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가짜뉴스 근절’을 빙자한 ‘표현의 자유 근절’ 방안방송통신위원회는 위헌적인 검열제도 추진 중단해야[논평] ‘가짜뉴스 근절’을 빙자한 ‘표현의 자유 근절’ 방안 - 방송통신위원회는 위헌적인 검열제도 추진 중단해야 -
‘가짜뉴스’를 잡겠다는 정치적 집착이 위헌적인 검열로 치닫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오늘 발표한 ‘가짜뉴스 근절 방안’은 위헌적 요소가 다분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위험이 심각하게 크다.
먼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가짜뉴스’를 처리하겠다는 발상부터 초법적이다. 방통위는 방심위를 통해 ‘가짜뉴스 신고’를 받겠다며 방송과 통신, 매체를 구분하지 않았다. 인터넷 신문, 심지어 인터넷 표현물마저 방심위가 ‘허위 여부’를 판별하여 삭제·차단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그러나 방심위는 단지 허위라는 이유만으로 인터넷 게시물에 조치를 취할 법적 권한이 없고, 인터넷 언론은 방심위 심의대상이 아니다. 이는 정보통신망법, 방통위 설치법 등 법률이 정한 방심위의 직무를 넘어서는 것이다.
“신속 심의 상황을 주요 포털 사업자와 공유해 필요시 사업자의 선제적 조치를 요청하겠다”는 발상 역시 위법적이다. 방심위가 행정처분을 요청하기 위해서는 정해진 절차를 따라 심의를 완료해야 하며, 제재조치를 정하여 방통위에 그 처분을 요청할 수 있을 뿐 사업자에게 ‘선제적 조치’를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은 전혀 없다. 또한, 방심위가 보도, 표현물에 대해 법정 제재를 정하기 위해서는 처분 대상자에게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단지 ‘허위’라는 이유만으로 소명의 기회를 박탈해서는 안 되며, ‘불법정보’가 아닌 표현물을 ‘패스트트랙’으로 급히 처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방통위가 ‘긴급 재난’에 준하는 상황으로 헌법상 독립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의 소관 사항인 선거 관련 내용(“선거 결과에 영향’이라는 문구’)을 슬쩍 끼워 넣은 건 ‘패스트트랙’에 담긴 진짜 속내를 드러낸다. 선거방송, (인터넷) 선거기사 등 언론 보도의 경우에도 선거방송심의위,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 등이 운영되어 긴급 심의가 필요한 규제의 사각지대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허위’(가짜뉴스)를 ‘근절’하겠다는 것 자체가 위헌적인 발상이다. 헌법재판소는 역사적인 ‘미네르바 판결’에서 “허위의 통신 자체가 일반적으로 사회적 해악의 발생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님에도 ‘공익을 해할 목적’과 같은 모호하고 주관적인 요건을 동원하여 이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국가의 일률적이고 후견적인 개입은 그 필요성에 의심이 있다”며 ‘허위사실유포죄’ 조항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린 바 있다.(2008헌바157) 헌재의 판결대로 “어떤 표현이나 정보의 가치 유무, 해악성 유무가 국가에 의하여 1차적으로 재단되어서는 아니 되며, 이는 시민사회의 자기교정기능과 사상과 의견의 경쟁 메커니즘에 맡겨져야 한다”는 게 민주주의의 원리다. 허위라는 그 자체만으로 표현물을 삭제·차단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미네르바를 처벌했던 MB시대 인물이 돌아와 민주주의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 셈이다.
더군다나 방통위는 ‘가짜뉴스’를 ‘근절’하겠다면서 정작 ‘가짜뉴스’가 무엇인지조차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방통위는 가짜뉴스 근절을 위해 앞으로 “국회, 관계부처 및 관계기관과 적극 협조해 ▴가짜뉴스의 정의 및 판단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규제대상, 판단기준조차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선제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헌법이 정한 명확성의 원칙,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한다.
‘가짜뉴스’라는 신고가 접수되(기만 하)면 해당 ‘보도 콘텐츠’에 ‘심의 중’임을 표시하도록 하는 조치 역시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약하는 것이다. 단지 허위라는 의심, 그마저도 권리침해의 당사자가 아닌 불특정 대중의 신고만으로 ‘심의 중’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하는 건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조치는 정치권력 또는 극단적 지지층이 정파적인 목적으로 비판 보도를 공격하는 데 악용될 우려가 매우 크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누구라도 ‘내가 싫어하는 보도’에 ‘가짜뉴스 의심’이라는 꼬리표를 달 수 있게 되고, 공론장의 질서는 파괴될 것이다.
특정 방송사의 팩트체크 검증 시스템을 점검해 긴급하고 심각한 위반행위가 있는 경우 유효기간을 축소한다는 건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제도를 언론통제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이다. 방통위가 앞서 KBS, MBC, JTBC 등에 ‘뉴스타파 인용 보도 경위 및 자체 확인한 사실관계’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청하였는데, 방송법의 근간인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침해하는 것이다. 방송법은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하여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방통위는 특정 보도를 지목해 보도 경위와 취재 자료를 제출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결코 없다. 이러한 위법, 월권에 더하여 재허가 처분에서 불이익을 가하는 것은 방송법을 위반하는 명백한 언론탄압이다.
언론연대가 이미 지적하였듯이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이처럼 위헌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는 건 방송통신위원회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 바로 정치적 사안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립기구로서 현실정치와 거리를 두어야 할 방송통신위원회가 대통령의 명을 받들어 ‘이념전쟁’, ‘진영대결’의 선봉장 노릇을 하려니 월권에 월권을 거듭하는 것이다. 위법, 위헌을 마다하지 않고 극단으로 치닫는 방송통신위원회의 폭주를 그냥 지켜만 봐서는 안 된다. 방통위가 ‘근절’하려는 건 ‘가짜뉴스’가 아닌 ‘언론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권리’이기 때문이다. (끝)
2023년 9월 18일 언론개혁시민연대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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