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성의 소크라테스는 민주정치체제와 무관하게 반역자로 처형되었다

소크라테스를 두고 회자되는 나훈아와 유시민

프레스아리랑 | 입력 : 2020/10/08 [11:19]

 


그것은 바로 소크라테스와 같은 이성, 진리를 추구하는 그런 사람들이 민초의 뜻을 대의(대의제)하여 공익을 위해 정치해줄 것을 바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헛된 바램, 비현실적인 환상 ‘이데올로기’이다.

 

 

/최자영 (전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
 
 
유시민(노무현재단 이사장)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계몽군주에 비유한 데 대해 세간에서 설왕설래하자, 다시 “계몽군주 발언을 가지고 떠드는 사람이 2500년 전에 아테네에 있었으면 소크라테스를 고발했을 사람들”이라는 취지로 되받았다고 한다.
 
또 같은 날 나훈아는 KBS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다시) 나훈아’ 생방송 공연에서 신곡으로 ‘테스형’을 불렀는데, 그 가사가 소크라테스에게 질문하는 내용을 담은 것이란다.
 
그러자 윤평중 한신대 정치철학 교수가  ‘소크라테스 소환하기, 나훈아와 유시민’이란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어용지식인을 자부하는 유시민보다 광대를 자처하는 나훈아가 소크라테스에 훨씬 가깝다”고 평가했단다.(중앙일보, 2020.10.2.) 윤평중은 소크라테스에 대해 ”군중에게 영합하지 않았으며 죽음으로써 지행일치라는 자신의 신념을 지켰고”, 또 “가난과 세속적 평가에 전혀 구애받지 않았고, 세 번 보병으로 참전한 전쟁에서 아군이 세가 불리해서 후퇴할 때도 동료들을 추스려 가장 늦게 물러난 담대한 인간”이었다고 평가했다. 나훈아에 대해서는 “노래에 삶을 바친 장인(匠人)이자 자유인으로 보인다”며 “권력이나 돈 앞에서도 당당”해서 자신의 마음에 든다고 했단다. 
 
 
윤평중이 오해한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와 나훈아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윤평중은 유시민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어용 지식인임을 자부하는 유시민씨와는 달리 소크라테스는 권력에 대한 아부를 경멸했고 오직 진리추구에만 관심이 있었다고 양자를 구분한다. 후자는 당대에 횡행한 궤변과 싸워 정론(正論)을 세우는 데 일생을 바친 사람인데, 살아있는 권력을 결사옹위하기 위해 궤변을 농하는 어용 지식인(유시민을 빗댄 말)이 스스로를 슬쩍 소크라테스에 비유”한다고 비꼬았다.
 
또“‘김정은 계몽군주’설을 옹호하는 유시민은 동료 시민들의 무식과 무지를 개탄하고 스스로는 공부를 너무 많이 한 죄”가 있다고 했으나 소크라테스는 모든 아테네 시민 앞에서 자신의 무지를 고백하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차이점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장안의 지가를 올린 자칭 지식인보다, 광대를 자처하는 한 예인(藝人)이 소크라테스에 훨씬 가깝다는 사실을 확인한다”는 것으로 윤평중은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여기에 윤평중이 크게 오해한 것들이 있다. ‘권력’과 ‘진리’의 개념을 무분별하게 쓴 것이 그러하다. 무엇보다 소크라테스가 살던 당시에는 아부할 권력 자체가 없었다는 점이다. 고대 아테네 민주정치 시민사회는 오늘 근현대 국가의 시민사회와 아주 다른 점이 있는데, 그것을 윤평중은 이해하지 못했다. 
 
또 윤평중은 소크라테스가 추구한 것이 ‘진리’라고 했으나, 무엇이 ‘진리’라는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만일 소크라테스가 진리를 추구한 것이라면, 그를 처형한 아테네 사회는 그 ‘진리’를 추구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소크라테서가 추구한 것이 객관적 ‘진리’인지의 여부는 다시 반성을 해봐야 한다. 적어도 당대인의 눈으로 보아 소크라테스의 사고는 진리가 아니었다. 그는 ‘반역죄’로 처형당했기 때문이다.
 
