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연재】 나와 주체사상과의 대화 (5)주체사상의 창시와 전일적 체계를 갖춘 학설로의 심화발전【도서연재】 나와 주체사상과의 대화 (5)
제 1장 주체사상의 창시와 전일적 체계를 갖춘 학설로의 심화발전
나: 이남에서 주체사상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평가에서 또 하나의 큰 문제점으로 되고 있는 것은 주체사상의 창시와 그 완성과정에 대한 이해입니다. 일부 식자들과 ML론자들은 주체사상의 창시를 50 년대 중반으로, 60 년대 중반으로, 70 년대 초로 보면서 각이한 논조들을 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해명해 주시지요.
주: 그러한 주장들을 보면 50 년대 중반 이전에는 "어느 곳에서도 '주사’라는 철학적 문장은 없다.”(1)고 지적하면서 ‘주체’, ‘주사’라는 개념이 언제 사용되었는가를 가지고 논의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북의 내부사정과 주변정세 속에서 "체제수호를 위한 통치이데올로기"(2)로 논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이해들은 그것이 집권세력의 강요나 의사에 따라 움직이는 매문가들이 아니라면 사상의 창시를 보는 방법론적 시각에 대한 그릇된 인식, 사상의 창시와 그 심화발전과정을 동일시하는 그릇된 이해, 혁명발전과 주체시대의 요청에 대한 그릇된 이해에 기인한다고 봅니다.
우선 주체사상의 창시와 그 심화발전과정을 크게 구분하여 논의할 수 있겠습니다.
제 1절 주체사상의 창시문제
나: 김정일 총비서께서는 1930 년 6월에 주체사상이 창시된 것으로 규정하시었는데 이남의 일부 식자들과 ML론자들은 1930-1955 년의 시기는 "...아직 철학으로서의 주사가 없었을 뿐 아니라 자주노선조차 없었던 시기였다."(3)고 말하고 있습니다. 문헌 "북한의 사상"의 편집자와 "한국사회변혁과 철학논쟁"의 저자도 같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체사상의 창시문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었으면 합니다.
주: 논의를 전개하기 전에 이남의 한 학자가 1930 년대에 주체사상이 창시되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견해에 대해 한 말을 인용하는 것이 흥미있을 것 같습니다. 한 학자는 1930 년대에 주체사상이 창시되었다는 주장을 따를 경우 “…주체사상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악랄한 침략책동의 시기에 사대주의자, 교조주의자, 행세식 맑스주의자들의 오류를 준열히 비판하고 무장투쟁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혁명의 올바른 노선을 제시한 것이 된다...이 견해를 따를 경우 국제당(코민테른)의 승인하에 조선공산당을 창건한 당시 국내 공산주의 운동세력은 '사대주의자’가 되며 주체사상에 입각하여 무장투쟁을 중심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한 것은 운동의 정통성을 획득할 뿐 아니라 주체사상은 ‘혁명’과 그후의 ‘건설’의 과제를 실질적으로 담보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1950 년대 주장은 주체사상의 이러한 내용과 운동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효과를 갖는다."(4)고 썼습니다.
