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권
1. 그이께서는 우리를 이렇게 믿어주시였다.
백학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항일무장투쟁과 국내외 혁명조직들의 사업을 지도하시는 어렵고 복잡한 가운데서도 늘 시간을 짜내시여 우리 대원들이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가를 손수 가르쳐주셨다. 특히 동지를 믿고 사랑하며 인민에게 무한히 충실하고 혁명적단결을 생명보다 귀중히 여기라고 항상 강조하시던 말씀을 우리는 어느 순간에도 잊지 않으며 생활의 원칙으로 지켜왔다.
우리에게는 지금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여러가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오래 산 사람도 있고 조선에서 방금 건너온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지금은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 잘 모르기도 하고 적들의 기만선전에 넘어가서 우리를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속에는 간혹 나쁜 놈이 끼여있을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경각성을 높이는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민대중을 위하여 투쟁하는 사람들인것만큼 우선 군중을 믿어야 하며 그들을 교양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루속히 군중을 각성시키고 우리가 하는 일의 정당성을 그들에게 정확히 인식시키며 우리와 함께 싸우려는 사람들과 굳게 단결하여 생사고락을 같이 하면서 투쟁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총칼이나 폭탄으로 얼마쯤의 적을 잡는 그것과는 비할바없이 큰일이며 반드시 수행해야 할 우리의 과업입니다. 인민을 사랑하고 사회를 개조하는것, 바로 이것이 우리 공산주의자들의 첫째가는 임무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러한 정신과 생활기풍으로 우리를 항상 가르치시고 이끌어주셨으며 또한 손수 모범을 보여주셨다.
그이께서 계신 사령부에 《철구어머니》라고 부르는 작식대원이 배치되여왔을 때의 일이다.
그때 그가 사령부작식대원으로 될수 있은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신성한 혁명을 모독하고 죄없는 사람들을 참살하는 교형리들이 사람들의 목에 걸었던 《민생단》혐의자의 올가미를 벗겨주시면서 그를 사령부의 작식대원으로 임명하시였기때문이였다.
이것을 다는 몰랐던 부대안에 어느 사이엔가 이런 말이 퍼졌다.
《남편도 〈민생단〉으로 몰려 처단되고 그 자신도 군중심판에서 〈민생단〉혐의자라는 오명만은 벗지 못한 녀성인데 어떻게 사령부작식대원으로 배치되여왔을가?!》
사령부 후방일군들은 딱하게 되였다.
《어떻게 할가. …사령관동지께 말씀드리면 틀림없이 두고 교양하라고 하실텐데. …다른데라면 또 모르지만 사령관동지의 신변가까이 그런 사람을 두는것은 곤난하지 않는가?!》
《옳은 생각이요. …림시 다른 공작을 시켜봅시다.》
이렇게 토론한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소부대를 이끌고 전장에 나가신 사이에 철구어머니를 후방병원으로 조동시켜버렸다. 그리고 종전처럼 그들자신이 사령부식사보장을 대신하기로 하였다.
며칠후 그이께서 전투를 마치고 밀영으로 돌아오셨다. 그리고 적들에게서 로획한 전리품들을 후방일군들에게 넘겨주실 때에 옷 한벌감을 따로 내주셨다.
《철구어머니에게 새옷을 지어주도록 하오.… 나이든분인데도 입고있는 옷이 어지러우니 사람들앞에 나서기 거북해하더군. …이러저러하게 나쁜놈들에게 몰려온 사람이니 위축되여있을수도 있소. … 그럴수록 친누이나 어머니처럼 가까이 대하고 잘 도와줘야 하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심중히 듣고있던 사령부 후방일군들은 자기들이 철구어머니를 얼마나 경솔히 취급했는가를 뼈아프게 뉘우쳤다. 그리고 어려운 때일수록 혁명동지를 믿고 사랑하고 도와주어야 한다고 그처럼 강조하여오신 그이의 말씀과 어긋나게 행동하였음을 생각할 때 그들은 큰일을 저지른것만 같았다. 그때 사령부 후방일군이였던 김주현동지는 머리를 들지 못한채 그사이에 철구어머니를 후방병원으로 조동시킨 일을 솔직히 말씀드렸다.
그의 말을 끝까지 듣고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 동무가 우리의 안전을 위해 늘 마음을 쓰고있는데 대해서 나는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은 내 동무에게 아픈 말을 좀 해야겠다. 장철구어머니에 대해서는 동무자신도 진실하고 근면하고 인정있는 녀성이라고 여러번 칭찬해왔다. 그런데 어떻게 되여 동무의 마음속에서는 그에 대한 믿음이 그처럼 쉽게 허물어질수 있었는가.
