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서사시《백두산》을 혁명전통주제의 대표작으로 내세워주시여
허 정 숙
이미전에 회상실기《서사시〈백두산〉과 더불어 길이 전할 이야기》가 《인민들속에서》에 발표되여 독자들속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해방후 시인 조기천이 어떻게 장편서사시《백두산》과 같은 훌륭한 대작을 창작할수 있었는가에 대하여 서술한 글을 읽으면서 나는 정말 감회가 깊었다. 한것은 나역시 그 나날에 있었던 잊지 못할 사연들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중의 한사람이기때문이다.
흙속에 묻혀있는 옥도 찾아내여 닦아주어야 빛을 낼수 있듯이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옹호하고 내세워줄 때라야 그 가치가 인정되는것이다.
장편서사시《백두산》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이미 이 작품이 창작되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알려졌지만 그것이 어떻게 되여 해방후 우리 인민들속에 광범히 보급되여 널리 애독되게 될수 있었는가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못하다.
그래서 나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장편서사시《백두산》을 혁명전통주제의 대표작으로 내세워주시던 불멸의 령도에 대하여 돌이켜보려고 한다.
내가 시인 조기천을 처음 만난것은 해방된 이듬해였다.
당시 문화선전국의 책임일군으로 사업하고있던 나는 김책동지로부터 시인의 시창작을 잘 도와주라는 과업을 받고 그와 자주 만나군 하였다.
그 과정에 나는 시인이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옵고 수령님에 대한 열렬한 흠모심으로 가슴을 불태우며 서사시를 창작하던 경위를 목격할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의 작품을 몸소 보아주시면서 서사시의 핵을 안겨주시고 그 구성과 지어는 시어표현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지도를 주신 결과에 작품은 더 훌륭히 완성되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후부터였다.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서사시를《로동신문》에 낼데 대한 과업을 받은 나는 해당 일군에게 원고를 신문사에 가져가도록 하였다.
하지만 며칠이 지났는데도 신문에는 서사시가 나오지 않았다.
알아보니 당시 문학예술부문과 신문부문에 틀고앉아있던 일부 불건전한자들이 다른 나라에서도 당보에는 시작품을 내지 않는다는 당치 않은 구실을 대면서 서사시의 발표를 하루하루 미루고있었던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위대한 수령님께 즉시 보고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의 이야기를 다 들으시고나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백두산》과 같은 장편서사시는《로동신문》에 내야 합니다. 왜 우리 당의 혁명전통을 주제로 한 작품을 당기관지에 내지 못하겠습니까.
…
다른 나라에서 출판물편집을 어떻게 하든지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남이야 어떻게 하든 우리 인민들이 좋아하면 되는것입니다.
다른 나라에서 당보를 편집할 때 시같은 문예작품을 잘 내지 않는다고 하여 우리도 내지 말아야 한다는 법이야 없지 않습니까.
그이의 음성은 몹시 격해있었다.
나의 가슴도 서사시의 발표를 방해하는자들에 대한 분격으로 끓어올랐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백두산》과 같은 장편서사시를 당기관지에 내면 항일유격대의 혁명정신으로 대중을 교양하는데 좋은 영향을 줄수 있다고 하시면서 시를 빨리 신문에도 내고 방송으로도 선전하며 시집으로도 출판하여 인민들속에 널리 선전해야 한다고 하시였다.
이리하여 장편서사시《백두산》은 주체 36(1947)년 2월 7일부터 11회에 걸쳐《로동신문》에 련재되였다.
서사시는 세상에 발표되자마자 사람들의 심장을 완전히 틀어잡았다.
인민들은 작품을 통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직령도하신 피어린 항일무장투쟁에 대하여 똑똑히 알게 되였으며 민족의 태양이시며 전설적영웅이신 경애하는 수령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끝없는 흠모의 정을 더욱 깊이 간직하게 되였다.
이무렵 많은 사람들이 장편서사시《백두산》을 읽은 독후감을 편지로 써보내왔는데 그들은 거기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우리 혁명의 령도자로 모신 행복감에 대하여 그리고 항일혁명선렬들의 혁명정신을 따라배워 첫 인민경제계획을 성과적으로 수행해나갈 결의를 다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미전부터 서사시의 창작을 달가와하지 않던 일부 불순분자들은 뒤에서 계속 이 작품을 거세하고 말살하기 위해 간교한 책동을 벌리였다.
하지만 나는 이자들이 내돌리는 이러저러한 뒤소리를 그저 남의 작품을 시기질투하는 사람들의 소행일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나는 위대한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이의 집무실로 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언제나와 같이 나를 따뜻이 맞아주시고나서 이렇게 물으시였다.
