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변혁운동에서 <생산력>보다 <변혁역량>이 더 중요하다
지난 시기 철학적 사조들이 <물질과 의식과의 상호관계의 원리>에 기초하여 <물질> 또는 <의식>을 중심에 놓고 세계를 고찰하는 철학적 방법에 따라 세계관을 세웠다. 그러다가 마르크스주의의 <변증법적 유물론>이 등장하여 <형이상학적 관념론>을 극복하고 세계의 <물질적 본성>과 그 <운동발전의 합법칙성>을 해명함으로써 물질과 의식과의 관계문제를 둘러싼 철학의 장구한 논쟁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그 기초 위에서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물질적 존재인 <인간의 본질적 특성>을 밝혀내어 세계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해명함으로써 인간을 세계의 주인, 세계의 지배자, 개조자로 내세우는 주체철학이 등장하게 되었다.
마르크스주의는 <세계의 물질성>과 그 <합법칙적 운동법칙>을 발견하고 그것을 사회역사 연구에 적용하여 <유물사관>을 정립함으로써 <인간의 본질적 특성>과 세계에서 차지하는 <인간의 지위와 역할>을 밝힌 주체사상이 나올 수 있는 전제를 마련하는데 큰 공적을 세웠다. 주체사상이 인간의 <본질적 특성>을 밝히고 <세계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철학의 근본문제>로 정립한 것은 새로운 혁신이며 완성이라고 주체사상학자들은 강조하고 있다.
위에 언급한 유물변증법적 세계관에 기초한 마르크스주의의 변혁이론에서는 <물질>이 일차적이며 사회발전에서 객관적 물질적 여건인 <생산양식>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귀결로부터 <물질경제적 요인>에 일차적이며 결정적인 의의를 부여하였다. 그리하여 역사의 기초에 <생산양식>이 놓여있고, 사회변혁의 근본 추동력이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관계>라고 보고, 사회변혁승리의 중요한 객관적인 물질적 조건을 갖추기 위해 <생산력>의 발전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일위원장은 1994년에 쓴 논문 [사회주의는 과학이다]에서 이문제를 다음과 같이 해설하였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생산력이 발전하면 할수록 생산력과 생산관계사이의 불상용적모순과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사이의 적대적모순이 격화되고 로동계급을 비롯한 혁명력량이 장성강화되며 따라서 혁명이 더욱더 성숙되여가는것으로 된다.”
그러나 이 사회변혁이론의 문제점은 민중이 변혁운동에 목숨까지 내놓고 참여하는 것은 생산력을 발전시켜 물질적 요인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 아니란 점이다. 물론 물질적 요인은 변혁운동의 객관적 환경과 여건, 수단으로서 그 준비정도, 성숙정도는 그 발전과 성과적 수행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그것이 사회변혁운동의 발생발전을 규정하는 결정적 요인, 그 승패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사회역사적 운동을 그 주체인 민중의 주동적인 작용과 역할에 의하여 발생발전하는 주체의 운동으로 보지 않고 주로 물질경제적 요인에 의하여 변화발전하는 자연사적 과정으로 보고 있다.
사회를 사람들의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유기적 결합체라고 본다면, 사회적 운동의 본질은 <인간의 운동>이며, 따라서 사회변혁운동은 <민중의 목적의식적인 운동>이다. 인간을 객관적 물질적 존재임과 동시에 주체적 성격, 즉 자주적, 창조적, 의식적 성격을 띠고 있는 존재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주체사상의 관점이다. 따라서 사회변혁운동은 민중이 그것을 사활적 요구로 들고 나오고, 또 그것을 수행할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리한 물질적인 객관적 여건이 조성되고 유리한 모든 환경이 다 갖추어졌다 하더라도 민중이 그것을 요구하지 않고 각오가 되어 있지 않으면, 즉 <변혁역량>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사회변혁운동은 발생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변혁운동을 반대하는 지배층들은 그 유리한 물질적 조건을 부숴버리기 위한 최신식 장비들, 언론매체들, 폭력기구들, 사상기구들을 다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제국주의세력의 지원까지 받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사회변혁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생산력의 발전>도 물론 중요하지만, 인간을 자주적, 창조적, 의식적인 사회적 존재로 발전시키기 위하여 인간의 사회정치적 속성을 더욱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즉 자연개조도 중요하지만 인간 자체와 사람들의 관계도 개조해야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생산력>을 높여 물질적 조건을 성숙시킴과 동시에 자주적, 창조적, 의식적 존재인 인간 자신을 재생산해내어야 한다. 즉 <변혁운동가들>을 계속 재생산해 내어 <변혁역량>을 키워야 한다. 간단히 설명하면, 변혁의 주체를 강화하고 그 역할을 높이는 것을 사회변혁운동의 근본방도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변혁의 주인이며 직접 담당자인 민중의 본질적 속성을 발전시키지 않고는 자본주의 제도를 제거하고 사회주의 제도를 세우는 것만으로는 혁명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주체사상의 견해이다. 사회변혁을 이끄는 일꾼들을 사상적으로 문화적으로 개조하지 못하면 새로운 사회주의 제도 속에서도 관료주의가 나오고, 무능한 기생주의와 의존성이 생겨나며, 주어진 조건에 적응이나 하는 적당주의가 생겨난다고 주체사상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사회주의 일꾼들은 자기 이익이나 추구하며 집단주의를 파괴하는 개인주의에 빠지기도 한다.
