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자주(선언)
'이 척박한 식민의 땅, 진정한 노동운동의 혁신을 위하여 대중주체의 관점을 확립하자'
1. 87년 7∼8월 투쟁35주년의 단상
한국노동운동사에 획을 그었던 87년 7∼월 노동자대투쟁이 있은 지 38주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며 식민지 노예의 운명을 거부하며 투쟁에 떨쳐나선 노동자들은 현대엔진민주노조결성투쟁을 시작으로 노도와 같이 전국을 휩쓸었습니다. 노동조합의 불모지인 현대 그룹에 민주노조의 깃발이 꽂히고 울산지역 11개 사업장에서 노조결성, 어용노조 민주화,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는 파업, 농성투쟁이 연이어 전개되었습니다.
부산, 창원, 그리고 인천, 경기 등 노동자들이 있는 곳에서 어김없이 ≪민주노조≫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이 들불처럼 확산되었습니다. 7∼9월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이 땅 노동자들은 자기 운명의 주인, 역사의 주체로 우뚝 섰습니다. 87년 6월 항쟁, 그리고 7∼9월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대중운동의 시대가 활짝 열리게 되었습니다.
식민지 전근대적인 통치하에서 노예처럼 살아왔던 노동자들이 ≪민주노조≫를 결성하고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우뚝 섬으로써 미제와 식민지 통치는 심대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7∼9월 대 투쟁은 식민지 군사파쇼정권의 억압과 착취를 끝장내겠다는 노동자들의 쌓이고 쌓인 원한의 폭발이었습니다. 노동자들은 ≪민주노조≫ 건설에 머물지 않고 그룹과 지역노조 차원의 협의회를 통해 정권과 자본의 악랄한 탄압 공세를 돌파해 갔습니다.
이런 투쟁 과정을 통해 경향각지에 ≪지역노조협의회≫가 건설되었고 ≪전노협≫을 거쳐 마침내 1천만 노동자들의 자주적 조직인 ≪민주노총≫이 건설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땅의 노동자계급의 처지는 38년 전과 비교했을 때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노동자계급의 염원은 의연 실현되지 않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미국놈들은 신자유주의 공세를 통해 노동자계급에 대한 수탈과 착취를 강화하고 있고, 매판자본과 앞잡이정권을 통해 가혹한 탄압을 들이대고 있습니다. 미국놈들은 세계화의 간판을 걸고 ≪정리해고제≫와 ≪근로자 파견제≫를 법제화하여 헤아릴 수 없는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60%에 육박하는 비정규직을 양산하였습니다. 90%에 이르는 미조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의 보호조차 받지 못한 채 정규직의 1/2도 안 되는 저임금에 소모품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미국놈들은 주식시장, 알짜배기기업을 장악하여 천문학적인 이윤을 수탈해 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용역깡패를 동원한 자본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노동자들이 무리로 쓰러져 가고 있습니다.
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 38주년을 맞는 우리 노동자계급 앞에는 반제반미전민항전을 통해 식민지통치를 끝장내고 ≪자주적 민주정부≫를 세워야 할 아름찬 과제가 나서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기 투쟁을 통해 이 땅에서 미제놈들의 식민지통치를 끝장내고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지 않고서는 노동자들의 운명은 근본적 달라질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확인하였습니다.
2. 87년 노동자대투쟁의 운동론적 의의
87년 노동자대투쟁은 우리 노동운동사에 획을 긋는 역사적 사변이었습니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노동자계급이 한국 변혁운동의 주력부대, 영도계급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는 확고한 조직적 단초가 마련되었습니다.
87년 노동자대투쟁 과정에서 이전 시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노동조합이 결성되었습니다. 노동자들은 민주노조를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그룹과 지역, 업종으로 덩어리를 키우면서 전노협, 민주노총으로 발전했습니다. 이제 민주노총은 우리 사회의 가장 주요한 세력으로 공인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87년 7∼9월 투쟁을 통해 ≪조직노선≫과 ≪투쟁노선≫이 정립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투쟁을 통해 대중운동시대가 열리고, 대중운동시대에 걸 맞는 조직노선과 투쟁노선이 정립되게 되었습니다.
