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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는 미국의 계획된 전쟁

계획적으로 추진된 미제의 조선전쟁준비책동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23/06/26 [07:54]

6.25는 미국의 계획된 전쟁

계획적으로 추진된 미제의 조선전쟁준비책동

프레스아리랑 | 입력 : 2023/06/26 [07:54]

2008624로동신문에 원명욱의 기사 계획적으로 추진된 미제의 조선전쟁준비책동의 소개한다.

 

기사의 아래 내용은 한국전쟁자료로 내용을 이해를 돕기 위해 첨부한다.

 


 

6.25는 미국의 계획된 전쟁

 

 

 

계획적으로 추진된 미제의 조선전쟁준비책동

 

 

 

 

 

지난 조선전쟁을 일으킨 미제의 정체는 그 무엇으로써도 숨길수 없다. 그것은 미제가 남조선을 강점한 첫날부터 조선전쟁도발준비를 다그쳐온 력사적인 사실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미제의 조선전쟁도발준비책동은 계획적이고 음모적이며 강도적인것으로 특징지어진다.

 

미제는 무엇보다도 조선전쟁도발을 위한 침략계획을 미리 은밀한 방법으로 작성, 완성하였다.

 

당시 미국대통령 트루맨은 1946년 전쟁광신자 맥아더를 미극동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이전 미태평양군무력의 대부분으로 극동군을 편성한 후 조선전쟁을 포함한 극동침략계획을 완성하도록 지시하였다. 이에 따라 맥아더사령부에는 G-3, G-2라고 하는 조선전쟁도발을 위한 작전계획과 첩보공작을 연구하는 집단이 무어졌다. 맥아더는 여기에 이전 일본군장성들과 고급장교들로 조직된 력사반KATO기관까지 끌어들였다. 이 집단에 의하여 연구, 완성된 극동침략계획(A, B, C계획)19501월 미합동참모본부에서 최종적으로 토의, 비준되였다.

 

미제는 극동침략계획 A에 준하여 1949년초 북벌군사전략계획을 작성하였다. 이 계획에는 38°선에서의 정면돌파와 때를 같이하여 동서량해안으로 상륙하여 공화국북반부의 허리를 자르고 일거에 평양과 원산을 점령한 다음 압록강, 두만강계선으로 공격성과를 확대할 기도가 반영되여있었다. 미제는 북벌을 위한 모든 지상작전과 해상작전을 미해공군의 지원밑에 수행할것을 예견하였다.

 

미제는 1949년말부터 1950년초에 걸쳐 조선전쟁도발계획을 검토, 수정하고 38°선돌파작전으로 침략전쟁을 개시하기로 확정하였으며 세계제패전략을 반영한 극비문건인 NSC-68계획도 작성하였다. 195042일 미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비준된 NSC-68계획에는 조선전쟁을 도발한 후 미군과 추종국가군대를 투입할데 대한 문제가 반영되여있었다.

 

미제는 조선전쟁에서 주력으로 될 미군무력을 확장하기 위하여 19486월에 미국력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평화시기 징병법을 조작하고 군사예산을 대폭 늘이는 한편 남조선괴뢰군을 조직, 확대하기 위한 책동을 본격적으로 벌렸다.

 

조선전쟁도발직전까지 남조선괴뢰군현역은 륙군 93 000, 공군 3 000, 해군 15 000명으로 확보되였다. 리승만역도는 방대한 예비병력을 확보할데 대한 미제의 지시에 따라 20만명의 청년들을 긁어모아 국방장관이 직접 거느리는 반군사조직인 청년방위대를 편성하였고 중학교이상 학생들에게 군사훈련을 주어 전쟁에 동원리용할 목적으로 학도호국단까지 조직하였다. 이에 대하여 당시 한 서방출판물은 미제의 전쟁도발계획에 따라 우익청년단으로서 군사훈련을 받은 남조선청년들의 수는 125만명에 달하였으며 그 목적은 북조선의 인민군무력에 대한 101의 우위를 보장하는데 있다고 폭로하였다.

 

남조선괴뢰군에 대한 통수권을 장악하는것을 전쟁준비의 중요한 고리로 내세운 미제는 남조선괴뢰군 부대장자리에 미군장교들을 임명하고 군대의 모집과 편성, 교육, 훈련을 직접 틀어쥐고 집행하였다. 미제는 1948825일 리승만매국역도와 공모하여 과도기간 잠정적군사 및 안전에 관한 행정협정을 체결하였고 군대에 대한 지휘권과 남조선군사기지 및 군사시설관할권을 장악하였다.