오늘과 같은 정부권력이 존재하지 않고 자유시민들의 민회가 중심이었던 고대 폴리스 사회에서 반역죄란 주로 사회의 주류를 이룬 관습에 어긋난다는 뜻이다. 소크라테스에게 주어진 혐의는 “젊은이를 타락시킨다, 국가(자유시민의 민회를 중심으로 한 폴리스)의 신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만의 ’다이몬(정령)‘을 도입했다, 부모보다 지혜있는 자를 존중하게 하여 인륜 도덕을 그르친다”는 것 등이었다. 
 
더구나 소크라테스는 민주정치를 지지하지 않는 것으로 오해를 사고 있었다. 별난 그 사고방식도 문제였으나, 당시 ’30인 참주‘의 최고 우두머리였던 크리티아스가 소크라테스의 친척인 동시에 그 제자였다. 30인 참주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아테네와 스파르타 간 약 30년에 걸친 전쟁)이 아테네의 패배로 끝나던 기원전 404-403년, 민주정체가 붕괴되면서 잠시 아테네에 들어섰던 독재(과두)정치 체제였다.  
 
또 윤평중은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무지를 고백했다고 하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형 선고를 받던 마지막 변론의 장에서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인의 자기 오만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중요한 인물로 자신을 평가했다. 이런 그의 태도는 일반적인 피고의 변론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서 법정을 모독하는 행위가 될 정도였다. 더구나 소크라테스 자신은 아테네 시민의 영혼을 교육시켰기 때문에 행정부(프리타네이아) 식당에서 식사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는 주장까지 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인들 앞에서 자신을 무지한 것으로 낮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당하게 항변했고, 오히려 자신은 올바른 교육을 시킨 덕에 아테네 인들로부터 대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까지 주장했다. 윤평중의 말처럼 만일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낮추었더라면, 아마 80표 정도가 유죄쪽이 아니라 무죄 쪽으로 옮겨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그 반대였고, 반감을 사서 그를 고발했던 원고 쪽 승소로 결론이 났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아라‘라고 말한 것도 자신을 포함한 모든 아테네 인들에 대한 경종이었을 뿐, 반드시 다른 사람에 비해 스스로를 낮추는 말인 것은 아니다.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의 형량을 제안한 것은 배심재판관이 아니라 원고측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재판은 501명의 배심재판관들이 맡았고 다른 여느 재판과 같이 2차에 걸쳐 진행되었다. 유무죄를 가르는 1차 재판에서 유죄 281표, 무죄 220표였던 것이, 형량을 선고하는 마지막 2차 재판에서는 유죄 360표, 무죄 141로, 유죄 쪽으로 약 80표 정도 더 늘어났다. 거기에는 소크라테스의 자기 변호, 자신은 오만한 아테네 인을 올바르게 교육시켰다는 자기 주장이 초래한 역효과가 크게 작용했다고 하겠다. 
 
유념할 것은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의 형량을 매긴 것은 501명의 배심 재판관이 아니었던 사실이다. 501명의 시민은 모두가 평등한 자격을 갖추고 있었으므로 오늘 법조계 판사 같은 것이 없었다. 배심재판관의 수가 많고 서로 평등하므로, 재판 절차는 다수결로 결정되며, 그러기 위해서 선택의 대상은 딱 2개로 좁혀져야 한다. 1차 재판은 유죄와 무죄 판결, 2차의 마지막 재판은 형량을 결정하는데, 그 형량은 배심 재판관이 아니라 소송 당사자인 피고와 원고가 각기 제안하는 형량 두 가지를 놓고 다수결로 결정한다. 이런 재판절차에서는 배심재판관이 형량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소크라테스의 형량을 사형으로 제한한 이는 501명의 배심재판관이 아니라, 그를 고발했던 3인(멜레토스, 리콘, 아니토스)의 원고였다.  
 