그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를 대신해왔고 누이를 대신해왔다. 우리에게 하루 세끼씩 누가 더운밥을 지어주고 누가 더운국을 끓여주었는가? 철구어머니였다. 만일 그가 나쁜 녀자였다면 우리는 이미 이 세상에 없을것이다. 우리를 해칠수 있는 기회야 얼마든지 있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철구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수백그릇씩이나 먹고서도 모두가 건재하고있다. 이것은 장철구어머니가 의심을 받을만한 건덕지가 하나도 없는 좋은 녀자이며 지난날 그가 받았던 〈민생단〉혐의가 백번 부당한것이라는것을 증명해줄뿐이다.
… 이제라도 산에서 내려가기만 하면 장철구는 새 남편을 얻어가지고 뜨뜻한 가마목에서 더운밥을 먹으며 편안히 살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 길을 택하지 않고 우리와 같이 고생스러운 산생활을 하고있다. 혁명을 하자고 결심했기때문이며 우리를 믿고있기때문이다. 그런데 동무는 그를 사령부에서 내보냄으로써 우리가 그에게 준 믿음조차 기만적인것으로 만들어놓았다. 그래 우리가 여느때에는 믿는척하고 포섭했다가 위험할 때에는 서슴없이 배척해버리는 그런 용렬한 인간들이란 말인가? 믿음에는 가짜라는것이 있을수 없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철구어머니를 다시 사령부작식대에서 공작하도록 지시하셨다.
나는 여기서 그 당시 일제와 그 주구들에 의하여 조작된 암해책동이 얼마나 악랄한것이였으며 이것을 폭로분쇄하기 위한 투쟁에서 우리들이 얼마나 어려운 고비에 부닥치군 했는가를 다시한번 회고하지 않을수 없다.
지난날 항일유격대는 정규군도 없고 공고한 후방도 없는 조건하에서 적들의 무장을 빼앗아들고 적들의 통치구역안에 있는 인민들과의 련계를 맺으면서 그들에 의거하여 유격투쟁을 전개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리고 이 투쟁은 일제《백만대군》과의 15성상에 걸친 류례없이 간고한 투쟁이였다.
이러한 투쟁초기에 일제놈들은 반혁명간첩단체인 《민생단》을 조작함으로써 우리의 통일과 단결을 와해시켜보려고 갖은 발악적책동을 다하였으며 이 기회를 악용하여 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은 하등의 리유와 근거가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민생단》이라는 루명을 씌워서 동지호상간의 불신임을 조성하고 혁명력량의 분렬을 획책하였으며 유격대와 인민과의 련계를 저해하려고 날뛰였다.
이러한 때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엄중하게 조성된 혁명의 위기를 몸소 타개하셨고 혁명을 파국에서 구출하여 고조에로 인도하셨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유격대의 일부 부대를 거느리시고 가야허라는곳에 주둔해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날 부대에서는 도문부근에서부터 끌고온 민회소를 잡아 대원들과 마을사람들에게 먹이였다. 그런데 그 소고기를 먹고 많은 사람들이 설사에 걸려 고생하였다.
이때 일부 대원들은 《민생단》이 우물에다 독약을 쳐서 전부 중독되였는데 무리죽음이 나지 않겠는지 모르겠다고 야단법석을 하였다.
이렇게 되여 이 사실을 규명하기 시작하였다. 조사사업이 진행된지 얼마후 마을을 순찰하던 소대장이 우물에 독약을 친 《민생단》을 찾아냈다고 하면서 키가 장총기장만큼 되는 아이를 데려왔다.
그 아이의 이름은 박창길이였다. 소대장이 하는 말이 그가 마을사람들앞에서 자기 죄를 솔직히 인정했다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아이를 가까이 오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면서 《네가 우물에 독약을 쳤다는 아이냐? 모를 일이다. 그래 네가 무슨탓으로 약을 쳤겠니.… 너더러 약을 쳤다고 하는것은 거짓말이지!》하고 조용히 달래며 물으시였다.
처음에는 겁이 나서 부들부들 떨며 자기《죄》를 인정하던 그 아이의 얼굴에는 차차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
《예, 내가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그런짓을 어떻게 합니까. 나는 안했습니다. …》하고 말끝을 채맺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옳다. …네 말을 나도 믿는다. 너도 일제놈을 미워할텐데 어떻게 그런짓을 했겠니. …그런데 무슨 일로 너는 독약을 쳤다고 거짓말을 했니.》하고 다시 물으시였다.
그러자 그 아이는 두손으로 눈물을 씻으며 자기에게 독약을 쳤다는 험턱을 억지로 들씌우는 마을아낙네들에 대한 반발심으로 자기《죄》를 시인했다고 대답올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체없이 군중대회를 열고 박창길의 무죄를 선포하시였다.
