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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보의 '아리아리랑'- 광복 77주년에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22/08/17 [11:07]

김문보의 '아리아리랑'- 광복 77주년에

프레스아리랑 | 입력 : 2022/08/17 [11:07]

김문보의 '아리아리랑'- 광복 77주년에

 

 

 

백학의 은빛 흙 뚫고 자란 넋 찾아

분단상태의 우리는 여전히 식민지

자주 평화 통일때 까지 투쟁이어야

 

 

8.15 광복(분단) 77주년이라 수유리일대에 묻힌 민족민주 지도자 순례 참배식에 참여했다. 아울러 4.19 묘지에도 들러 고향의 대선배 이기택 안병달 선생의 묘에도 참배했다.

 

수유리 북한산 자락에는 이준 손병희 이시영 이명룡 김창숙 여운형 김병로 서상일 조병옥 신익희 유림 김도연 양일동 신하균 선생 등 열다섯 분 무덤이 있다. 이외 후손 없는 독립군 전사 열일곱 분의 합동묘소가 있었는데, 바로 그제 파묘하여 77주년을 기념해 대전 현충원으로 옮겼다.

 

우리 일행은 이시영 부통령 묘소에서 오전 10시 합동으로 순례참배를 시작했다. 나머지 선열들은 일곱 팀으로 나누어 참배키로 했다. 열다섯 분을 모두 참배하려면 하루 종일 산을 오르락내리락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주최 측이 처음부터 그렇게 계획했다. 많은 참여자들을 인솔해야 하는 주최 측의 세밀한 조치였다.

 

'시체한테 주는 반찬'을 박차버리고...

 

이시영 선생은 여섯 형제분들이, 요즘 돈으로 육백 억이 넘는 재산을 처분해 만주로 이주,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양성한 일로 유명하다. 그 많은 재산을 처분하고 형제들은 중국 일대에서 독립운동에 투신, 굶어죽고 행방불명되고 광복 후 겨우 두 명이 살아서 귀국했다. 그 중 한 분이 이시영 선생이다. 선생은 대한민국 부통령이 되었으나 이승만 독재를 보다 못해 "시위소찬"이란 말 한마디 남기고 자리를 박차버렸다. '시위소찬'은 시체한테 주는 반찬이라는 뜻이다.

 

이시영 선생 묘소 참배 후 우리는 후손 없는 광복군 열일곱 분의 합동묘소 사연을 듣고, 분산하여 각 팀별로 참배 길에 나섰다. 후손 없는 광복군 유해들도 원래는 뜻있는 이들이 국립묘지로 모시려 했으나 후손이 없다하여 허락이 나지 않아 이곳에 합동으로 모셨다는 사연이다. 다행히 이번에 대전 현충원으로 옮기게 되어 조금이나마 한을 풀게 됐다.

 

사연을 뒤로 하고 나는 4참배 팀과 함께 김병로 선생과 유림 선생의 묘소를 참배했다. 김병로 선생은 순창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관련 많은 사건들을 무료 변론으로 보호하는 활약으로 독립운동에 기여했다. 광복 후는 대법원장으로서 대한민국 헌법 기틀을 닦았다.

유림 선생은 안동출신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무정부주의자로 독립운동에 기여하신 분이다.

 

, 안병달...고향마을 대선배님

 

각 팀별로 열다섯 분의 묘소 참배를 마친 참여자들은 다시 4.19묘지로 모였다. 합동분양과 헌화를 하고 특별히 일민 이기택 선생과 안병달 선생의 묘소를 찾았다.

이기택 선생은 7선 국회의원으로 민주당 총재로 더 많이 알려진 분이다. 4.19당시 고려대 학생회장으로 반독재 시위를 주도, 엄청난 고통을 겪은 바 있다. 포항 출신이지만 부산에서 7선했다. 그토록 쟁쟁한 분도 죽으면 한 평 봉분 잔디밭 아래였다.

 

안병달 선생은 이날 나의 순례참배의 키포인트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 분이다. 세상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이분은 바로 나의 고향 동네 대선배님으로서 DNA 뿌리를 같이 하는 분이다.

고향에서 내가 태어난 마을은 구마리(말을 달리는 동네, 일명 중리)이고, 안병달 선생의 마을은 오동이란 곳으로 우리 집에서 들길을 천천히 산책하여 걸으면 10여분 거리이다.

 

선생은 4.19 당시 학생시위대 맨 앞에서 경무대로 돌진하던 중 경찰의 총알이 심장에서 1센티 빗나가는 부상을 입었다. 서울대병원에서 한 달 입원치료 후 부상자 대표로 박정희 대통령을 독대한 바 있다. 후일 박대통령이 포항시장 자리로 회유했으나 사양했다는 일화도 있다.

 

광야의 시인 이육사에 닿는 자부심

 

선생의 집인 오동안씨 문중(순흥안씨)은 광야의 시인 이육사 선생의 처갓집이기도 하다. 육사 선생은 오동 처갓집에 머물며 인근 백학서당에서 공부했다. 이때 청년 육사의 정신은 우리 고장의 많은 애국지사들과 교유하며 이재형(안병달의 처남), 이원대 등 독립투사들과 연결되고 있다.

 

내가 다닌 고향학교의 교가에는 "이천년 화랑정신 백학의 은빛 흙 뚫고서 자란 넋"이란 구절이 나온다. 백학의 은빛 뚫고 자란 넋, 백학은 바로 독립투사를 길러낸 백학서당인 것이다. 그리고 나는 백학의 은빛을 통해 저 광야의 시인 이육사와 연결되고, 이재형, 이원대, 안병달과 선배, 후배로 이어진다.

 

안병달 대선배님 묘소에 술잔을 올리면서 기회를 주신 행사주관자 천봉재 선배님과 함께 하신 팔도강산 많은 분들께 감사와 영광의 마음을 전했다.

 

난국의 시대, 친미적이고 친일적이며 굴욕적이며, 거짓과 사악함으로 공정과 상식을 내세워 정권을 잡은 윤석열을 어린왕자는 꽝철이라 부른다. 굥꽝철이다. 그 꽝철이는 어린왕자의 짝궁인 까칠미녀 아리공주와는 오래 전부터 숙명의 적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꽝철이를 통해 여전히 일제시대의 연장인 미제 신식민지를 살고 있다. 현재의 분단이 평화적으로, 자주적으로 극복되지 않는 한 우리는 식민지일 뿐이다. 식민 상태로부터 완전한 자주독립을 이룰 그날까지 우리의 투쟁은 계속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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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꽝철이 : 용이 되려다 실패한 큰 이무기 코가 하늘로 뚫려있어 물과 비를 아주 싫어한다. 용이 되지 못한 한을 품고 있어 한 번 앉은 지역에는 지독한 가뭄이 들거나, 홍수가 나거나 한다. 참다못한 농민들이 징과 꽹과리와 횃불을 들고 쫓아버리려 일어선다.

 

 
 

어린왕자의 짝궁인 물의 신(샘각시) 아리와는 평행우주 너머 버들강아지 은하의 행성에서부터 철천지원수로 숙명의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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