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혁명선렬들에게 바치는 맹세
오백룡
항일무장투쟁시기의 갖가지 추억들은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 나의 눈앞에 삼삼하다. 그가운데는 리명수전투도 잊혀지지 않는 일로 자주 떠오른다.
그러나 이것은 리명수전투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바와 같이 일제의 1936~1937년 《동기토벌》을 성과적으로 물리침으로써 놈들의 어리석은 기도에 종지부를 찍은 전투였으며 또한 이 전투를 통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탁월한 전략전술을 시위하였기때문만은 아니다.
리명수전투가 있은 1937년 2월 26일, 바로 이날에 우리는 조국진군을 앞두고 이미 우리곁을 떠난 혁명선렬들의 추도모임을 리명수에서 진행하려고 미리부터 준비를 했었던것이다.
혁명선렬들이 흘린 피를 헛되이 말자. 부모형제들이 쓰러지며 웨친 원한의 복수를 우리는 갚자.
일제에 의해 갈기갈기 찢기고 짓밟힌 고향마을에서, 우리가 거쳐온 허다한 곳곳에서 준엄한 목소리로 울리는 이 심장의 호소를 우리는 어느때나, 그 어디에서나 한시도 잊은적이 없었다.
얼마나 훌륭한 우리의 동지들이 야수같은 일제와의 싸움에서 보람찬 청춘과 삶의 마지막순간을 아낌없이 바치고 떠나갔던가.
그리하여 우리는 그들의 혁명정신과 억센 지조를 이어받으며 원쑤에 대해 사무친 원한과 증오에 떨면서 일제를 타도하고 조국을 광복시키고야 말리라는 불타는 결의를 다지였었다.
가렬한 전투가 잇닿는 가장 준엄한 시기에도 우리는 잊지 않고 깊은 공경과 애착을 갖고 추도식을 거행했었다.
우리는 이미 국내와 동만일대는 물론 멀리 남만과 북만에 이르기까지 조국광복회 조직망을 확대하여 그 산하에 광범한 혁명군중을 묶어세우는 보람찬 사업을 진행했었다. 그리고 우리는 국내 가까운 지대에 백두산근거지를 설치하고 그에 의거하여 적들을 통쾌하게 쳐부시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령도로 원쑤일제를 쳐부실 때마다 우리는 그이의 전사된 한없는 영예와 승리의 신심을 가슴깊이 느끼군하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의 국경지대에로의 진출, 이 사실앞에 당황한 일제는 당시 이른바 《도문회담》에 근거한 《동기토벌》을 발악적으로 들이댐으로써 가소롭게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조선혁명의 사령부를 《압살》해보려고 꾀하였었다. 놈들은 곰의골전투, 문암동전투, 도천리전투, 홍두산전투 등 전투마다에서 격멸소탕당하면서도 거마리처럼 그냥 달려들고있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부모형제들이 도탄속에서 눈물겨운 나날을 보내고있는 조국의 운명앞에 새로운 희망과 신심을 부어주며 혁명의 불길로 타오르게 하리라는 의욕으로 충만된 우리 유격대원들의 억센 발걸음을 원쑤들은 결코 막아낼수 없었다.
조국으로! 조국으로!
그리하여 우리가 장백현에 이르러 곰의골에서 만년백설을 인 백두산련봉의 슬기로운 모습을 바라보며 조국진군이라는 이 한가지 생각만으로도 가슴뿌듯한 1937년 설명절을 즐겁게 맞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을 둘러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지금 조국진군을 앞에 두고 인민들의 뜨거운 성원과 지지밑에 즐겁게 설을 쇠고있소. 이럴 때일수록 우리와 같이 한 자리에서 설을 즐길수 없는 동지들의 생각이 간절하오.》
그이께서는 말씀을 끊으시고 잠시 생각을 더듬으시다가 《리명수에 가거든 그들을 위해 추도를 하고 조국진군에서 그들의 념원을 풀어드릴 서약을 다집시다.》라고 조용히 말씀을 맺으시였다.
리명수에서 숙영하는 날 밤이였다. 나는 동무들과 함께 우등불가에 앉아서 지나간 세월을 더듬어보았다.
구름처럼 떠오르는 지난날의 추억들중에서도 조국을 찾자는 한가지 큰 마음을 안고 생사고락을 같이하면서 용감히 싸우다가 희생된 혁명선렬들의 친근한 모습이 눈앞에 안겨와 마음을 진정할수 없었다. 그들은 참으로 혁명과 조국을 위해서는 물불을 헤아리지 않고 싸운 투사들이였다.
