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적민주주의의 본질적우월성
현시기 부르죠아변호론자들은 자본가계급의 강권과 전횡만이 살판치는 자본주의사회를 《민주주의》라는 간판으로 미화분식하며 부르죠아민주주의만이 사람들에게 진정한 자유와 권리, 행복한 생활을 마련해준다고 떠들고있다. 그러면서 터무니없이 사실을 날조해가며 사회주의적민주주의를 헐뜯고있다. 이것은 부르죠아독재의 반동성과 반인민성, 쇠퇴몰락하는 자본주의사회의 진면모를 가리우기 위한 궤변이다.
이로부터 부르죠아민주주의에 비한 사회주의적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정확히 밝히는것은 부르죠아대변자들이 떠드는 《민주주의》의 반동성을 까밝히고 적대세력들의 반공화국책동을 짓부셔버리는데서 매우 중요한 문제로 나선다.
《사회주의적민주주의는 사회주의사회의 집단주의적본성을 구현한 민주주의이며 광범한 근로인민대중이 사회의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행사하고 주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게 하는 진정한 민주주의입니다.》라고 김정일동지는 교시하였다.
민주주의란 한마디로 말하여 근로인민대중의 의사를 집대성한 정치이다.
사회주의적민주주의는 사회주의사회의 집단주의적본성을 구현한 민주주의이며 인민대중이 사회의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행사하고 주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게 하는 진정한 민주주의이다. 바로 여기에 부르죠아민주주의에 비한 사회주의적민주주의의 본질적우월성이 있다.
사회주의적민주주의의 본질적우월성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사회주의사회의 집단주의적본성을 구현한 참다운 민주주의라는데 있다.
사회주의적민주주의는 사회주의사회의 집단주의적본성을 구현한 민주주의이다.
민주주의가 사람들을 움직이는 국가활동의 방식인것만큼 그 우월성은 사람의 본성적요구를 어떻게 구현하였는가 하는 견지에서 보아야 한다. 사회관계를 맺고 사회적집단속에서 살며 활동하는 사회적존재인 사람은 사회적집단과 운명을 함께 하면서 서로 협력하며 살려는 집단주의를 본성적요구로 하고있다. 집단주의는 사람이 사회적집단의 성원으로서 보람있게 살기 위한 근본요구이다.
사람의 본성적요구인 집단주의는 오직 사회주의사회에서만 실현될수 있다.
사회주의제도는 사회적집단의 요구와 리익을 첫자리에 놓는 집단주의에 기초한 사회제도이며 자본주의제도는 개인의 요구와 리익을 첫자리에 놓는 개인주의에 기초한 사회제도이다.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의 근본적인 차이는 사회적집단의 사회정치적생명을 더 귀중히 여기는가 아니면 개인의 육체적생명을 더 귀중히 여기는가 하는데 있다. 결국 이것은 사회주의제도와 자본주의제도의 본질적차이가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의 차이에 귀착된다는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견지에서만 부르죠아민주주의에 비한 사회주의적민주주의의 본질적우월성도 해명할수 있다.
부르죠아민주주의는 개인주의에 기초한것으로서 이른바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최고의 리상으로 내세우고있다. 사회가 적대계급들로 분렬되여있고 계급적대립이 사회관계의 기본을 이루고있는 착취사회에서는 사람들사이에 완전한 평등이 있을수 없다. 설사 부르죠아민주주의가 표방하는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된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써는 사람들에게 사회적인간의 본성적요구에 맞는 생활을 보장해줄수 없다.
대통령선거, 국회선거때마다 부르죠아정객들이 저마끔 나서서 《평등》과 《민주주의》, 《처지개선》 등의 달콤한 공약들을 람발하고있지만 자본주의사회에서 모든 법과 결정, 시책들은 하나같이 재벌들의 리해관계에 부합되고 그들의 리윤획득을 보장해주는 방향에서 채택실시된다.
서방언론들자체가 개탄하듯이 자본주의정치는 《실제상 부자들을 위한 정치 즉 부자들이 자기의 자본우세를 리용하여 정부에 부유층의 리익을 도모할것을 강요하는 정치》이며 국회는 《부자들의 국회로서 부자들이 통치하고 부자들의 복리를 위한 국회》일뿐이다.