 

미제의 직접적인 지휘밑에 남조선괴뢰군부는 1, 7, 6, 8보병사단무력을 서부의 옹진으로부터 동부의 강릉에 이르는 38°선에 전개하였으며 이미부터 작전예비대로 장악하고있던 2, 3, 5보병사단들을 대전, 대구, 광주지역으로부터 서울지역으로 진출시켜 개성, 의정부방향으로 기동할 준비를 갖추도록 하였다.

 

미국도서 조선전쟁의 력사1950618일 미국대통령특사 덜레스가 38°선을 시찰했을 때리승만군의 거의 대부분은 벌써 실제적으로 38°선을 따라 배치되여있었다.고 폭로하였다.

 

미제는 남조선괴뢰군을 미국제무기로 무장시키기 위하여 리승만역도에게 거액의 군사원조를 제공하였으며 각종 무기와 전투기술기재, 함선, 비행기들을 대대적으로 공급하였다.

 

미제는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무력침공을 개시하고 여기에 미군과 추종국가무력을 투입하기 위한 전제조건을 미리 타산하였다. 그것은 남조선미군사고문단 단장 로버트가 19501월에 북벌계획은 결정된 문제이다. 이것을 실현하기까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가 침공을 개시한다 할지라도 <정당한 리유>를 가지기 위한 전제조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떠벌인데서 명백히 드러났다.

 

미제는 조선전쟁시 유엔의 간판밑에 미군과 추종국가군대들을 투입하기 위한 계획을 추진시켰다. 유엔담당 미국무차관보 죤 디. 히카슨의 증언에 의하면 미국무성에서는 북조선의 침략을 날조하기 위한 유엔결의초안까지 전쟁전에 작성해놓았다.

 

미제는 전쟁도발에 대비한 군사기지와 시설물들을 꾸리기 위한 책동도 본격적으로 다그쳤다.

 

1946621일 미륙군성은 조선을 저들의 영원한 해외군사기지로 만들데 대한 계획을 발표하고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무력의 대부분을 38°선지역에 접근배치하였으며 여러곳에 공격진지들을 무수히 설치하였다. 38°선연선의 서부지대를 주공격방향으로 정한 미제는 림진강의 남안과 의정부북쪽계선에 배치한 공격진지들에 특별한 관심을 두었다. 항만과 비행장, 철도, 주요도로들도 정비하였으며 새로운 공군기지들을 건설하거나 확장하였다. 그리하여 3~4년사이에 남조선에는 70여개의 미군사기지가 꾸려졌다. 미제는 이 기지들을 어느때나 제 마음대로 리용할수 있도록 리승만역도와 협약까지 맺었다.

 

미제는 조선전쟁에 일본의 군사기지와 군사력을 동원하기 위한 준비를 적극 추진하였다. 19502월에 추가한 해외주둔 미륙군의 유지비 402 000US$중에서 많은 몫을 일본에서의 군사기지건설에 돌린 사실은 미제가 조선전쟁을 앞두고 군사기지건설을 얼마나 중시하였는가를 잘 알수있게 한다. 조선전쟁직전까지 일본에는 612개의 군사기지들과 시설물들이 준비되였다.

 

미제는 이전 일본군대의 잠재력량을 어민협회, 토지개발대, 합작농장등의 간판밑에 비밀리에 보존하였으며 19483신경찰기구에 관한 법령을 조작하고 경찰예비대, 해상보안대, 철도경비대, 항공보안대를 조직편성하고 미국식으로 무장시키며 훈련을 주었다.

 

미제의 조선전쟁도발준비책동에서 가장 특징적인것은 38°선분계연선에서 무장도발을 끊임없이 벌린것이다. 적들은 38°선무장도발을 내전을 위한 좋은 시험대, 적과 직접 접촉함으로써 실전능력을 높이는 연습으로, 북벌군사전략계획을 실현하는데 유리한 공격출발위치를 마련하는 계기로 삼았다. 그 주요목적은 조선전쟁도발의 책임을 우리 공화국에 넘겨씌울수 있는 구실을 미리 만들어놓자는데 있었다. 미제와 남조선괴뢰군부가 1947년부터 전쟁도발직전까지 연 83 800여명의 무장인원을 동원하여 5 150여차에 걸치는 무장도발행위를 감행한것은 이와 관련되여있었다.

 

미제와 리승만역도는 전쟁도발날자가 다가옴에 따라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정탐, 파괴암해작전을 더욱 악랄하게 감행하였다. 적들은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정탐, 파괴암해작전을 위하여 여러 경로를 통하여 수많은 간첩, 파괴암해분자들을 우리 나라에 침투시켜 북침에 유리한 조건을 마련해보려고 책동하였다. 우리 공화국에 대한 정탐자료들은 서울에 있던 조선련락사무소에 집결되고 그를 통해 맥아더사령부 정보국을 거쳐 워싱톤에 보고되였다.

