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은 ‘선한 사마리아의 여인’인가?
한국에서 한때 나는 친척의 간곡한 부탁으로 주말에는 서울 근교에 위치한 고아원에 가서 옷가지, 초콜릿, 고기 통조림, 장난감 등 아동을 위한 물품을 보내오는 미국의 자선 단체와 개인에게 영어로 감사 편지를 대신 써 주었었다. 그때 그런 고급 식료품은 미군 부대에서 몰래 흘러나와 숨겨 유통되던 시절이었다.
직업도 아닌 이 일이 나에게는 고역이었다. 편지에 고맙다는 공식적인 말 몇 마디로 끝낼 수는 없고, 적당한 길이의 눈물 나는 ‘소설’을 매번 바꿔가며 써야 하는 게 쉽지 않았다. 약방의 감초처럼 써먹은 문구 하나는 ‘선한 사마리아의 여인(The Good Samaritans,누가복음 10장, 30~35절)’의 비유였다.
보내온 물품 가운데는 할머니들이 손수 짜 보내는 편물들도 있었다. 지금 생각건대 이들 자선 모임을 만든 할머니들은 생활 습관이 된 작은 기부와 봉사 정신에 따라 한 것이고 부자들은 아닌 게 틀림없다.
이런 작은 정성으로부터 미국 정부의 대대적인 원조 물자, 미국인 선교사와 자선 단체들의 푼푼한 씀씀이, 거기다가 해방 후 쏟아져 들어 온 할리우드 영화의 환상적인 장면을 보면서 대부분 우리는 미국은 풍요한 나라고, 미국인은 모두 부자이며 매우 온정적이라는 이미지를 머릿속에 각인한 게 사실이다.
해방 후 해외로 나온 미국인 외교관, 선교사, 국무성 직원과 저명인사들이 호화스럽게 지낼 수 있던 것은 당시 전 세계의 달러를 거의 거머쥔 미국 정부가 국익을 위하여 벌인 선심 외교정책의 하나였다. 또 재산을 자손에게 물려주려는 집념이 우리 같지 않은 일부 갑부 미국인들의 기부 문화에 힘입어 민간의 돈이 장학재단이나 종교단체를 비롯한 각종 공공단체를 통해 한국 같은 어려운 나라에 헤프게 흘러 들어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빈곤 국가?
그러나 지나고 보니 대부분 개인으로서의 백인들은 그렇게 푼푼하지 않으며 우리보다 인색하고 타산적이다. 거래는 가락가락 따져서 하는 계약 중심의 이익사회인 게젤샤프트(Gesellshaft, 우리 대학 시절만 해도 일제 때 대학을 다닌 교수들이 잘 쓴 개념으로 공동사회 게마인샤프트Gemeinshaft와 대칭되는 독일어 학술 개념)로 인간관계가 느슨하고 씀씀이가 헤프다면 오히려 비정상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 자신도 미국을 오랫동안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미국 땅을 처음 밟은 70년대 초, 뉴욕 케네디국제공항에 내려 시내로 들어오면서 을씨년스러운 고속도로 주변과 여기저기 초췌한 모습으로 벤치에 앉아 있는 노인들을 보고 내심 크게 놀랐었다.
나중에 학교 강의실 토론에서 미국사회의 No1 이슈로 빈곤(Poverty)이 거론되는 것을 보고 이게 어떻게 된 건가 한 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건 지상의 최고 부자 미국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문화충격의 순간이었다. 미국을 처음 방문하는 다른 많은 한국인이 그랬을 것이다. 지금 미국을 가보면 더하다. 뉴욕에 가보면 돈이 없어 그대로 둔 움푹 패인 길거리를 여기 저기에서 보게 논다.
유색인이 많이 모인 이 대도시의 생활상만을 보고 미국을 논할 수는 없다고 하지만, 부자 나라 미국도 그렇고 다른 서방 선진국 어디를 가도 실용주의와 합리주의 신봉자인 백인들은 생각보다 계산에 철저하고 까다롭다.