87년 6월 항쟁, 그리고 7∼9월 노동자들의 대 투쟁을 통해 대중적 ≪조직노선≫과 ≪투쟁노선≫이 정립된 것은 식민지통치를 갈아엎고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투쟁에서 획기적인 의의를 지닙니다.
80년 초에 운동은 ≪선도적 투쟁론≫으로 지칭될 만큼 선각자들의 돌출전이 주요한 투쟁노선으로 공인되었습니다. 무장투쟁을 통해서 혁명이 승리한 다른 나라의 영향도 있었고, 과학적 이념이 소수의 선각자들을 중심으로 보급되는 시대적 제한성이 반영된 결과로서 ≪일점돌파≫ 선도투쟁은 운동대오의 공인된 투쟁노선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이 시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비합법투쟁의 다양한 경험들이 만들어졌습니다.
기습적 가두투쟁, 적통치기관에 대한 점거농성과 화염병투척 등 비합법폭력투쟁이 주종을 이루었고 시대를 풍미하였습니다. 학교와 공단에서 ≪00투쟁위원회≫와 같은 다양한 형태의 투쟁기구가 만들어지고, 미제축출 독재 타도의 구호가 제시된 것도 바로 이 시기였습니다. 돌출적인 투쟁, 선각자들의 선도투쟁은 민중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미제의 군사파쇼통치의 결과였습니다.
민중을 학살하고 집권한 군사파쇼 세력들은 관제 언론을 동원한 극단적 통제와 민중들에 대한 가혹한 탄압을 자행하였습니다. 극단적 파쇼통치하에서의 운동은 남다른 각오와 결단을 필요로 하였습니다. 민중들의 의식, 조직적 준비정도가 부족한 현실에서 운동권의 선도투쟁은 불가피한 과정이었습니다. 세상을 변혁하는 투쟁은 목적의식적 운동으로, 소수의 선각자로부터 시작하여 운동이 대중화되는 과정을 통해 발전하게 됩니다.
민중들은 투쟁대오가 발행한 조악한 선전물도 귀중히 대하고, 운동권의 주장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식민지 군사파쇼세력들의 극단적 언론통제와 민중들에 대한 가혹한 탄압은 운동대오에 대한 민중들의 열렬한 지지로 표출되었습니다. 그러나 ≪호헌철폐, 독재타도≫, ≪통장에서 반장, 대통령을 내 손으로≫라는 직선제 개헌을 위한 87년 6월 항쟁, 그리고 7∼9월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운동권 중심의 ≪선도투쟁론≫은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투쟁의 주인은 바로 ≪민중≫이며 민중들이 투쟁에 나설 때 세상은 변한다는 것이 87년 6월 항쟁, 그리고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실천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미제의 식민지 군사파쇼정권의 뿌리를 허물었던 87년 6월 항쟁, 7∼9월 노동자대투쟁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대중들이 투쟁의 주인으로 나섰기 때문이며 투쟁구호와 투쟁방법이 민중들의 지향과 준비정도를 올바로 반영하였기 때문입니다. 전체 민중들이 공감할 수 있었던 ≪호헌철폐 독재 타도≫를 중심구호로 내걸고,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집회, 가두행진 등을 통해 민중들은 거대한 항쟁의 물꼬를 열어 제쳤습니다. 노동자계급도 ≪어용노조의 민주화, 민주노조 건설≫ 투쟁을 통해 식민지 노예의 삶을 거부하고 자기운명의 주인임을 당당하게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부 운동대오는 대중들이 투쟁의 주체로 나섰던 변화된 현실을 보지 못하고, 관념적이며 혁명적 구호를 남발하면서 대중으로부터 외면되고 말았습니다. 87년 6월 항쟁, 그리고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민중을 주인≫으로 내세우는 ≪대중투쟁 노선≫이 정착된 것, 이것이 바로 35년 전 노동자대투쟁의 운동론적 의의입니다.