이처럼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오직 부자들만이 국가의 정책작성에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다. 자본가계급은 저들의 독점적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특권계층이 정권과 생산수단을 장악하고 저들의 계급적리익에 맞게 정책을 세우며 여기에 모든것을 복종시키고있다. 소수 특권계층을 위한 이런 민주주의는 본래의 의미에서 민주주의가 아니다. 또 이런 민주주의가 사회의 절대다수를 이루는 근로대중을 위한 진정한 민주주의로 될수 없다는것은 명백하다.
부르죠아민주주의가 내세우는 《자유》와 《평등》은 자본주의사회에서 통치배들의 전횡과 자본가계급의 착취적, 략탈적본성을 가리우기 위한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개인주의에 기초하고있고 적대적인 계급으로 갈라져있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완전한 평등이 보장될수 없다.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특권층의 리익을 옹호하고 실현하는것이 최고의 목적으로 되고있기때문에 갈등과 호상견제, 지배와 예속, 착취와 압박관계가 항시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무제한한 권력을 가지고있는 부유한 특권계층과 실업과 빈궁으로 고통을 겪고있는 근로대중사이에 평등이 보장될수 없으며 억압당하고 착취당하는 근로인민대중에게 자유가 있을수 없다는것은 불보듯 뻔하다.
자본주의사회에서의 《자유》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것은 통치배들이 근로대중을 마음대로 착취하고 략탈하여 치부하며 억압할수 있는 자유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정권을 장악하고있는 지배계급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민주주의적자유와 생존의 권리를 위한 광범한 근로대중의 투쟁을 가혹하게 탄압하고있다. 정보기관들을 발동하여 개인과 단체들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자료를 수집하며 저들의 반동적인 통치유지에 저해가 된다고 생각되면 《민주주의》의 탈을 완전히 벗어던지고 로골적인 파쑈통치를 실시한다.
부르죠아민주주의는 결코 진정한 민주주의로 될수 없다.
사회주의적민주주의는 부르죠아민주주의와는 달리 모든 사람들이 사회정치적생명을 지니고 생사운명을 같이하면서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사는 생활을 최고리상으로 한다.
집단주의에 기초하고있는 사회주의적민주주의는 사회적집단의 사회정치적생명과 사회의 공동의 리익을 옹호하는것이 최고목적으로 되여있기때문에 사람들사이에서 자유와 평등은 동지적사랑과 호상협조에 기초하여 보다 원만하게 실현된다. 사회공동의 리익과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옳게 결합시켜 다같이 원만히 보장하는것이 사회주의적민주주의이다.
결국 부르죠아민주주의에 비한 사회주의적민주주의의 우월성은 개인주의에 비한 집단주의의 우월성, 개인의 육체적생명에 비한 사회적집단의 영생하는 사회정치적생명의 절대적우월성에 있다.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고 그 어느 나라도 흉내낼수 없는 가장 공고하고 독특한 우리식 사회주의제도에서 실시되고있는 민주주의가 그 표본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국가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인민대중에게 참다운 자유와 권리를 전면적으로, 실질적으로 보장해주고있다. 근로자들이 정권의 주인으로 국가관리에 적극 참가하고있으며 국가의 모든 정책이 인민의 의사와 리익에 맞게 실시되고있다.
우리의 모든 근로자들은 성별과 직업, 재산과 지식정도 등에 관계없이 누구나 다같이 선거할 권리와 선거받을 권리를 가지고있으며 사회정치활동의 자유와 권리를 충분히 행사하고있다. 모든 사람들이 정치조직에 망라되여 자기의 사회정치적생명을 빛내이며 값높고 존엄있는 생활을 하고있다. 국가로부터 로동과 휴식의 권리를 보장받고 사회와 자신을 위한 보람찬 로동생활에서 지혜와 재능을 남김없이 발휘하고있다. 누구나 평등하고 고르롭게 살고있으며 국가가 마련해주는 사회주의문명을 마음껏 누리고있다.
사회주의적민주주의야말로 진짜민주주의, 참다운 민주주의이다.
사회주의적민주주의의 본질적우월성은 다음으로 그것이 인민대중이 사회의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행사하고 주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게 하는 진정한 민주주의라는데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재부와 권력을 독차지한 자본가계급이 무제한한 특권을 행사하며 근로대중의 자주적인 요구를 횡포하게 유린한다. 반면에 아무런 생산수단을 가지지 못한 근로대중은 아무런 권리도 행사하지 못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인민대중은 주권행사에서 제외되고있다. 자본가계급은 자기의 정치적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근로대중에게 그 어떤 자유와 민주주의도 허용하지 않으며 그들을 정치생활에서 극력 배제한다.
