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제국주의의 조선침략사(19)
머리글 제1장 미일제국주의의 조선침략개시와 일제의 조선강점(1866~1905. 11) 제1절 미일제국주의의 조선침략개시와 반식민지적예속화책동 제2절 일제의 조선강점과 그를 지원한 미제의 죄행 제2장 조선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통치와 미제의 침략책동(1905. 11~1945. 8) 제1절 조선에 대한 일제의 간악한 식민지통치 제2절 일제강점시기 조선에 대한 미제의 침략책동 제3장 미제의 남조선강점과 조선전쟁도발, #공화국을 교살하기 위한 미제의 책동과 #일본군국주의의 조선전쟁가담책동(1945. 8~1953. 7) 제1절 미제의 남조선강점과 조선전쟁도발 제2절 조선전쟁시기 우리 공화국을 교살하기 위한 미제의 책동 제3절 일본군국주의의 재생재무장책동과 조선전쟁가담책동 1. 미제의 일본군국주의재생재무장책동 2. 미제의 조선침략전쟁에 적극 가담하기 위한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책동 제4장 전후 미제의 새 전쟁도발책동과 일본군국주의의 재침책동(1953. 7~1969. 12) 제1절 전후 미제의 새 전쟁도발책동 1. 남조선에서 식민지통치를 강화하기 위한 미제의 책동(19회)
1. 남조선에서 식민지통치를 강화하기 위한 미제의 책동
정전직후 남조선에 대한 식민지통치를 강화하기 위한 미제의 책동
“미제국주의자들은 총칼에 의하여 남조선에 자기들의 군사적침략정책과 식민지예속화정책을 충실히 집행하는 괴뢰정권인 가장 포악한 식민지파쑈독재<정권>을 세우고 그것을 통하여 그리고 이른바 <원조>를 미끼로 하여 남조선의 정치, 경제, 문화, 군사의 모든 부문을 자기 손에 틀어쥐고 남조선을 미국의 군사침략기지로, 군사적부속물로 만들었습니다”라고 김일성 동지는 교시하였다.
미제는 전후에도 전쟁의 방법으로 전 조선을 식민지화할데 대한 침략정책을 계속 견지하면서 남조선에 대한 식민지통치를 강화하는데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그것은 전쟁시기 남조선에서 미제의 식민지통치가 심각한 위기에 처하였으며 특히는 남조선에서 식민지통치를 유지강화하지 않고서는 조선에서의 새 전쟁도발정책을 강행적으로 추진시킬수 없었기때문이였다.
이로부터 미제는 정전직후 새로운 침략전쟁을 준비하면서 남조선에서의 식민지통치를 강화하는데 선차적인 주의를 돌렸다.
- 미제는 식민지통치기구를 파쑈화하고 인민들에 대한 파쑈적폭압을 강화하였다.
반미반전시위투쟁에 떨쳐나선 남조선인민들을 탄압하는 미제침략군과 남조선괴뢰경찰들
○ 미제는 괴뢰통치기구를 더욱 파쑈화하였다.
• 미제는 괴뢰국회의원선거와 헌법개정을 통하여 리승만역도의 1인독재체제를 조작하였다.
1954년 5월에 미제는 괴뢰국회의원선거놀음을 벌리고 각종 테로와 사기협잡의 방법으로 리승만역도의 심복들로 괴뢰국회의석의 3분의 2를 채웠다. 그리고 그해 11월에는 괴뢰역도로 하여금 《4사5입》협잡의 방법으로 《헌법개정안》을 통과시키도록 함으로써 리승만역도가 《종신대통령》으로, 무제한한 독재자로 되게 하였다.
• 괴뢰경찰기구를 더욱 확대하고 각종 파쑈악법들을 조작하였다.
○ 미제는 남조선인민들에 대한 파쑈적폭압을 더욱 강화하였다.