또한, 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은 관념적 조직노선 논쟁에 종지부를 찍게 만들었습니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전까지 현장에서는 활동가를 중심으로 조직노선에 대한 논쟁이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그것은 바로 ≪정치적 대중조직론≫, ≪대중정치조직론≫ ≪혁명적 대중조직론≫에 대한 논쟁이었습니다. 당시 조직노선에 대한 논쟁의 바탕에는 식민지 군사파쇼 통치하에서는 합법적 대중조직의 건설이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하고, 설사 만들더라도 탄압에 쉽게 무너질 거라는 판단 하에 적들의 탄압도 돌파하면서 대중들을 의식화, 조직화하기 위한 가장 위력한 조직형태에 대한 활동가들의 고민이 있었습니다. 대중들의 힘을 경험하지 못한 현실에서 활동가들의 주되는 고민은 선진적 노동자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은 소모적인 형태를 띄고 진행되었거나, 심지어 현장에서 발굴된 사람들을 자기 조직에 끌어오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종파적 폐해도 나타났습니다. 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은 이런 소모적인 논쟁과 종파주의에 종지부를 찍게 만들었습니다. 대중들의 위대한 힘, 대중들이 투쟁의 주체로 나선다면 못해낼 일이 없다는 것이 실천적으로 검증되면서 활동가 중심의 조직노선에 대한 논쟁은 의미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노동조합≫의 결성을 통해 ≪노동조합≫이 노동자계급을 묶어세우는 가장 위력한 조직형식이며, 민주노조 운동을 기본으로 한 노동자계급의 대중운동을 통해서만 식민지 지배통치를 끝장낼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87년 노동자대투쟁의 운동론적 의의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비합법 조직노선은 차원이 다른 것으로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87년 7∼9월 대투쟁을 통해 활동가중심의 ≪투쟁·조직노선≫이 폐기되고 ≪계급계층별 대중조직≫, ≪대중투쟁 노선≫이 대중적 실천을 통해 정립되었다는 것입니다. 반제민족해방혁명을 수행하고 있는 3대 주력군인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들이 민주노총, 전농, 한총련(한청협)이라는 대중조직을 통해 결속되어 투쟁하고 있는 것은 87년 대투쟁의 산물입니다.
3. 민주노총의 현 단계
혁신을 주장하는 것도 필요하고,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일이지만 민주노총의 주인, 주체인 조합원들이 임원에 대한 각종 선거에 관심도 갖지 않은 여기에 자주적 대중조직인 ≪민주노총≫의 문제가 집약되어 있습니다. 필자가 이 글에서 38년 전 노동자대투쟁을 되새기고 운동론적 의의에 대해 중언부언한 것은 민주노총혁신의 기본방도의 정립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조합원들은 민주노총의 주인이며 투쟁의 주체입니다. 조합원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노선과 정책은 관념의 산물 이상이 아닙니다.
혁신하겠다고 한다면 가장 걸리는 문제가 무엇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도가 무엇인지 명쾌하게 제시되어야 합니다. 또 그 실현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책과 노선을 바르게 제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결국 정책과 노선이라는 것도 조합원들을 통해서 관철되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사상, 노선과 정책이 있더라도 조합원 대중들이 접수하지 못하고 투쟁에 분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3-1. 조합원들을 주인, 주체로 세우는 것은 대중조직운동의 기본원리
지금 현장에서는 ≪민주노총≫을 포함한 상급단체에 대해 심각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간부는 간부대로, 조합원들은 조합원대로 제각기 불만을 표현하기도 하고, 아예 ≪민주노총≫이나 각급 연맹에 대해 냉소적으로 대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장의 간부, 조합원들은 ≪민주노총≫이나 각급 산별의 사업에 대해 ≪관료주의≫와 ≪내리 먹이기식 사업≫이라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은 여러 요인이 있습니다. 간부와 조합원들이 기업별 노동조합 활동에 익숙해져 있거나, 단위 사업장의 현안이나 경제적 요구를 앞세우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진짜 심각한 것은 ≪민주노총≫이나 각급 산별의 결정 및 지침이 조합원들에게 접수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현장에서는 ≪민주노총≫이나 각급 산별의 주요 결정을 취사선택하는 문제로 대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민주노총≫, 각급 산별의 위원장보다 단위사업장 위원장의 힘이 더 강하고, 단위사업장 위원장이나 집행부의 판단이 우선적으로 반영되는 비정상적인 상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날밤을 새가며 논쟁하고 결정한 중요 사안들이 현장에서 취사선택되는 현실은 민주노총 혁신의 지점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근본원인은 ≪민주노총≫과 각급 산별의 운영에서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노총≫이나 각종 ≪산별 ≫의 기본의결단위는 ≪대의원대회≫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민주노총≫이나 각급 ≪산별≫ 대의원들은 현장에서 직접 선출되는 경우보다는 단수로 할당되다 보니, 특정한 정파에 소속되거나 특정 정파의 영향력 하에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게 됩니다. 대의원 구성이 활동가들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에서 대의원들의 의견이 현장의 의견으로 둔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대의원대회만 열리면 현장의 의견을 명분으로 자파 세력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정파간(활동가) 논쟁이 끝 모르게 진행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대의제라는 것이 편리성도 있지만 위험성도 많이 있습니다. 실제 대중운동이 정착되고 대중들의 지위와 역할이 높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조합원 대중들의 총의를 수렴할 수 있는 조직운영은 핵심적인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수십 년 어용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노총 사업장에서도 ≪직선제≫가 정착되고 있는 것은 대중운동의 발전의 정도를 가늠케 합니다. 일개 단위사업장의 대의원대회에서 중요안건은 현장별 토론과 간담회를 통한 의견반영과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노총≫ 그리고 각급 ≪산별≫의 의사결정구조는 대중운동발전에 부합하지 못함으로써 조합원대중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조합원 대중들을 조직운영의 주인, 주체로 세우는 것, 이것이 민주노총을 혁신하기 위한 기본방도입니다.