 

미제는 1950년초에 조선전쟁도발계획이 완성되자 곧 일본군국주의자들과 리승만매국일당을 결탁시키기 위한 범죄적책동을 벌리였다. 맥아더는 19502월 중순에 리승만역도를 도꾜에 불러들여 조선전쟁도발과 관련한 11개 조항의 특별지시를 주었다.

 

미제는 이처럼 전쟁도발준비를 빈틈없이 갖춘데 기초하여 1950625일 불의의 북침공격으로 조선침략전쟁을 도발하였다.

 

 

미제의 지난 조선전쟁도발범죄는 절대로 감출수 없다.

 

자료1

미제는 조선전쟁의 도발자(로동신문 2023.6.25.)

 

 

미제가 일요일의 새벽고요를 깨뜨리며 침략의 총포성을 터쳐 우리 인민의 평화로운 생활을 유린한 그때로부터 7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온 나라가 불속에, 고통속에 잠겼던 3, 흙보다도 탄피가 더 밟히던 포연서린 땅에 대한 가슴아픈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6. 25이다.

 

인류사에는 수많은 전쟁들이 기록되여있지만 조선전쟁처럼 가렬처절했던 전쟁은 일찌기 없었다. 전쟁을 도발하고 무고한 인민들을 무참하게 학살한 침략자들의 피비린 죄악의 력사는 절대로 지워지지 않으며 외곡한다고 하여 달라지지도 않는다.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산천이 변하여도 승냥이 미제, 저주로운 양키제국이 강요한 전쟁으로 인해 우리 인민이 입은 상처는 결코 아물지 않는다.

 

 

 

세계제패전략의 필연적산물

 

 

 

조선전쟁은 철저히 미제가 오래전부터 추구해온 강도적인 세계제패전략의 필연적산물이다.

 

2차 세계대전후 세계제국주의의 우두머리로 등장한 미제는 세계제패를 노리면서 그 실현을 위한 십자군원정을 아시아대륙, 구체적으로는 조선반도에서부터 시작하려고 하였다.

 

조선반도는 중국, 쏘련과 직접 련결되여있는 아시아대륙의 관문이였다. 일본과 가까운 위치에 있는것도 미제는 조선침략전쟁에 필요한 전략물자들을 지체없이 보장할수 있는 유리한 조건으로 보았다.

 

19459해방자의 탈을 쓰고 조선반도남부에 기여든 미군은 단순한 강점군이 아니라 전 조선을 무력으로 타고앉기 위한 침략전쟁무력이였다.

 

해방후 미제강점하의 괴뢰지역에서는 인민들의 민주주의적자유와 권리가 무참히 유린당하고 반동정책이 공공연히 실시되고있었다. 반면에 공화국북반부에서는 민주기지가 날로 강화되고있었다. 이러한 현실은 미제를 극도로 불안초조하게 하였다.

 

미제는 저들의 대륙침략야망실현에 장애로 되는 우리 공화국을 없애버리고 지배령역을 전 조선으로 확대하여 아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를 제패하려고 획책하였다. 미고위계층속에서는 조선은 아시아에서 미국이 성공하는가 못하는가 하는것이 걸려있는 사상상의 싸움터이다., 《…조선의 통일과 독립은 미국의 전반적리익에 있어서 중대한 위협으로 되기때문에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된다. 군사점령의 범위도 전 조선으로 넓혀야 한다.는 망발들이 그칠새없이 울려나왔다.

 

조선반도전역을 장악하고 그를 발판으로 하여 침략전쟁을 대륙에로 확대하려는 미제의 흉악한 속심은 A, B, C계획에서 뚜렷이 드러났다. 이 계획은 전쟁을 3단계로 나누고 제1단계(A)는 조선침략전쟁으로부터 시작하며 제2단계(B)에서는 전쟁의 불길을 만주에로 확대하며 마지막단계(C)에서는 우랄까지의 전 씨비리를 점령할것을 예견하였다.

 

조선전쟁도발준비를 주도한 장본인으로서의 미제의 흉악한 정체는 침략전쟁수행의 돌격대적역할을 놀게 될 괴뢰군을 편성하고 급속히 증강시킨것을 통해서도 명백히 알수 있다.

 

군사영어학교에서 길러낸 구일본군과 괴뢰만주군, 장개석국민당군출신의 악질반공분자들로 괴뢰군을 조작한 미제는 조선인민군무력에 비한 101의 우위를 운운하면서 괴뢰군무력을 계단식으로 확대하였다. 괴뢰군의 각 사단에는 물론 련대, 대대에 이르기까지 미군사고문들이 배치되였다. 미제는 1948-1950년기간에 262 700US$를 괴뢰군의 무장장비강화에 들이밀었다. 한편 미제는 극동병기공장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시켜 일본을 조선전쟁에 필요한 병참기지로 전변시켜놓았다. 배상대상으로 지정되였던 800여개의 일본군수공장들이 미군의 관리하에 무기생산에 들어갔다.

