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의 길
얼마 전 내가 소속한 단체의 전 회원이었던 한분이 나에게 찾아와 자기를 다시 회원으로 가입시켜 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이제 자신이 나이도 많이 들고 병들어 얼마 살지 못할 것 같은데 죽기 전에 꼭 다시 조직의 회원이 되고 싶다고 하였다. 나는 그가 왜 그렇게 스스로 나간 우리 조직에 다시 회원이 되고 싶어 할까 생각을 깊이 해보았다. 그가 바란 것은 <사회정치적 생명체> 속에서 영생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죽어서 부활하여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천국에서 영생한다고 믿고 있다. 인간의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해방해주고 인간의 한계적 삶을 영원으로까지 인도해주는 이 <영생>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기독교회로 사람들을 이끄는 힘이다. 이 영생을 얻기 위하여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재산과 재능, 심지어 목숨까지 바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은 인간의 실존적 삶 자체의 불안과 불확실성 그리고 한계상황에 대한 공포심으로 비롯된 결과라고 보겠다.
그러나 주체사상에서는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영생하는 삶이 죽음에 대한 초월적 입장, 즉 기독교의 신앙에 귀화하는 데서 주어진다고 보는 신비적 입장을 부정하고 <사회정치적 생명>을 <육체적 생명>보다 중시하는 태도를 실천하는 데서 구현된다고 믿고 있다. 민족, 민중의 자주성을 위해 일신의 안락도, 부귀도, 영화도, 가정도 심지어 육체적 생명마저 혼연히 버린, 태백산 빨치산들의 영생에 대하여 조정래 작가는 주인공 중의 하나인 손승호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세상에 그 누구의 목숨이 죽음으로 이어져 있지 않은 목숨이 있는가. 그러나 이 보편적 명제 앞에서 두려움이 없는 건 죽음을 종교적으로 초월해서가 아니었다. 구체적인 자각으로 죽음을 끌어안았기 때문이었다. 죽음이 추상적일 때 두려움은 생기고, 현실의 안위에 집착할 때 그것은 증폭되는 것이다. 자각한 자의 죽음은 그것 자체가 행동이었다.”
왜 많은 기독교인들이 영원한 하늘나라를 확고히 믿으면서도 죽음 앞에서 공포에 떨고 죽기를 거부하고 악착같이 살려고 발버둥 치는가. 그들의 죽음이 추상적이고 천당이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정치적으로 자각한 자들은 생명의 모체인 <사회정치적 집단> 속에서 살고 죽기 때문에 그들의 <사회정치적 생명>은 영원한 생명력을 가진 민중의 사회정치적 집단과 결부되어 그와 함께 영생하는 것이다. 이것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영생이다. 그러기에 집단을 위해 개인은 때때로 기꺼이 생명을 바치기도 하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 때 얼마나 많은 독립운동가가 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바쳤는가!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생명을 지니고 빛내어나갈 수 있게 하는 사회정치적 생명활동의 원천이며 품인 <사회정치적 집단>은 개인들로 하여금 집단의 자주성과 창조성을 강화하는데 이바지하도록 사상적으로, 조직적으로 그리고 혁명적 동지애와 의리로 이끌어줌으로 개인들의 업적이 집단의 생명에 체현되어 그 집단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다. 최제우, 안중근, 김구, 여운형, 4.19와 5.18의 영령들, 전태일, 박종철, 이철규 등 무수한 애국자들은 우리 민족과 영원히 영생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조정래 작가는 다음과 같이 결론내리고 있다.
“자각하지 못한 자에게 역사는 존재하지 않으며, 자각을 피하는 자에게 역사는 과거일 뿐이며, 자각한 자에게 비로소 역사는 시간의 단위 구분이 필요 없는 생명체이다. 올바른 쪽에 서고자 한 무수한 사람들의 목숨으로 엮어진 생명체, 뚜렷한 실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크는 것이다.”
무수한 변혁동지들과 애국자들의 힘과 의지로 역사는 크는 것이다. 즉 우리 민족과 민중의 자주성과 창조성이 커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의 뜻은 계속 이어지고 끊임없이 이어지어 마침내 민족의 자주, 민주, 통일이 달성되는 것이다. 이것이 주체사상의 영생론이다.
주체사상에서는 <신념>과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주체사상에서 강조하는 신념과 의지는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의 신앙의 열성과 같은 것이 아니다. 신념은 주체사상의 견지에서 보면 생활과 실천을 통해 검증된 사상이론의 당위성에 대한 확신에 바탕을 두어 형성되고 굳어진 마음의 줏대로서 그것은 지식과 사상의 통일체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신념은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추동하고 규제한다. 이러한 신념은 <의지>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강인한 의지는 선천적으로 태어나는 성격이 아니고 진보적 사상이 낳는 정신력, 혁명적 신념이 낳는 정신력이라고 주체사상은 말한다. 민족과 민중의 자주위업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에게는 투철한 신념과 강인한 의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왜냐하면, 민족과 민중의 자주위업은 안일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반대하는 제국주의와 그 대리인들과 생사를 판가름하는 험난한 투쟁을 통해서 쟁취해야 하므로 강한 신념과 의지를 갖춰야 한다. 그 강한 신념과 의지를 보장해주는 것이 바로 영생을 담보하는 <사회정치적 집단>이다. 사상적으로 조직화되지 않으면 개인이 아무리 강철같은 신념과 의지를 갖고 있어도 쉽게 무너지고 만다. 물론 궁극적으로 용기있는 결단을 해야 하는 것은 개인이겠지만.
주체사상은 인간이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지닌 사회적 존재>로서 세계와 역사의 주인이며 사회변혁운동의 담당자로 자주위업의 종국적 완성을 위한 투쟁을 떠메고 나갈 역량을 지닌 역사의 주체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미국의 식민지 군사기지화한 이남의 상황에서 민족을 해방하고 민족분단을 극복하여 조국을 통일하고 윤석렬검찰독재의 억압에서 민중을 해방하여 민주정권을 세우는 과업에 자주적 인간은 누구나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개인의 <사회정치적 생명>은 우리 민족과 민중의 사회정치적 집단과 결부되어 그와 함께 영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기사: 11.21. kancc에서)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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