《이 애는 약을 치지 않았다. 그러면 누가 약을 쳤는가? 여러분들가운데는 약을 친 사람이 하나도 없다. 약을 먹은 사람도 없다. 있다면 설사를 만나서 하루이틀 고생한 사람들이 있을뿐이다. 배앓이를 한것은 오래간만에 소고기를 너무 많이 먹은탓이다. 그러니 여기에 〈민생단〉문제라는것은 있지도 않거니와 있을수도 없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당신들이 〈민생단〉이라고 몰아주던 창길이를 유격대에 받아들인다는것을 선포한다.》
박창길은 그후 유격대에 입대하여 소왕청방위전투에서 영용하게 싸웠다.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위대한 수령님의 친솔하에 북만원정을 갔다가 무송으로 진출할 때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무송에서 활동하고있는 2련대를 모체로하여 새 사단을 꾸릴것을 작정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20명도 안되는 대원들을 이끄시고 미혼진을 떠나 마안산으로 가셨다.
그런데 마안산에 도착하니 2련대는 교하쪽으로 원정을 가고 없었다.
당시 그곳에 있던 한 정치일군이 위대한 수령님께 삼포밀영에 100여명이나 되는 《민생단》이 있는데 자기는 그자들을 감시하느라고 남아있다는것과 《민생단》혐의자들이 지금 림강현 마의하쪽으로 식량구하러가고 없다는것을 보고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이 식량공작을 나갈수 있는 정도라면 무슨 《민생단》이겠는가고, 《민생단》이 확실하다는 무슨 증거라도 있는가고 물으시였다.
그러자 그 정치일군은 증빙문건이 다 붙어있는자들이라고 하면서 자백서, 진술서, 심문조서따위의 《민생단》문서보따리를 그이앞에 내놓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체없이 통신원을 림강현 마의하방면에 파견하여 그들을 전부 데려오게 하라고 명령하시였다.
림강현 마의하쪽에 가있던 《민생단》혐의자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기들을 부르신다는 소식을 듣자 험준한 룡강산줄기를 넘어 수백리 산길을 단이틀사이에 와닿았다.
《민생단》혐의자들이 삼포밀영귀틀집에 도착하였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곧 그들과의 사업을 시작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너그러운 품에 안겼고 그이의 간곡한 말씀을 한마디도 놓칠세라 가슴에 아로새겨 듣고있던 그들은 앞을 다투어나섰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길 없던 억울한 루명을 쓰고 참을수 없는 감시와 버림을 받아온 그들이였으니 이제 위대한 수령님앞에서야 무슨 말인들 털어놓지 못하랴.
막혔던 물목이 터진듯 모두가 자기 가슴속에 맺혔던 심정을 눈물을 흘리며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그들은 저마다 자기는 《민생단》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하면서 억울한 과거사를 서슴없이 밝히였고 앞으로 혁명에 더욱 충실할 결의를 열렬히 피력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러날째 계속된 그들과의 사업을 끝마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동무들을 오늘 누가 〈민생단〉이고 누가 〈민생단〉이 아니라고 결론짓기는 어렵다. 누구도 그것을 증명할수 없기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오늘 동무들에게 명백히 선언할것은 지금 이 자리에는 〈민생단〉이 한명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동무들자신이 다 〈민생단〉이 아니라고 부인하였기때문이다. 나는 동무들이 한 그말을 믿는다. 동무들은 이 시각부터 백지상태로 돌아가서 다 새로 출발한다는것을 알아야 한다. 깨끗지 못했던 과거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무들의 혁명가로서의 진가는 과거에 의해서가 아니라 실천행동에 의하여 규정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동무들은 지금 다같이 인생의 백지를 나눠가지게 되였다. 그 백지에 얼마나 고귀한 삶과 투쟁의 기록을 남기는가 하는것은 전적으로 동무들자신에게 달렸다.
모두가 새 출발하여 조국과 인민과 력사앞에 떳떳이 내놓을수 있는 투쟁행적을 그 백지장들에 적어놓게 되리라고 믿는다. 나는 이 시각부터 동무들을 그토록 괴롭혀왔던 〈민생단〉혐의가 완전히 무효하다는것을 언명하는 동시에 동무들모두가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의 대오에 들어섰다는것을 선포한다.》
장내는 엄숙하고 긴장된 분위기에 휩싸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생단》혐의자라고 하는 사람들가운데서 몇명 선발하여 마당 한복판에 문서보따리를 쌓아놓게 한 다음 불을 달으시였다.
문서보따리에 불길이 타오르는 순간 눈을 슴벅이고 입술을 떨던 그들, 숨을 죽이고서서 불길에 휩싸이는 문서보따리를 바라보던 그들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뺨을 적시며 줄지어 흘러내렸다.
대원들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깊은 사랑과 그이의 두터운 신임, 바로 이것이 그들의 가슴을 한없이 격동시켰던것이다. 재생의 보람찬 감격으로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대한 다함없는 신뢰와 존경으로하여 그들은 더 참지 못하고 모두가 그 자리에서 통곡을 하였다.
참을수 없는 추악한 루명에서 벗어난 그들은 저마다 재생의 기쁨을 안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가리키시는 길이라면 그 어떤 불속이라도 뛰여들어 서슴없이 뚫고나아가는 그이의 충직한 전사가 될것을 맹세하였다.