3-2. 활동가 중심주의가 대중운동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민주노총이 1,000만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구심으로 자주, 민주, 통일 투쟁의 주력부대로서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활동가 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조합원들을 민주노총의 주인, 투쟁의 주체로 세워야 합니다. 활동가 중심주의는 민주노총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활동가 중심주의가 극복되지 못하다 보니 조합원 대중들이 조직의 운용과 투쟁에서 배제되고, 과도한 투쟁의 남발로 핵심들이 파괴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언제부터인지 현장의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중앙파, 현장파, 국민파, 심지어 정파별로 가르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습니다. 영문도 모르는 조합원들은 활동가들의 편가르기에 혼란스러워 하고 있고, 분열주의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집단주의를 생명으로 합니다. 노동운동은 노동자계급의 본성에 맞게 단결을 기본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계급적 관점을 명확히 세우면서도, ≪구동존이≫ 해야 합니다. ≪중앙파≫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장점이 무엇이고, 부족한 점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가려보아야 합니다. 좋은 점은 정당하게 대해주고 부족한 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실천과 토론을 통해 통일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품이 넓어야 할 조합원 중심의 대오도 동지들을 편협하게 대하는 경우가 극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모든 활동가들은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조직운영의 주인, 투쟁의 주체로 세우는데 민주노총 혁신의 비결이 있다는 자각을 가지고 더욱 헌신분투 해야 합니다. 활동가 중심주의의 가장 큰 폐해는 ≪분파주의≫와 ≪종파주의≫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동지들이 제기해서 더 이상 부언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분파주의와 종파주의의 해악성을 극복하는 것은 활동가들의 결단도 필요하지만, 조합원 대중들이 조직운영의 주체로 나설 때 근원적으로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4. 대중주체 관점의 정립으로 혁신하자
대중주체의 관점을 정립하는 문제는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활동가들이 조합원들을 조직의 주체, 투쟁의 주체로 내세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 알고 있고 한 두 번만 강조하지 않습니다. 대중주체의 관점 정립은 철학적 문제입니다. 그러나 철학이 정교하게 정립되지 않아도 운동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자각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대중주체의 관점을 현실에서 구현해 내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조합원 중심, 조합원을 주인으로 세우자는 구호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동안 각종 선거에 입후보한 후보자들의 공약을 살펴보면 ≪민주노총 혁신과 강화≫를 공통적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현장조직 강화, 안정적 지도집행력 구축≫, ≪분파주의 극복과 반미통일투쟁≫ 그리고 ≪비정규직 투쟁으로 계급적 단결 실현≫ 등 주요 공약과 혁신의 방도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 동지들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 혁신과 강화의 방안은 모두가 소중하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후보자들이 제시하고 있는 주요공약도 결국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자신의 문제로 받아 안을 때만 실현 가능한 것입니다. 결국 문제는, 조합원들을 어떻게 주인 주체로 세우느냐, 그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인지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1) 현장조직의 임무와 역할
현장조직은 노동조합과 구별되는 독자적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장조직은 노동조합에서는 담당할 수 없는 변혁사상에 대한 연구와 보급, 강고한 실천과 투쟁을 통해 노동운동가를 양성하는 단위로서, 변혁적 사상을 정립하고 민주노조운동을 발전시켜오는데서 많은 긍정적 기여를 하였습니다. 오늘날 노동운동 내에서 다양하게 포진되어 있는 많은 변혁적 활동가들은 다양한 현장조직 활동을 통해 배출되었습니다.