혁명이 무기를 목마르게 요구하였을 때 그들은 《목숨과 무기를 바꾸자!》는 결의로써 적의 무장을 탈취하여왔고 유격근거지인민들이 식량을 목마르게 기다릴 때 그들은 만난을 무릅쓰고 원쑤들로부터 식량을 로획해오고야 말았던것이다.
그들은 또한 혁명조직의 비밀을 지키기 위하여 자기의 혀를 끊고 자결하면서까지도 혁명가의 고결한 지조를 고수하였다.
생명은 귀중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귀중한것은 무엇인가를 선렬들은 우리의 심장속에 안겨주었고 가르쳐주었다.
그것은 혁명과 조국을 위함이라면 청춘도 생명도 아낌없이 바쳐싸우는 숭고한 희생정신이였다.
소왕청유격구방위전투에서 발휘된 유격대원들과 인민들의 그처럼 높고 무진장한 대중적영웅주의는 우리 투쟁의 앞길을 밝혀주는 슬기로운 등대였다.
참으로 나는 소왕청유격구방위전투때의 일들을 한시라도 잊은적이 없었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믿고 풀죽을 끓여먹으면서도 그와 같은 거대한 힘을 발휘할수 있었으며 이리떼마냥 달려드는 강적 일제를 무찌를수 있었던가?
싸워야 하며 싸우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 이기지 못한다면 우리 조국의 운명이 어찌될것이냐. 이겨야 한다. 이길수 있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힘이 있다. 이러한 생각, 이러한 신념이였다.
과연 우리에게는 그와 같은 힘과 신념이 있었다. 인민의 자유와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오직 하나로 뭉쳐진 힘이 있었고 그 힘을 승리에로 이끄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령도가 우리에게 있었다.
그러기에 우리의 혁명선렬들은 원쑤와의 판가리싸움에서 적을 무찌르고 장렬하게 희생되는 그러한 순간에도 《김일성장군 만세!》, 《조선독립 만세!》, 《혁명승리만세!》를 소리높이 불렀으며 만면에 웃음을 띄우면서 장렬한 최후를 마칠수 있었던것이다.
사람의 삶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에는 관계없이 사람마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있어 숭고한 사상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삶이 있다.
우리의 혁명선렬들이 보여준 그러한 삶, 그 높은 정신세계에 감화되면서 나는 길길이 타오르는 우등불의 화광을 오래오래 바라보고있었다.
이날밤 나는 우등불가에 앉아서 나의 아버지와 두 형에 대하여도 추억하였다.
… 우리 아버지는 한때 독립군이였다. 아버지는 처음에 나와 나의 두 형님이 혁명사업에 관여하는것을 그닥 찬성하지 않았다. 때로는 우리 가족들을 모아놓고는 이렇게 말하군 하였다.
《너희들이 혁명을 하기는 아직 너무도 어리다. 우리도 젊었을 때에는 독립운동을 해봤는데 결국 실패하고말았단 말이다. 총이 없었던거다. 왜놈들과 싸우려면 먼저 무기가 있어야 하는데 보아하니 너희들도 맨주먹이 아니냐. 그래가지고 이길것 같으냐? 공연히 철딱서니없이 덤비지 말아라.》
우리 형제들은 서로 아버지에게 조선인민이 한결같이 단결해서 일제와 싸우면 이길수 있다고 설복하여도 그는 애당초 귀담아 들으려고조차 하지 않았었다. 이런 나의 아버지였다.
그러나 그후 아버지는 혁명조직의 영향을 받아 세상의 형편과 조국광복에 대한 방도를 점차 깨닫기 시작하여 반일회에 들게 되였다.
내가 유격대에 입대하게 된 날이였다.
아버지는 형수더러 나의 군복을 지어주라고 이르고는 나에게 소고삐를 넘겨주면서 후치질하러 가자고 하였다.
나는 소를 끌고 아버지를 따라 뒤산에 올랐다. 강직한 아버지는 그날따라 류다르게 나를 대해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평소보다 심중한 낯으로 나를 물끄러미 주시하군 하는것을 감촉할수 있었다.
그때 나의 나이는 17살이였다. 유격대를 따라 산에 오른다는 그 한가지 생각만이 머리에 가득 차서 아버지가 아들을 떠나보내면서 느낄 그런 심정은 헤아려볼 겨를조차 없었다. 나는 우리 밭머리까지 와서 소를 세우고 웃통을 훌렁 벗어젖혔다. 아버지도 보습을 내려놓고 웃저고리를 벗어 밭머리에 놓았다. 그리고나서 나를 보면서 말했다.