 

이처럼 미제는 계획적인 타산밑에 전쟁준비를 면밀히 다그쳤다.

 

 

 

침략전쟁의 서막-무장도발

 

 

 

미제는 괴뢰들로 하여금 38선일대에서 끊임없는 무장도발을 감행하게 하였다. 그 목적은 침략전쟁을 일으킬수 있는 구실을 마련하는 한편 인민군대의 전투력을 타진하고 괴뢰군의 실전능력을 키워주려는데 있었다. 미군사고문단 단장 로버트가 괴뢰륙군 사단장회의에서 38선이북지역에 대한 많은 공격이 자기의 명령에 의해 수행되였다고 떠벌인것만 보아도 무장도발의 직접적인 조직자, 지휘자가 미제였다는것을 잘 알수 있다.

 

미제의 사촉하에 괴뢰들은 1949년 한해동안에만도 2 617차례, 195011일부터 624일사이에는 1 147차례의 무장도발사건을 일으켰다. 서방의 출판물들은 이를 38선일대에서의 작은 전쟁으로 표현하였다.

 

조선전쟁과 관련한 미제의 초기계획은 38선에서의 정면돌파와 배합하여 동서해안에서 상륙작전을 벌려 공화국북반부의 허리를 자른 다음 압록강, 두만강계선으로 공격성과를 확대하는것이였다. 그후 이 계획은 38선돌파에 모든 력량을 집중하며 미공군과 해군이 전쟁 첫날부터 괴뢰군을 지원하고 미륙군의 4개 사단을 조선반도로 급히 진입시키는것으로 수정되였다.

 

미국회에서는 미국식무기로 무장하고 미국장교들에 의하여 훈련된 10만여명의 남조선군대는 모든 준비를 끝마치였으며 언제든지 전쟁을 개시할수 있다.는 망발들이 공공연히 울려나왔다.

 

2계단 전쟁론에 따라 미제는 38선일대에 괴뢰군 5개 사단, 서울부근에 작전예비대 3개 사단을 배치하였다. 괴뢰군 총력량의 70%이상이 완전한 공격태세로 넘어갔다.

 

1950638선일대의 괴뢰군진지들에 대한 시찰놀음을 벌려놓은 미국무성 고문 덜레스는 전쟁준비정형을 최종점검한 후 북조선에서 먼저 침입하였다는 역선전과 동시에 북조선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라.는 지령을 주었다.

 

때를 같이하여 미국방장관, 미합동참모본부 의장이 도꾜에 나타났다.

 

명분은 대일강화조약문제였으나 그것은 한갖 기만에 불과하고 진짜목적은 조선전쟁에 미극동군부대들을 투입하는 문제를 결정하고 전투준비태세를 현지에서 검토하는것이였다.

 

 

 

가리울수 없는 전쟁방화자의 정체

 

 

 

불의의 침공을 앞두고 상대방을 기만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킬 의사가 없는듯이 아닌보살하는것은 제국주의침략자들의 상투적수법이다. 쏘련을 침공한 히틀러도배가 그러했고 불의적인 진주만기습으로 태평양전쟁을 도발한 일제가 또한 그러했다.

 

미제는 19501월 괴뢰지역이 저들의 방위선밖에 있다는 기만적인 극동방위선에 관한 성명을 발표하였다. 전쟁상인 덜레스도 기자회견석상에서 남조선이 만일 침략을 받게 되였을 때 미국이 전쟁에 뛰여드는것에 대해서는 서약할수 없다. 이것은 명백한 일이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미제가 괴뢰들에 대한 무관심성을 공개적으로 표방한것은 전쟁도발자의 정체를 감추기 위한 연막이였다. 미제는 비밀리에 조선전쟁을 예견한 특별행동계획을 작성하고 미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정식 비준하였다.

 

미제가 조선전쟁도발날자를 625일로 택한데는 교활한 음모가 깔려있었다. 그것은 미군사고문단 단장 로버트의 실토에 의해 드러났다.

 

로버트는 미국이 625일을 택하게 되는가?하는 리유를 밝히면서 25일은 일요일이라는것, 미국이나 남조선은 일요일을 안식일로 정하고있으므로 미국이나 남조선이 일요일에 전쟁을 개시하였다는것을 믿을 사람은 하나도 없을것이라는것 다시말하여 미국이나 남조선이 전쟁을 먼저 일으키지 않았다는것을 사람들이 믿게 하기 위해서라고 뇌까렸다.

