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쿵 저러쿵(1)
주먹 센 놈이 제일이었던 야만시대를 거쳐 성경을 들고 모든 것을 ‘신’에 귀결시키던 중세를 넘어 인간의 가치를 교환가치로 전환시키고 황금이 온갖 지위와 명예와 양심의 대명사로 행세하는 ‘황금만능시대’ 의 숲을 헤쳐 바야흐로 민중만이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이며 민중 자신의 힘에 의해서만 자기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는 반제자주의 진리에 도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민족, 민중이 운명개척의 길잡이로 되는 올바른 세계관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과학적이며 혁명적인 반제자주의 철학을 정립하여야 합니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는 반제자주(인간중심의 철학)이 우리 민중에게 참된 세계관을 주는 철학으로 되는 이론적, 실천적 이유를 발견하는 것이고 오늘 강력한 견인력을 가지고 현대세계를 반제자주의 길로 이끌어 나가는 이유를 충분히 납득하는 것입니다.
이러쿵 저러쿵(2)
물론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오늘에도 변함없이 노동계급의 혁명사상이며 따라서 그것은 우리의 사회변혁을 위한 투쟁의 귀중한 참고서로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사상이 출현했던 19세기 중엽 유럽의 사회경제적, 계급적 제 관계와 레닌주의가 성공을 거두었던 20세기 초 제정 러시아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은 우리의 상황과 너무나 거리가 먼 것입니다. 마르크스-레닌주의가 특출한 설득력과 이론성과 실제적 효율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것을 참고로 할 뿐 그대로 수용하기 어려워하는 것은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오늘의 반제반미자주의시대, 우리의 식민지적 상황과 사회경제적 제 문제들을 처방한 이론이 아니었다는 나름 의 결론을 내려 봅니다.
오늘 <<괴뢰한국>>사회에서는 현실 긍정(순응)이야 현실 부정이냐 여기에 따라 순종이냐 철저한 반항이냐 하는 상반된 두 가지의 자세가 있을 뿐이다.
우리시대의 행복관은 민중의 행복을 원천적으로 유린하는 사회를 변혁하기 위한 투쟁에 참여하는 올바른 생활 자세와 의지적 노력만이 현실과 치열하게 투쟁하면서 행복을 쟁취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불행은 무지나 근면성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며 또 팔자에 의한 것도 아니다. 불행의 대립개념인 행복은 불행의 근원청산을 전제로, 또 내용으로 한다. 다시 말해서 사회적 예속과 자연의 구속, 낡은 사상과 문화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투쟁으로만 성취할 수 있다. 투쟁이 행복이라는 말의 뜻도 이런 의미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의 <<괴뢰한국>>적 상황에서 참 행복을 위하여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회적 조건은 민족해방을 쟁취해 민족적 자주권을 확립하는 것이다. 외세에 의하여 분단된 한반도의 남쪽지역인 <<괴뢰한국>>은 미국의 식민지군사기지로 전환된 지 오래다. 그리하여 한국 민중에게는 분열로 인한 민족분단의 아픔 위에 식민지적 억압과 착취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미제의 완전한 식민지로 인하여 민족의 자주권과 민중의 자유가 철저히 짓밟히고 침략자 미제를 위한 경제적, 군사적 부담만을 안고 빈익빈의 나락에서 허덕여야 하는 이 기막힌 현실에서 인간의 행복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괴뢰한국>>의 참 행복을 위한 사회적 조건은 또한 행복과 양립할 수 없는 전도된 사회체제를 변혁해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사회체제는 자주성실현의 선차적인 여건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람들의 권리와 의무를 할당하고 사회에서 생겨난 소득을 분배해 주는 방식의 공고한 체계이기 때문이다. 자주적으로 살며 발전하려는 인간의 요구와 지향은 사회적으로만 실현된다. 이것은 인간의 자주적인 요구와 지향이 사회체제상으로 보장되어야만 실현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실제에 있어서 한 민족이나 개인의 경우를 불문하고 물을 것 없이 진정한 행복은 끈질긴 투쟁과 값비싼 대가를 지불함이 없이는 찾아들지 않는다. 이것은 조금도 어긋남이 없는 또 변하지 않는 행복의 철칙이고 행복을 찾는 방정식인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우리시대의 행복관의 요체라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려 본다.
2024년 7월17일 대전에서… 서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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