공개·비공개 영역에서 존재해 온 현장조직은 진보정당의 조직적·사상적 기초를 축성하는데서도 일정한 기여를 하였습니다. 선진적인 사상의 보급, 다양한 현장투쟁을 통해서 활동가들을 배출시켜 냄으로써 당 건설의 토대를 닦아냈고 현장조합원들을 변혁적 투쟁으로 안내하는 등 진보정당이 담당해야 할 역할을 과도적으로 대신해 왔습니다.
그러나 정세가 발전하고 진보적 대중정당이 노동자·민중의 정당으로 확고히 뿌리내리고 있지 못하는 현실은 현장조직의 임무와 역할에 대한 전면적 검토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현장조직이 진보적대중정당의 역할을 과도적으로 대신해온 것은 ≪진보적대중정당≫이 건설되지 못한 조건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당이 담당해야 할 선진적인 사상의 보급, 현장 활동가 육성이라는 과제는 현장조직에 의해 일정정도 충족되어 왔습니다.
미제와 앞잡이 놈들은 정보기구, 국가보안법을 조작하고 노동자·민중이 진보적 대중정당을 건설할 수 없도록 가혹하게 탄압했습니다. 공개·비공개적 영역에서 진보적 대중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투쟁 과정에 많은 변혁운동가들이 적들에 의해 끌려갔고 희생되었습니다. 진보적대중정당 건설을 위한 투쟁이 본격화된 것은 87년 6월 항쟁을 통해 노동자·민중이 투쟁의 주인으로 등장하면서였습니다. 노동조합, 학생회, 농민회와 같은 대중조직이 광범위하게 건설되고 민중의 의식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면서 합법적 진보정당 건설 논의가 본격화되었습니다.
초기의 당 건설 과정은 상층 명망가 중심으로, 현장의 기반 없이 추진되면서 선거가 끝나고 자체로 해산되거나 제도권 정당에 흡수되는 운명을 면치 못하였습니다. 시련과 곡절 끝에 마침내 역사적인민주노동당이 창당되었고 두 번의 선거를 통해 제 3당으로 도약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초기 당 건설의 실패는 당의 조직·사상적 기초를 축성하는 문제의 중요성을 각인시켜 주었습니다. 진보적 대중정당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당의 기초를 닦아낼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였고 그런 요구에 의해 다양한 현장조직이 건설되었습니다. 변혁적 사상에 대한 탐구는 공개·비공개적 영역에서 다양하게 시도되었습니다. 현장조직은 그러한 역할을 일정하게 수행하였고 많은 성과도 남겼습니다. 많은 활동가들이 선진적 사상을 접하고 올바른 정책과 노선으로 무장한 것은 다양한 현장조직을 통해서였고 현장조직을 통해 많은 활동가들이 배출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현장조직은 진보적대중정당의 조직·사상적 기초를 축성하고 민주노조운동을 발전시켜오는데서 많은 기여를 하였으나 <민중당>과 <진보당>이 건설되고 조합원 당원들이 늘어가는 현실을 반영하기에는 근본적 한계가 있습니다. 대중운동이 생존권적 요구를 뛰어넘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는 현실에서 단위사업장 집행권 장악을 중심으로 하는 현장조직이 ≪권력 장악≫을 본성으로 하는 당 조직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명백합니다.