 

조선전쟁도발의 방법과 절차, 날자까지 확정한 미제는 불의성을 보장하는것과 함께 도발의 책임을 우리 공화국에 넘겨씌우기 위해 전례없는 기만, 위장공세를 맹렬히 벌리였다.

 

리승만도당에게 북진나발을 중지하고 남침가능성이 박두했다는 인상을 세계에 류포시키라는 지령을 준것이 그중의 하나이다. 북진에 대하여 그토록 요란스럽게 떠들어대던 괴뢰들은 상전의 지령에 따라 5, 6월위기설남침위험에 대하여 고아대기 시작하였다. 리승만역도와 괴뢰국방부 장관은 련달아 기자회견을 벌려놓고 곧 내란이 시작될것이라느니, 북조선군이 대부대로 38°선으로 이동중에 있으며 북으로부터의 침략의 위험이 박두하고있다.느니 하는 모략나발을 불어댔다.

 

미제와 괴뢰들은 전쟁도발직전인 624일 비상계엄령이 해제되여 괴뢰군의 3분의 2외출하였으며 괴뢰륙군구락부에서 진행된 무도회38°선일대의 고위장교들까지 참가하였다는 허위보도를 날리게 하였다.

 

조선전쟁도발을 주도한 미국대통령 트루맨은 1950624일 가족과 함께 주말휴식차로 미주리주의 자기 고향으로 떠났다고 광고하였으며 미국무장관도 같은 내용의 연극을 놀았다. 괴뢰지역에 있던 미군의 고위장교들도 미국본토와 일본 도꾜로 려행하는 광대극을 펼치였다.

 

이처럼 면밀한 준비밑에 미제는 1950625일 새벽 불의에 무력침공을 개시하였다. 삼천리강토가 불속에 잠겨 맑은 아침의 나라로 불리우던 이 땅의 청신한 공기가 숨쉬기조차 가쁜 매연으로 화하였다.

 

* *

 

2차 세계대전후 가장 치렬하였던 이 3년간의 전쟁은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존엄을 고수하는가 아니면 미제의 식민지노예가 되는가 하는 판가리싸움, 삶과 죽음, 사랑과 증오가 엇갈린 생사존망의 대결전이였다. 뼈를 깎고 살을 저미는 참기 어려운 아픔과 시련이였지만 우리 인민은 그 모든것을 딛고 일떠섰으며 불사신의 영웅적인 투쟁으로 원쑤들에게 무리죽음을 안기고 미제의 강대성의 신화를 산산이 깨버렸다. 인디안들을 기름진 땅에서 내쫓고 뻐젓이 주인이 된 때로부터 다른 나라들을 끊임없이 침략하고 략탈하면서 살찌고 오만해진 미제식인종들에게 력사상 처음으로 자주적인민의 힘이 과연 어떤것인가를 톡톡히 가르쳐주었다.

 

그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다.

 

백년이 가도 일떠서지 못할것이라고 호언장담하던 원쑤들이 보란듯이 우리 조국은 세월을 주름잡아 질주해왔고 실로 가슴벅찬 전변을 이룩하였다. 우리 인민은 평화롭고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있다.

 

하지만 이 땅의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모든것을 파괴한 불구대천의 원쑤 미제의 죄악을 우리는 절대로 잊지 않는다. 영원히 잊지 않을것이다.

 

 

자료2

조선전쟁을 일으킨 미제의 진의도

 

 

 

 

 

미제가 우리 조국땅에서 침략전쟁을 도발한 때로부터 7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침략전쟁을 도발한 미제는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강요하였으며 미제의 천인공노할 야수적만행과 전쟁범죄행위는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영원히 지울수 없는 상처를 남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죄악의 력사를 반성하기는커녕 조선전쟁도발의 책임을 우리 공화국에 넘겨씌우고 저들의 전쟁범죄를 정당화하려고 갖은 술책을 다 쓰고있다. 그러나 미국이 제아무리 발악해도 력사의 진실은 가리울수 없으며 미제야말로 조선전쟁의 도발자, 주범이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그러면 미제가 조선전쟁을 일으킨 진의도는 과연 무엇인가.

 

미제가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직접적인 무력침공을 감행한것은 다만 조선을 강점하고 조선인민을 저들의 식민지노예로 만들려는데만 목적이 있는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공화국을 요람기에 압살하여 전조선을 저들의 식민지로 만들고 이를 발판으로 이전 쏘련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나라들을 침략하며 나아가서 전세계를 제패하려는데 있었다.

