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만에 원상대로 세워진 북관대첩비
북관대첩비는 1592~1598년 임진조국전쟁시기 정문부의병부대가 함경도지방에 기여든 왜적을 격멸소탕하고 큰 승리를 거둔것을 기념하여 세운 승전기념비이다.
북관이란 마천령을 경계로 하여 그 이북지역을 의미하는 말이고 대첩이란 싸움에서 크게 이겼다는 뜻이다.
높이가 187㎝이고 너비가 66㎝, 두께가 13㎝인 비의 앞뒤면에는 1 400여자의 옛글이 정교하게 새겨져있다.
북관대첩비라는 비의 이름은 비석의 앞면 웃단에 전자체로 가로 쓴 현판글형식의 제목이고 세로 쓴 비문의 제목은 《유명조선국 함경도의병대첩비》이다.
비문에는 왜적들의 침략경위와 반역자들의 준동, 정문부의병부대의 조직과정과 주요전투들에 대하여 상세하게 서술되여있다.
1708년 함경도 북평사로 있던 최창대는 정문부의병부대의 투쟁내용을 새긴 비를 세울것을 발기하고 주동이 되여 비문을 짓고 비를 세웠다.
《을사5조약》을 날조하여 조선을 강점한 일제는 우리 인민의 반일감정이 두려워 1906년 어느날 깊은 밤중에 누구도 모르게 북관대첩비를 도적질하여 일본으로 빼돌리는 강도적범죄를 감행하였다.
조선에 대한 저들의 침략행위와 수치스러운 참패상을 가리우고 우리 인민의 애국심과 반일감정을 짓눌러버리려는 교활하고 음흉한 속심을 품은 이 도적무리들은 북관대첩비를 일본군국주의 상징인 《야스구니진쟈》구역안의 황량한 숲속에 철울타리로 둘러싸고 내버려두었으며 그것도 모자라 비우에 1t이상이나 되는 큰 돌을 올려놓는 천추에 용납 못할 범죄행위를 저질렀다.
력사의 이끼속에 묻혀있던 북관대첩비는 100년만에 본래위치에 원상대로 세워지게 되였다.
민족의 재보인 북관대첩비는 일제의 만행을 만천하에 고발하는 산 증거물이며 우리 인민들을 애국주의, 민족제일주의사상으로 교양하는데 적극 이바지하고있다.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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