《네가 사내구실을 하는것이 오늘부터구나.》
가라앉고 탁한 그 음성에는 여러가지 감회가 서리고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눈을 쳐다보았다. 주위는 고요했다.
《제나라를 찾으려구 유격대에 가니만큼 대장부답게 싸워라. 나도 여기서 너희들을 도울테다. 아예 집걱정은 말구 꼭 뜻을 이루어야 한다.》
나는 무엇인지 북받치는 격정을 가까스로 참으면서 그저 《예.》하고 낮게 대답하였을뿐이였다.
그런데 이날 유격대와 련계가 깊은 우리 마을을 노리고있던 《토벌대》놈들이 밀려와서 온 마을에 불을 지르고 사람들을 무참히 학살하는 참상이 벌어졌다. 밭에서 후치질하던 나의 아버지도 이날 저주로운 적탄에 맞아 숨을 거두었다.
아버지는 숨이 지는 마지막순간에 자기를 부축하는 나에게 눈을 부릅뜨고 말하였다.
《미쳤느냐, 이놈. 내 원쑤를 갚으려거든 당장 유격대로 가거라. 어서.》
나는 줄줄 흐르는 눈물을 주먹손으로 닦으며 산으로 올랐다.
이미 집형체는 없고 뿌연 연기가 오르는 마을과 밭가운데 쓰러진 아버지의 시신을 보며 나는 땅을 치고 울었다.
이튿날 유격대에서 싸우던 맏형님과 지방 지부책임을 지고 활동하던 둘째 형님이 왔다.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의 묘앞에서 결의를 다지고 또 다졌다.
《이 원쑤를 우리는 갚자. 일제놈들을 송두리채 쳐없애고 조국을 광복시키자. 우리는 오늘부터 모두 김일성장군님부대에 들어가 싸우자. 이 길에서 우리는 한걸음도 물러서지 말자.》
우리는 이 길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나의 두 형님은 이 길을 따라 충실히 걸어왔으며 그 길에서 전사하였다.…
나는 깊은 생각에 잠기여있었다.
《백룡동무는 무슨 생각을 하고있소.》
어느새 뒤에 와계셨던지 위대한 수령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물으시는것이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생각하던 모든것을 죄다 그이께 말씀드렸다. 그이께서는 나의 이야기를 다 들으시고 조용히 미소를 띠우셨다. 그리고 우리를 우등불가에 모두 앉으라고 하시고 왕청유격대조직자의 한사람이며 훌륭한 투사였던 리광동지의 최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였다.
이윽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시였다.
우리가 혁명선렬들을 잊지 않고 회상한다는것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들을 단순하게 기억에서 되살리는데만 그치는것이 아니라 그들에게서 애국주의사상과 혁명적지조를 배우기때문입니다. 혁명선렬들은 혁명에서 우리의 스승이며 거울입니다. 우리는 항상 그들을 따르고 배우며 존경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어찌하여 죽음앞에서도 그처럼 용감하고 떳떳했는가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들은 우리를 믿었고 또 우리에 의해 완수될 조선혁명의 승리를 진심으로 믿었던것이다.
우리가 지금 조국진군의 과업을 앞에 두고 추도식을 가지자는것도 바로 우리가 혁명선렬들에게서 조국과 혁명에 대한 충실성과 그 고결한 지조를 물려받으며 조선혁명을 반드시 완수하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시금 다지자는데 있습니다.
그이의 말씀을 듣는 나의 심장의 불길은 마치 활활 타오르는 우등불의 불길과도 같았다.
나는 그이앞에서 혁명선렬들의 높은 뜻을 이루기 위해 앞으로 몇천배의 힘으로 일제놈들을 소탕하겠다는 맹세를 다졌다. 그 맹세는 비단 나만이 아닌 우리모두의 심정이 아닐수 없었다.
얼마후 이도강과 8도구방향으로 나갔던 정찰대원들이 적정을 탐지해가지고 돌아왔다.
적들이 리명수쪽 두 방향으로부터 몰려온다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잠시후에 우리에게로 다시 오셨다. 그이의 얼굴에는 긴장된 빛이 어리여있었다.
《동무들, 우리는 래일 이곳에서 거행할 추도식을 전투로써 맞이합시다.》
그이께서는 우리를 쭉 둘러보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가 가장 훌륭한 추도식을 한다는것은 결국 적을 더 많이 소멸하는데 있는것이요.》
그이의 말씀에 우리는 일제히 활기를 띠였으며 적에 대한 증오심으로하여 주먹을 부르쥐였다.
나는 이날밤 잠자지 않고 경기를 닦고 또 닦았다.
