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 집회 시위하며 허위사실 가짜뉴스 유포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프레스아리랑 | 입력 : 2020/11/06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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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아리랑=문홍주 기자]  최근 호사카 유지 교수가 일제식민지 강점기 조선총독부에 의해 위안부가 강제동원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극우수구인 태극기모독부대를 비롯한 불특정다수가 11월 2일 오후 2시부터 1시간 동안 세종대앞에서 호사카 유지 교수를 규탄하기 위해 모여 집회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집회 시위에 모인 사람들은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과 구호를 외쳤고 이미 파탄이 난 논리를 되풀이했다. 결국 그들이 말하고 싶은 것은 “호사카 교수는 교수직 사퇴하라”, “호사카 교수는 한국을 떠나라”, 이 두 가지였다. 그들이 말한 허위사실의 대표적인 것은 “호사카 교수는 근거없이 위안부가 강제동원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다”는 정도였다. 
 
호사카 교수는 다시 자신의 주장에 근거를 다 제시했다고 강조하며 그들은 허위사실유포로 단죄되어야 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들 극우수구들의 집회는 유튜브 [서울의소리] 방송을 통해 생중계되었고 지나가는 행인들이 그들을 욕하는 목소리가 잘 들릴 정도였다. “호사카 교수는 [서울의소리]와 전화연결로 그들의 발언을 비판하고 반박했다. 호사카 교수는 "먼저 극우수구 그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는 것 같다. 일본에서 모두 비판, 반박된 이야기나 자료를 대단한 자료인양 들고 있다. ‘위안부’가 되기 위해 정식 서류가 필요했다고 중학생이 나와서 이야기한 것이 파탄이 난 이야기의 대표적인 사례다"고 설명했다. 
 
일본정부는 1938년 3월 내무성 통첩을 통해 국제사회의 눈을 속이기 위해 “21세 이상의 원래 창부였던 여성을 위안부로 해외로 내보낼 것”이라고 하면서도 그것은 “일본군에게도 사정이 있기 때문에 당분간 눈감아줘야 한다”라고 했다. 당시 “성매매방지에 관한 국제조약”에 가입해 있던 일본(1925년 가입)은 아무리 창부라고 해도 해외로 여성을 매매춘목적으로 내보낸다면 조약 위반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 내의 형법 제226조에 의해서도 해외로 여성을 매춘 목적으로 보낸다면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명기가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민간업자가 아니라 일본정부가 그런 국제법이나 일본의 형법을 어겨서 범죄를 허용했다는 것이 범죄가담의 책임이 일본정부에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그리고 21세 이상, 원래 창부였던 자를 보낼 것이라는 조건마저 지켜지지 않았고 계약서 같은 것은 거의 작성되지 않았다.  그런 사태를 보면서 1940년 일본내각 각료회의는 “특수위안부를 부를 때는 (중략) 군의 증명서에 의해 가장 가까운 (중국의) 영사관에서 중국도항 사유증명서를 받을 것”이라고 하면서도 “중국도항 사유증명서가 있는 자는 일본내 경찰서에서 다시 신원조사를 하지 않아도 (도항) 신분증명서를 발급해 온 경향이 있다”고 질타하면서 “신원조사는 종래대로 해야 한다”고 주의하고 있다.(支那渡航邦人暫定処理ノ件1940, 외무성 보관 문서) 
 
당시 일본군과 일본정부는 일왕 직결의 별개의 조직이었으므로 일본군의 횡포로 원래 일본, 조선, 대만 등지의 경찰서에서 여성들의 신원조사를 하여 제대로 된 계약서 작성을 해야 하는데 생략되었다는 이야기다. 같은 문서에는 “조선에서 중국으로 가는 도항자의 승선이나 국경 통과 때 증명서 검사를 제대로 할 것”이라고 나와 있다. 여성들 등 중국도항자의 승선이나 국경통과 때 신분증 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취업사기로 일본군의 지시를 받은 업자들이 여성들을 해외 위안소로 쉽게 떼려 갈 수 있었다. 오늘 중학생이 “위안부는 16살 이상이 아니면 될 수 없다”는 식의 발언을 했으나 이것도 허위다. 
 
필리핀의 일로일로 요양소에서 성병검진을 받은 위안부 여성들의 명단이 남아 있는데 그들의 최연소자는 15살이었다. 그런데 당시 일본이 한국과 똑같이 ‘세는 나이’를 썼기 때문에 만으로는 13~14살의 소녀였다. 제대로 공부도 하지 않은 중학생을 세뇌하고 내세우는 데는 한계가 있는 모양이다. 위안부 강제연행의 증거는 수없이 존재한다. 그리고 오늘(11/2) 어떤 여성이 시위를 하면서 “호사카 교수의  『신친일파』 책 속에서 이영훈씨를 “노예근성을 갖는 자”라고 비판했다고 비난했다. “호사카 교수의 『신친일파』 속에서 이영훈씨가 쓴 위안부 부분을 읽지 않았는지?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를 논박하는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전쟁범죄를 일본의 극우수구파와 똑같이 인정하지 않고 그들의 논리와 맥을 같이 하는 이야기를 퍼뜨리는 한국인이면 그들은 ‘신친일파’이고 모두 일본에 대한 노예근성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역사적 사실에는 눈과 귀가 멀어 일본 극우수구파들의 왜곡된 이야기만 비슷한 맥락으로 되풀이한다면 일제 망령의 정신적 노예가 아니면 무엇인가. 
 
그리고 일제식민지 강점기 한국인 전체가 일제의 노예였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이승만이 만들어냈다고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 속에서 그들의 동지가 주장하고 있는데 그것도 오늘 시위한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1943년 연합국의 대표인 미국의 루즈벨트, 영국의 처칠, 중국의 장제스(장개석)가 카이로선언을 발표했는데 이 때 한국특별조항을 결정했다. 한국특별조항에는 “현재 한국민이 노예상태 아래 놓여 있음을 상기하면서 한국을 적당한 시기에 자유롭고 독립적인 국가로 만들 것을 굳게 다짐한다”로 되어 있다. 
 
이 내용이 포츠담선언에 포함되어 일본이 포츠담선언을 수용해 무조건 항복했다. 그런대 카이로선언의 한국특별조항에 “현재 한국민이 노예상태 아래 놓여 있음”이라고 명기되어 있다. 연합국이 한국인 전체가 일본에 의해 노예상태라고 선언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일본군 ‘위안부’는 당연히 일본군의 성노예였다는 이야기가 된가. 이런 논리는 그들의 머리로 이해가 가능한지 걱정된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카이로선언의 한국특별조항을 이끌어낸 사람이 이승만이다. 
 
그런데 이승만을 존경하는 이승만학당의 이영훈교장선생님을 비롯해 그와 의견을 같이 하는 분들이 왜 이승만이 인정한 한국인의 노예상태를 알면서 그럴 수 있을까? 일본군 ‘위안부’들의 성노예상태를 인정하지 않고 억지를 부리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혹은 그들은 왜 앞뒤가 맞지 않는 정도로 극도의 무지 상태에 놓여 있는가?
 
미국, 유럽, 일본에서 패배한 역사주정주의, 친일논리가 이 땅에서 다시 힘을 얻으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의 망령이 그들을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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