1955~1959년까지 미제는 남조선에서 무려 81만 1 700여명의 무고한 인민들을 검거투옥하였는데 1959년 한해동안에만도 1955년의 2배이상인 24만 7 135명을 검거투옥하였다. 특히 진보당을 탄압해산시킨것을 비롯하여 진보적정치세력들에 대한 탄압의 도수를 전례없이 높였다. 남조선에서는 1955년 12월에 합법적정당으로서 진보당이 창건되여 반제, 반파쑈, 평화통일을 내용으로 하는 투쟁강령을 내놓고 적극 투쟁하였다. 이에 질겁한 미제는 1958년 1월에 진보당을 비법화하고 수많은 당원들을 체포하였으며 그 당수인 조봉암선생을 야수적으로 학살하였다. 그리고 1958~1959년기간에 《경향신문》을 포함한 150여종의 정기간행물들을 강제페간시켰다.
- 미제는 남조선에 대한 경제적예속을 강화하기 위하여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 미제는 남조선경제를 철저히 예속시키고 식민지략탈을 강화하기 위한 각종 《법》들을 조작하였다.
1954년 11월 미제는 남조선괴뢰들과 남조선-미국《회담의사록》을 조작하였다. 이 침략적인 문건에서 미제는 《합동경제위원회》의 미국측 대표기관인 《미경제조종관실》을 통해 남조선경제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도록 하였으며 《원조》의 침략적효과성을 높여 괴뢰도당이 군사비지출도 높이도록 하여 미독점자본의 자유로운 침투의 길을 열어놓았다.
뿐아니라 그해 11월에 리승만역도로 하여금 《외자관리법》, 《무역법》, 《외자도입촉진법》을, 1960년 2월에는 《투자보장협정》까지 조작하게 하여 미국독점자본의 침투와 활동에 유리한 조건을 마련하였다. 《투자보장협정》은 미국독점자본이 남조선에 투자하는 경우 온갖 특혜를 보장하며 《통화의 불안정성에 의한 위험》이나 기타 재해로 인한 손실에 대해서는 남조선괴뢰정부가 보상하도록 규정한 날강도적인 《법》이였다.
○ 미제는 남조선에 대한 《경제원조》를 더욱 강화함으로써 남조선경제를 철저히 예속시켰다.
미제의 《경제원조》에서 주되는 형태는 《미경제협조처》(ICA)의 《원조》였다. 전후 1954년부터 1960년까지의 기간에 남조선에 투입된 미제의 《원조》는 차관을 포함하여 약 18억US$였다. 미제는 남조선에 잉여상품을 독점가격으로 팔아넘기면서 남조선경제를 철저히 예속시켜나갔다. 1958년까지 《ICA》가 끌어들인 물자 11억 5 000만US$분가운데서 공작기계는 356만US$로서 물자총량의 0.3%에 지나지 않았으며 대부분은 잉여농산물을 비롯한 소비재와 군사용시설재였다. 남조선경제명맥에 대한 미제의 전면적인 지배와 예속은 《원조》물자의 판매대금으로 이루어지는 《대충자금》을 통하여 실현되였다. 미제는 《대충자금》을 남조선괴뢰들의 기본재정계획에 걷어넣고 괴뢰들의 재정을 좌우지하거나 《대충자금》을 여러 은행들에 대부하면서 남조선의 금융계통을 예속시켰다.
- 미제는 남조선에 대한 사상문화적예속을 강화하기 위하여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 미제는 남조선에 대한 사상문화적침략에서 《반공》사상공세를 첫자리에 놓았으며 썩어빠진 미국식생활양식을 대대적으로 퍼뜨리기 위해서도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 우리 인민의 우수한 민족문화유산을 수많이 파괴략탈하였다.
1955년 4월에 미제는 《문화재해외전시안》을 조작하고 우리 인민의 국보적문화재들을 공공연하게 미국으로 도적질해갔으며 1957년 11월 현재 국보적가치가 있는 유물들을 200여점이나 파괴하였다.
이와 같이 미제의 간악한 식민지예속화책동에 의하여 전후 남조선은 정치, 경제, 군사,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미제의 식민지로 더욱 철저히 전락되게 되였다.