닥쳐오는 전투의 그 시간이 무척 기다려졌다.
내가 유격대에 들어와서 이미 5년이 지나갔다. 그동안 나는 수많은 전투에 참가하여 적을 잡고 족쳤다. 그러나 이날밤은 내가 한 일이 아직도 너무 적고 보잘것 없는것만 같이 생각되였다.
(나는 이제부터 새로운 기세로 그리고 혁명선렬들의 몫까지 합쳐 싸우리라.)
눈이 부슬부슬 내리는 야밤에 우등불곁에 앉아서 나는 몇번이고 이런 결심을 다졌다.
이튿날 새벽 우리는 출동하여 한 5리가량 내려가서 밋밋하고 분비나무가 빽빽한 언덕에 자리잡았다. 눈이 깊었다. 앞은 흰눈에 덮인 개활지대였는데 그 맞은편 언덕에도 일부 부대가 전호를 파고 매복하고있었다. 우리는 적부대들이 이곳에 인차 도착하지 못하리라는것을 타산하고 우리를 포위할 목적으로 달려드는 적들을 도리여 우리가 포위소멸하자는 계획이였다.
매복위치가 정해지고 지정된 장소에서 눈을 파올려 다져서 경기좌지를 만드는 동안에도 나는 마치 신입대원이 첫전투에 참가하는것 같은 그런 심정으로 적을 기다렸다.
땅거미가 질무렵 드디여 8도구쪽에서 적정이 나타났다.
《온다!》하는 순간 나는 저도모르게 몸을 떨고 손마디를 주물렀다.
좀 있으니 정말 적들의 부대가 4렬종대를 짓고 눈길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오고있었다. 대렬앞에는 일본지도관놈이 있었다.
나는 방아쇠에 지그시 손마디를 걸고 놈들을 겨냥 했다.
(한놈도 놓치지 말자.) 이렇게 속다짐한 나는 놈들의 척후병들을 그냥 지나보내는것까지도 아수함을 금할수 없었다.
신호총이 울렸다.
대기를 찢는 총성과 함께 선두에 섰던 일본지도관놈이 두팔을 허공에다 뻗치며 쓰러지는데 뒤따라 천둥소리같이 울리는 일제사격이 시작되였다.
나의 경기도 사납게 불을 토했다. 통쾌하게 몸부림치며 우박처럼 탄알을 내뿜었다. 나는 계속 이를 악물고 방아쇠를 당겼다.
적들은 이 불의의 매복전앞에 넋을 잃고 엎어지고 쓰러지고 하였다.
돌격구령이 내렸다.
나는 자리를 차고 일떠섰다. 만세소리가 산야를 뒤덮었다.
그 순간 내눈앞에는 《조선혁명 만세!》를 부르며 전사한 혁명선렬들의 장렬한 모습들이 떠올랐고 적탄에 맞아 쓰러지면서 말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뚜렷이 안겨오는것이였다.
우리는 이날 해질무렵에 이도강쪽에서 오는 또 한개중대의 적을 물리침으로써 도합 2개중대의 적을 완전히 소탕하였다. 그리고 놈들의 많은 보총과 2정의 경기를 로획하였다.
일제는 이 전투에서도 완전히 패배를 당하자 이른바 이해의 《동기토벌》을 단념하지 않을수 없었다.
승리는 컸다.
그날밤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투를 총화하시고 로획한 무기를 우리들에게 몸소 나누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나한테도 수고를 했다고 치하해주시면서 윤이 반지르르 흐르는 경기를 안겨주시였다. 나는 기뻐서 어쩔줄을 몰랐다. 얼마나 부러웠던 경기였던가. 그 경기를 나는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직접 받은것이다. 이 영광은 그 무엇에도 비길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전사가 된것이 한없이 자랑스러웠다.
이날 우리가 매복전에서 적들에게 안긴 섬멸적인 총성은 혁명선렬들을 위한 조포이기도 하였다.
우리는 이렇게 적을 완전히 잡고 무기를 획득하여 혁명선렬들의 념원을 풀어주었던것이다.
나는 마음먹었다.
(이제 조국진군의 길에서 나는 이 경기로 더욱 통쾌한 전투를 진행함으로써 혁명선렬들의 념원을 이루어주리라.)
나는 리명수전투때 내가 품었던 감정을 보천보전투시에 일제경찰관주재소 돌담우에 경기를 걸고 사격하던 순간에도 느꼈다. 그리고 오늘까지도 나는 이것을 잊을수가 없다.
그렇다.
