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호 대표, 이데올로기에서 과학으로 인식의 새로운 전환을 찾다
[프레스아리랑=문해청 기자] 김승호(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노동대학 대표)는 코리아 분단된 남측의 최근 정치상황을 날카롭게 꼬집어 우리 노동자와 민중이 가야할 길을 밝히는 훈훈한 덕담을 했다.
전환기라는 말이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기존의 질서가 유효성을 상실해서 다른 질서로 대체되지 않으면 안 되는, 대체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의미다. 미국이 월남전에서 패퇴하던 1974년에 고 리영희 선생이 ‘전환시대의 논리’라는 책을 펴냈을 때 그러했던 것처럼, 지금도 낡은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는 전환기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노동운동이나 진보운동에서는 ‘전환’을 입에 올리면서 정작 자신의 인식과 실천을 전환할 생각은 별반 없어 보인다.
최근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중에 군사반란이 일어났다. 바그너 그룹 수장 프리고진의 이 반란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다시 살펴보는 계기가 됐다. 이 전쟁은 도대체 어떤 성격의 전쟁인가? 한쪽에서는 강대국 러시아가 약한 이웃나라 우크라이나를 지배하고자 쳐들어간 제국주의 침략전쟁이라고 성격을 규정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러시아가 미-나토 제국주의의 압박에 맞서서 국가안보를 지키려고 싸우는, 약소국 러시아의 반제국주의 전쟁이라고 얘기한다.
지난 3월4일 ‘하나의 적, 하나의 투쟁’이라는 기치 아래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세계 반제국주의 플렛폼’이 주최하는 반제 콘퍼런스가 있었다. 거기에서 미·서구 제국주의에 맞서 세계 민중이 하나로 단결·투쟁하자는 공동성명이 발표됐다. 그 성명 안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는 세계 도처에서 러시아, 중국, 북한, 이란의 반제정부가 미 제국주의자들을 <합의 불가능>(대상)으로 명명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증거를 보고 있다.” 이 콘퍼런스에서 행한 영국 맑스레닌주의 공산당(CPGB-ML) 조티 브라르(Joti Brar)의 연설문이 “‘서방 제국주의자들이 우리가 물리쳐야 할 공동의 적” 70년 만에 새롭게 결집하는 전 세계 반제세력들“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SNS로 널리 퍼뜨려졌다. 그녀는 이 연설에서 “러시아, 중국, 심지어는 브라질과 베네수엘라를 ‘제국주의 국가’로 낙인찍는 것은 우리의 적들이 벌이고 있는 심리적·이데올로기적 전쟁의 주요 부분이며, 이를 폭로 배격해야 합니다”고 역설했다.
미·서구·일본이 제국주의 국가라는 것은 노동운동 안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반식민지 나라들 대부분이 정치적으로 독립했으므로 제국주의는 사라졌다는 이데올로기와 극명하게 대립한다. 그런데 노동운동 내의 스탈린주의자들은 이러저런 근거를 들어 러시아는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지금 러시아는 미·서구 제국주의에 맞서 반제국주의 투쟁을 하고 있다고 강변한다. 이것은 이데올로기인가 과학인가?
스탈린주의자들은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근거로 러시아는 자본수출국이 아니므로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현대 제국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자본수출인데, 러시아는 자본수출국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제국주의 개념은 지극히 도식적이다. 현대 제국주의가 19세기 말~20세기 초 상품수출 위주의 자유무역 제국주의에서 자본수출 위주의 독점자본 제국주의로 전환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레닌은 자유시장 자본주의와 구별되는 독점자본주의 단계의 제국주의를 ‘자본주의 최고단계’로서의 제국주의라고 규정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는 자본을 수출하는 자본주의만을 제국주의 국가라고 한정하지 않았다. 영토쟁탈전에 가담한 자본주의 강대국 모두를 제국주의 국가라고 인식했다. 레닌은 ‘제국주의론 노트’에서 당시의 러시아를 정치적으로는 독립적이지만 경제적으로는 부분적으로 종속적인 나라로 분류했고, 이런 ‘제국주의의 약한 고리’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전망했다. 이와 같이 정치·군사적으로 강대국이면서 경제적으로는 선발 제국주의 나라들에 종속적인 국가도 제국주의 국가라고 파악한 것이다. 그러므로 러시아가 자원 수출국이며 자본수입국이므로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나아가 스탈린은 ‘레닌주의의 기초’에서 “레닌이 짜리즘을 ‘군사적-봉건적 제국주의’라고 한 것은 옳은 말이었다”고 했다. 대외적으로 자본수출을 하지는 않지만 군사적으로 영토를 넓히려고 하고 대내적으로 봉건적 토지소유관계를 온존하고 있는, 따라서 부르주아 혁명의 과제를 아직 다 해결하지도 못한, 나라조차 제국주의 국가라는 것이다. 그게 당시 마르크스주의자 대부분의 인식이었다.
바그너그룹 반란을 계기로 널리 알려졌듯이 러시아는 군사기업인 바그너그룹을 앞세워 세계 도처에서 군사개입을 해 왔다. 그 가운데는 시리아 내전 개입과 같이 미·서구 제국주의의 체제전복 기도에 직면한 사회주의 정권을 지원하기 위한 개입도 있었다. 그러나 말리와 중앙아프리카에서 보듯이 아프리카 대륙의 여러 군사개입에서 이런 측면은 찾아보기 어렵다. 자본주의 강대국으로서 군사적 영향력 확대와 경제적 이권 확보가 주요 동기였다.
오늘날 제국주의론에서는 하위-제국주의(sub-imperialism) 개념이 주목을 받고 있다. 브라질, 남아공, 인도 같은 나라들은 경제적으로 미·서구 제국주의에 일정하게 종속돼 있지만 해당 지역에서는 이웃나라에 자본을 수출하는 제국주의적 모습을 가지고 있는 점에 주목하여 나온 개념이다. 낡은 사고에 사로잡혀 있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많은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은 이 하위-제국주의 개념에 동의하고 있다. 러시아는 ‘유라시아 경제연합’을 만들어 경제적으로, 그리고 정치·군사적으로 지역맹주 노릇을 하고 있으므로 하위-제국주의 국가라 할 만하다. 그러나 러시아는 자본주의 강대국으로서 전 지구적으로 군사개입을 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므로 글로벌 ‘군사적-자본주의적 제국주의’이기도 하다. 요컨대 후발제국주의 국가들이 선발제국주의 국가들인 미·서구 제국주의의 패권과 대립·투쟁한다고 해서 이를 반제국주의 투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 인식은 또 하나의 거짓 이데올로기이며, 명백한 ‘인식의 실패’다.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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