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명상>오만에 빠진 상상, 라만차의 돈 키호테가 된 노인, 윤석열

프레스아리랑 | 입력 : 2020/10/27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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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아리랑=문홍주 기자]  현재 민주정부 수장 문재인 대통령이 선명한 처신을 밝힐 때가 됐다고 보는 여론이 끓고 있다. 이는 보통 상식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법무부를 통해 검찰청을 관장할 수 있는 법적권리를 위임했다고 보지만 현실은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검찰청 수장 윤석열 총장이 상급기관 법무부(장관 추미애)를 겨냥해 작심한  "부하가 아니다"라는 이해할 수 없는 공개발언에 TV미디어를 시청하던 대다수 시민들은 혀를 찼다.
 
고위 공직자로 정치적 중립을 빙자해 "당신의 지시를 듣지 않겠다"는 것으로 본다는 윤 총장 발언은 일만일파 퍼저서 장안에 화제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한 은유적 이야기를 양선규 교수(대구교육대학교)의  일침을 가하는  「돈키호테」이야기를 소개한다.  
 
몰락한 하급귀족 출신의 노인이 있다. 이름은 돈 알론소. 쉰을 넘긴 나이인데 기사(騎士)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서 살짝 맛이 간 상태이다. 어느 날 그는 기사소설을 읽기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기사가 되어 세상을 바로잡기로 결심을 한다. 기사소설을 지나치게 읽다 보니 소설 읽기로는 도저히 성에 차지 않는 지점에 이르렀다.
 
이에 아예 기사소설을 자신의 삶으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스스로 편력(遍歷) 기사가 되고자 하는 자에게는 적어도 다섯 가지의 조건이 구비되어야 한다. 첫 번째는 갑옷, 방패, 창과 같은 무구(武具)이며, 두 번째로는 천하를 질주하는 준마가 필요할 것이며, 세 번째는 영원히 사랑할 구원의 여인이 있어야 한다.
 
거기에다가 기사의 위엄을 드러낼 수 있는 멋진 이름과 충직한 종자(從者)는 화룡점정의 두 점에 해당할 것이다. 알론소는 스스로 라만차의 돈 키호테라고 이름을 짓고,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녹슨 투구와 낡은 갑옷으로 차려입고, 둘시네아라고 이름 붙인 어느 농부의 딸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
 
그리고는 로시난테라고 이름을 붙인 앙상한 말에 올라타서, 순박한 농사꾼이자 은근한 욕심꾸러기인 산초 판사를 종자로 거느리고 당당하게, 하지만 코믹하게 편력의 도정에 오른다. 그 이후의 어처구니없는 여정은 독자 여러분이 아시는 내용과 같다. 여인숙을 성(城)으로 착각하고, 여인숙 주인을 성주라고 부르고, 옆방의 매춘부를 귀부인으로 대접하기도 한다.
 
양떼와 포도주 부대자루를 적의 군대라고 우기는가 하면, 풍차를 전설 속의 거인이라고 생각해서 무작정 덤벼들기도 한다. 편력 기사 돈키호테의 출정은 세 번에 걸쳐서 이루어지며, 그는 모험을 통해서 자신의 몽상과 광기를 매우 진지한 방식으로 세상에서 실현하고자 했다. 
 
현실세계와의 충돌은, 우리의 눈에는 코믹하게만 보이지만 그에게는 너무나도 비통한 실패의 연속이었다. 세 번째 출정 이후 고향에 돌아온 돈키호테는 병석에 눕게 되고 이성을 회복한 후 후회 속에서 생을 마감한다. 자신의 어리석음에 눈을 뜬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시골 신사가 되어 병상에서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그는 그렇게 해서 ‘영혼을 입증하기 위한 피곤한 여정’의 말미를 죽음으로 장식한다. 모든 여정은 죽음으로 그 끝을 삼는다는 평범한 귀결로 『돈 키호테』는 끝난다.(이상, 김동식, 「별에서 떨어진 별난 영웅 돈 키호테」‘하나은행, 2006, 여름’ 참조)
 
왜? 돈 키호테인가? 꿈이 있는 자들은 대체로 40에 ‘나’를 바꾸려 하고, 50에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한다. 그러나, ‘나’는 몰라도(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극히 어렵다. 어쩌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역사책에 남을 아주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허용된다.
 
그것을 아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래서 미친다. 대중들과 유리된다. 공자도, 이순신도, 돈 키호테도 다 그런 사람들이다. 선각자들은 (당시 관념으로) 누구나 그 시대의 ‘돈 키호테’들이었다. 그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미친 자들의 나라에 단 한 사람의 미치지 않은 자가 있다는 것과 그 한 사람이 미쳤다는 말은 같은 말이다.
 
정상과 비정상은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니까. 일상(日常)에 적합한지 아닌지만이 기준이 된다. 영화 [터미네이터](2편)에서 ‘미래를 본 자’들은 비정상으로 취급되어 정신병동에 갇힌다. 당연히 못 볼 것을 본 자들은 미친 자가 된다.
 
보통 미친 자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과 교유(交遊)하지 않고 죽은 자들의 말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식자들은 지금 나를 돌아다 볼 지어다).
 
공자는 주나라의 주공의 말에, 이순신은 공자의 말에 지나친 집착을 보인다. 죽은 자들의 말들은 반드시 살아있는 사람의 피와 뼈와 살을 통해서만 부활하는 것이지 그 말 자체로(고작 책 읽는 자의 주관에만 접속되어) 다시 살아내는 것은 아니다. 돈 키호테가 그냥 미친 것은 아니었다. 기사소설의 내용을 현실에다 구현해 내고자 했을 때, 그는 진정한 ‘미친 자’가 된다.
 
50대 미친 사람 중에 소설가 김훈도 있다. 그는 이순신에(혹은 그에 관한 글쓰기에) 미친다. 사람이든 글이든 어느 쪽이든 일전불사(一戰不辭)의 비장한 각오를 뜻하기는 마찬가지다. 작품 『칼의 노래』 서문을 보면 그 심정을 알 수 있다. 
 
‘사랑이여 아득한 적이여, 너의 모든 생명의 함대는 바람 불고 물결 높은 날 내 마지막 바다 노량으로 오라. 오라, 내 거기서 한줄기 일자진(一字陣)으로 적을 맞으리. (다시 만경강에 바친다.)’라고 비장(悲壯)의 진검을 빼어드는 작가의 심정은 50대 ‘세상을 바꾸고픈’ 한 미친 자의 독백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마지막 바다에서의 일자진(一字陣)’은 일종의 유혹이기도 하다. 목숨을 걸고 일생일대의 도박이 되는 승부에 나선다는 것, 이제 더 이상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생의 한 정점, 혹은 막다른 길에서의 마지막 선택, 그것은 사람에 따라서는 쉽게 비켜가기 어려운 유혹이 될 수도 있다.
 
특히 권력을 손에 잡은 자(혹은 그 직전에 있는 자)들에게는 더욱 그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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