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속명절의 형성과 특징에 대한 연구 (1)
“우리 민족의 우수한 전통을 빛내여 나가도록하기 위한 사업도 잘하여야 합니다.”라고 김정일 동지는 말하였다.
역사적으로 형성되고 전통적으로 계승되여 오는 민속명절에는 해당 민족의 고유한 문화전통과 생활풍습이 집중적으로 반영되였으며 그 나라 인민의 민족성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조선에서 민속명절은 오랜 역사적 기간 우리 인민의 민족적 감정과 생활풍습을 반영한 명절의식, 명절옷차림, 명절음식, 민속놀이와 같은 것을 기본내용으로 하면서 고유한 명절로 전해져왔으며 그 전제는 원시사회의 신석기시대에 마련되였다.
조선민속명절형성의 전제가 신석기시대에 마련되였다고 하는 것은 첫째로, 신석기시대에 핏줄과 문화의 공통성에 기초한 조선옛유형사람의 주민집단이 형성되였기 때문이다.
민속명절은 일정한 주민집단을 단위로 하여 생겨나는 것인 것만큼 그것을 창조할 수 있는 주민집단의 형성은 민속명절형성의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으로 된다.
신석기시대에 정착생활을 하면서 농업생산 활동을 진행하여온 우리 선조들은 하나의 핏줄과 문화의 공통성에 기초한 공고한 집단으로 존재하면서 생활하여왔다.
핏줄이 같은 주민집단의 형성과 함께 해당 지역 사람들의 문화적공통성도 조선옛유형사람들로 이루어진 주민집단의 형성을 더욱 공고히 하였으며 이것은 곧 민속명절형성의 전제조건을 마련하는데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집 자리와 노동도구, 질그릇 갖춤새 등의 여러 측면에서 이웃주민집단들과 구별되는 고유한 문화를 창조하고 발전시켜왔다. 이 과정에 조선민속명절형성의 사회역사적전제가 점차 마련되여 갔으며 조선옛유형사람들은 핏줄과 문화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다른 주민집단들과 구별되는 고유한 생활문화를 가지게 되였다.
조선민속명절형성의 전제가 신석기시대에 마련되였다고 하는 것은 둘째로, 신석기시대에 조선옛유형사람들이 조선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의 넓은 지역에서 원시농업을 진행하면서 정착하여 생활하였기 때문이다.
민속명절은 생산활동과 밀접히 연관되여 있으며 생산활동이 무엇인가에 따라 명절풍습의 내용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게 된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조선민족의 명절 날자들과 명절의례, 명절음식과 민속놀이를 비롯한 명절풍습들은 대부분 농업생산 활동과 결부되여 있는 것이며 조선의 자연기후조건도 반영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석기시대에 농사를 기본생산 활동으로 하여온 조선옛유형사람들의 생산활동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적 특성이 고려된 공정별 농사방법이 적용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이로부터 당시 사람들은 노동생활과 휴식을 밀접히 결합시킬 수 있는 날들에 집단적 성격을 띤 의례와 자기들의 감정, 정서에 맞는 놀이들을 진행하면서 즐기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 조선옛유형사람들은 농사의 영농공정에 따라 일하면서 휴식과 즐거운 놀이를 배합하였을 것이며 이것이 해마다 반복되여 진행되는 과정에 명절풍습이 형성되게 되는 사회력사적전제가 마련되였던 것이다.
조선민속명절형성의 전제가 신석기시대에 마련되였다고 하는 것은 셋째로, 당시 조선옛류형사람들이 농업생산 활동에 필요한 천문기상지식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민속명절이 생산활동과 함께 계절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만큼 당시 사람들이 천문기상에 대한 지식을 소유하는 것은 민속명절형성의 주요한 전제조건으로 된다.
사람들은 초기에 자연현상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였으므로 우뢰나 번개, 눈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며 계절이 바뀌는 것과 같은 현상에 대하여 신비롭고 두렵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자연현상을 관찰하고 천문기상현상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능력이 높아짐에 따라 이것을 농업생산을 발전시키기 위한데 이용하게 되였고 그 과정에 명절풍습의 전제가 마련되여 나갔다.
조선옛류형사람들이 천문지식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은 단군조선시기 고인돌무덤의 별자리에 있는 선행한 신석기 및 청동기시대의 별그림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알려진 바와 같이 단군조선시기의 유적인 고인돌무덤들 가운데는 그 뚜껑돌 웃면에 천문도가 새겨진 것이 매우 많은데 그 수는 평양지방에 있는 200여기를 포함하여 근 300여기나 된다. 이것은 당시의 높은 천문학발전수준과 함께 그에 대한 연구가 광범하게 진행되였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신석기 및 청동기시대 집자리들에서 나온 유물들 가운데서는 단군조선시기의 이러한 발전된 석각천문도와 유사한 것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것이 그대로 천문기상지식에 기초한 합리적인 생산활동의 보장에 기여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평안남도 증산군 룡덕리 신석기시대 집자리에서 발굴된 갈돌판뒤면에 새겨진 홈구멍들은 그 배렬상태가 목동별자리를 연상케 하는데 이것은 단군조선초기의 무덤형식인 황해남도 은천군 정동리 우녕동 4-2호고인돌무덤(오덕형 2형식)의 뚜껑돌에 새겨진 홈구멍의 배렬상태들을 대각(목동별자리)별자리로 확인한 것과 유사하다. 신석기시대 유적인 라선시 서포항유적 4기층에서 나온 뼈제품에도 우의 고인돌무덤에 새겨진 것과 같은 목동별자리를 형상한 7개의 점이 배열되여 있다.
원시시대의 별자리그림은 신석기시대 유물에서만 아니라 청동기시대 유물들에서도 나타났다.
자강도 강계시 공귀리유적 청동기시대 4호집자리유적에서 나온 발화대석의 홈구멍들은 북두칠성과 랑위(머리칼)별자리모양을 방불케 하는데 이것은 은천군 정동리 오리골 1-2호고인돌무덤에 새겨진 북두칠성이나 랑위(머리칼)별자리와 류사하다.
이와 같이 원시공동체시기 유물들에서 나타난 별자리들은 단군조선시기의 고인돌무덤뚜껑돌우에 표시된 별자리모양과 매우 류사하다.
이러한 것은 고인돌무덤에 별자리를 새기기 이전시기인 신석기 및 청동기시대에 조선옛류형사람들이 상당한 천문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며 이것은 곧 그들에게 자연현상을 비교적 정확히 인식하고 생산활동에 유리하게 이용해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하였으며 조선에서 민속명절형성의 주요한 전제조건의 하나로 되게 하였다.
이와 같이 조선에서는 신석기시대에 민속명절이 형성될 수 있는 사회력사적전제조건들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져있었다. (계속)
김일성종합대학 박사 부교수 조광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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