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넋을 화폭에 담은 화가 리쾌대
우리 공화국의 품에서 삶을 빛내인 미술가들중에는 해방전 사실주의화가로서 많은 작품들을 내놓은 리쾌대도 있다.
남조선에서 8. 15해방을 맞은 그는 피어린 항일대전으로 나라를 찾아주시고 민족재생의 봄을 안아오신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흠모심으로 가슴끓이였다.
서울에 조선미술건설본부가 설립되자 회원으로 된 그는 해방기념미술전람회를 성과적으로 진행하는데 온갖 성의를 바치였다.
리쾌대는 남조선에서 사회활동을 벌리면서 유화 《동지》(1946년), 《귀향》(1946년), 《자유》(1946년), 《정물》(1949년) 등 많은 작품들을 창작발표하였다.
1950년대 중반기부터 그가 창작한 유화 《3. 1인민봉기》,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 《송아지》, 《박연초상》, 《농악무》 등은 이전 시기와는 대비할수 없을 정도로 묘사의 객관성과 재치있는 기교가 주제내용을 부각시키는데로 통일되여있다.
유화 《3. 1인민봉기》는 조선독립의 함성이 메아리치던 1919년 3. 1인민봉기를 그대로 전형화하였다. 제6차 모스크바세계청년학생축전에 출품된 이 작품은 각국 청년학생들의 커다란 관심과 감흥을 불러일으킨 명작이다.
유화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은 식민지파쑈통치가 실시되는 남조선에서 살기 어려워 고향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는 불우한 농촌일가의 모습을 생동하게 보여주고있다.
유화 《송아지》도 구도가 독특하다. 송아지들을 앞에 세우고있는 처녀관리공의 정성어린 모습이 잘 형상되여있다.
이와 같이 리쾌대의 창작활동을 통하여 더욱 똑똑히 인식하게 되는것은 개별적인 창작가의 미학관형성과 창작방법은 해당 사회제도의 직접적영향을 받는다는것이다.
이제는 21세기에 들어서 어느덧 10여년이 지나갔다. 민족의 운명과 함께 곡절많은 삶의 길을 걸어온 오랜 화가들도 거의나 떠나가고 없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많은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재능있는 화가인 리쾌대의 작품은 오늘도 겨레의 마음속에 빛을 뿌리고있다.
이 글은 《조선의 오늘》에 실린 재북인사를 연재하는 기사에서 남녘 출신의 예술가 기록을 재수록합니다.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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