윤평중은 소크라테스가 “권력에 대한 아부를 경멸”한 것으로 이해했으나, 이는 잘못된 이해이다. 소크라테스 당시 자유시민의 민회가 중심이 된 고대 아테네에서는 오늘 근현대 국가 정부 권력 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 권력에 아부하는 어용 지식인 같은 것이 없었다. 오히려 소크라테스가 비판한 것은 ’자기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오만한 아테네 인에 대한 것이었고, 그런 점에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공부했다고‘ 자평하는 유시민은 소크라테스와 유사한 맥락에 있다. 다른 한편, 나훈아가 소크라테스를 ‘형’으로 부르며 ‘테스형’ 노래를 부른다고 해서 그가 소크라테스 형 인간이 되는 것도 아니다. ‘광대를 자처하는’ 그의 평생은 소크라테스적 이성이 아니고, 오히려 감성을 빼놓고는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윤평중의 소크라테스, 유시민, 나훈아 비평은 이래 저래 다 틀렸다.     
 
 
민주정치가 반드시 이성적으로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소크라테스가 민주정치와 관련하여 대단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가 철학적 사고에서 남다른 시각과 가치관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절대적 가치를 가진다거나 보통 사람들이 반드시 그를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민주정치란 잘나고 별난 사람들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서 엮어가는 것이다. 또 이성이 아니라 욕심이 더덕더덕한 사람들이 잔뜩 모여서 엮어가는 것이라는 말이다. 소크라테스같이 자기 반성적이고 명철하고 이성적인 사람은 가물에 콩 나는 것만큼, 아니 그보다 더 드물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모이기를 기다려서 민주정치를 펴는 것은 불가능하다. 민주정치란 그렇게 욕심에 가득찬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욕심을 조절하여 타협점을 찾는 정치체제이다. 
 
위정자나 민초들 가릴 것 없이 세상사람들은 이런 민주정치의 속성을 흔히들 거꾸로 이해한다.  다 같은 맥락에 있다. 그것은 바로 소크라테스와 같은 이성, 진리를 추구하는 그런 사람들이 민초의 뜻을 대의(대의제)하여 공익을 위해 정치해줄 것을 바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헛된 바램, 비현실적인 환상 ‘이데올로기’이다. 
 
지금 국회가 아수라장으로 돌아가는 것만 봐도 그렇다. 도무지 합리나 이성과는 거리가 멀고 욕심을 상호 조절하는 데도 실패하고 있다. 국회뿐 아니라 검찰, 법원, 의료계 의사들이 다 그러하다. 욕심과 아집, 비리로 점철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도 소피스트였다
 
미학자 진중권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유시민은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소피스트"라고 평했단다. 또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에게 맞서 진리의 객관성과 보편성을 옹호했다"고 하고, 나아가 유시민을 비하하여 "소피스트들도 최소한 저 수준은 아니었고 저 바닥까지 내려간 것은 소피스트들 중에서 극히 일부였던 막장들뿐이다"고 했단다. 
 
여기서 진중권은 유시민은 고사하고 소피스트에게 엄청난 실례를 범하였다. 소크라테스도 당시 전통의 사고와 관습에 맞서서 새로운 가치를 추구했던 소피스트였기 때문이다. 또 소크라테스와 다른 사고 형식과 상대적 가치관을 추구한 프로타고라스 등도 나름 진리를 추구한 사람들이었다. 후자는 진리가 상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뿐이다. 
 
소크라테스가 진리의 객관성과 보편성을 옹호했기 때문에 수준이 높고, ‘소피스트’들은 가치를 상대적이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수준이 낮다는 말은 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소크라테스 뿐 아니라 지금도 무엇이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인지 하는 것 자체가 불분명하다. 진중권은 소크라테스의 말씀을 ‘공자 말씀’같이 절대적 가치를 가진 것으로 놓고, 보통 소피스트를 그 다음 수준, 그리고 유시민을 보통 소피스트보다 더 못한 막장 소피스트로 서열 매김을 했다. 그러나 왜 그런 순서가 되는지에 대한 근거를 설득력있게 제시하지 않았다. 
 
뭔 개소리를 하는 건지 ㅉㅉ 20/10/16 [15:14] 수정 삭제
  그냥 유시민 빠순이가 ‘울 시민옵빠 왜건드렷! 내가 혼내줄꼬얐!!!’하고 발끈하여 되도않는 얕은 지식으로 얼기설기 엮어기운 누더기를 논평이랍시고 내싸지른 쓰레기 잡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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