해골이 그 돌밑에 잠들었는지 어이 알리!
5
오솔길 샘터로 올라가는 오솔길 아침안개 휘휘 발길에 감기는 오솔길- 꽃분이 물길으러 올라간다 올라가노라면 돌담불- 순사 왔던 그날 밤 등사기 감추어둔 돌담불… 아침이고 저녁이고 이곳을 지날 때면 밤길 떠난 철호의 모습 떠오르니… 《시방은 어느 곳에 계신지? 떠나신 후 소식조차 없으니 무사히나 일하시는지?》 웨 그의 모습이 날 갈수록 더 그리워질가? 웨 이리도 가슴이 안타까울가? 떠지는 걸음걸이… 무엇인지 맘속에 무겁게 처매운
6
돌담불을 지나면 샘치바위 진달래꽃에 불그스레한- 그밑에는 샘터… 밤새 떨어진 꽃이 샘물을 덮었다 꽃분이 주저앉아 두손으로 꽃잎 거둔다 한줌 거두어 돌우에 놓고 두줌 거두어 돌우에 놓고… 산란하고 들뜨는 마음 (만날수는 있을가?) 샘물을 바라보는 처녀의 생각 거울같은 물속에서 어글어글한 두눈 수심을 낱낱이 말하는듯- 《에그! 내 무슨 생각을!》 낯을 붉히는 처녀 세번째줌 거두어 돌우에 놓으려다 처녀 놀라 멈춘다- 바위옆에 그가 섰어라! 《철호!》- 처녀의 부르짖음 놀라움과 기쁨에 섞인 쥐였던 꽃뭉치 우수수 떨어져 샘물을 다시 덮는다… 그러나 기진하고 어이없는 철호의 낯 꽃분의 숨결을 막는다- 《무슨 일에?》 《간밤에 영남이 죽었수…》 《영남이? 아이구 기차기두!…》 처녀의 심장옆에서 무거운 아픔이 꿈틀 돌아눕는다 또 돌아눕는다… 한시후에 철호 떠나고 꽃분이도 길떠났다 H시로 간다고 전에없이 꽃팔러 간다고 진달래꽃 한임 이고 몇몇해 정성껏 자래우던 샘터 진달래도 모조리 뜯어 한떨기도 남기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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