이러한 굳은 결의를 다진 그들은 그후 실지투쟁에서 수많은 공훈을 세웠다.
자기들을 믿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를 받으며 혁명의 길에 떳떳이 나서게 된 그지없는 감격, 열백번 죽어도 가슴에 지닌 붉은 마음 그대로 싸우리라는 영용한 투지로 총창을 비껴들고 그들은 원쑤를 무찔러 돌격했고 육박전의 선두에서 달려나갔다.
그들이 뛰여드는 도처에서 적들은 비명을 지르며 무수히 쓰러졌고 그들이 앞장서서 돌격하는곳마다에서 승리의 함성이 올랐다.
무송현성전투로부터 시작하여 대덕수, 이도강, 20도구, 보천보, 간삼봉, 무산지구전투 등 크고 작은 수많은 전투들에 참가하여 그들은 빛나는 위훈을 세웠다. 특히 1938년 겨울의 어려운 고난의 행군에서도 그들은 다른 유격대원들과 마찬가지로 그 간고한 시련을 영용하게 이겨냈다.
이러한 투쟁과정에는 헤아릴수 없는 고충과 난관이 중첩했고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희생된 동무들도 있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안긴 어느 한 사람도 이 모든 곤난에 굴하지 않고 원쑤에 대해서는 성난 사자와 같이 용맹하였고 비타협적이였으며 혁명동지에 대한 뜨거운 우애, 인민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으로 그들은 끝까지 잘 싸웠다.
그후 그들은 대원들을 그처럼 굳게 믿으시고 사랑하여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충직한 전사로서 모두 한사람같이 그이의 주위에 굳게 뭉쳐 끝까지 조국의 광복과 혁명의 승리를 위해 모든것을 바쳐싸웠다.
이러한 지난날의 일들을 회상할 때마다 나의 가슴은 새로운 감격과 결의로 높뛴다.
조국과 혁명을 위하여 함께 싸우려는 모든 사람들을 우선 믿고 사랑하면서 끝까지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정신으로 우리를 가르쳐주시고 몸소 모범을 보여주시는 위대한 수령님, 그토록 우리를 믿으시고 자애로운 품에 안아주시는 그이앞에서 우리가 무엇인들 못하랴.
우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혁명전사된 긍지드높이 조국의 자주적통일과 사회주의건설을 다그치기 위한 투쟁에서 보다 새로운 혁신과 변혁을 일으키기 위하여 모두다 한사람같이 수령님의 두리에 더욱더 굳게 뭉쳐 전진해야 할 것이다.
2. 하나로 뭉친 힘
박두경
《우리가 하려고 해서 못해낸 일이 없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자부심을 가지고 사회주의건설을 다그치며 천리마의 진군을 하고있다.
이 감격과 영광속에서 우리들은 누구나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를 우러러보며 그이의 현명한 령도와 깊은 배려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고있으며 그이께서 가리키시는 길이라면 물불을 헤아림없이 나아가는 그이의 혁명전사된 영예와 긍지로 충만되여있다.
물론 이는 오늘에 비로소 가지는 영예와 긍지가 아니다. 벌써 항일무장투쟁시기부터 그이의 현명한 령도를 받으며 싸워온 우리 인민들이 오랜 세월을 두고 보고느낀 긍지이며 자랑인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처음뵈옵던 그 당시에 나는 소왕청에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유격대를 창건하신 다음 이곳으로 오신후부터 그이께서 계시는 소왕청은 조선혁명의 중심지로 되였다.
그 이전의 소왕청이란 적들의 강점하에서 참을수 없는 탄압과 학살만행을 당하던 조선인부락들중의 하나였다. 그러므로 당시 우리에게 있어서도 가장 절박한 문제는 적들의 무장적탄압을 물리치는것이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무장투쟁로선에 립각하여 손에 무장을 잡아야 했다.
그런데 그때 우리에게 무슨 무장이 있었으랴. 가지고있는것이란 도끼와 낫, 곤봉 등에 불과했다.
이것을 가지고는 정예무기로 장비한 일제침략자들을 상대로 싸울수 없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죽을수도 없었다.
우리는 독립군과 포수들이 사용하던 무기를 모아들였다. 그것은 화승대, 렵총 등 모두해서 세자루밖에 되지 않았으며 그나마도 한자루는 고장이 나서 사용할수 없는것이였다. 그래서 어떤 동무들은 《우리에게는 두자루반의 무기가 있다.》고도 했다.
우리는 이것을 밑천으로하여 비밀리에 《특무대》라는 무장대를 조직하고 적의 무기를 빼앗기 위한 투쟁에 나섰다. 이 투쟁에는 또한 《특무대》뿐만아니라 청소년들과 지어는 60살이 훨씬 넘은 로인들까지도 참가했다. 그리하여 구식보병총 7~8정을 더 구할수 있게 된 우리는 적들과 싸울 열의로 들끓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에게로 오셨다. 그이께서는 우리들의 사업정형을 료해하시고 구체적인 지도를 주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을 하셨다.