물론 그들의 삶 또한 검소하다. 영미사회에는 어떤 물건이 마음에 들었으나 바로 살 여유가 없는 고객을 위한 ‘Lay Buy’라는 상거래 제도가 아직도 남아 있다. 재래 시장에서 인데 물건을 맡겨 놓고 돈을 몇 번으로 나누어 지불하고 난 후 찾아가는 방식이다. 크레딧 카드의 등장과 새로운 거래 관행의 발전으로 이 제도는 그전만큼 활용되자 않지만 백인 가운데 아직도 어려운 서민이 있음 알려주기 충분하다.
영미사회의 대부분 동네 의사들도 고소득자이나 검소하기는 마찬가지다. 욕심 부리지 않고 가정집 건물에 병원을 차려 놓고 일생을 거기에 머무는 사례를 보게 된다. 돈을 좀 벌면 새 건물을 짓거나 구입하여 번화한 거리로 나가는 한인이나 중국 의사들과는 대조적이다,
후하고 통 크기로 말하면 한국인만한 민족도 없다. 백인에 비하면 한국인은 가진 게 없어도 정과 의리와 체면 의식이 강하여 돈을 배짱 있게 쓴다. 외국인, 그중에서도 벽안의 백인에 대하여서라면 더 그렇다. 이 점 백인들은 우리와 정 반대다. 그들은 예의와 매너가 있는 만큼 거기에서 벗어나는 외국인이나 이민자에 대하여는 매정하다.
영미사회는 인종 전시장이라는 말이 실감 나듯, 도시에는 200여 개 민족이 모여 산다. 거기에 가서 여간 좋은 환경에서 지내는 게 아니라면 ‘선한 사마리아의 여인’보다 ‘베니스의 상인’을 만날 확률이 더 높다.
홈스테이의 비화
계산에 철저한 양미인들의 사례로서 한때 유행이었던 유학생들의 홈스테이(민박) 경험에 대하여 써본다..
한국의 홈스테들은 늘 배고프다고 한다. 대부분 식사라는 게 아침에는 우유와 시리얼, 빵 한 조각, 점심은 학교에 가 먹을 샌드위치와 사과 하나 정도가 담긴 도시락, 정식 저녁 식사인 이른바 ‘더운 음식(Hot food)’은 주에 한두 번 소고기 또는 양고기 스테이크이고 그 외는 스파게티류가 보통이다.
냉장고를 맘대로 열어 음식을 꺼내 먹으면 지적받는다. 샤워장은 한번에 10분 이상 쓰지 말고, 밤 10시 이후에는 소등을 하고 히터는 쓰지 않고, 주인집 전화를 쓸 때는 동전함에 돈을 남겨라 등의 엄격한 룰 때문에 잔소리를 듣지 않은 학생은 드물다.
홈스테이 떠나는 날짜가 예정보다 늦어져 하루 이틀 더 묵게 되면 일일이 따져 계산한다. 그간 오래 있었으니 그만두자고 하는 일은 없다. 홈스테이 숙박비가 넉넉하지 않은 게 이유이긴 해도 백인들의 깐깐한 생활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사례다.
넓은 집에 자녀 없이 괜찮게 사는 노부부가 빈방을 세놓을 때도 계산만은 역시 철저하다. 호주에는 카운슬이 운영하는 공공 수영장이 많다. 샤워장 더운물은 3분마다 동전을 넣어야 하는 절약형이 많다.
이런 백인들의 좁쌀 이야기는 과거 한국에서 이들과 지내본 일부 한국인 가정부 가운데서도 나왔었다. 한 여성은 미 8군 소속 문관 집에서 셰프 겸 집을 돌보는 일을 했는데 냉장고에서 계란 한두 개를 꺼내 먹어 경고를 받았다며 혀를 내두르는 것이었다. 직장도 마찬가지. 퇴사를 하면 일한 날짜까지를 따져 잔여 월급을 내준다.
