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보의 고향이야기
택호를 생각하다
이보다 더 찐한 고향이야기는 없어 1백호 집집이 택호마다 정겨움이... 나의 택호를 정한다면 '나둥댁'으로
호암댁 명천댁 육동댁 사천댁 원촌댁 토골댁 인곡댁 소일댁 아천댁 대계댁 안흥댁 월성댁 금촌댁 원하댁 남동댁 도동댁 송전댁 오깨댁 선관댁 새터댁 동촌댁 논실댁 사동댁 광의댁 국실댁 월정댁 완산댁 대일댁 큰본동댁 둔내댁
우항댁 각산댁 금대댁 자천댁 거동댁 사일댁 관동댁 귀일댁 영천댁 법화댁 말밤댁 덕수댁 상촌댁 구천댁 순대댁 상동댁 석동댁 석촌댁 큰야오댁 작은야오댁 온천댁 양동댁 효동댁 우보댁 학지댁
울배댁 계남댁 사오댁 노항댁 우동댁 하양댁 골짝 도일댁 새모테 도일댁 산전댁 연계댁 정산댁 구암댁 소동댁 주옥댁 창말댁 정각댁 박씨네댁 배씨네댁 연둥댁 호동댁 한천댁 월계댁 소호댁 암모댁 고정리댁 선원댁 다오댁 임고댁 녹전댁 모산댁 천호댁
기계댁 배골댁 자동댁 부호댁 동산댁 선산댁 청송댁 안덕댁 유천댁 거실댁 입석댁 임포댁 작은본동댁(응조) 우포댁(범이) 양정댁(세황)
(이상 금호 1동 중리)
금호 2동 질구지로 넘어가면 가일댁 가욱댁 여남댁 등이 또 이어지고, 내지도 많은데 다 적지를 못했습니다.
궂은 일 좋은 일 함께 하던 동네
이상 고향마을 각 집들의 택호를 적어 보았습니다. 이보다 더 찐한 고향이야기는 없습니다. 예전엔 100호에 거의 가까웠는데, 조금씩 줄어 지금은 70여 호 정도 될 겁니다. 큰집 작은집, 대소가들과 타성 집들까지 오르락 내리락 적어 보았습니다.
윗대로부터 한 집에 여러 개의 택호를 적기도 했습니다. 우리 집의 택호는 고조대엔 사천댁, 증조대엔 원촌댁, 할배대엔 토골댁, 아부지 대엔 인곡댁입니다. 내 대에 택호를 정하라 하면 나둥댁으로 할까 합니다.
"사랑해요"하면 "나둥"하기 때문에 나둥댁이 되겠습니다. 10만 광년너머 버들강아지 은하 에서부터 함께 한 나둥댁입니다.
고향 벗어난지 오래됐지만 집집이 택호는 거의 기억납니다. 몇 집은 가물가물하여 적지 못했는데, 마음이 아파집니다. 어느 집에 숟가락 몇 개인지 다 알 정도입니다. 동네 어느 집 지붕이라도 올리려면 '알매치기'라 하여 집집이 한 두 사람씩 가서 힘든 일 같이 해주던 마을입니다.
초상이 나도 함께 했고, 잔치가 있어도 그 집 마당에 덩실덩실 함께 춤추며 놀았습니다. 물론 요즘은 농촌 인심도 변하여 고향 떠나 감상적으로 바라보는 제 시선과는 많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향마을 100호 집집이 택호마다에 정겨움과 연민을 느끼는 이 마음은 모두와 나누고 싶습니다.
택호는 보통 그 집 안주인의 친정 곳을 따서 붙였습니다. 옛날엔 부인들이 아이를 낳다가 죽거나 병으로 일찍 세상을 뜨는 일이 많았는데, 남편이 새장가 들어 후처를 맞아도 그 댁은 전처의 택호로 불렀습니다. 재취댁, 삼취댁이라도 택호는 오로지 본처의 친정 곳으로 불렀습니다.
요즘 도시 댁들의 택호를 만약 붙여 본다면 어떻게 될까요. 쌍룡3차댁 주공2차댁 현대1차댁 팰리스카운티댁 테크노파크댁 아니면 주공203호댁 현대103호댁...뭐 이런 식이 될 것도 같습니다.
---------------------------------------------------------------- # 할매 에피소드
우리 집안에 우항할매라고 계셨다. 임고 우항이 친정이라 우항댁이었다. 우항김씨네 양반집 따님이었지만 성격은 장난끼가 다분한 분이었다.
이분이 나이들어 동네 할매가 되었을 때, 마실 한 번 나가면 늘 웃음을 몰고 다니셨다. 한 번은 마을골목에서 얼라 업은 새댁을 만났다.
우항할매 曰 "으음, 누구집 자손인고?" "예, 토골댁 손자라예" "아, 귀한 보지똥이네. 무럭무럭 잘 자라거라"
동네 꼬마아이들을 '귀한 보지똥'이라며 농을 걸고 축복하셨던 이 할매의 맏아드님이 포항공대 권오봉 교수(작고)이시고, 막내 손자가 요즘 유튜브에 뜨고 계신 문광스님이다.
우항할매가 요즘 고향마을 골목에 나타나신다면 귀한 보지똥들을 아예 볼 수가 없으니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 할배들의 출입
우리 할배들은 어느 집으로 장가 든 일을 "출입했다"는 어법으로 이야기 했다. 예컨대, 우리 할배가 대추골 용궁전씨네 처녀한테 장가 든 일을 대추골 용궁전씨에 출입했다는 식으 로 말씀하셨다. 영남일대엔 각 씨족별 동족부락이 발달돼 있어 그 마을 이름과 성씨만 들어도 그 집의 내력과 자기와의 관계를 대략 알 정도였다.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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