 

 

 

1950년대 미제가 감행한 조선전쟁은 우리 나라를 강점하고 조선반도를 군사전략적거점으로 하여 아시아를 침략하며 나아가서 세계를 정복하려는 흉악한 목적으로부터 출발한 침략전쟁이였다.

 

미제는 세계제패야망을 실현함에 있어서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나라를 그 첫째가는 대상으로 삼았다.

 

미제가 새로운 세계대전을 위해 조선에서부터 전쟁을 도발하기로 한것은 조선반도의 군사전략적위치와 관련되였다.

 

 

 

조선반도는 대륙과 잇닿아있고 세면이 바다로 둘러싸여있는것으로 하여 중국과 이전 쏘련으로 통하는 관문이고 동시에 일본과 가까이에 있다. 때문에 미제는 조선반도를 동북아시아의 그 어느 지역에도 군사적타격을 가할수 있는 전략적요충지, 대륙에로의 건늠다리, 동북아시아의 전초선으로 보았다. 또한 조선반도는 중국과 이전 쏘련의 철도망들과 련결된 조선의 철도와 항만들을 리용하여 군대와 전쟁물자들을 수송할수 있는 전략적교통로였다.

 

 

 

한편 우리 나라에 침략의 마수를 뻗쳐온 미제는 일제의 패망과 함께 남조선을 가로타고앉은 그것을 조선전쟁도발의 유리한 조건으로 여기였다. 해방이후 공화국북반부에서 쏘련군대가 완전히 철수하자 이것도 우리 나라를 반대하는 전쟁을 도발할수 있는 좋은 공간으로 된다고 보았다. 바로 이런데로부터 미제는 조선전쟁을 도발하였던것이다.

 

 

 

조선전쟁이 미제가 세계제패야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감행한 침략전쟁이였다는것은 미제가 비밀리에 작성한 극동침략계획인 A, B, C계획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이 계획의 1단계는 미군과 남조선괴뢰군으로 조선전쟁을 시작하며 2단계는 일본군과 장개석군대까지 참가시켜 전쟁을 만주에로 확대하며 3단계는 쏘련의 우랄까지의 전 씨비리를 점령하는것으로 되여있었다. 이것은 미제가 조선전쟁을 중국, 쏘련으로 확대하여 새로운 세계대전을 도발하려 하였다는 뚜렷한 증거로 된다.

 

 

 

다음으로 심각한 세계자본주의의 전반적위기 특히 아시아에서 급속히 무너지기 시작한 저들의 식민지체계의 위기를 수습하려는데 있었다.

 

조선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이후 미제가 급속히 장성하는 사회주의와 민족해방운동을 말살하고 저들의 식민지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침략정책의 직접적결과였다.

 

2차 세계대전후 여러 나라들이 사회주의길에 들어서고 제국주의의 지배와 예속밑에 있던 많은 나라들에서 민족해방운동이 강화되여 세계반제자주력량은 급속히 장성강화되였다.

 

 

 

특히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새 사회건설을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에서 이룩되고있는 눈부신 성과들은 다른 나라들에 대한 미제의 식민지통치를 밑뿌리부터 뒤흔들어놓았으며 자주성을 위하여 투쟁하는 세계인민들에게 커다란 힘과 용기를 안겨주었다.

 

 

 

이러한 현실은 제국주의의 우두머리인 미제에게 있어서 심대한 타격으로 되지 않을수 없었다.

 

 

 

그것은 만일 이러한 사태발전을 그대로 둔다면 남조선에서의 미제의 식민지통치는 가까운 앞날에 종말을 고하게 될것이며 이것은 곧 다른 나라와 지역들에서의 저들의 식민지통치체계의 총파산을 의미하는것이기때문이였다.

 

미제는 이러한 위기로부터의 출로를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하여온 조선전쟁도발에서 찾았던것이다.

 

 

 

광범한 국제사회계가 조선전쟁은 다름아닌 미제에 의해 감행되였으며 침략자로서의 미제의 더러운 정체는 절대로 가리울수 없다고 평하면서 지금에 와서 전쟁히스테리를 진정시킨다는것은 어렵게 되였다.(미국잡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1948814), 우리는 우리의 력사의 전기간을 통하여 이 전쟁이 시작될 때처럼 그러한 정도로 준비되여있은 례를 이때까지의 그 어떤 전쟁에서도 찾아볼수 없다.(미국잡지 라이프19508월호), 오늘에 와서 모든 사실들을 종합해본다면 미국이 이 전쟁(조선전쟁)을 벌써 제2차 세계대전종결직후부터 준비해왔다는것은 의심할바 없다.(프랑스신문 꽁바1953729일부)고 하였다.