물론 이러한 정치적 의도에서 주체사상의 창시문제를 논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편견을 떠나서 객관적 역사적 사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체사상의 창시를 분석하는 방법론적 시각부터 정확히 세워야 하며 역사의 발전, 혁명발전의 시대를 보는 올바른 척도가 규정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1) 사상의 창시를 보는 방법론적 시각
가)사상의 창시를 확정하는 기준
나: 그러면 사상의 창시를 확정하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주: 사상의 창시는 결코 그 누가 사상의 창시를 선포한다고 하여 되는 것도 아니며 그러한 개념이 언제부터 씌어졌느냐에 의하여 규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사상의 창시는 사상의 진수로 되는 <사상적 알맹이>가 언제 천명되었느냐에 따라서 확정되며 사상적 알맹이가 이론적으로 전개되고 심화되며 체계화되는 과정을 전일적 체계를 갖춘 학설로의 완성과정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주체"라는 개념이 언제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느냐(5)에 주안점을 두고 주체사상의 창시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유치한 일입니다. 사상적 알맹이를 거세하고 "주체”라는 말을 어원적으로 따진다면 먼 과거에로 올라가게 됩니다. 과거에 사람들은 "주체"라는 개념을 “주관"과 동의어로 썼으며 "객체" 와 "객관”의 상반개념으로 썼습니다. 그것과 자기운명의 주인으로서의 “주체" 라는 개념은 그 본질적 의미와 내용이 근본적으로 구별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주변정세와의 관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라는 각도에서 주체사상의 창시문제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논의를 비판하면서 이남의 한 학자는 "주체라는 용어가 언제 처음 씌어 지는가를 가지고 그 사상의 뿌리를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형식주의적이며 또 단지 주변정세만을 가지고 북한의 사상과 노선을 고찰한다는 것이 얼마나 비주체적인 발상인가?”(6)하고 옳게 비판하였습니다.
마땅히 주체사상의 진수를 파악하고 그에 주안점을 두어 주체사상의 창시과정을 분석하여야 합니다. 많은 연구자들이 맑스주의 창시를 1848년 "공산당선언"의 발표시기까지로 계선을 긋는 것도 이러한 인식에 바탕한 것이라고 봅니다.
나: 맑스주의 창시를 "공산당선언"으로 확정하는 이유는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요.
주: 맑스주의 철학이 "변증법적 유물론"이라고 하여 "변증법," "유물론"의 개념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느냐 하는 시각에서 맑스주의 창시를 규정하려 한다면 그것은 먼 과거에로 소급해가야 할 것이며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정식화가 언제부터 사용되었느냐 하는 시각에서 본다면 맑스주의 창시를 맑스나 레닌의 사후의 일로 규정해야 합니다.
맑스주의 연구자들이 맑스가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저작을 쓴 것이 없으며 "자본론"에 변증법과 유물론이 유기적으로 통일되어 있다고 한 것은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개념의 정식화를 맑스주의 창시의 시점으로 보려는 견해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하여 "공산당선언"에 "변증법적 유물론"의 개념이 정식화되어 있는 것도 아니며 맑스주의 사상과 이론, 구성체계가 전면적으로 정식화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공산당선언"에는 맑스주의 정의도 그 구성체계에 대한 해명도 없으며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용어도 없습니다.
맑스주의를 철학, 정치경제학, 과학적 공산주의를 구성체계로 한 학술적 이론체계로 정식화하고 철학을 변증법적 및 역사적 유물론으로 규정한 것은 레닌(7)이며, 변증법적 및 역사적 유물론에 대한 정의와 구성내용을 정식화, 체계화한 것은 스탈린(8)이며, 맑스주의 철학교본이 "변증법적 및 역사적 유물론"으로 정식화, 체계화된 것이 1930 년대초 러시아 학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당선언"을 맑스주의 창시로 확정하는 것은 거기에 맑스주의 진수인 계급투쟁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사상이 명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나: 그러면 참으로 “공산당선언”에 계급투쟁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사상이 원리적으로 정식화되고 이론적으로 전개되어 있는지요?
주: 그렇지도 않습니다. 거기에는 맑스주의 진수를 이루는 사상적 알맹이가 명시되었을 뿐입니다. "공산당선언"에는 "노동자 혁명에 있어서 제 1보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계급에로의 전화,“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9)라고 표현되었을 뿐입니다.
맑스는 1852년 3월 5일 와이데마이에르에게 보낸 서한에서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를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개념으로 뚜렷이 정식화하고 있으며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계급투쟁의 필연적 산물이며 그것은 온갖 계급을 폐절하고 무계급사회에로 이행하기 위하여 필요하다는 것(10)을 뚜렷하게 서술하였습니다. 그리고 1871년 파리코뮨 경험에 기초하여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정치적 형태에(11) 관한 견해를 정식화하였으며, 1875 년 “고타강령비판”(12)에서 과도기와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견해를 정식화하였습니다.