원래 부자인 미국의 대명사는 ‘아메리칸 드림,’ 호주는 ‘럭키 컨트리’였다. 지금은 모두 경제가 어렵다. 하지만 그게 원인의 전부가 아니다. 우리가 백인을 잘 모르고 있었던 게 문제였다.
한국도 점점 닮아 가고 있지만, 영미사회에서 주택 임대는 전세가 아닌 주 단위 사글세(Rent)가 거의 전부고 관리는 부동산 업체가 맡는다. 이들 업체는 법규정과 대개 1년 단위 계약에 따라 입주 시 세입자로 하여금 본드(Bond)라 불리는 일정 금액을 예치케 하는데, 나갈 때 주택 청소, 시설 및 기물 파손에 대한 보상을 챙기기 위한 것이다. 부동산 업자는 자연히 고정 고객인 건물 소유주를 대신해서 떠나는 세입자로부터 한 푼이라도 더 받아 내려고 쫀쫀하게 구는 게 예사다.
영미사회에서 한인들이 가장 흔하게 주민들로부터 원성을 받는 건 주차 위반이다. 특히 동포가 운집하는 한인 교회 주변이 문제다. 교회들은 대부분 기존의 외국인 교회 건물을 임대하여 쓰므로 백인 거주 지역에 산재해 있는데 서울 거리에서 하던 식으로 주차를 한다면 거의 전부 딱지감이며 주민들의 아우성 대상이다. 한국인의 뜨거운 신앙심은 잘 알려져 있으나 같은 기독교 문화권이라고 해서 저들이 너그럽게 봐 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개척자 정신
그리고 그들은 자기 소유의 집 안은 물론, 마당이나 재산에 대한 권리 의식이 놀랄 만큼 강하다. 나는 서울에서 온 일가족과 함께 도시락을 준비해 시드니에서 멀리 떨어진 교외 쪽으로 차를 몰고 나간 일이 있다. 점심때가 되어 길가 잔디밭에 앉아 도시락을 풀기 시작했다.
그러자 집안에서 중년 주부가 뛰어나와 자기 땅을 침입했다고 신경질적으로 쏘아 대는 것이었다. 그 잔디밭은 주택에서 떨어져 있어 공용 땅으로 오인했던 건 내 실수였다. 모처럼 호주를 찾아온 손님에게 이렇게 야박한 호주 백인을 보인다는 게 여간 민망한 게 아니었다. 일부 넓은 주택 정원 입구에는 “Private Property Keep Out(개인 땅이니 들어오지 마세요).”라는 경고 표지판을 세워 놓은 데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이와 같은 저들의 민감한 태도에 대하여 나 나름대로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본다. 첫째는 미국인의 개척자 정신(Frontier spirit)이다. 한때 원주민을 토벌해 가며 광활한 서부를 개척한 미국인의 한때 강인한 도전과 투쟁 정신이다. 이들은 서부 활극에서 볼 수 있는 대로 위기 상황에서 총 쏘기를 밥 먹듯 해야 했다. 지금도 미국에서 잦은 총기난사 사건은 이와 관계가 있다고 본다.
미국과 같지는 않으나 비슷한 식민 과정을 거친 호주와 다른 서방국가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일본 유학생이 길을 잘 못 찾아 남의 집 마당에 실수로 들어갔다가 총 맞아 죽은 사건이 있었다. 조상들로부터 이어받은 습관이 재현된 것이었다. 이 사회에서 남의 집을 찾아갈 때와 우연히 남의 땅을 밟게 될 때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둘째로는 사생활의 본거지인 가정과 그에 속하는 땅에 외부인이 허락 없이 들어온다면 의도와는 관계없이 가택 침입이 되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이 점 백인들은 우리와는 비교가 안 되게 철저하다. 이 사회에서는 부모도 독립한 자녀의 집을 방문할 때는 사전 약속을 한다.