 

 

 

이처럼 미제는 제2차 세계대전후 저들의 군사경제적우세에 토대하여 전세계를 정복하고 세계적판도에서 저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식민지통치질서를 확립하기 위하여 조선에서 침략전쟁을 도발한 우리 인민의 철천지원쑤이다.

 

 

 

미제의 세계제패야망은 새세기에 들어선 오늘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력사적으로 반공화국적대시정책을 실시하여온 미제는 지금 이 시각도 남조선괴뢰들과 야합하여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새 전쟁도발책동에 미쳐날뛰고있다.

 

 

 

미제는 남조선괴뢰패당과 년초부터 각종 군사연습을 벌려놓으며 조선반도의 긴장과 대결을 폭발전야로 격화시키고있다.

 

얼마전에 미국과 남조선괴뢰패당들이 군사분계선과 가까운 지역에서 사상최대규모의 련합합동화력격멸훈련이라는것을 또다시 벌려놓고 광란적인 대결광기를 부린것은 미국과 남조선괴뢰패당들의 반공화국대결광증이 어느 지경에 이르렀는가를 보여주는 생동한 실례로 된다.

 

미제의 대조선정책의 본질은 대결이며 전쟁이다. 그것은 미제의 야만적인 생존방식, 극악한 본성과 관련된다.

 

힘이 약하고 순한 대상일수록 더 악착스럽게 덮쳐먹는 승냥이처럼 약육강식을 기질로 타고난것이 미제이다.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자원과 재부를 략탈해야 생존할수 있고 국제정세를 긴장격화시켜야 지배령역을 확대하고 패권을 유지할수 있다는것이 바로 이 악의 제국이다.

 

 

 

그러나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은 오산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공화국은 미국의 침략전쟁에 보병총으로 대항하던 70여년전의 청소한 국가가 아니며 우리 인민은 미제의 침략적기질을 너무도 잘 알고 적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를 고난과 시련속에서 체득하고 억세여진 강국의 인민이다.

 

 

 

미제는 지난 조선전쟁에서 쓰디쓴 대참패를 당한 력사의 교훈을 절대로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자료3

한국전쟁자료

 

< 6.25전쟁 당시 북한을 공격하기 위해 기동하는 미국 항공모함 전단, 이런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미국을 상대로 북이 먼저 전쟁을 계획했다고 보기에는 여러가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북은 당시 전쟁 없이도 얼마든지 평화적인 남북통일을 확신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

 

 

 

24일 북한의 노동신문은 논평을 통해 6.25는 미국에 의해 치밀하게 계획되고 도발된 전쟁이라고 주장했다.(24일 연합뉴스 보도 참조)

 

노동 신문은 계획적으로 추진된 미제의 조선전쟁 준비책동제목의 글에서 당시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1946년 전쟁광신자 맥아더를 미 극동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이전 미 태평양군 무력의 대부분으로 극동군을 편성한 후 조선전쟁을 포함한 극동침략계획을 완성하도록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신문은 미제는 1949년말부터 1950년초에 걸쳐 조선전쟁 도발계획을 검토, 수정하고 38선 돌파작전으로 침략전쟁을 개시하기로 확정하고 세계제패전략을 반영한 극비문건인 'NSC-68'계획도 작성했다“195042일 미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비준된 이 계획에는 조선전쟁을 도발한 후 미군과 추종국가 군대를 투입할 데 대한 문제가 반영되어 있었다는 내용도 공개하였다.

 

북은 예전부터 전쟁당시 인민군이 단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는 바람에 미국과 이승만 정권이 미처 극비문서를 파기하거나 빼돌리지 못한 채 도주했기 때문에 관련 문서와 침략계획을 화살표로 표시한 북침계획지도 등을 확보할 수 있었다며 그 보고서와 지도 등을 공개해왔다.

이번 노동신문 논평에서도 그런 자료를 거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논평은 그러면서 미제의 조선전쟁 도발 준비책동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38선 분계연선에서 무장도발을 끊임없이 벌인 것이라며 그 주요목적은 조선전쟁 도발의 책임을 우리 공화국에 넘겨씌울수 있는 구실을 미리 만들어 놓자는데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신문은 미제는 1950년초에 조선전쟁 도발계획이 완성되자 곧 일본 군국주의자들 이승만 일당을 결탁시키기 위한 범죄적 책동을 벌여 맥아더는 19502월 중순에 이승만 역도를 도쿄에 불러들여 조선전쟁 도발과 관련한 11개 조항의 특별지시를 주었다미제는 이처럼 전쟁도발준비를 빈틈없이 갖춘데 기초해 1950625일 불의의 북침공격으로 조선침략전쟁을 도발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여러 남측의 역사학자들도 미국은 한국전쟁 당시 한국의 지리를 잘 알고 있는 과거 우리나라를 침략했던 일본 군인들을 길잡이로 앞세워 북을 공격하는데 이용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 직접적인 도움이 아니더라도 일본은 북한을 공격하기 위한 주요 병참기지로써 고장난 미군 전투기 등의 여러 장비를 수리하고 또 많은 전쟁 물자를 생산해서 미군에게 대주었다는 것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것으로 일본은 경제회생의 기회를 맞이하기도 했다. 우리민족의 피를 먹고 경제를 세운 것이다.

