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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날
김문보
태양이 부풀어 오르고 팔공산 노을 붉게 번졌네. 저 너머엔 어디일까. 궁금하기 그지없었네.
소를 몰고 집으로 간다. 등에는 꼴망태기, 풀내음이 넘치네.
한천교회 풍금소리 들리네. 능금밭 탱자나무 울타리길 지나 뒤뜰 오솔길 걷는다.
소는 가다 말고 아카시아 잎을 뜯어 먹네. 소년은 망태기 내려놓고 기다리네.
소이까리 잡고 날이 어둑도록 기다려주네. 그 여름날 나는 소처럼 느릿한 목동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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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야, 좀 더 놀다 가자"
우리 마을 아이들은 보통 앞산 바걸재에 소를 올렸다. 용난골 입구 바걸강은 우리들의 물놀이 천국이었다. 맑은 물 빛나는 돌들과 모래사장, 잔디밭까지 천혜의 강엔 송어 피리 먹지 꺽자구 모래무지 노고지리 텅갈래 텅수 뿌구리 중택이 징거미 자라 뱀장어 꺼덜뭉치(버들치) 등 우리 들이 아는 모든 민물고기가 있었다.
나 혼자 가끔 소를 몰고 질구지 뒷산에 갔다. 범디미라 불린 질구지 산엔 능계 넘어가는 파데이 골짜기 입구에 성황당 돌무더기가 있었다. 그곳을 지날 때 침을 세 번 뱉고 돌을 얹으면 재수가 좋다고 했다. 그 일대에 우리 가족이 산기슭을 띠져 일군 능금밭과 문중산 조상무덤들 사이 소나무 숲을 헤집으며 소도 먹이고 꼴도 뜯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질구지 가일할매집 능금 밭 탱자나무 울타리옆 비포장 길은 내게 오솔 길 같았다. 그곳엔 하늘 향해 둥그러니 솟은 붉은 옹기굴 돔이 늘 날 지켜보았다. 지금도 잡목과 풀이 우거진 채로 그 옹기굴은 남아있다. 이걸 정비, 보존했으면 싶은 생각이 늘 드는 곳이다.
옹기굴 지나면 우리동네 중리 넘어오는 뒷뜰 밭길이다. 4백년전 마을 생길 때 앞들에 논들 보다 먼저 개간한 밭농사 지대였다. 1970년대 말 쌀 증산한다며 물을 끌어올릴 수로공사로 논으로 변신을 시도했다. 하지만 다시 포도밭과 과수원지대로 바뀌었다. 지금은 마을 앞 논들도 다 없어지고 밭으로 변하였다. 쌀의 몰락이다.
팔공산 노을을 바라보며 집에 가는 길은 여유 만만했다. 등에 꼴망태기 가득 채운데다 소도 배가 불룩했다. 소를 생각하는 소년의 마음은 늘 애틋했다. 조금이라도 더 먹이고 싶었다. 멀뚱멀뚱하며 순진무구한 소눈을 보며 말했다. "소야, 좀 더 놀다 가자"
옆길로 새어 권응수장군 부인 유씨할매 묘역 '상산의 갓'을 지나 초밭골까지 우회한다. 초밭골엔 사천할배 부부묘소가 잘 자란 잔디밭 배경으로 중리 들을 바라보며 안착해 있다. 그곳에서 놀다가 집에 가는 길을 솔대뱅이라 했다. 내지마을로 연결되는 오솔길이다.
그 오솔길 작은 고개너머 마을 쪽으로 들어 서면 왼쪽은 동산이고, 오른 쪽은 작은 집이라 부른 세황이네 능금밭이 있는 미뿌랑이다. 아름다운 소나무 숲과 잔디밭에 창녕조씨네 묘들이 있다. 이곳 골짜기에 김사분 어르신이 일군 임순이네 포도밭이 있고, 반대쪽 동산 기슭은 조인호씨 능금밭이 펼쳐졌다.
그 능금밭 아랫 길이 아카시아 울타리로 가득 했다. 소가 그냥 지날 리 없다. 길을 가면서 자꾸 길고 거친 혀를 쭉쭉 내밀어 아카시아 이파리를 뜯는다. 마음이 안쓰러워진다. 해는 이미 빠졌지만 망태기 내려놓고 기다려 준다. 소가 아카시 잎을 맛있게 따 먹는다. 그 모습 지켜보는 것이 참 재밌고 뿌듯했다.
집에선 할배가 쇠죽 가마솥을 지키고 계셨다. 모깃불 옆 멍석에는 온 가족이 둘러앉고, 엄마는 버지기에 가득한 손국수를 덜어 나눠 주셨다. 그 여름밤, 무수한 별들이 옛 말달리던 구마리(驅馬里) 강변 마을 위로 쏟아져 내렸다.
-------------------------------------------- * 권응수 장군 : 임진왜란 경상좌도 의병대장. * 구마리(驅馬里) : 말을 달리는 동네라는 뜻. 임란 당시 권장군이 병사들을 훈련하던 강변. * 질구지 : 질그룻 굽는 조제흙(쪼제흙)이 많이 나는 옛터라는 뜻. 삼국시대 무렵부터 이 일대에서 토기를 구웠던 것으로 추정한다. 1970년대 말 경지정리 전까지 삼국시대 삼발이형 토기가 대량 묻혀있던 공동묘지가 남아 있었다.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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