맨주먹으로 적의 침해를 받던 동무들이 이제는 적으나마 무기를 손에 쥐였고 적과 싸워보고싶다는 열렬한 심정을 억제하지 못하고있는것은 더없이 기쁜 일입니다. …자기 목숨보다 혁명이 귀중하며 자기 한 개인의 청춘보다 조국의 자유독립과 인민들의 행복이 더 귀중하다는 생각을 할 때에 우리가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동무들의 이 드높은 투쟁열의는 대단히 좋습니다. 그러나 동무들이 명심해야 할것은 적들을 쳐부시고 혁명을 승리하자는 그 열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가 적들과 싸운다는것은 수리날 씨름이나 하듯이 맞서서 이기면 좋고 지면 또 한번 해보자는 식의 기분놀음이거나 장기다툼이 아닙니다. 우리는 혁명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싸우면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그러자면 정확한 전투계획과 준비가 필요합니다. 현재 우리로서는 얼마만한 적을 제낄수 있으며 어떻게 싸워야 우리에게 손실이 없이 적들을 더 많이 잡고 결정적으로 이기겠는가, 우리의 장점은 무엇이고 적의 약점은 무엇인가, 또한 우리에게는 부족점이 없는가, 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겠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따져보아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이러한 세심한 지도밑에 우리는 우선 자체무장을 더욱 강화하였고 어떠한 때에라도 적의 침공으로부터 인민들을 튼튼히 보위할수 있는 유격구를 꾸리는데 힘썼다. 그러면서 우리는 점차 전투에 나서게 되였던것이다.
그이의 지휘밑에 쟈피거우전투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무수한 전투들에서 우리의 거듭되는 승리는 유격대원들과 유격구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었다.
우리의 전투기술은 더욱 세련되고 발전되였다.
이와 함께 유격구내에 인민정권이 서고 제반민주개혁까지 실시되였다. 결과에 유격구인민들의 혁명적기세가 더욱 고조된것은 물론이고 적통치구에 있는 인민들에게 준 영향도 매우 컸다. 적통치구에서 유격대에 입대하기 위하여 우리를 찾아들어오는 청년들이 나날이 늘어갔다. 그러나 우리의 투쟁과 승리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1933년 봄부터 우리앞에는 간고한 시련이 닥쳐왔다.
이해봄에 들어서면서부터 적들은 우리의 이러한 혁명적기세를 꺾고 혁명의 전취물을 빼앗으려고 대규모적인 《토벌》작전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혁명근거지의 중심인 소왕청유격구《토벌》에 적들은 자기의 모든 력량을 집중하였다.
1933년 4월 17일이였다.
대두천기슭에서 뾰족산어귀까지 미친듯이 몰려드는 적들은 우리의 유격구를 한입에 삼킬듯 했다. 그러나 우리는 당황하지 않았다. 비록 우리의 력량은 청소하였지만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가 있고 그이의 주위에 굳게 뭉친 혁명대오와 인민들의 굳은 단결이 있다고 생각하니 누구나 마음이 든든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지휘밑에 우리 유격대원들은 침공해온 수천명에 달하는 적의 대병력을 상대로하여 불면불휴의 전투를 거듭하였다. 이리하여 우리는 3일만에 적들을 격퇴시켰고 적들은 이 전투에서 400여명의 사상자를 내였다. 그러나 적들은 저들의 《토벌》기도를 버리지 않았다. 놈들은 또다시 새로운 병력을 집중하면서 보다 대규모적인 동기《토벌》작전을 획책해나섰다.
적들은 우리 유격구를 《일거에 소탕하겠다.》고 떠벌이면서 동만각지와 지어는 조선 라남에 있는 19사단의 일부 병력까지 발동시켜서 보병, 기병, 포병, 항공대 등 약 5,000명의 《최정예》부대를 투입하였다.
쟈피거우, 왕청, 마반산 등 여러 방향으로부터 포위해들어온 적들에 의하여 유격구주변은 불바다로 변하였다. 숨막힐듯 한 연기와 화광은 순식간에 유격구를 휩쓸고 적들의 총탄과 포탄은 골안을 뒤엎는듯 했다.
그러나 우리 유격대와 인민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령활한 지휘밑에 적의 침공에 대처하여 만단의 전투태세를 갖추고 싸웠다.
일부 인원들은 뾰족산과 마반산어귀의 유리한 지형을 리용하여 적들의 공격을 저지시켰고 3중대의 우수한 전투원들을 중심으로 한 저격조원들은 연기와 화염이 뒤덮인 산판과 골짜기의 깊은 눈을 헤치면서 은밀히 전진했다. 불속을 뚫고나간 그들은 계속 몰려드는 적들의 측면과 배후를 향하여 여러개 지점에서 불의에 총탄을 퍼부었다. 오만무례하게 덤벼들던 적들은 무리로 쓰러져갔다.
