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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단합과 통일에 바친 애국의 삶 (8):프레스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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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단합과 통일에 바친 애국의 삶 (8)

몽양 려운형선생과 그 자녀들이 받아안은 가슴뜨거운 사랑의 이야기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24/03/20 [02:11]

민족단합과 통일에 바친 애국의 삶 (8)

몽양 려운형선생과 그 자녀들이 받아안은 가슴뜨거운 사랑의 이야기

프레스아리랑 | 입력 : 2024/03/20 [02:11]

민족단합과 통일에 바친 애국의 삶 (8)

 

- 몽양 려운형선생과 그 자녀들이 받아안은 가슴뜨거운 사랑의 이야기 -

 

 

우리 민족의 조국통일운동사를 돌이켜보면 그 갈피마다에는 민족의 태양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서 공헌한 사람들을 언제나 잊지 않으시고 그들모두에게 영생하는 삶을 안겨주시고 그 혈육들까지 친어버이심정으로 보살펴주신 수많은 사랑의 이야기들이 새겨져있다.

 

그 가운데는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 생을 바친 려운형선생과 그 자녀들이 받아안은 가슴뜨거운 사랑의 이야기도 있다.

 

 

* *

 

 

의리는 인간이 지니고있는 미덕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미덕의 하나이다. 하지만 의리를 지킨다는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더우기 생을 마친 사람에 대한 의리를 변함없이 지켜 그 후대들의 삶까지 다 보살펴준다는것은 누구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니다.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산 사람과 죽은 사람사이에서도 우정이 계속될수 있다고 하시면서 산 사람은 희생된 사람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잊지 않을 때라야 그 우정이 공고하고 진실하고 영원한것으로 될수 있다, 만일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잊는다면 그 순간부터 우정은 사멸을 면치 못한다, 죽은 사람을 자주 추억하고 그들의 업적을 널리 소개하며 그들이 남기고 간 후대들을 잘 돌보고 그들이 남긴 유지를 잘 지키는것이 선대들과 선렬들, 먼저 간 혁명동지들에 대한 산 사람들의 의리라고 생각한다라고 쓰시였다.

 

인류력사에는 의리를 지켜 이름을 남긴 명인들이 적지 않지만 한번 맺은 동지적의리를 한생토록 잊지 않고 영생의 삶을 주시고 그 후대들의 운명까지 맡아안으시고 보살펴주신 위대한 수령님 같으신분은 이 세상에 없다.

 

하기에 통일애국의 길에서 싸우다 쓰러진 렬사들을 수십년세월이 흐른 뒤에도 잊지 않으시고 그 후대들에게 한량없는 은정을 베풀어주신 그이의 숭고한 사랑과 의리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도 만사람의 심금을 뜨겁게 울리고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토록 잊지 못하시며 육친의 정으로 보살펴주신 통일애국렬사 유자녀들가운데는 몽양 려운형의 자녀들도 있다.

 

주체68(1979)1월 초하루날이였다.

이날은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9시에 신년사를 하시게 되여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박두했는데도 그이께서는 회의장에 나오지 않으시였다. 한 일군이 조바심이 나서 집무실에 가보니 그이께서는 흐느껴우는 려운형선생의 네 자녀를 한품에 안고 위로하고계시는것이였다.

30여년전 려운형선생은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는 자리에서 자기에게 리화녀자대학에 다니는 두 딸이 있는데 그들을 그이께서 맡아 키워주셨으면 하는 의향을 표시하였다. 이것은 사실 례사로운 일이 아니였다.

그것은 그분에게 자식들을 맡기면 반드시 자기가 일을 다하지 못하고 쓰러진다 해도 그 뜻을 잇도록 하여주시리라는 신뢰감에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려운형선생의 제의를 쾌히 받아들이시고 그후 그가 보낸 두 딸을 직접 댁에 두고 키우시여 중요한 초소들에 세워주시였다. 그러신 그이께서 바로 그들이 못내 그리워 이날 몸가까이 부르신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흐느끼는 그들을 품에 안으신채 너희들이 왜 이제야 왔느냐? 왜 편지도 안하고 집에도 놀러오지 않았느냐? 너의 아버지는 세번이나 38°선을 넘어와서 나를 만났다, 너의 아버지는 남조선에 나가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희생되였다, 내가 너희들을 더 잘 돌봐주어야 하겠는데라고 말씀하시였다.

려운형선생에게 다 주시지 못한 은정을 그의 자녀들에게 베풀어주시는 감동적인 장면이였다.

이윽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에게 내가 설날에 너희들을 만났는데 기념사진이나 찍자.고 하시며 그들을 자신의 량곁에 세워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을 가운데 모시고 사진기앞에 나란히 선 순간 려연구네 형제는 또다시 뜨거운것이 목안으로 울컥 치밀어올라 얼굴을 수그리며 흐느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울지 말아, 울면 사진을 찍나? 웃으면서 찍자. 자 명랑하게 찍어야지.라고 말씀하시는데 그이의 음성도 몹시 갈리신것이였다.

 

 

 

 

 

 

그날의 사진은 이렇게 되여 밝은 웃음이나 화락한 표정을 초월하여 한없이 고결한 의리와 감사의 격정으로 융합된, 보기 드문 사랑의 숭엄한 화폭으로 아로새겨지게 된것이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려운형의 자녀들을 위로하시느라고 5분이나 늦어서야 신년사를 하시였다.

그후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는 설날아침 그들과 함께 찍으신 사진과 어버이사랑이 어려있는 고급손목시계, 고급침구류와 양복천, 여러가지 옷가지들, 산삼, 웅담과 같은 희귀한 약재들과 갖가지 식료품까지 한가득 넘치게 차있는 큰 상자와 트렁크들을 선물로 보내주시였다.

그때로부터 얼마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청진과 함흥에 있던 려연구네 형제들과 그 가족들이 한지붕밑에서 모두 행복하게 모여살라고 평양에 새로 준공된 하신거리의 한 아빠트 옹근 4세대에 경사스러운 새집들이를 마련하여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려운형선생의 뜻대로 그 자녀들을 조국통일사업의 중요한 초소에 세워주시였다. 려연구는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의장의 중책을 지니고 일하였으며 그의 사망후에는 려원구를 그 자리에 세워주시였다. (계속)

 

*****

 

 

 

이번 연재의 글은 여덟 번째이다. 이 글은 2015328조선의 오늘에 연재된 내용이다.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 생을 바친 여운형선생과 그 자녀들이 받아 안은 가슴 뜨거운 사랑의 이야기를 9회에 걸쳐 연재하겠습니다. (프레스아리랑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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