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열두 달을 꽃 이름으로 다시 불러본다
박학봉
계절이 바뀌어도 시들지 않는 꽃
속절없이 꽃이 진 들 꽃향기마저 빼앗기겠는가
거친 비바람이 불어도 뿌리가 깊어 꺾이지 아니하리니
햇살도 없는 어둠 속에서 우리는 뿌리로 한 몸이 되어라
그리운 따듯한 북녘 하늘아 우리 바라만 봐도 행복하여라
꽃잎을 간지럼 주는 솔바람아 그 바람은 정겨운 동포의 손이구나
곱고 고운 마음 짓 밟혔지만 꽃이 태양을 향한 절개는 빼앗지 못하리
우리를 다시 돌려 보내다오 억센 손으로 옮겨 심어도 내 땅이 아니라
우리는 돌아가야 한다 척박한 땅에 살 수 없는 꽃이라
우리는 반드시 돌아가리라 떨어진 꽃이라면 꽃씨라도 바람에 날아가리
나의 눈물이 말라 보고픈 얼굴 희미해질까
기다리고 기다리다 타는 가슴보다 우리는 더 불타는 붉은 꽃으로 피어나리
분열의 아픔을 끝내는 희망의 통일 꽃이 되리라
겨울 내내 들은 텅 비고 산은 주인 없는 빈 집이되 수선화가 반가운 봄소식 안고 간다 1월의 꽃 수선화를 옥향이라 부르리
그리움으로 피어나는 아지랑이 겹겹이 쌓인 눈 녹이며 피어오르네 꽃망울 활짝 터지니 가다리는 봄이 왔네 2월의 꽃 영춘화를 리봄이라 부르리
산비탈 그늘진 곳 아직 녹지 않은 땅 눈을 비집고 당당하게 일어서서 잎보다 꽃이 먼저 솟아오르는 노루귀를 3월의 꽃 행복이라 부르리라
강남에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 남으로 끌려간 우리 누이 소식 안고 오려나 보고픈 마음 하늘에 제비꽃으로 피려나 4월의 꽃 제비꽃을 경아라고 하리라
아름다운 주머니를 닮은 꽃 그 주머니에 우리 사회주의 행복 담아라 빼앗을 수 없는 우리 꿈을 담아라 5월의 꽃 금낭화를 은경이라 하리라
나쁜 구름이 동쪽에서 떠오르는 해를 덮었어요 태양을 볼 수 없어 꽃잎을 닫았습니다 태양과 이별의 슬픔에 끊임없이 피어나는 꽃 6월의 꽃 금잔화를 옥별이라 부르리
밤새 눈물이 고인 듯 홍자색 꽃송이에 앉은 이슬 멀리 바다를 향하여 피는 까닭은 조국에 대한 그리움 진한 향기로 보내고자 하니 애틋한 마음을 담은 7월의 꽃 해당화를 지혜라 하리
울타리 밑에 피어난 꽃과 눈을 마주하고 정다운 미소에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네 이 다음해 우리 누이 오면 꽃대문 만들어 줄래 8월의 꽃 나팔꽃을 선미라 부르리라
지금쯤이면 한적한 신작로에 코스모스 살랑살랑 우리 집 앞마당에는 채송화가 풍성하게 피었겠지 어떤 고난을 이겨낸 꽃인데 목숨 지켜 돌아가리 9월의 꽃 채송화를 혜성이라 부르리라
오랫동안 꽃 색깔이 변하지 않는다는 꽃 변함없이 우리를 기다리는 민족 앞에 서는 날 그 날까지 맹세와 다짐하노라 향기도 잃지 않으리 10월의 꽃 천일홍을 송영이라 부르리
바람에 쉴 새 없이 흔들리는 억새라 하지만 뿌리까지 흔들리랴 줄기가 꺾어지랴 모질고 낯선 곳에서 의연하게 버티는 침묵의 분노 억새를 11월의 꽃 정화라 하리
직박구리가 애기동백꽃이 한잎 두잎 떨어지면 떨어질 때 마다 운다는데 흰 눈 속에 드러난 붉은 꽃은 투쟁에 한 몸 바쳐 흘린 핏빛이구나 12월의 꽃 애기동백꽃을 설경이라 부르리라
활짝 피어라 아름답게 피어 희망의 씨앗이 되어라
눈물을 받아 피어난 꽃이 아니라 아직 남은 온기가 인민이 보내 준 사랑이거늘
사랑과 기쁨을 듬뿍 안고 피어라 심장으로 외치노라 우리는 민족의 꽃이라고
(2017.2.)
얼마전 남조선언론에 박근혜패당의 유인랍치만행으로 하여 남조선에 끌려간 12명의 공화국녀성들은 반드시 시련을 이겨내고 조국의 품에 안기게 될것이라고 격조높이 웨친 박학봉시인의 시가 실렸다. 2017년 8월 20일 《우리민족끼리》에서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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