그래서 북한은 일본군대에서 근무했던 친일파 국군 장교가 지휘하는 국군과 미국 그리고 그 미국을 돕는 일본과 진행한 전쟁이기 때문에 6.25의 본질적 성격은 남과 북의 내전이 아니라 외세와 우리민족의 전쟁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그래서 6.25의 이름도 조국해방전쟁이라고 불러오고 있다.

 

물론 북에서도 6.25일 새벽 김일성 주석의 반돌격 명령에 의해 전격적으로 남쪽으로 밀고 내려온 점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북은 그 전부터 38선을 경계로 끊임없는 교전이 일어나고 있었으며 625일 미국이 남측의 국군을 동원하여 전 전선에서 전격적으로 북을 공격해들어 가자 북도 모든 것을 전쟁승리에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전시체제를 선포한 후 반돌격에 나서 어쩔 수 없이 전격적으로 남측으로 밀고 내려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실, 당시 남북제정당연석회의 등이 평양에서 열리면서 남한의 반공주의자의 상징이었던 백범 김구 선생도 김일성 주석과 직접 만나 손을 잡고 조국의 통일을 합의하는 등 골수 친일파를 제외한 남측의 대다수 정치인들과 국민들이 북과 손을 잡고 평화적인 통일을 할 것을 원했기에 전쟁이 없었다면 오히려 김일성 주석이 원하는 방식으로 통일을 이룰 수 있었기 때문에 사실 북이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은 사실 잘 납득이 되지 않는 점이 많다.

 

특히 당시 미군정이 조사한 설문조사를 보면 남측 국민들의 대다수가 사회주의 동경하였으며 특히 친일파 재산을 무상으로 몰수해서 땅이 없는 백성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준 북의 정책은 남측민중들에게서도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으며 항일명장으로 남측에까지 소문이 파다하게 나 있던 김일성 주석에 대한 인기 등을 감안했을 때 사실 북에서 통일을 위해 무리하게 전쟁을 선택할 이유가 있었는지 정말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전쟁은 미국이 가장 원했던 바였다.

당시 2차 대전 이후 소비가 되지 않고 쌓여가던 무기를 소모해야할 필요가 있었으며 가만히 두고 있으면 분명히 남과 북은 통일을 이룰 것이며 그렇게 될 경우 미국은 사회주의 저지선을 일본과 필리핀 라인으로 후퇴시켜야 하고 그럴 경우 휴전선에서 막는 것에 비해 엄청난 비용과 위험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시대상황만 놓고 본다면 전쟁만 나 준다면 미국에게 더없이 좋은 상황이 당시 6.25를 전후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어째든 북이 6.25을 맞이하여 이런 주장을 발표한 것은 결국 6.25라는 아픈 과거가 남과 북의 갈등과 원한의 근원이 될 수 없다는 주장도 담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 북은 6.25당시 어쩔 수 없이 국군과 싸우기는 했지만 그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북이 주적으로 상대했던 대상은 미국과 일본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기 때문에 이제 남과 북은 과거의 아픔을 덮고 이제 남과 북의 새로운 화합과 통일의 길을 열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설령 본질적으로 6,25가 남과 북의 대결이었다고 할지라도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는 이제 과거를 잊고 새출발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미국도 남북전쟁을 했지만 그것 때문에 미국의 남쪽과 북쪽 사람들이 서로 원수가 되지는 않았다.

어느 나라나 분열의 아픔이 있었고 또 통일을 이루는 과정에 갈등과 대립도 있었지만 일단 통일을 이루면 과거를 묻고 새로운 화합과 출발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제 우리 민족도 그렇게 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나 아직 완전히 결론이 난 것이 아니기는 하지만 6.25는 외세가 개입했다는 흔적이 많은 전쟁이 아닌가.

그렇다면 서로 책임을 묻기보다는 서로를 감싸주고 민족의 화합과 통일을 도모하는 것이 더 미래지향적인 자세일 것이다.

더군다나 이제 북한과 미국이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수교까지도 맺겠다고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일본도 북과 수교를 위해 거액의 배상금까지 싸들고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이제는 남과 북이 과거를 묻고 손을 잡아야 할 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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