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70주년에 즈음하여>
토끼 빨강 눈 김문보의 사랑연곡
열다섯 단발머리 이쁜 남녘소녀에게 꽃고무신 주고 간 인민군 병사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가 없다
통일되면 우리 같이 살자며 어여쁜 머리 쓰다듬고 들고 있던 소머리 꼬아먹으라, 주고 간 그 맘도 다시 오지 못했다
이대로 가면 다 죽습네다 숨겨주시라요 매달리던 앳된 얼굴, 쫒겨가던 인민군 소녀들도 소식을 알 길 없다
꽃고무신 받은 소녀 스물 셋 되던 해 부모님 정해 준 혼처로 시집갔다 아들 셋, 딸 하나 낳고 살았다
그렇게 70년, 금강산 개성공단 겨우겨우 열리더니 금새 닫혀 버렸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였다
뉴라이트 대통령이 짭짝 짭짝하더니¹ 머리 텅빈 대통령이 닫아버렸다² 미국이 시키니 시키는대로 한 것이지 헛구호 통일대박 빈 가슴만 드러냈다
개성공단 남남(南男)은 북녀(北女)를 사랑하여, 냉장고 박스로 빼돌리려 했다³ 북쪽은 속였으나 남쪽에서 걸렸다 울면서 헤어진 뒤 지금껏 깜깜하다
십만광년 너머 버들강아지 은하에선⁴ 어린왕자 아리찾아 지구까지 날아왔다 "뾰옥~!"하며 워프로⁵ 별각시 찾아왔다 남남북녀 남과 북은 은하보다 멀다더냐
코리아 남북인민 통일염원 빨강 눈 개성공단 남남북녀 재회열망 빨강 눈 어린왕자 아리공주 함께 살 날 빨강 눈 눈 빠지게 기다리다 빨강 눈이 되었다
잠 못들고 기다리다 토끼 빨강 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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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뉴라이트 대통령 : 이명박 전 대통령을 지칭했습니다. 이 대통령 시절 뉴라이트 개념이 등장하면서 종북좌파라는 말도 생겼습니다. 김대중 - 노무현 대통령시절 닦아놨던 남북화해 협력의 시대정신과 역사의 당위적 진행은 이때 도로아미타불, 60년전 이승만 시대로 되돌아갔습니다. 북폭 선제공격론이 노골화되며,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퍼주기라며 '눈엣 까시'처럼 여겼습니다. 역사와 시대정신에 반역적인 극우세력들이 득세했습니다.
2. 머리 텅 빈 대통령 : 박근혜 대통령을 지칭했습니다. 이명박근혜 대통령의 최대 잘못과 죄악상은 금강산길과 개성공단을 닫아 남북인민이 함께 살아갈 민족의 혈류를 끊은 일입니다. 다스나 BBK, 4대강 비리,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등은 민족을 공멸로 이끌어간 반북 반통일 사대주의 극우정치로 전쟁직전 상황까지 몰고 간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3. 냉장고 박스사건 : 개성공단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南男이 北女를 사랑하여 냉장고 박스에 숨겨 탈북시키려다 실패한 사건입니다. 북쪽 문은 통과했으나 남쪽 문에서 걸려 되돌아가야 했답니다.
4. 버들강아지 은하 : 지름 십만광년의 우리 은하계 바깥에 있는 가상의 은하로 제가 만들어 낸 것입니다.
5. 워프 : 미래의 우주항법. 시공간을 휘어 웜홀을 통과하는 비행법으로 수만 광년 너머 은하까지 순식간에 이동하는 방법입니다.
# 나의 외갓집 경북 군위군 고로면 인곡리 마을은 방가산 기슭의 산골마을입니다. 팔공산과 화산벌안, 경림산을 거쳐 보현산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위치합니다.
이곳은 1945년 광복직후 악덕지주 일제잔재 청산과 토지개혁, 반미투쟁 깃발을 들었던 이른바 좌익 야산대 작대기 패들의 아지트가 인근 산골짜기에 있던 지역이었습니다.
6. 25때는 후퇴하는 인민군들이 방가산과 보현산을 넘어 안동방향으로 올라가 태백산맥을 타던 북상로였습니다. 어느 날 인민군들이 마을을 지나 후퇴하던 길에 인민군 한 명이 외갓집 마당에 들어섰습니다. 한 차례 피난생활을 하다가 농사를 위해 집에 들렀던 외할머니와 열다섯 단발머리 소녀였던 우리 엄마가 바깥에 있었습니다.
인민군이 소녀를 보더니,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길 "학생, 참 이뻐. 이거 한번 신어봐"하면서 꽃고무신을 내놓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발에 딱 맞았습니다. "딱 맞네. 학생 신어요"하고는 돌아서 나갔습니다.
잠시 뒤 그 인민군이 다시 들어왔습니다. 이번엔 외할머니를 보고 하는 말이, "모친요. 이거 난리통에 주인없는 소를 잡았습니다. 푹 고아 드시라요" 하며 들고 있던 소머리를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인민군의 마지막 남긴 말은 "통일되면 우리 같이 살아요" 였습니다.
어느 날은 한 무리의 낙오된 소녀병들이 마을에 닥쳤습니다. 열여덟 열아홉살 정도의 앳된 아가씨들이 손은 터 갈라지고 옷엔 이가 뚝뚝 떨어지는 몰골이었습니다.
"오마니, 이대로 가면 우리 모두 죽습네다. 무슨 일이든 할테니 좀 숨겨주시라요. 안 갈래요"
인정많은 산골 사람들은 옷과 신발, 먹을 걸 나눠줬지만 숨겨 줄 수는 없었습니다.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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