맑스주의의 창시와 그 이론적 체계화와 심화발전과정을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이 맑스주의 창시와 그 체계화와 완성과정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명백한 것은 사상의 진수를 이루는 사상적 알맹이의 명시와 그의 정식화, 이론전개와 체계화는 구별되는 것이며 이론전개와 체계화 과정은 사상의 창시가 아니라 내용과 구성체계를 갖춘 사상으로 심화•발전되는 과정에 속합니다.
주체사상의 창시도 "주체"라는 개념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느냐, 또는 주체사상의 내용이 언제 이론적으로 정식화되고 전개되었으며 체계화되었느냐 하는 잣대가 아니라 주체사상의 진수를 이루는 사상적 알맹이, 즉 인간의 운명의 주인, 민족의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라는 사상이 언제 천명되었으며 그것이 언제 혁명적인 노선으로 선포되었느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나) 역사적 시대의 요청, 시대평가의 척도
나: 사상의 창시를 역사적 시대의 요청과 필연적으로 연관시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은 주변정세와 결합시켜 그것을 논하며 또 역사적 시대와 연관시켜 보는 일부 논자들의 경우에도 시대평가의 기준을 사회경제구성체로 규정하고 주체시대 자체를 부정하는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해설해 주시지요.
주: 사회경제구성체를 역사적 시대평가의 척도로 고집하는 것은 시대평가의 척도에 대한 올바른 이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이남의 한 식자는 “…주체시대의 규정자체가 과학적인 시대구분과 시대규정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반박된다. 주체시대는 그 본질적 성격을 사회의 객관적, 물질적 토대의 변화에 근거하여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특히 정치경제학적 분석없이 '주체시대’라 규정한다면 자의적이란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13)고 했습니다.
한편, 이러한 사구체를 척도로 하여 시대를 규정하는 견해를 비판하는 식자들도 있습니다. 한 논자는 "우리는 이러한 현재의 시대를 ‘주체시대’라고 부른다. 전세계적으로 근로인민대중들의 영향력이 한줌 제국주의자들의 종이방패를 태워버릴 수 있을 정도로 증대된 시대, 따라서 전세계적으로 나라에 의한 나라의 압박, 민족에 의한 민족의 압박이 점차 사라져 모든 나라간, 민족간의 관계가 호혜평등과 자주의 기초위에서 나가고 있는 시대, 우리는 이러한 시대를 ‘전반적 위기의 3 단계'니 ‘국가독점자본주의 시대’니 혹은 ‘제국주의 시대’라고 이름짓는 것은 일반성, 보편타당성을 잃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멸해가는, 마지막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는 세력을 우리 시대의 대변인으로 내세운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14)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인류역사는 말 그대로 그 어떤 물건의 역사나 신비적 힘의 역사, 타율에 의해 이루어진 역사가 아니라 바로 인간자신의 역사입니다. 인류역사가 인간의 역사라 함은 또한 그 어떤 특정한 인물이나 계층에 의해 전진해 온 역사가 아니라 민족, 민중의 주체적 힘에 의해 역사가 발전해왔음을 의미합니다. 인류역사는 역사의 주체인 민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이며 민중의 지위와 역할이 신장되어 온 역사입니다.
여기서 사구체를 척도로 보는 맑스주의적 이해와 민중의 지위와 역할을 척도로 보는 주체적 이해중에 어느 것이 역사적 시대에 대한 과학적이고 포괄적인 규정을 내릴 수 있게 하며 그 상호관계를 어떻게 보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의식이 제기됩니다.
나: 그러면 사구체를 시대구분의 척도로 보는 맑스주의적 이해의 근거가 무엇인지를 우선 분석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됩니다.