이러한 감정은 아직도 샘솟듯 생생하게 나의 가슴속에 살아있다. 조국이 북과 남으로 갈라져있고 이 세상에 제국주의가 남아있는 한 나의 마음에서 혁명선렬들의 모습과 그들의 부탁과 고무격려를 잊지 못할것이다.
혁명선렬들이 흘린 피를 헛되이 하지 말자. 실로 그들이 흘린 피한방울이 우리의 투지로, 힘으로 되여 오늘의 사회주의건설의 대고조를 이룩하게 하였으며 천리마의 기적을 낳게 하지 않았는가.
그들이 남긴 고귀한 혁명정신과 굳은 지조를 본받아 우리도 그들처럼 혁명에 충실하자!
8.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
(혁명투사 최희숙동무를 회상하여)
김명화
나는 3.8국제부녀절을 맞을 때마다 조국의 자유와 독립과 녀성들의 해방을 위하여 항일무장투쟁대렬에서 영웅적으로 싸운 수많은 녀성혁명투사들을 추억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나는 혁명의 승리를 위한 투쟁에서 자기의 전생애를 남김없이 바쳤으며 조선의 딸들이 간직한 아름답고 고결한 혁명적지조를 끝까지 빛내인 최희숙동무를 잊을수 없다.
최희숙동무와 처음으로 알게 된것은 내가 연길현 봉림동에서 부녀회사업을 할 때부터였다.
희숙동무 역시 그때 봉림동에서 멀지 않은 룡암동이라는 곳에서 부녀회사업을 하였다. 남편인 박원춘동무와 함께 혁명의 길에 나선 희숙동무는 모든 사업에서 정력적이였고 투쟁에서 굴할줄 모르는 굳은 의지의 소유자였다.
그는 1931년부터 이미 공산당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녀성의 몸으로 대담하게 반일부대에 들어가 활동한 때도 있었다.
희숙동무와 나는 처창즈유격근거지가 창설된 이후부터 함께 사업하게 되였다.
근거지에서 우리들이 맡은 일이란 주로 재봉대와 작식대임무였다. 그는 항상 남보다 앞서 어려운 일을 하려고 애썼다. 식량도 없어 맹물을 마셔가면서도 이틀이고 사흘이고 일이 끝나기전에는 휴식할줄을 몰랐으며 동무들의 권고에 못이겨 함께 자리에 누웠다가도 자기는 남몰래 다시일어나 일손을 잡았다.
그리고 사업의 성과를 론할 때는 언제나 남을 앞에 내세우는 고상한 품성을 지니고있었다.
그는 조국을 무척 그리워하였다. 세상에 태여나서 한번도 조국땅을 밟아보지 못한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조국산천의 아름다움과 아버지, 어머니가 고향을 떠나 이국살이를 하는 눈물겨운 설음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왔다. 그리하여 희숙동무의 가슴속에는 조국을 그리는 마음이 날이 갈수록 깊어갔고 투쟁의 길에 나선후부터는 그에게 있어서 조국이 더욱더 귀중한것으로 되였다.
처창즈에서 풀죽마저 끓이지 못하면서 고생을 하던 어느날이였다. 그가 나를 보고 하던 말을 지금도 나는 기억하고있다.
《명화동무, 우리 조선에 좋은 논밭이 그렇게도 많다지요. 이제 왜놈들을 쫓아내고 지주놈이 없어지는 날에는 전체 인민이 누구나 다 흰쌀밥만을 먹게 되겠지요.
그때가 되면 우리들은 정말 이 처창즈생활을 옛말로 외우게 되겠군요.》
이처럼 그는 한가지 희망, 혁명의 승리와 행복에 찬 래일을 바라면서 억세게 고난을 뚫고나갔다.
그는 어느때인가 나에게 또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남편이 체포되여 서대문형무소에 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 며칠은 아무 일도 손에 잡을수가 없었어요. 그렇지만 인차 나는 이를 악물고 일어났지요. 그것이 남편을 위하고 그를 구하는 길이라는것을 깨달았기때문이지요. 나의 남편은 광복의 날을 보지못하고 희생될수도 있을거예요.
그렇게 되더라도 난 싸워야 해요. 남편이 광복의 날을 보지못하고 눈을 감는다면 내가 그걸 봐야 할게구, 만일 나도 못보게 된다면 우리의 후대들이라도 그날을 보아야 할게 아니예요.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는 원쑤들을 거꾸러뜨리고 광복을 가져와야 해요.
큰일을 하려는 우리는 항상 마음을 크게 먹어야하지요.》
그후 희숙동무는 조선인민혁명군재봉대 책임자로 일하게 되였다. 그는 언제나 자기가 맡은 일에 충실했다.