백인 노파를 조심하라
《커튼 뒤에서 엿보는 영국신사》란 책이 나와 있는 것을 남의 글을 읽어 알았다. 몰래 뒤에서 이웃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는 영국인의 습성을 묘사한 것 같다.
영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도 진작 착안한 바지만, 뒤에서 남을 엿보는 영미인이라면 이웃에 사는 호주 노파를 빼놓을 수 없다. 한가하고 남의 일에 관심이 많은 이들은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몰래 살펴보고 있다. 특히 그들과 생활양식이 다른 이민자들이 타깃이다. 이 점 유색 이민자들이 주의할 사항이다.
이런 주민들의 생활 태도에 힘입어 호주에서 대부분의 거리와 마을에는 ‘네이버후드 워치(Neighborhood Watch)’라는 이름으로 좀도둑이나 강도 사건의 경계와 감시를 하던 이웃 간 자율적 상호 협조 체제가 실효적으로 운영 되었었다. 과거 자치 활동으로서 한국에 있었던 방범대 개념과 유사해 보이나 그렇게 조직적은 아닌 관습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 이유로는 첫째 대도시와 근교에 이민자의 대거 유입과 빠른 인구 유동으로 낯선 사람들이 모여 이웃 정서가 과거 같지 않은 사실을 들 수 있다.
둘째로는 네이버후드 워치가 효력을 발휘하자면 제보가 활발해야 하는데 흉악 범죄의 경우는 피의자로부터의 보복이 두려워 그게 잘 안 되고 있다.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경찰은 이웃 주민의 제보를 호소하지만 잘 이루어지지 않는 형국이다. 특히 동족 간의 제보는 배신행위로 여겨지는 소수민족 거주지역에서 그렇다.
백인들은 이웃과의 분쟁 해결을 현장에서 만나 얼굴을 맞대고 하지 않는다. 카운슬이나 감독 기관에 알려 본인에게 경고 편지를 보내게 하든가 사건이 크다면 변호사를 통해 시정하지 않으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경고장을 보낸다. 조용하다고 마음 놓고 있으면 안 된다.
한국인 관점으로 보아서는 매우 야박한 일이지만, 백인 중심 주택가에서는 거의 예외가 없다. 여기 한인들 가운데 인적이 드문 조용한 해변에 나가 전복을 따다가, 또는 허가 없이 낚시를 하다가 걸려 비싼 벌금을 낸 사례가 허다하다. 늘 보이지 않는 제보자가 있던 것이었다. 밤에 남몰래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거나, 어린아이를 학대 또는 집에 홀로 놔두어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하던가, 악취를 내보내거나, 빨랫감을 아파트 베란다에 보기 싫게 널어놓는다든가, 무허가로 건물을 증축을 하거나, 한 집에 너무 많은 인원이 사는 벌집형 주거, 소음, 환경오염 행위 등 모두 밀고 대상이다.
어느 나라든 ‘일찍 자고 일어나는 사람(Morning person)’과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사람(Night person)’이 있다. 대도시 번화가 거주자나 일부 지식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말고는 대부분의 백인들은 우리보다 일찍 잠자리에 든다. 저녁 9시 정도가 된다면 대부분 주택가는 조용해진다. 때문에 밤늦게 떠들거나 텔레비전과 피아노 소리를 크게 내면 금세 불평을 듣게 된다.
그러나 지난 40년간 여기에도 많은 변화가 왔다. 인구 증가와 인종 구성의 변화가 큰 원인이다. 요즘은 베란다에 빨래 널기는 거의 문제가 안 될 만큼 늘어났다. 영미사회의 제3세계화 현상이다.
김삼오 /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전 국립호주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세계한인신문 1월 5일 칼럼에서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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