이때 적들은 마반산계선으로 달려들던 기본력량까지 뾰족산계선에 집중시켰다. 그리고 여러차례에 걸쳐 거듭 공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적들이 발악할수록 늘어가는것은 제놈들의 시체뿐이였다. 적들은 그이상 더는 뾰족산계선에다 병력을 투입하지 못하고 시체무더기를 던진채 약 3km후방까지 쫓겨가지 않을수 없었다.
이 꼴을 바라본 우리들의 기쁨은 물론이고 근거지안에서 총탄을 운반하고 밥을 짓던 부녀회원들이며 우리들의 전투승리를 고무해주던 아동단원들까지도 축하의 노래를 부르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사령부앞으로 모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때 로약자들과 어린이들은 구마촌 안쪽골짜기로 대피시키고 뾰족산계선에 있는 유격대원들중에서 일부 감시인원만 남기고 기타는 다른 봉우리로 옮기라고 하셨다.
적들은 심대한 타격을 받고 물러서기는 했으나 소왕청유격구를 《소탕》하기 위하여 장기적인 준비밑에 많은 병력을 동원시킨것만큼 그리고 이날 심대한 타격을 받은것만큼 보다 더 완강한 공격을 시도할것이였다. 때문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첫 승리에 이어 보다 강력한 타격을 줄수 있는 전투준비를 해야 한다고 우리들에게 가르치시였다.
그이의 말씀대로 우리는 지체없이 로인들과 어린이들을 구마촌 안쪽골짜기로 대피시켰으며 전투준비를 더욱 강화하였다.
그 다음날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명철하게 예견하신바와 같이 적들은 수량상 우세를 리용하여 또다시 뾰족산을 제압하려고 소위 《결사돌격대》를 조직하여 공격해왔다. 그러나 적들은 이《새로운 공격》에서도 패배를 면치 못했다. 그것은 이미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대로 우리 유격대가 뾰족산 다음봉우리로 자리를 옮기였으므로 뾰족산계선에만 공격을 집중하고 《돌격》해들어온 적들이 뜻하지 않은 방향인 뒤봉우리로부터 맹렬한 집중사격을 받았기때문이다.
적들은 소왕청골안의 매 봉우리마다에서 거듭되는 참패를 당하면서도 좀처럼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놈들은 주검우에 주검을 쌓으면서도 계속 예비병력을 구마촌 골안으로 몰아넣었다. 어떠한 손실을 당하더라도 적들은 소왕청유격구《소탕전》의 끝장을 내고야말 심산이였다. 산봉우리며 골짜기며 나무숲 어디에나 적의 총탄과 포탄이 날아오지 않는곳이 없었다.
이러한 정황에서 20일가까이 싸우고난 우리의 형편은 적들의 계속되는 공격에 대처하여 일방적인 방어만으로는 유격구를 보위하기 힘들게 되였다.
우선 우리들이 가지고있는 무기라야 구식보병총들이 대부분이였고 그것마저 대원들에게 다 차례지지 못한 형편이였다. 이러한 무기로써 사면으로부터 달려드는 적의 여러개 련대의 병력을 대항하여 계속 장기적인 방어전을 할수는 없었다.
뿐만아니라 이러한 정황으로하여 자칫하면 전투에서 피동에 빠질수 있었고 더나아가서는 유격구를 적들에게 빼앗기고 수많은 인민들이 놈들의 피묻은 총검아래 유린될 위급한 형편에 놓였다. 게다가 적들의 폭격과 방화에 의하여 집들은 불타버리고 어디서도 식량한톨 구할곳이 없었다.
그리고 사면에 적을 두고있는 속이라 환자가 생겨도 불조차 마음대로 피울수 없었다. 몸에 걸친 옷마저 찢기고 불에 탔으므로 동상자를 내지 않기 위한 투쟁이 적들과 싸우는것만 못지 않게 간고한 투쟁이였다.
날이 밝기만 하면 적의 비행기까지 달려들어 골짜기와 봉우리를 뒤지며 돌아치기때문에 한편으로 적과 싸우며 한편으로 인민들을 보호해야 했다. 그때의 힘겹던 일을 일일이 다 말할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때에도 잠시라도 짬이 있으면 총을 닦고 전호를 손질하던 전사들에게 어떻게 하든지 더운물 한모금이라도 서로 나누어마시게 하려고 위험속을 뚫고다니던 로인들과 부녀자들의 정경은 지금도 나의 눈앞에 선히 떠오른다.
그리고 바위틈에 엎드려서 《자작권총》(양철과 파철을 리용하여 만든것)에 화약을 재우며 적을 겨누던 아동단원들의 그 모습과 그들이 부르던 노래소리는 지금도 내귀에 쟁쟁히 울리는것만 같다.
모여라 동무들아 붉은기아래
한마음한뜻으로 모여들어라
폭탄과 권총을 손에다 들고
주권을 틀어쥐려 모여들어라
특히 이 간고한 투쟁속에서도 우리를 승리에로 인도하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대한 우리 유격대원들과 인민들의 신뢰와 흠모의 정은 그지없었다.