고난의 행군때에 동무들이 다 쉬는 휴식의 한때조차 놓치지 않고 눈우에 앉아서 옷을 기웠고 종일 행군한 뒤끝에 숙영을 하게 되는 깊은 밤에도 우등불옆에 앉아서 재봉기를 돌렸다. 오직 보초들과 눈보라만이 잠자지 않는 밤, 불무지보초들이 인제는 쉬라고 못견디게 권하는 곁에서 희숙동무는 얼어드는 두손을 불며 버선과 장갑을 기웠다.
그뿐이랴. 그는 자기 재봉기를 등에 걸머지고 행군하면서도 신입대원들의 짐을 덜어주며 걸었고 또 걸었다.
1938년 겨울 남패자에서 북대정자에로의 고난의 행군때에 그에게는 두려운것이 없었으며 남자대원들에게 뒤떨어지지 않고 이 고난의 시련을 이겨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며 그이께서는 우리를 승리의 길로 이끄시고 가신다.)
이렇게 그는 언제 어떤 환경속에서나 위대한 수령님의 충직한 혁명전사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나아갔으며 그이께서 맡겨주신 과업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실천할줄 아는 충직한 동무였다. 희숙동무는 오직 그이와 혁명의 승리만을 믿고 싸웠다.
1939년 어느날이였다. 희숙동무는 영광스럽게도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직접 금반지와 시계를 표창받았다. 그것은 바로 그이께서 그의 혁명에 대한 헌신적인 투쟁을 표창하여 친히 주신 선물이였으며 그의 공로를 찬양하는 영예의 훈장이기도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러한 표창을 받은 희숙동무는 이루 말할수 없는 감격으로 가슴이 부풀어올랐다. 그는 이 감격을 가슴에 안고 오직 혁명이 승리하는 그날까지 그이를 따라 혁명앞에 끝없이 충실하겠다고 맹세하였다. 그는 자기의 맹세를 끝까지 충실하게 실행하였다.
나는 그후 다시 희숙동무를 만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나는 전우들과 인민들로부터 희숙동무의 그후의 빛나는 투쟁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히 들었다.
1941년 2월경이다. 최희숙동무는 남창수동무가 인솔하는 소부대에 속하여 사령부를 찾으려고 간고한 행군을 계속하고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활동정형과 입수한 중요한 정보자료들을 시급히 사령부에 전달해야 했다.
벌써 오래동안 식량이 떨어진채 행군을 계속한 그들은 연길현 룡신촌에 이르러서부터 더는 걸을수 없었다. 걸을래야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식량을 얻어야만 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그들은 적의 《만산토벌》을 만나게 되였다.
태평양전쟁의 준비에 광분하면서 소위《후방》을 공고화하기에 발악하던 일제는 항일유격대의 계속적인 진출에 악이 받쳐 수다한 병력을 동원하여 머리빗으로 훑어내듯이 소위 《만산토벌》에 발광하였던것이다.
어느날 그가 속한 소부대가 뒤에서 올라오는 적을 발견한것은 이미 산이 놈들에게 다 포위된 다음이였다. 소부대를 발견한 적들은 기를 쓰고 따라오며 맹렬한 사격을 퍼부었다.
대렬을 인솔하던 남창수동무가 중상을 입고 쓰러졌다. 한 대원은 때마침 그 주변에 매여있던 놈들의 말에 남창수동무를 태우고달렸다. 그러다가 이번엔 희숙동무가 다리에 심한 관통상을 입고 쓰러졌다. 그러자 동무들은 그를 업고달렸다. 적이 등뒤에서 추격해오는 위급한 정황에서 자기때문에 전체 동무들의 걸음이 떠지는것을 본 희숙동무는 《날 생각지 말고 혁명을 생각해요. 이러다간 전체가 잡혀요. 나를 내려놓아줘요.》하고 자기를 업은 동무의 등에서 몸부림쳤다.
그러나 동무들이 그를 내려놓을리 없었다. 혁명동지를 적들속에 버리고간 일이란 그들에게 있어본 일이 없었다. 그들은 팔을 쥐여뜯으며 등에서 내리려고 애쓰는 희숙동무를 더욱 힘있게 추켜업고 앞으로만 달렸다. 그러나 적들은 점점 더 가까이 육박해왔고 적탄알은 귀전을 스치고 날아갔다. 그들은 옆으로 방향을 바꿔달렸다. 거기서 또 그들은 익측으로부터 올라오는 적들과 맞다들게 되였다.
이렇게 되자 그들은 희숙동무를 바위밑에 숨겨놓고 앞으로 나아가 적들과 전투를 벌렸다.