군사파쑈독재의 조작과 파쑈적폭압을 강화하기 위한 미제의 책동
- 미제는 4월인민봉기이후 남조선에서 식민지통치체제가 막다른 골목에 빠지게 되자 군사정변을 일으켜 군사파쑈독재체제를 수립하였다.
○ 이미 1958년~1959년경부터 미제는 남조선에서 군사파쑈독재를 세우려고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1958년 말 당시 미국회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이라는자가 《콘른보고》라는데서 《리승만의 정당정치가 실패한 경우에 군인정치에 의한 교체를 생각해야 한다.》라고 공공연히 떠벌인데서 잘 알수 있다.
○ 남조선에서의 군사정변음모는 1960년대 초부터 미중앙정보국에 의하여 실천에 옮겨지게 되였다.
1960년 4월인민봉기후 《민주당》의 장면정권을 조작함으로써 정치적위기를 수습해보려고 시도하였으나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이 더욱 강화되자 미제는 1960년 12월부터 군사정변음모를 준비하다가 1961년 5월 16일 마침내 저들의 주구들을 내세워 군사정변을 일으키도록 부추기였다. 그후 미제는 《행정》, 《사법》, 《립법》의 모든 권한을 틀어쥔 《국가재건최고회의》를 조작하도록 하였으며 모든 통치기관들의 요직을 현역악질군사깡패들로 갈아치우게 하였다. 그리하여 남조선에는 군사적폭력에 의거한 파쑈적폭압통치체제가 수립되게 되였다.
○ 그후 미제는 1963년 10월 남조선에서 사기협잡과 폭력의 방법으로 《대통령선거》를 실시하고 12월에는 《민정이양》놀음을 벌려 《제3공화국》을 조작하게 하였다.
- 미제는 군사파쑈독재를 수립한 후 전례없이 악랄하고 야수적인 파쑈적폭압을 감행하였다.
○ 미제는 가장 야만적인 군사파쑈폭압체제를 수립하였다.
미제와 괴뢰역도는 동서고금에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수많은 파쑈악법들을 련이어 조작하였다. 1961년 7월에는 《반공법》을 조작하고 1962년에는 악명높은 《국가보안법》을 개악한것을 비롯하여 단 몇해사이에 무려 3천여건의 파쑈악법들을 조작하였다.
미제는 1961년 6월에 무제한한 특권을 가진 《중앙정보부》를 새로 조작하고 각종 《정보망》을 더욱 늘이는 등 폭압기구도 대대적으로 확장강화하였다.
○ 미제와 군사파쑈도당은 이러한 군사파쑈폭압체제에 의거하여 남조선인민들에 대한 살벌한 폭압선풍을 일으켰다.
미제와 군사파쑈도당은 일체 정치활동을 금지시켰으며 남조선전역을 항시적인 계엄상태에 두었다. 정변직후에만도 미제와 군사파쑈도당은 260여개의 정당, 사회단체들을 강제로 해산시켰으며 한달동안에 무려 10만명이상의 애국적인사들과 무고한 인민들을 체포, 투옥하고 고문, 학살하였다. 특히 언론계에 대한 야만적폭압공세를 감행하여 군사정변직후 1 200여개의 언론, 출판기관들을 강제로 페쇄하였다.
미제와 군사파쑈도당은 인민들의 혁명적진출이 급격히 강화되자 남조선혁명가들과 애국적인민들의 혁명투쟁을 탄압하는데 창끝을 돌렸다. 미제와 군사파쑈도당은 1961년에 사회대중당을 탄압해산시켰고 그후 《통일혁명당사건》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건》들을 련이어 날조하여 혁명가들과 애국적인민들을 탄압학살하였다.
참으로 미제에 의하여 남조선에 수립된 군사파쑈독재는 가장 악랄한 파쑈통치의 전형이였으며 미제는 력사상 전례없는 파쑈폭압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온 남조선을 파쑈악당들의 란무장으로, 인간생지옥으로 전변시킨 극악한 범죄자이다.
-《우리민족강당》 교재 중에서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미일제국주의의 조선침략사(19), 남조선에서 식민지통치를 강화하기 위한 미제의 책동, 우리민족강당 관련기사목록
|
통일광장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