적들이 구마촌어귀에 기여들었을 때였다.
이때 소왕청지구에서 십리평으로 넘어가는 자덕령(태평촌지역)에서는 그곳에 대피한 녀인들이 불도 마음놓고 피우지 못하는 유격대원들을 위하여 밤중에 더운 물병을 품에 싸안고 리수구에 있는 사령부로 오고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적들이 달려든 구마촌쪽 벼랑턱에서 무엇인지 기여오르는것을 감촉했다. 그들은 갑자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서 우선 눈속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다시 살펴보니 벼랑턱에서도 그이상 더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우리가 잘못 보지 않았나.》
《아니야, 분명 몇사람이 벼랑턱에 올라섰던것 같애.》
《소리를 쳐볼가.》
《안돼, 그러다간 장군님과 유격대원들이 있는 저쪽으로 탄알이 미치면 어쩔려구.》
짧은 순간에 이렇게 속삭이던 그들중 유격대원인 최상범동무의 숙모는 《동무들은 여기 숨어있으라구.… 내가 저쪽으로 가서 소리를 쳐볼게.》라고 말한후 물병을 내려놓고 어두운 숲속으로 달려나갔다.
그는 자기 목숨을 돌볼사이없이 사령부의 안전을 보위하기 위한 일념에 불탔던것이다.
그는 사령부와 반대방향인 수림속으로 뛰여가며 목청껏 소리를 쳤다.
《적이다!》
《벼랑끝에 기여오른다!》
그것은 적들의 시선을 자기에게로 끌려는것이였다.
이렇게 부녀자들까지 맹물을 끓여먹고 지내면서도 굴하지 않고 싸웠으며 자기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사령부를 지켰으며 유격대원들을 돕고 사랑하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를 따라 물불을 헤아리지 않고 싸우며 승리를 확신하였고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고 사령부를 보위하려는 인민들과 유격대원들의 하나로 뭉친 이 힘을 그 어떤 난관도, 그 어떤 적의 발악도 꺾을수는 없었다. 오직 유격구를 지킬 일념으로 들끓고있을 때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적들의 동태를 살피시고 새로운 전투임무를 제시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십배나 되는 적의 정예부대와 정면충돌하는것은 적아간의 력량대비로 보아서나 유격전술상 승산이 없는 모험행동인것입니다.
또한 장기적인 공격태세로 달려드는 적들에 대하여 좁은 지역에 앉아서 방어전으로만 대하는것은 도리여 적의 기대에 맞추어주는것으로서 적에게는 유리하고 아군에게는 극히 불리한것입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서는 아군의 력량을 두대로 나누어서 행동해야 하겠습니다.
한대는 이곳에 남아서 활동하고 다른 한대는 적들의 통치구역으로 들어가야 하겠습니다. 지금 적들은 동만 각현의 유격근거지를 동시적으로 대거침공하기 위하여 심지어 경찰과 자위단까지도 대부분 유격근거지《토벌》작전에 동원시켰으므로 사실상 적들의 후방은 텅 빈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또한 적들은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 유격대가 근거지를 떠나서 저들의 후방으로 들어가리라고는 생각지 못할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대담하고 민첩하게 적후방에서 적들의 병실과 자위단, 경찰서 등을 습격하여 놈들에게 불의타격을 주며 놈들의 군수품창고와 공급기관 등을 공격하거나 군수물자수송차를 매복습격함으로써 놈들에게 먹을것과 입을것이 공급되지 못하게 하는 한편 아군의 군수품을 보충하며 적들이 그 어떤 곳에서도 불안과 공포에 빠지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만주국》괴뢰군과 일본군에게 선전삐라를 광범히 살포하여 적군병사대중을 동요시키며 계속 부단한 배후공격전으로 적들로 하여금 유격근거지를 공격하고있는 자기 병력을 부득불 철수하지 않고는 견딜수 없게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유격근거지내에 남아있는 부대들도 대량적으로 공격해오는 적군과의 정면충돌을 피하고 여러개의 소부대를 편성하여 낮에는 유격근거지내의 인민들을 각처에 분산은신시켜 보호하여야 합니다. 그러면서 야간에는 적들의 숙영지 등을 부단히 기습공격하여 적을 섬멸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장기적이고 령활성있는 전술과 주동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으로써 적들에게 계속 패배와 죽음을 주고 아군주력과 유격근거지인민들을 튼튼히 보위하여야 합니다.