《요즘 장편서사시가 지상에 발표된 다음 반영이 어떻습니까?》
나는 수령님께 시가 인민들속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있다는것과 이 시를 시집으로 출판보급해달라는 요구가 많이 제기되고있다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럴것이라고, 우리 인민들은 누구나 다 그 시를 사랑할것이라고 말씀하시고나서 다른 의견들은 제기된것이 없는가고 다시 물으시였다.
잠시 망설이던 나는 일부 작가들속에서《백두산》의 시어가 과격하다느니, 항일유격대원들의 형상이 진실감이 적다느니 하는 등의 말들이 돌고있기는 하나 그것들은 별로 큰 문제거리가 될것 같지 않다고 말씀드리였다.
나의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동안 아무 말씀이 없으신채 책상우에 놓인 신문들을 한장한장 번져보시는것이였다. 그러시는 그이의 안광에는 근엄한 빛이 어려있었다.
(?!…)
내가 영문을 몰라하는데 수령님께서는 잠시후 신문을 한장 손에 드시고 요즘 서사시에 대한 평론이 이렇게 지상에 나가는것을 알고있는가고 물으시는것이였다.
사실 나는 그무렵 일이 바쁘다는것을 구실로 신문에 나가는 글들에 관심을 돌리지 않다나니 어떤 글이 발표되였는지도 모르고있었다.
나의 심정을 헤아려보신듯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용하나 신중하신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요즘 발표된 장편서사시《백두산》을 놓고 이러저러한 말들이 일부 작가들속에서 돌고있다고 하는데 그것을 사소한 일로 지나쳐 버려서는 안됩니다.
지금 반동들은 우리 인민들속에 부르죠아반동문학을 류포시키기 위하여 발악을 하고있습니다. 여기에 문단주의를 부르짖는 작가들을 리용하고있습니다.《기성시인》이니《이름있는 작가》니 하면서 일제시기부터 글개나 썼다고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추어주면서 당을 속이고 자기들의 작품들만이 판을 치게 하려 하고있습니다.
이런자들은 새로 자라나는 귀중한 싹들을 짓밟아 버리고있습니다. 햇내기라느니, 코흘리개라느니 하면서 인격적으로 모욕하면서 우리의 문단을 우롱하고있습니다.
불현듯 나에게는 이 장편서사시의 초고합평때 열을 올리던 몇몇 작가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은 지금 외국에서는 소설처럼 이야기줄거리를 가진 서사시보다 순수 시인의 감정을 표현한 서정시를 더 일러준다고 하면서 그런데 이번에 작가는 감히 서사시를 그것도 장편을 썼다고 목청을 돋구어대였다.
한마디로 서사시는 론의거리로 되여있는 시형식이기때문에 우리 나라 문단의《대가》들도 손을 대지 않고있는데 주제넘게도 신인이 그것을 썼는가 하는것이였다.
나는 생각할수록 이런 문제들을 누구보다도 정치적으로 예리하게 보지 못하고 순수 남의 글을 시기하는 있을수 있는 현상으로만 보려고 한 자신의 처사가 부끄러워 머리를 들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책감에 잠겨있는 나를 이윽토록 바라보시다가 이 장편서사시의 시구와 시어에 대하여, 시의 구성과 인물형상에 대하여 운운하는것은 철저히 그들의 딴 속심에서 나오는 하나의 책동이라는것을 알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백두산》의 시구절이나 시인을 놓고 이러쿵저러쿵하는 사람들속에는 이 시가 항일무장투쟁을 형상한데 대하여 마땅치 않게 여기는자들도 있습니다.
항일의 혁명전통을 주제로 하는 작품을 쓰는데 대하여 겉으로는 말하지 못하면서 속으로 은근히 달가와하지 않는자들의 책동이 담겨져있다는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시고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문학예술부문에 잠입한 반당종파분자들의 책동에 대하여 경각성을 높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우리가 당을 창건할 때 애를 먹이고 복잡하게 놀던 종파분자들이 고질화된 종파습성을 버리지 않고 계속 나쁜 장난을 하고있으며 문학예술분야에서도 쏠라닥거리고있다고 , 이자들은 항일무장투쟁의 혁명전통을 정면에서 헐뜯지 못하고 교묘한 수법으로 다른 사람들을 시켜 저들의 말을 대신하게 하고있다고 격하신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장편서사시《백두산》이 조선인민의 숭고한 애국주의감정과 혁명적기백, 민족적기개를 잘 묘사한 우수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런자들은 이 시가 항일유격투쟁만을 그리고 이여의 투쟁들을 언급하지 않았기때문에 조선민족의 기개와 투쟁정신을 전반적으로 개괄하여 보여주지 못하였다고 시비한다고, 이것은 결국 우리 당의 혁명전통, 항일유격대의 투쟁업적 대신 그 어떤 다른 전통을 내세우려는 음흉한 속심을 드러내놓은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므로 장편서사시《백두산》을 지지옹호하는가 아니면 비난배척하는가 하는것은 단순히 작품창작과 평론에만 머무르는 문제가 아니라 항일의 혁명전통을 우리 당의 혁명전통으로 인정하는가 안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와 관련되여있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불순이색분자들의 책동에 격분하신듯 잠시 말씀이 없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래서 요즘 다른 신문에 련재되던 이 장편서사시에 대한 부당한 평론을 중지시켰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강조하시였다.
