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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어보기> 새날의 꿈 1

김문보의 '아리아리랑'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24/10/15 [15:59]

<다시 읽어보기> 새날의 꿈 1

김문보의 '아리아리랑'

프레스아리랑 | 입력 : 2024/10/15 [15:59]

<다시 읽어보기>

 

 새날의 꿈 1

김문보의 '아리아리랑'

 

"남자는 못둑에 불알을 걸고

여자는 빨랫줄에 엉치를 넌다"

 

 

신라세력들이 나라를 세우겠다며 남녀 무리지어 내고향 구마리* 강변을 가득메워 걸었다. 웅웅 소리가 났다. 금관을 머리에 쓴 왕족과 따르는 무리들이 움직이는 소리였다.

 

나는 앞산 바걸재에 올랐다. 나라를 만드는데 좌파 우파 싸움의 부질없음을 목청 높여 설파했다. 어린 시절 소먹이며 소꼴 뜯고, 벗들과 기마전 벌이던 능선 아래 산길이었다.

 

대천마을 쪽에서 한 여자가 올라왔다. 피부가 뽀얗고 까만 눈동자에 눈매가 살아있는 여자였다. 그녀가 나를 보고 시 한 수를 읊어주며 지나갔다. 내용이 걸작이다.

 

"남자는 불알을 못둑에 걸고

여자는 엉치를 빨랫줄에 넌다"

 

순간 잠이 깼다. 이 무슨 구절인가. 희안한 구절이다. 가끔 꿈에 시를 읊는 일이 있긴 했다. 때로는 아주 멋진 구절을 읊었다. 그러나 잠이 깨면 날아가 버렸다. 멋지다싶어 암만 살려내려 해도 생각날듯 말듯 끝이었다.

 

종일 화두가 된 구절

 

그런데 이번은 단 두 구절, 그대로 살았다.

일어나자마자 메모했다. 종일 화두가 되었다.

 

"남자는 불알을 못둑에 걸고

여자는 엉치를 빨랫줄에 넌다"

 

대체 이 뭣고? 해몽해 보기로 했다. 우선 못둑은 물을 막은 저수지 둑이다.

농경을 의미한다. 그 못둑에 불알을 거는 남자는 두 말 필요없이 농부다. 농사에 불알을 건 남자라는 말이다.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생업에 불알을 건 남자라고 할 수 있겠다.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남자다.

 

빨랫줄에 엉치를 건 여자는 무엇인가. 못둑에 불알을 건 남자의 아낙이다.

밥 하고 빨래하는 주부의 살림살이를 보여 준다. 역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여자다.

 

그런데 왜 하필 엉치를 빨랫줄에 너는가. 담장 밖에서 훤히 볼 수 있는 빨랫줄에 여자의 엉치를 넌다니...이건 성()적인 개방을 의미한다. 남자가 불알을 못둑에 거는 것과 상통한다. 둘 다 훤히 보이는 성의 개방이다.

 

이렇게 대놓고 성을 개방하는 건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일거다. 무릇 한 국가가 제대로 서려면 인구 규모가 갖춰져야 한다. 많이 낳고 무럭무럭 키워야 한다. 오늘날 결혼을 기피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 대한민국 현실에서 절실한 과제다.

 

성 억압의 정치학과 민주주의

 

성의 개방이라 해서 성문란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중앙대 김누리 교수는 독일교육을 예로 들며, 성에는 윤리가 없다고 말한다. 성을 윤리의 틀에 가둬놓고 억압하는 건 정치적 굴종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독일은 초등학교에서부터 자유분방 개방적 성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유럽에서 가장 모범적인 민주주의와 복지국가를 실현했다고 말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린 시절부터 성을 억압함으로 표현능력을 말살하고, 어른이 되어선 획일적 세뇌와 정치적 굴종에 길들게 한다는 것이다. 성과 정치발전의 역학관계는 생각해 볼수록 재미있고 심오하다.

 

못둑과 빨랫줄은 실용을 의미하기도 한다. 신라의 남녀이든, 고구려 남녀이든, 백제의 남녀이든, 전세계 어느 나라 남녀이든 먹는 문제 입는 문제 해결을 위해선 못둑에 불알을 걸어야 한다. 빨랫줄에 엉치를 널어야 한다. 곧 실용을 해야 한다.

 

 

(2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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