주: 맑스주의에서 사구체를 역사적 시대구분의 척도로 보는 것은 첫째로, 사회경제관계, 생산관계에 의하여 정치적 및 이데올로기적 제관계가 규정되며 사회의 발전은 경제관계의 변화에 따라 자연사적 과정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며, 둘째로, 사회발전의 자연사적 과정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변증법에 의하여 기초 지어진다는 것입니다. 결국 사회의 면모, 사회의 성격을 특징짓는 데 있어서 결정적 요건은 생산관계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맑스주의에서는 생산활동과 생산관계의 직접적 담당자인 인간이 오히려 생산력의 요소, 생산관계의 요소, 사회적, 물질적 힘, 사회적 물질적 관계 속에 해소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맑스의 초기 노작들 중의 하나인 “경제학 철학수고”에서는 인간의 자기 소외론, 노동과정론이 일정하게 전개되었으나 맑스주의 최고완성이라고 볼 수 있는 "자본론"에서는 상품과 자본에 대한 분석이 전면에 나와 있고 그 주체인 노동계급의 인간상은 뒤로 밀리어 그 자체로서는 전혀 논의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역사인 인류역사와 인간의 사회를 그 담당자인 인간을 떠나서 어떻게 성격과 특징을 규정할 수 있겠느냐 하는 점입니다. 마땅히 사회관계의 주체인 인간을 위주로 하여 인간의 지위와 역할을 척도로 시대와 역사를 평가하는 방법론이 세워져야 합니다.
다음으로, 문제점은 생산활동, 경제적 관계란 말 그대로 물질적 활동, 물질적 관계이지 물질적 실체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물질적 활동, 물질적 관계는 그 담당자의 본질적 속성의 노출이며 본질적 속성의 발전수준과 내용에 따라 그 성격과 내용이 규정됩니다. 즉 생산활동, 생산관계의 성격과 내용을 규정하는 것은 그 담당자인 인간의 자주성, 창조성의 내용과 발전수준, 그에 의해 규제되는 인간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입니다.
나: 그러면 인간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에 의해 시대와 역사의 발전을 평가하는 주체적 시각은 어떻게 전개되는지요.
주: 사회는 사람들의 기계적 모임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결합된 전일체입니다. 사람들은 생활수단과 생활조건을 마련하기 위해 일정한 방식으로 노동도구를 제작소유하고 이용하여 생산물을 생산하고 분배하고 교환하는 생산관계를 맺고 물질생활을 하게 됩니다. 또한 집단을 이루는 구성원들의 각이한 요구와 이해관계, 창조적 능력을 통일적으로 조절하고 지휘하기 위한 사회적 관계를 맺고 공동생활을 영위하며 정치생활을 해나가게 되며 사람들의 사회적 창조적 능력을 키우기 위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정신생활을 하게 됩니다.
사람들 사이에 맺게 되는 이러한 사회적 관계의 본질은 사회적인 공동생활을 하는데서 나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규정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사회의 각이한 구성원들이 자기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충족시킬 수 있는 얼마만한 사회적 권한을 가지고 생활하느냐 하는 문제이며, 다른 하나는 사회구성원들이 어떠한 사회적 분공을 받고 공동생활에 이바지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전자가 사회에서 사람들이 차지하는 지위를 규제하는 측면이라면, 후자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놀아야 할 역할을 규제하는 측면입니다. 이로부터 사람들이 맺는 사회적 관계의 본질은 사회에서 사람들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규제하는 사회적 질서라는 데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질서의 공고한 체계가 바로 <사회체제>라 할 수 있습니다.
사회에 대한 이러한 분석은 어떤 역사적 시대, 어떤 사회이건 그 면모와 본질적 특성이 사회의 주인인 사람의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의 내용과 수준, 그리고 그에 의해 규정되는 사람의 지위와 역할, 사회관계의 공고한 체계인 사회체제에 의해 규정된다는 결론을 내리게 합니다. 결국 시대의 본질적 특성, 사회의 면모와 그 역사적 위상을 총체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반복성의 기준, 보편성의 기준은 사람들의 지위와 역할, 그를 규제하는 사회적 관계의 공고한 체계인 <사회체제>라는 데서 귀결점을 찾게 됩니다.