장편서사시《백두산》을 우리 당에서 옹호해주어야 합니다.
이 시를 옹호하는것은 단순히 하나의 문학작품을 지지하는데 그치는 문제가 아닙니다. 시《백두산》을 지지하고 옹호하는것은 우리 당의 혁명전통, 항일무장투쟁의 혁명전통을 옹호하는것으로 됩니다.
그러시고 자칫하면 《백두산》이 나쁜 놈들에 의하여 매장될수 있다고 하시면서 이 장편서사시를 꼭 살려야 한다고 그리고 앞으로는 부당한 평론놀음을 하지 못하게 하며《백두산》을 옳게 평하는 글을 하나 잘 써서 내도록 해야 하겠다고 간곡히 이르시였다.
나는 생각이 깊어졌다.
장편서사시《백두산》의 창작과 그 발표와 관련하여 벌어지는 복잡한 사태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분석은 그 본질을 정치적으로 예리하게 밝힌 가장 정확한것이였다.
돌이켜보면 항일의 혁명전통을 음으로양으로 헐뜯으며 제각기 저들의 이른바《투쟁》에 대하여 내세우려는 시도는 비로소 이때가 처음이 아니였다.
그무렵 항일유격대의 투쟁기, 영웅기들이 출판물들에 나오기 시작하자 불순이색분자들은 우리들의 투쟁기는 안내는가, 우리 사진을 왜 작게 내는가, 어째서 1면에 안내고 2면에 주었는가 하면서 별의별 시비를 다 걸고들었다.
이번에도 이자들은 처음에 장편서사시《백두산》을 놓고 시비하다 못해 철호가 정치공작원같지 않다느니, 꽃분이의 말이 봉건녀성의 말처럼 표현되였다느니, 그들의 행동선이 일관하게 련결안된다느니 뭐니 하고 비방하다 마침내 우리 민족의 모든 투쟁을 개괄하지 못하고 항일유격대의 투쟁만 묘사한것이 이 작품의 큰 약점이라고 저들의 진의도를 로출시켰던것이다.
이것은 항일무장투쟁의 혁명전통을 거세할것을 노린 불순이색분자들의 집요한 책동의 한 고리였다.
나는 곧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장편서사시《백두산》에 대한 평론을 조직하기 위한 준비를 서둘렀다.
그런데 이미 그릇된 시평이 나간 조건에서 이번에는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모대기였다.
그러던 3월 하순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나를 또다시 부르시였다.
내가 그이께서 계시는 집무실로 급히 달려갔을 때 거기에는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도 와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저 나에게 장편서사시에 대한 새로운 평론을 어떻게 준비하고있는가 물으시였다.
아직 이렇다할 안이 떠오르지 않아 모대기고있다는 나의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기천의 장편서사시《백두산》을 평가하는 글을 당에서 내주어야 하겠다고 하시면서《백두산》은 해방된 조선의 문단, 근로인민을 위한 우리의 문학예술이 낳은 대걸작이며 당과 혁명에 충실한 시인의 높은 혁명적열정과 정력적인 사색과 탐구, 예술적재능이 가져다준 귀중한 열매입니다.
아직까지《백두산》과 같은 시가 나온 일이 없습니다. 이것은 세계에 내놓고도 널리 자랑할만한 일입니다 라고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자신께서는 아직까지 자기 인민의 빛나는 혁명전통을 내용으로 이만큼 큰 작품을 써낸것을 보지 못했다고 하시면서 시인은 생활체험으로 보나 세계관의 발전과정으로 보나 항일투사들처럼 단련된 사람이 아닌데도 항일무장투쟁의 빛나는 력사를 집약적으로,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장편서사시를 창작하였다고, 이것은 작가의 당에 대한 충실성으로부터 발현된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기성문단에 전혀 이름이 없던 신인이 해방후 창작활동의 첫 걸음을 떼면서 그와 같은 훌륭한 작품을 내놓은것이 그토록 대견하신듯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계속하시였다.