2) 현장조직의 근본적 한계
현장조직 운동은 당을 창건하고 민주노조운동이 정착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많은 긍정적 역할을 하였으나 지금은 현장 조합원들의 불신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조합원대중들이 현장조직에 대해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은 현장조직이 계급적 대의보다는 위원장 선거를 중심으로 이합집산 하는 현장활동 때문입니다. 일상적인 현장투쟁을 통해 현장활동가들을 육성하고 단련시켜야할 현장조직이 단위사업장 위원장후보를 중심으로 이합집산 하고 있는 것은 조합원들의 불신을 자초하게 만들었습니다. 현대자동차에 9개의 현장 제 조직이 위원장 선거를 중심으로 이합집산 하고 있는 현실에서 현장조직을 개인·공명 출세주의자들의 선거용 조직으로 인식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민주노조가 정착되고 조합원들의 의식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현실에서 위원장 후보를 중심으로 분열과 대립을 거듭하고 있는 현장조직이 조합원들로부터 냉대를 받고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입니다. 실정이 이렇다보니 현장조직이 개인·공명 출세주의자들의 온상으로 전락한 게 아닌가 하는 극단적 평가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80년, 90년 초 현장조직(노민추)에 보내주었던 조합원들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를 회상한다면 현재 현장조직에 대한 조합원들의 냉소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노동계급의 대의를 외면한 종파·분파주의적 활동도 현장조직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과거 노민추 활동가들은 어용집행부를 끌어내리고 민주집행부를 세우겠다는 공동의 요구에 기초해 단일한 대오로 결속하여 투쟁하였습니다. 어용집행부를 교체하고 민주노조를 건설하고자 하는 요구는 조합원들의 절절한 염원이었습니다. 조합원들의 절절한 염원을 반영하였던 노민추 활동이 조합원들의 절대적 지지와 신뢰를 받게 된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현장조직은 노동계급의 절절한 염원을 반영하고 활동하는 대신 단위사업장 집행권 장악에 초점을 맞추고 이합집산 하고 있습니다. 현장조직이 분열의 온상으로, 노동계급의 단결을 실현하는데서 최대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것은 현장 조합원들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노동운동은 ≪계급적 단결≫을 생명으로 하고 있으며 계급적 단결을 실현하고 한 차원 높은 당적 운동으로의 발전하는 것은 노동계급의 절절한 염원입니다. 단결하여 투쟁하지 않고 분열을 거듭하고 있는 현장조직에 조합원들이 경멸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현장조직이 조합원들로부터 신뢰를 상실하고 냉대를 받고 있는 것은 정세 발전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한 현장조직 자체의 한계 때문이기도 합니다. 대중운동은 경제적 생존권적 요구를 뛰어넘어 정권을 전취하기 위한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대중운동이 당적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는 현실에서 단위사업장 집행권 장악을 중심으로 하는 현장조직은 대중운동 발전의 요구를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명백합니다. 조합원대중들의 요구가 단위사업장을 뛰어넘어 정권전취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는데도 단위사업장 집행권 장악을 위해 이합집산 하는 현장조직 활동이 조합원들의 신뢰를 획득할 수 없습니다. 변화발전 하는 현실, 대중운동 발전에 조응하지 못한 현장조직이 자체의 생명력을 급격하게 상실하게되고 조합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5. 글을 마치며
저마다 민주노총을 강화하고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듯이 실제 어떻게 민주노총을 혁신하고 강화할 것인지 현장의 조합원들은 지켜보고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은, 민주노총 혁신과 강화에 복무하고 하는 취지에서 쓰게 되었습니다. 민주노총을 혁신하는데서 많은 과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일에도 순서가 있고, 중심적인 것과 부차적인 것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혁신의 중심고리를 정확히 설정하는 것입니다. 중심고리를 잘 설정하지 못한다면 제기된 과업을 잘 실천할 수 없습니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간부들은 민주노총을 혁신하는 것이 시대와 변혁의 요구임을 자각하고, 혁신의 중심고리를 잘 설정하고 그곳에 모든 역량을 쏟아 부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정파의 이해가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노동운동을 담당하고 있는 조합원 중심의 활동가들은 민주노총이 이 땅 노동자계급의 숙원인 자주,민주, 통일의 영도계급으로 사명을 다 할 수 있도록 더욱더 헌신복무해야 합니다. 대중주체의 관점을 관철하기 위해 오늘도 자신의 초소에서 헌신복무하고 있는 동지들께 존경의 인사를 전하며 계속혁신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합니다. 노동자·민중의 투쟁 역사는 선각자들의 자기헌신과 결단으로 도약과 혁신을 거듭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변혁을 지향하는 현장 활동가들은 ≪민중을 위해 복무함≫이라는 구호를 높이 들고 시대와 정세 요구인 자주, 민주, 통일을 중심으로 단결해야 합니다.≪끝≫
서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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