시대적 특성규명, 사회의 성격규정이 사람들의 지위와 역할을 규정하는 사회체제의 특성을 해명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하면 그것은 어떤 사회적 집단, 어느 계급이 사회에서 주인의 지위를 차지하고 주인의 역할을 하느냐 하는 문제로 표현됩니다. 그런데 낡은 사회체제를 변혁하는 데서 시종일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민중이었으며 물질적 및 정신적 재부의 창조자도 민중이었습니다. 민중은 어느 사회에서나 사회의 발전과 변혁을 위하여 투쟁하는 역사의 영원한 주체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지위와 역할에 의하여 시대의 특성, 사회의 성격을 규정한다는 것은 곧 민중의 지위와 역할을 기본으로 하여 사회의 모든 물질적, 이데올로기적 관계, 정치, 경제, 문화적 제관계를 통일적으로 규정한다는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나: 그렇다면 사구체론과 사회체제론 둘중에서 어느 것이 시대의 특성, 사회의 성격을 규정하는 포괄적이고 과학적인 방법론적 척도인가, 양자의 상호관계는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이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지요.
주: 사구체론의 기성이론에 굳어진 사람들은 양자를 상호부정, 배제하는 관계로 규정하고 '양자택일’을 촉구합니다. 물론 어느 하나를 시대평가의 척도로 선택하여야 하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양자를 반드시 상호부정, 배척하는 관계로 보는 것은 과학적인 이해로 될 수 없습니다. 경제체제도 물질생활에서 사람들의 권리와 권한을 규제하는 공고한 사회적 질서로서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됩니다. 그것은 첫째로, 생산의 제요소에 대한 소유권이기 때문이고, 둘째로, 생산조직과 생산과정에 대한 지휘권이기 때문이며, 셋째로, 생산물의 처분권, 분배권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생산수단의 소유권을 기본으로 하는 경제체제에 기반한 사구체론 그 자체는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 사람들의 사회적 처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중의 하나를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들의 사회적 처지, 지위와 역할을 규정하는 유일한 척도, 주되는 척도인가 하는 것은 고려해 보아야 합니다.
나: 그러면 사회경제체제 보다 사람들의 사회적 처지,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규정하는 주되는 척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주: 사회성격의 규명과 시대의 평가에서 주체사상의 강조점은 사람들의 지위와 역할을 기준으로 하여야 한다는 것이며, 여기서 정권의 주인은 누구냐 하는 문제를 주축으로 하는 사회정치체제의 기본규정성을 밝히고 정치체제와 경제체제를 통일적으로 고찰하는 것입니다. 사회정치체제의 기본규정성을 강조하는 것은 정치가 물질적 재부를 창조하고 분배, 교환하는 경제와 달리 사람에 대한 관리, 지휘의 사회적 기능이라는 것과 관련됩니다. 정권은 사회구성원들을 통일적으로 관리하고 지휘하는 정치적 지배권입니다.