만일 그때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이와 같은 현명한 유격전술을 제시하지 않으셨더라면, 그이의 탁월한 령도가 없었더라면 소왕청유격구는 적들의 수중에 떨어지고 인민들은 헤아릴수 없는 고통과 학살을 당했을것이며 우리의 대오는 지리멸렬되였을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이와 같은 현명한 령도가 있었기에 유격구내 인민들은 십리평으로 자리를 옮겼고 유격대원들은 인민들을 보호하면서 산우에다 진지를 꾸릴수 있었다. 그리고 낮에는 기여오르는 적들에게 고지와 골짜기마다에서 유리한 지형을 리용하여 맹렬한 반격을 가하여 무리죽음을 주었으며 밤이면 또 밤마다 교대제로 여러개의 야간습격조를 조직하여 놈들의 숙영지를 기습하고 수송도로를 습격하는 등의 맹렬한 전투를 전개했다.
이러한 전투를 며칠 계속하여 적들로 하여금 당황하게 하고 유격대원들에게 유리한 정황을 조성시키신후 그이께서는 일부 유격대원들을 친솔하시고 적통치구로 나가셨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지휘밑에 적통치구로 나간 유격대원들은 량수천자(두만강대안인 국경지대)와 북봉오동(도문에서 약 100리 북쪽)등지로 다니며 적들의 병실, 경찰서, 자위단 등을 련속적으로 습격소탕하였고 사동 동골에 있는 적들의 목재소도 습격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렇게 적들을 습격소탕하신 뒤에는 의례히 그곳 인민들을 모아놓고 그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북돋아주시였고 그들을 투쟁에로 불러일으키시였다.
이에 감격한 이곳 사동목재소의 로동자들도 입대를 탄원해나섰으며 자기들이 아끼던 새 신발과 작업복 등을 자진하여내놓았고 어느사이에 밀가루, 소금 등을 모아가지고는 유격대에 보내주었으며 많은 로동자들은 그 짐을 지고 유격대를 따라나섰다.
수천명의 적들이 소왕청유격구를 포위하고 달려드는것을 보거나 그 소식을 듣고 놀라운 생각을 금치 못하던 인민들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직접 뵈왔을뿐만아니라 혁명의 승리적인 전망을 명시하신 그이의 말씀까지 듣게 되였으니 그들의 감격과 희망은 그지없었던것이다.
량수천자에서 돌아오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적들이 동요하고있는 때에 결정적인 반격으로 이행하여 적들의 후방중심지인 왕청시가지를 습격하기로 계획하셨다.
그 다음날 밤 1시경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친솔밑에 적들의 첩첩한 경계를 뚫고 왕청시가지에 돌입한 유격대원들은 2~3개소의 적기관들을 습격하고 불을 질렀다.
왕청시가에서 얼마후에 다시나온 유격대원들이 요영구쪽으로 통하는 산길에 들어섰을 때에 시내복판 여기저기에서는 적기관들이 활활 불타고있었으며 불길속으로는 높다란 망루(소방대감시초)가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불이 붙는데도 종을 치는 놈조차 없었다.
이는 적들에게 문자그대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심대한 타격이였다. 불과 50여명의 소수유격대원으로써 소왕청유격구와 인민들을 끝끝내 보위하면서 5,000여명의 적들과 40여일의 간고한 투쟁에서 주도권을 쟁취하였고 적들의 집결중심지인 왕청시가지를 뚫고들어가서 놈들을 습격한다는것은 사실상 생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였다.
때문에 당시 항간에서뿐만아니라 심지어 적들까지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령활하신 유격전술을 《신출귀몰》이라는 말로써 표현했다는 말을 우리는 자주 들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탁월한 령도에 의하여 왕청시가지를 습격당한 적들은 만회할수 없는 참패를 당한채 《일거에 소탕한다.》던 우리 유격구에서 쫓겨가지 않을수 없었다.
적들이 물러간 뒤에 우리 유격대원들과 근거지인민들은 다시 소왕청으로 돌아와서 유격구방위를 더욱 강화하였고 1934년 봄에는 농사도 지체없이 시작하였다. 그리고 저마다 일제를 타승하고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쟁취할 보다 굳은 결의로 충만되였다.
우리는 유격근거지를 해산하고 보다 넓은 지역에서 활동하게 될 때까지 5년동안이나 계속 적들의 집요한 공격을 받기는 했으나 어느 한번도 달려들어온 적들을 그대로는 돌려보내지 않았다.
그때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와 그를 따르는 우리 대원들과 인민들의 불요불굴의 투쟁에 의하여 적들은 무리죽음을 당하였다.
이러한 고난과 투쟁을 통하여 우리는 오늘의 자유와 행복을 누리게 되였고 계속 부단히 전진하면서 보다 광활한 앞날을 위하여 싸우고있다.
나는 생각한다. 지난날 우리를 승리에로 이끌어주신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오늘도 우리 인민의 선두에 서시여 조선혁명을 승리에로 인도하고계신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가르치심을 받들고나아가는 우리에게는 그 어떤 일도 해내지 못할것이 없다.
지난날을 돌이켜보고 오늘을 생각할 때,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주위에 철석같이 뭉친 우리 당원들과 전체 근로자들이 그이의 현명한 령도를 받들어싸울 때 우리에게는 극복못할 난관과 애로가 없으며 싸우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신을 다시한번 가지게 된다.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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