그런데 이때 좌우로부터 쓸어올라오던 적들이 희숙동무를 발견하고 그를 체포했다. 동무들은 적과 싸우느라고 이것을 몰랐다.
희숙동무를 체포한 적들은 그에게서 금반지를 발견하자 이리떼처럼 달려들어 희숙동무의 손에서 반지를 뽑아내였다. 그리고 그의 몸을 수색하여 회중시계까지 빼앗아냈다.
희숙동무는 가슴이 터지는듯 했다. 그것은 악착한 원쑤들에게 생포되는것도 가슴아픈 일이였지만 그보다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수여해주신 반지와 시계를 눈을 뻔히 뜨고서 빼앗겼으니 더욱 그랬다.
희숙동무는 반지와 시계를 어떤 어려운 전투환경속에서도 흠이 질세라, 잃어버릴세라 소중히 간직하고 몸에 품어왔었다. 그리고 그에서 힘을 얻었고 고무를 받아왔다.
그러한 귀중한것을 놈들에게 빼앗긴 희숙동무는 체포되였다는 울분과 함께 눈앞의 원쑤를 쏘아보면서 이를 부드득 갈았다.
《희숙동무, 잘 싸웠소. 앞으로 더 잘 싸워주시오.》
반지를 수여해주실 때 이렇게 말씀하시고 너그럽게 웃으시며 자기를 미덥게 굽어보시던 사령관동지의 모습이 그의 눈앞에 떠올랐다.
희숙동무는 사령관동지의 전사답게 굴하지 않고 싸워나아가겠다고 다시한번 맹세하였다.
놈들에게 붙잡혀 산에서 끌려내려오는 희숙동무는 관통상을 입은 다리가 아픈것도 잊어버렸다.
다만 전우들이 무사히 포위를 뚫고 빠져나갔을가 하는 생각외에 다른 생각이란 없었다.
대립자부락까지 끌려왔을 때 원쑤놈들은 점심을 먹으러 어떤 집으로 들어가고 희숙동무는 집뜨락에 누워있게 되였다. 이때 놈들은 주구들을 시켜 《〈공산당〉계집을 잡아왔으니 구경오라.》고 하면서 부락사람들을 강제로 모아왔다.
그중에서 개놈들은 좋은 기회를 만났다고 저마다 한마디씩 조롱하는것이였다.
희숙동무는 심한 갈증으로 전신을 태우며 쓰러져있었다. 그러나 그는 원쑤놈들의 조롱을 들었을 때 거연히 입술을 깨물고 일어나앉았다.
그리고 그는 입에서 불을 토하듯 말했다.
《공산당원도 사람이다. 구경할것 없다. 그러나 공산당원은 조국과 인민을 위해 일제를 타도하려는 애국자다. 애국자의 말을 들으려거든 모여라.
조선은 광복될것이다. 조국은 멀지 않아 광복되고 조선사람은 다시 조국을 찾게 될것이다. 너희들은 조국을 배반하고 침략자 일제놈들의 개노릇을 하지만 우리 유격대원들과 인민은 일제를 쳐부시고 조국을 다시찾고야 말테다.》
놈들은 당황하여 희숙동무의 입을 다물게 하려고 발광하였다. 그러나 그의 말을 멈추게 할수는 없었다. 총칼에 찔리면서도 희숙동무의 열변은 더욱 절절히 사람들의 심장을 찔렀다.
《너희들은 일제를 믿지만 … 일제는 이제 … 얼마안가서 망한다. 우리 혁명가들의 눈에는 그것이 … 벌써 똑똑히 보이고있다.》
이렇게 되자 놈들은 군중을 억지로 해산시켰다.
경찰서에 도착하자 놈들은 희숙동무에게 유격대의 비밀을 대라고 강요하였다.
《너는 체포되였다. 너희들 비밀을 말하면 살려줄테다.》
적들은 갖은 감언리설로 혹은 위협으로 벌써 몇번인지 모르게 이 말을 되씹었다.
그러나 희숙동무는 조용히 눈을 감고있었다.
(무사히 빠져나갔을가. 그들은 놈들의 포위를 돌파했을것이다. 어떤 동무들이라구.)
이렇게 그는 전우들을 간절히 생각했고 그의 마음은 전우들과 함께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사령부로 달렸다.
위대한 수령님의 슬하에서 전우들과 함께 싸우던 지나간 나날이 끝없이 행복한것이였다는 생각이 그의 온몸을 휩쌌다.