<정권>이 사회에서 사람들의 지위와 역할을 직접적으로 규정하는 기본요인으로 되는 것은 첫째로, 정권이란 사회의 일정한 계급, 집단이 자기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전사회적인 공동의 요구, 이해관계로 내세울 수 있는 권리이며, 둘째로, 사회의 일정한 계급, 집단이 자기의 요구와 이해관계의 실현에 사회의 모든 인적, 물질적 및 정신문화적 재부를 복종시켜 나가는 권한이며, 셋째로, 사회의 일정한 계급, 집단에 부여된 권리와 권한을 물리적 힘으로 담보하는 권력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지배권으로서의 정권은 다른 정치적 집단이 자기 구성원들에 대한 지휘권을 행사하는 것과는 달리 일정한 영토안에 사는 모든 성원들에 대하여 지휘권을 행사하는 가장 포괄적인 최고의 권리, 권한이며 폭력적 수단에 의해 담보되는 권력입니다. 정권은 정치적 지배권으로서 사람에 대한 지배권이기 때문에 정권을 장악하면 사람에게 속하여 있는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권도 자기에게 종속시키게 됩니다. 즉 생산수단의 소유권자인 사람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면 생산수단의 소유권, 생활수단의 처분권도 가지게 됩니다.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권이 인간의 생존권을 규정하는 매우 위력한 사회적 권한이지만 그것은 정권이 승인하고 보호하는 한계 내에서만 공인된 사회적 권한으로 행사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권은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권에 비하여 항상 우위를 차지하고 주도적 지위에 있게 되며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 시대평가의 주되는 기본척도로 됩니다. 만일 정권을 경제적 이해관계의 종속변수로 보게 되면 정권자체의 고유한 정치적 성격,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규정하는 본질적 기능을 외면내지 경시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며 필연적으로 사회의 성격, 시대평가의 척도를 물질•경제적 관계를 위주로 하여 분석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결국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에 기초하여 역사적 시대를 평가하는 것은 사회체제를 척도로 하여 역사와 시대를 평가하는 것으로 되며, 그것은 또한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의 주장과 같이 정치경제적 분석이 없는 것이 아니라 심오한 정치경제적 분석을 내포하고 있는 가장 과학적인 척도로 됩니다.
나: 시대평가에 대한 맑스주의적 척도와 주체적 척도의 차이점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은 맑스-레닌주의가 반영한 시대도 광범한 민중이 역사의 주인으로 등장한 시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 그것은 잘못된 인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적으로 자본주의가 전일적으로 지배하던 시대에는 근로민중이 역사의 주인으로 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착취와 압박의 대상으로 되어 있었고 역사에서 소외된 존재, 역사의 대상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착취사회가 전일적으로 지배하던 시대에는 근로민중이 역사를 창조했지만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의식적으로 역사를 창조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맑스-레닌주의가 발생•발전했던 시대와 주체사상이 발생•발전했던 시대는 민중이 역사의 주인이 되었느냐, 되지 못했느냐, 그들이 역사창조활동을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의식적으로 벌려나갔느냐 벌려나가지 못했느냐에 따라 구별됩니다.
나: 그러면 주체사상이 창시되던 역사적 시대는 어떠한 변화가 일어난 시대인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지요.
주: 주체사상이 창시되던 시대에는 벌써 지구상에 각이한 사회제도, 즉 자본주의 제도, 사회주의 제도가 있었으며, 혁명발전 단계에서도 반제반봉건민주주의 혁명, 사회주의 혁명 등 각이한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중 어느 하나의 사구체를 기본으로 해서 시대를 평가할 수 없었습니다. 민중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의 내용과 수준에 기초해서 이 시대의 중심에 누가 서있고 시대의 내용과 발전방향을 규정하는 것이 누구인가 하는데 기준을 두어야 시대전반을 총체적으로 올바르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민중의 지위와 역할에서 근본적 변화가 일어난 시대라는 주체적 규정은 사회주의 제도의 발생, 사회주의 10월 혁명의 영향 하에 유럽에서 힘있게 전개된 노동계급의 혁명투쟁, 식민지 민족들의 식민지 민족해방투쟁의 급격한 고양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평가입니다.
다음으로, 노동계급의 혁명투쟁사의 견지에서 보더라도 맑스-레닌주의 시대는 주로 유럽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준비기와 수행기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주체사상은 사회주의 10 월혁명이 승리하고 세계의 많은 나라들에 확대되어 나가고 식민지민족해방혁명이 제국주의를 매장하는 2대 혁명역량으로 세계적으로 전개되던 시대의 요구를 반영하여 나온 사상입니다. 또한, 국제공산주의 운동발전의 시각에서 볼 때에도 맑스-레닌주의는 주로 전세계 노동자들의 국제적 조직인 국제당이 매개 나라의 혁명운동을 통일적으로 지도하는 국제공산주의 운동발전의 단계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체시대는 혁명운동이 세계적 범위에서 폭넓고 다양하게 발전하는 시대로서 매개 나라 당과 민중이 자기 나라의 혁명을 책임지고 독자적으로 자체의 힘으로 수행해나가야 할 국제공산주의 운동발전의 새로운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민중의 지위와 역할에 기초한 인류의 역사적 시대발전의 견지에서 보나, 프롤레타리아 혁명사의 견지에서 보나, 국제공산주의 운동발전의 견지에서 보나 맑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이 기초하고 있는 시대는 서로 구별됩니다.
