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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절에 내 걸린 일장기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23/03/07 [17:54]

삼일절에 내 걸린 일장기

프레스아리랑 | 입력 : 2023/03/07 [17:54]

 

 

신사는 일본의 국교 신도(神道)의 사당입니다. 당초 신도는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선조나 자연을 숭배하던 토착신앙이었지만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천황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 신도를 적극 활용하면서 국가종교로 부각시킵니다.

 

대륙침탈의 야욕을 불태우던 일제는 자신들이 진출한 지역에 반드시 신사를 세워 상대민족과의 사상통일을 꾀했고, 우리나라에도 1876년 개항 이후 전국에 수많은 신사를 설치합니다. 초기에는 일본 거류민들 중심의 민간차원에서 건립과 운영이 이루어졌지만, 1910년 한일병탄 뒤부터는 본격적으로 총독부 차원의 육성이 시작됩니다.

 

1925년 서울 남산에 조선신궁이 건립된 것을 계기로 일제는 본격적으로 신사참배를 우리 민족에 강요하기 시작했지요. 처음에는 공립학교, 그 다음에는 일반 사립학교, 나중에는 기독교학교와 교회들까지 주요 공략대상이 됩니다.

 

우상숭배라며 강력히 맞섰던 한국기독교는내선일체를 부르짖으며 식민정책을 펼친 일제의 탄압 앞에 무너지기 시작하죠. 일찌감치 로마 교황청의 훈령을 받고 투항한 가톨릭에 이어, 개신교에서는 감리교회가 제일먼저 백기를 들었습니다.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주도했던 장로교회마저 변절하며, 한국교회는 결국 패배의 쓴잔을 받아들게 됩니다. 이후 장로교는 친일행각에 더욱 박차를 가하며 조선장로호라는 명칭의 군용기 헌납까지 진행합니다. [물론, 주기철 목사님처럼 신앙을 지키면서 독립운동을 하신 분도 있지요]

 

대한민국에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100년 교회 운운하는 교회들이 제법 있습니다. 100년 교회라는 것은 결국 신사참배에 참여했다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신사참배에 참여하지 않은 교회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대한민국 기독교는 사과에 대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교회연합단체 차원에서 신사참배를 회개하거나 반성하지 않고 지금까지도 한마디 언급이 없습니다.

 

 

3.1만세를 주도했던 33인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이후 처절하게 변절한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3.1절에 일장기를 게시한 매국노목사의 탄생이 그냥 나온 게 아닌 것입니다.

 

  © 프레스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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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이득신 작가(제27회 전태일문학상 수상)

                                                    사진제공: 이득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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