《백두산》은 머리시의 첫구절부터 웅장하고도 대담하며 작가자신의 민족애가 잘 나타나게 썼습니다. 시가 독자들의 가슴을 파고듭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시인은 작품에서 항일무장투쟁사를 조선인민의 진정한 민족해방투쟁사로 보았으며 그의 빛나는 전통을 우리 당과 인민이 이어받아야 할 혁명전통으로 형상하였다고, 혁명전통의 본질을 옳게 리해하고 시를 썼기때문에 인물들의 행동과 대화, 작가의 주정토로가 정당한 론리의 힘을 가지고 독자들을 흥분시켰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작품이 이렇게 잘되였음에도 불구하고 시구가 어떻소, 시어가 어떻소 하면서 비평하는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이라고 하시면서 당에서《백두산》에 대한 시평을 내주어야 하겠다고, 딱딱한 론평식 평을 할것이 아니라 잘된 시구들을 들면서 사람들에게 납득이 가게, 그들이 인정할수 있게 평론을 준비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을 정겨운 시선으로 바라보시며 말씀하시였다.
당출판사나 로동신문사 같은 당출판기관의 이름으로 시집《백두산》을 내야 하겠습니다.
물론 다른 시집을 당출판사나 로동신문사의 이름으로 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백두산》은 당출판기관의 이름으로 내주는것이 필요합니다.
《백두산》에 대한 평론을 당보에 내고 시집을 당출판기관에서 내면 광범한 인민들에게 혁명전통을 주제로 한 이 장편서사시에 대한 옳은 인식을 줄수 있고 나쁜 놈들이《백두산》을 매장시키려는 불순한 책동을 더는 하지 못하게 할수 있습니다.
참으로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하신 말씀은 해방된 우리 나라의 문학예술이 나아갈 방향을 뚜렷이 명시하여 주신 강령적지침이였으며 작품을 당적원칙에서 가장 정확하게 분석평가할수 있게 한 혁명적문학평론의 빛나는 모범이였다.
그로부터 얼마후인 4월 중순, 장편서사시《백두산》을 높이 평가하고 그것이 가지는 커다란 인식교양적의의를 강조한 시평이《로동신문》에 나갔으며 뒤이어 당출판기관을 통하여《백두산》이 시집으로 출판되고 전국에 보급되게 되였다.
이리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직령도하신 영광스러운 항일무장투쟁을 격조높이 구가한 장편서사시《백두산》은 매장의 위기로부터 구원될수 있었으며 해방된 조선이 낳은 혁명전통주제의 첫 대서사시적작품, 혁명적시문학의 훌륭한 본보기로서 그 빛을 뿌리게 되였다.
서사시는 그후 가렬한 전화의 나날에 싸우는 고지의 용사들을 원쑤격멸에로 불러일으켰으며 전후복구건설은 물론 시련과 난관을 뚫고 혁명과 건설을 다그쳐오는 전과정에서 우리 인민들에게 불굴의 의지를 안겨주는 혁명의 노래, 투쟁의 노래로 되였다.
오늘도 사람들이 무대에서, 교정에서, 일터에서 이 시를 열정적으로 읊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의 가슴속에는 우리 인민에게 장편서사시《백두산》과 같은 혁명적인 시작품을 안겨주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다함없는 감사의 정이 가득차오른다.
나는 이 글을 끝맺으면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이룩하신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영원한 초석으로 하여 부강조국을 건설하려는 우리 인민의 확고한 의지에 대하여 장편서사시《백두산》의 마감시구절을 인용하는것으로써 말하려고 한다.
…
《너 세계야 들으라 !
이 땅에 내 나라를 세우리라 !
내 천만년 깎아세운 절벽의 의지로
내 세세로 모은 힘 가다듬어
온갖 불의를 족쳐부시고
내 나라를,
민주의 나라를 세우리라 !
내 뿌리와 같이 깊으게
내 바위와 같이 튼튼케
내 절정과 같이 높으게
내 천지와 같이 빛나게
세우리라 -
자유의 나라 !
독립의 나라 !
인민의 나라!》
백두산은 이렇게 웨친다!
백성은 이렇게 웨친다!
주체 80(1991)년 4월
* *
허정숙동지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로 사업하던 시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새 민주조국건설을 령도해오신 여러건의 사적자료들을 정리하였다. 이 회상실기는 그가 사망하기 전에 쓴 유고를 편집한것이다.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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