(2) 주체사상의 창시, 주체사상의 진수와 자주노선
나: 시대를 향도하는 사상의 창시를 확정하는 방법론적 시각에 대하여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방법론적 시각에 기초하여 주체사상의 창시문제를 구체적으로 분석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주: 그러면 먼저 주체사상의 진수를 이루는 <사상적 알맹이>가 언제 정식화 되었느냐의 시각에서 문제를 분석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나: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은 1955년(주석님의 노작 "사상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데 대하여") 이전에는 “주사"가 없었고(15) "단지 항일무장투쟁 과정에서 보이는 인민대중에 근거하려는 사업 작풍이나 민족대단결의식 등이 존재했을 뿐이었다"(16)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 그러한 주장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김정일 총비서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고루한 민족주의자들과 행세식 맑스주의자들, 사대주의자들과 교조주의자들을 반대하고 혁명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시는 투쟁과정에 주체사상의 진리를 발견하시었으며 마침내 1930 년 6월 카륜에서 진행된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 지도간부회에서 주체사상의 원리를 천명하시고 조선혁명의 주체적인 노선을 밝히시었습니다. 이것은 주체사상의 창시와 주체의 혁명노선의 탄생을 선포한 역사적 사변이었습니다."(17)
김일성주석께서 카륜회의에서 한 보고 "조선혁명의 진로"에는 무엇보다도 선행한 맑스-레닌주의 사상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새로운 지도사상의 진수로 되는 사상적 알맹이가 깊이있게 정식화되어 있습니다. 노작에서는 "…조선혁명의 주인은 조선인민이며 조선혁명은 어디까지나 조선인민 자체의 힘으로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게 수행하여야 한다는 확고한 입장과 태도를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인정합니다.”(18)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조선의 민족, 민중이 조선혁명의 주인이라는 높은 자각을 가지고 자체의 힘으로 조선의 구체적 실정에 맞게 혁명을 수행해야 한다는 입장과 태도는 선행한 맑스-레닌주의와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세계관적 입장과 태도입니다.
생산양식을 사회역사적 운동의 주재자로, 사회역사발전 과정을 생산양식의 교체에 따르는 자연사적 과정으로, 혁명의 원인과 추동력을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으로 본 맑스-레닌주의에서는 민중을 혁명의 주체로 볼 수 없었습니다. 혁명투쟁의 주인이 민중이며 혁명투쟁을 추동하는 힘도 민중에게 있다는 사상의 세계관적 의미와 변혁적 의의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노작에서는 세계관의 사상적 알맹이를 정식화함에 있어서 "혁명투쟁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인민대중이 조직 동원되어야 혁명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운동지도자들은 응당 인민대중 속에 들어가 그들을 각성시킴으로써 대중자신이 주인이 되어 혁명투쟁을 전개하도록 하여야 합니다."(19)라는 심오한 분석을 주시었습니다.
그러므로 철학으로서의 "주사"도 없고 민중에 근거하려는 사업작풍만이 언급되었다는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의 이해는 심히 잘못된 것입니다.
맑스-레닌주의에서는 매개 나라의 노동계급과 민중이 자기나라 혁명의 주인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자기나라 민중의 힘으로 자기나라의 실정에 맞게 혁명을 해야한다는 진리가 세계관적으로 혁명발전의 합법칙성에 관한 이론으로 정립되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식민지, 반식민지 나라의 민족해방투쟁에서는 이러한 사상이 투쟁의 지침으로 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당시까지만 하여도 식민지민족해방 운동은 주로 종주국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일환, “식민지민족해방 운동은 종주국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후비군"이라는 맑스-레닌주의에 의해 지도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조선혁명의 진로“에서 천명된 사상은 참으로 세계 인구와 영토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식민지, 반식민지 나라 혁명투쟁에서 근본적인 전환을 가져오게 한 새로운 사상이 아닐 수 없었으며, 기성의 맑스-레닌주의 세계관과 혁명이론의 틀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고 전개될 수도 없는 독창적인 사상이었습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스탈린주의의 직수입기"(20)라는 이남의 일부 ML 론자들의 견해는 단순한 인식상의 착오로만 보기 어렵습니다.