나는 덴마크와 스웨덴, 노르웨이, 등 사회민주주의 제도를 채택한 나라들을 방문하여 텔레비전을 볼 때마다 지극히 실망하곤 했다. 그들 나라가 <생산력>은 발전시켜 경제적으로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으나 사상개조와 문화개조를 통한 인간개조에는 실패했다고 보았다. 그곳의 젊은이들이 미국에서 나온 갱영화에 정신이 빠져있고 상당수가 마약에 빠진 것을 보았다. 주체사상에서는 일찍이 변혁운동에서 이 <인간적 요인>을 중시하고 사상, 기술, 문화혁명을 강조해 왔다. 그리하여 이북에서는 사회주의제도가 확립된 후에도 낡은 사상문화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투쟁을 계속 전개해 왔다. 이러한 면을 보지 못하고 오로지 물질적인 발전만 보고 어떤 제도의 발전을 논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많은 해외동포들이 이북을 방문하고 돌아와서는 대다수가 “북한은 너무 못산다. 좀 잘살게 해놓고야 이야기가 되겠다. 남한보다 너무 못산다.”고 한마디씩 한다. 마치 경제적 부를 이루는 것만이 사회주의인양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북 동포들의 높은 사상의식, 그들의 인간관계의 평등성, 그들의 문화적 수준, 서로 상부상조하는 마음, 변혁과 통일에의 헌신적 자세, 인간애와 조국애,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족의 자주성을 지키는 일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남한보다 잘 산다고 하는데 누구의 입장에서 잘 산다는 기준이 없다. 사실상 <생산력> 중심으로 사회제도의 우수성을 평가하는 것은 단지 초보적 단계이다. 이 문제에 대해 이북에서 발행되는 통일신보에 안광즙 선생은 다음과 같이 잘 지적하고 있다.
“사회주의는 민중에게 인간의 본성적 요구에 맞는 가치있는 삶을 보장하며 그들이 서로 돕고 이끄는 단합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가에 의하여 결정된다. 자본가 계급 위주의 자본주의 사회는 아무리 생산력이 발전하고 물질적 재부가 늘어난다 하더라도 그것이 사람들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할 수 없고 따라서 공동의 이상을 위해 서로 협력하는 인간관계를 발전시킬 수 없다.”
결국, 사회변혁운동의 유일한 방법은 사회변혁운동의 주체인 민중의 사상의식을 개조하고, 그들을 조직화하여 그들의 창의력과 창발성을 최대한으로 발양시키는 것, 즉 주체를 강화하는 것이다. 김정일위원장은 위에 언급한 [사회주의는 과학이다]라는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혁명의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은 객관적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혁명의 주체를 어떻게 강화하고 그 역할을 어떻게 높이는가 하는데 있다…혁명의 주체를 강화하고 그 역할을 높이는 사업을 잘 한다면 사회주의의 승리를 이룩할 수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사회변혁운동에서 객관적인 물질경제적 조건에 결정적 의의를 부여하고 생산력증가에만 몰두하면서 민중의 사상개조사업을 등한시하여 주체를 강화하고 그 역할을 높이는 사업을 소홀히 하면 사회변혁운동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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