뿐만아니라 자본가들은 근로대중을 물질적생산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그들의 로동력을 상품으로밖에 여기지 않는다.
결국 자본주의사회에서 인민대중은 정치의 뒤전에 밀려나 아무런 사회정치적권리도 행사하지 못하고있으며 돈의 노예, 착취의 도구로 전락되여 불안과 절망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있다.
사회주의사회는 자본주의사회와는 달리 착취와 압박에서 해방된 인민대중이 국가정권과 생산수단을 비롯한 사회의 모든것의 주인이 되여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고 역할을 해나가는 가장 선진적인 사회이다.
사회주의의 기초는 인민이며 사회주의의 발전에 가장 절실한 리해관계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떨쳐나서는것도 다름아닌 인민대중이다. 사회에서 인민대중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에 있어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근본적으로 다른것만큼 사회의 발전을 추동하는 방법에서도 사회주의는 절대로 자본주의적방법을 허용할수 없다.
이로부터 사회주의사회에서는 사회의 모든것의 주인으로서의 인민대중의 지위와 역할에 맞게 그들이 자각적으로, 적극적으로 활동해나가도록 한다.
사회주의국가가 인민대중의 의사에 따라 정책을 세우고 그것을 인민대중의 리익에 맞게 관철하는것은 결국 주권을 틀어쥔 인민대중이 국가사회생활에서 주인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도록 하며 창조된 사회적부를 마음껏 향유하면서 행복하게 살아나가도록 하자는데 그 목적이 있다.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마음껏 누리려는것은 인민대중의 본성적요구이며 세기적인 념원이다. 인민대중이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회주의국가가 인민대중의 요구와 념원에 따라 그들에게 참다운 자유와 권리, 행복한 생활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주어야 인민대중을 위하여 충실히 복무하는 참다운 인민의 국가로 될수 있다.
사회주의적민주주의는 사회주의국가가 인민대중에게 국가주권의 주인이 되여 국가관리와 사회정치활동에 자유로이 참가할수 있는 조건을 충분히 보장해주어 그들이 정치적자유와 권리를 충분히 행사할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인민대중의 물질문화생활을 끊임없이 높이는것을 자기 활동의 최고원칙으로 틀어쥐고 인민들의 생활을 책임지고 돌보는 호주로서의 역할을 끊임없이 높여나가고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국가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인민대중에게 참다운 자유와 권리를 전면적으로, 실질적으로 보장해주고있다. 근로자들이 정권의 주인으로 국가관리에 적극 참가하고있으며 국가의 모든 정책이 인민의 의사와 리익에 맞게 실시되고있다.
우리의 모든 근로자들은 성별과 직업, 재산과 지식정도 등에 관계없이 누구나 다같이 선거할 권리와 선거받을 권리를 가지고있으며 사회정치활동의 자유와 권리를 충분히 행사하고있다. 모든 사람들이 정치조직에 망라되여 자기의 사회정치적생명을 빛내이며 값높고 존엄있는 생활을 하고있다. 국가로부터 로동과 휴식의 권리를 보장받고 사회와 자신을 위한 보람찬 로동생활에서 지혜와 재능을 남김없이 발휘하고있다. 누구나 평등하고 고르롭게 살고있으며 국가가 마련해주는 사회주의문명을 마음껏 누리고있다.
우리 인민은 어제도 그러하였지만 오늘도 실생활을 통하여 사회주의적민주주의만이 근로인민대중에게 참다운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주고 문명한 생활을 마련해주는 진정한 민주주의라는것을 깊이 확신하고있다.
우리 공화국의 현실과 자본주의나라들의 실태는 사회주의적민주주의는 참다운 민주주의이고 부르죠아민주주의는 가짜민주주의라는것을 명백히 실증해주고있다.
제국주의자들이 아무리 사회주의적민주주의를 헐뜯으며 온갖 궤변을 다 늘어놓아도 부르죠아민주주의의 반인민성, 자본주의제도의 부패성을 절대로 가리울수 없다.
인류는 사회주의적민주주의가 전면적으로 실시되는 새 세계를 바라고있다. 그것을 실현할수 있는 길은 사회주의에로 나아가는것이다.
사회주의에 인류가 바라는 참다운 민주주의가 있고 인류의 미래가 있다.
박준혁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조선식 사회주의제도(9), 사회주의적민주주의의 본질적우월성 관련기사목록
|
북녘소식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