우리는 어떤 환경속에서도 승리를 내다볼줄 알아야 합니다. 혁명의 승리를 내다볼줄 아는 사람만이 끝까지 굴하지 않고 싸울수 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 말씀을 그는 마음속으로 다시한번 외워보았다.
그리고 혁명의 비밀을 고수하기 위하여 자기는 끝까지 싸워야하며 이제 더 혹독하게 닥쳐올 적들의 고문앞에서 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의를 굳게 다지였다.
희숙동무는 감았던 눈을 떴다. 그는 저주로운 원쑤들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원쑤놈들은 입을 실룩거리며 《그래 잘 생각해봤느냐?》하고 또 심문을 시작했다.
《잘 생각해보았다.》희숙동무는 조용하나 강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그럼 대답해라.》
《무엇을 대답하란 말이냐?》
《우린 네년에게서 빨찌산의 비밀을 요구하고있단 말이다.》
《그런건 네놈들의 앞잡이들을 보고나 지껄여대라. 유격대원인 내가 어떻게 너의 개들이나 알 말을 알아들으란 말이냐.》
이리하여 희숙동무는 다시 고문실로 끌려들어갔다. 놈들은 달려들어 미친듯이 그를 치고 또 쳤다.
희숙동무는 이를 악물고 놈들의 고문을 이겨냈다. 나중에 놈들은 시뻘겋게 달군 쇠꼬치로 그의 살을 지지며 《너희들 소부대가 공작한 내용을 대라!》, 《빨찌산의 비밀을 내놓아라!》고 강요했다.
그러나 희숙동무는 굴하지 않고 싸웠다.
《네놈들이 나를 죽일수는 있을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고 2천만 인민이 있다. 너희들은 우리 혁명의 불길을 아무런 힘으로도 막지 못한다.》
모진 고문으로도 굴복시킬수 없게 되자 놈들은 그를 다시 끌고나와 회유하려들었다.
《우리가 묻는 말에 대답하고 목숨을 살려라. 대일본제국은 세계강국이다. 지금 일본은 도이췰란드, 이딸리아와도 동맹하고있다.
그런데 날바다의 물거품만한 너희들이 무슨 힘으로 대일본과 싸워이기겠는가?》
희숙동무는 격분을 금치 못하면서 놈들에게 대답했다.
《네놈들의 눈에는 너희들이 그렇게 강해보이느냐? 그러나 네놈들은 멸망의 길로 나아가고있다. 공산주의자들의 눈은 그것을 보고있다.》
희숙동무가 끝끝내 굴복하지 않으리라는것을 알게 되자 원쑤들은 야수와 같이 달려들었다. 원쑤들은 온갖 고문으로써도 갖가지 회유로써도 유격대의 한 녀대원을 자기들앞에 굴복시킬수 없게 된 이 수치를 앙갚음하려고 악에 받쳐 희숙동무의 두눈을 뺐다.
그러나 희숙동무는 심장이 고동치는 한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일어났다.
《나에게는 지금 눈이 없다. 그러나 나에게는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 2천만 인민이 만세를 부르며 광복을 알리는 그날이 보인다.》
이렇게 소리높이 웨친 그는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품속에 안겨 혁명가로 성장한 최희숙동무를 원쑤들은 끝끝내 굴복시키지 못했다.
불굴의 이 정신앞에서 일제의 야수들은 공포에 떨었다. 그리고 천인공노할 이놈들은 공산주의자의 심장은 어떤것인가를 본다고 하면서 희숙동무의 심장까지 도려냈다.
희숙동무의 젖가슴을 헤치고 심장을 도려낸 이 인간백정들은 피묻은 손을 떨었으며 공포에 싸여 몸부림을 쳤다.
슬기로운 량심과 나라를 사랑하는 고결한 마음, 조국강산에 광복의 봄을 안아오기 위한 혁명적신념이 활화산처럼 타번지는 조선의 딸이 간직한 그 붉은 심장앞에서 원쑤들은 완전히 넋을 잃었다.
이렇듯 혁명가의 심장이 조국과 민족, 혁명동지들을 위해 고동친다면 반역자의 심장은 언제나 자기자신만을 위해 고동쳤던것이다.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 최희숙동무의 한생의 총화이기도 한 이 말에서 우리는 큰 힘을 얻었다. 그것은 그 말이 자기 위업의 정당성과 진리성을 확신하는 사람만이 할수 있는 말이며 혁명절개가 강한 투사들만이 할수 있는 명언이였기때문이다.
오늘 우리 인민들과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이 말은 혁명적락관주의를 상징하는 금언으로 되였으며 그들은 최희숙동무가 그토록 바라던 광복된 조국땅에서 사회주의지상락원을 건설하고 있다.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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