나: “조선혁명의 진로"에 주체사상의 진수로 되는 사상이 천명되었다는 것을 문헌적 근거를 가지고 명백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은 이 시기를 "…자주노선조차 없었던 시기"라고 "남한의 주체사상 논쟁," 248 페이지에서 주장하고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겠는지요.
주: 주석님께서는 "조선혁명의 진로"에서 조선혁명의 주인은 조선민중이라는 사상을 천명하시고 그를 구현한 조선혁명의 자주적 노선을 제시하여 주셨습니다. 주석님께서는 노작에서 "우리는 자체의 힘으로 일본제국주의 침락자들을 타도하고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달성하여야 합니다.”(21)라고 명시하시었습니다.
식민지민족해방운동을 "종주국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후비군”이라는 이론이 지배적인 이론으로, 절대적 진리로 되고있던 시기, 특히 ‘1국 1당’ ‘속지주의' 원칙이 하나의 공리처럼 인정되어 만주땅이나 일본땅에 있는 사람들은 조선혁명을 할 것이 아니라 중국혁명이나 일본혁명의 승리를 위해 투쟁하여야 하며 독자적인 정당, 독자적인 혁명역량을 꾸릴 것이 아니라 중국당, 일본당에 소속되어야 한다는 관념이 맑스-레닌주의적 관점으로 굳어져 있던 시기에 그러한 기존관념을 초극한 자주노선이 명시되었다는 데 변혁적 의의가 있습니다.
이것은 그 어떤 "반소운동으로서의 ‘주체사상’의 발상“(22)이 아니라 바로 선행한 역사적 시대와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새로운 역사적 시대, 주체시대의 요청을 정확히 반영하여 조선혁명의 자주노선을 천명한 것입니다. "조선혁명의 진로”에는 일제하의 우리 나라 사회의 성격, 조선혁명의 성격과 기본임무, 전략전술적 방침들이 전면적으로 명시되고 체계화되어 있습니다.
주
(1) "남한의 주체사상 논쟁," 248 페이지
(2) "대학신문," 1988 년 9월 5일
(3) "남한의 주체사상 논쟁," 248 페이지
(4) "신동아," 1988 년 9월호, 247 페이지
(5) “혁명의 철학," 181-184 페이지
(6) 대학신문 1988 년 8월 29 일부
(7) 레닌, "맑스주의의 3 원천과 3 구성부분"
(8) 스탈린, "변증법적 및 역사적 유물론에 관하여"
(9) "맑스, 엥겔스 선집" 1 권, 32 페이지
(10) 위와 같은 책 2권, 527 페이지
(11) 위와 같은 책 1권, 585 페이지
(12) 위와 같은 책 2권, 23 페이지
(13) "한국사회변혁과 철학 논쟁, 257 페이지
(14) "남한의 주체사상 논쟁," 34 페이지
(15) "신동아," 1988 년 9월호, 247 페이지
"북한의 사상," 467 페이지
"대학신문," 1988년 9호
"혁명의 철학," 181-184 페이지 참조
(16) "남한의 주체사상 논쟁," 248 페이지
(17) 김정일, "주체사상에 대하여," 7 페이지
(18) "김일성저작집" 1권, 6 페이지
(19) 위와 같은 책, 4-5 페이지
(20) "사상," 1990 년 겨울호, 289 페이지
(21) "김일성저작집" 1권, 9 페이지
(22) "사상," 1990 년 겨울호, 298 페이지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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